불법에 맞선 비정규직 시위, 모두 유죄

2022년 02월 09일 18시 05분

-김수억 전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 징역 1년 6월 실형 
-법원 “피고인 주장에는 동의하나 실정법 테두리 안에서 요구해야”
“오늘 법원은 불법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죄를 물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장에는 법원 또한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실정법 테두리 안에서 요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법 파견을 저지른 재벌은 처벌하지 않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모두 유죄를 물었습니다. 상식과 정의는 죽었습니다.”

-김수억 / 전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징역 1년 6개월 선고)
불법 파견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다 재판에 넘겨진 김수억 전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이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김 씨와 함께 기소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현대기아차, 한국GM, 아사히글라스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법 파견 시정을 촉구하며 농성을 했다는 이유로 9일 1심 재판에서 전원 유죄를 선고 받고 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선일)는 9일 오전 11시 30분 열린 1심 재판에서 공동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수억 전 지회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법원은 김 전 지회장이 현재 수원고법 등에서 또 다른 집회, 시위 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비정규직 노동자 16명에게는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100~2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날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 17명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다. △현대기아차 11명 △한국GM 2명 △아사히글라스 2명 등이다. 이들은 20년간 계속되고 있는 기업들의 불법 파견을 바로잡으라는 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며 2018년 서울고용노동청 복도, 대검찰청 로비 등에서 농성을 벌였다. 청와대 인근에서 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 씨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집회를 하거나 거리행진을 진행했다.
이처럼 피고인 17명은 자신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불법 파견 문제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 전반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다가 2019년 7월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결심 공판에서 김수억 전 지회장에게 징역 5년 등 비정규직 노동자 17명에게 총 징역 21년 2개월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참여연대·조계종 사회노동위 등 36개 시민사회단체는 검찰의 기소가 무리하다고 비판하며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8년 9월,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불법 파견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고용노동청 점거 농성을 벌였다. 검찰은 이 농성에 당초 '특수건조물침입'죄를 적용했다가 '공동주거침입'으로 죄명을 변경, 기소했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 구형보다는 형량을 대폭 낮춰 선고했다. 하지만 이들의 농성을 모두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불법 파견, 비정규직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맞다. 법원도 피고인들 주장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피고인들의 주장 자체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지만, 대외적으로 주장을 제시하는 방법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다. 관공서의 경우 누구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청사 관리 책임자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방법으로 출입해선 안 된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날 선고 직후 재판 당사자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은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용우 변호사는 “오늘 재판에서 기억해 할 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법원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장과 요구의 정당성을 인정했다는 것,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구형한 것을 법원이 그대로 받아 유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라며 “법원이 노동자들 주장의 정당성은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 그와 정반대의 모순된 판결을 했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벌금 200만 원을 선고 받은 한국GM 비정규직 노동자 황호인 씨도 “우리들의 요구가 옳다고 판단했다면 사법부가 (양형의) 시혜를 내릴 것이 아니라 잘못된 실정법, 악법에 대해서 판사의 신념에 맞는 판결을 내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황 씨는 “우리들의 요구는 단순히 형량을 줄여 달라는 게 아니었다. 불평등을 갈아엎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가두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며 “법이 잘못됐으면 법을 바꾸고, 제도가 잘못됐으면 제도를 바꾸는 사회를 바란다. 사법부의 시혜를 바라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노동자 17명에 대한 검찰 구형량과 1심 선고 형량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