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박근혜 정부 낙하산’의 시청자미디어재단 농단 사건 회고

2017년 02월 10일 12시 00분

최순실 사태 축소판 같아요.
짧은 말 긴 한숨. 시청자미디어재단 사람 여럿이 그랬다. “최순실이 망친 박근혜 정부처럼”이라거나 “박근혜‧최순실 관계랑 비슷하더라”고 조금 달리 말한 이가 있되 꼭 장탄식에 허탈한 웃음이 이어졌다. 한결같았기에 기자에게 닿는 느낌도 뚜렷했다. 온갖 비위에 짓눌리다 못해 호루라기를 불게 된 괴로움과 아픔이 훅 건너왔다.
박근혜 정부 낙하산을 탄 이석우 이사장과 그의 심복에 얽힌 얘기였다. 두 사람에게 몇몇 직원까지 휩쓸린 탓에 많은 이가 괴로웠고 끝내 재단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기자가 1년 넘게 재단과 이사장에 대해 듣거나 보고, 진실을 찾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닌 까닭이다.

최순실표 농단이 내려앉은 듯

“이상했다”는 말이 자주 들렸다. 그리해선 안 될 일을 심복이 터무니없이 밀어붙이는데 이사장은 그를 되레 ‘전문가’로 추어올렸다. 그가 모든 일을 다 해낼 줄로 믿는 듯했다. 심복이 재단 사업 기획과 예산 업무를 맡은 까닭이요, 국회 고참 보좌관에게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파견직 자리를 건넬 만큼 인사에까지 입김을 넣게 한 뒷배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이사장이 취임하고 심복이 입사한 지 1년 6개월여 만에 큰 사달이 났다. 재단 ‘예산서’조차 짜지 못해 직원에게 2017년 1월 임금을 체불할 뻔했다. 그걸 들여다본 류재영 방송통신위원회 지역미디어정책과장은 “공공기관에서 벌어질 수가 없는 일”이요 “공공기관 역사상 처음일 것 같다”고 말했다. 류 과장이 이석우 이사장의 심복에게 4개월 동안이나 ‘예산서’를 꾸준히 요구했음에도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을 해낼 능력이 없었던 것. 여러 곳에서 비슷한 낌새가 엿보였음에도 재단에선 ‘이상하게’ 심복의 목소리가 날로 커졌다. 이석우 이사장도 “재단에 전문 인력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만큼 심복을 ‘전문가’로 인정하는 걸 잊지 않아 그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줬다.

언론중재위 정정보도 청구에 민형사 소송까지

그는 과연 이사장의 복심이었다. 2016년 여름, 재단 안 직원 채용 비위를 뉴스타파에 제보한 사람을 반드시 찾아내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경찰에 재단 안 수사를 의뢰하고, 기자에게도 언론중재위원회 정정보도 청구는 물론이고 민형사 소송을 벌이겠다고 으른 것으로 들렸다. 이 이사장과 한뜻으로 움직인 셈. 이사장 쪽에 선 채 가만있지 않을 ‘우리’라는 낱말까지 쓰며 소송을 일으키는 흐름에 올라탔다고 한다.
2016년 8월 그의 말처럼 다툼이 시작됐다. “재단 신입 채용이 특혜로 얼룩”졌다는 그해 8월 1일 뉴스타파 보도를 두고 “이사장이 유 아무개에게 특혜를 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유 씨의 입사 지원서가 3일 늦게 접수된 것도 행정 착오일 뿐이라고 곁점을 찍었다. 하여 재단과 이사장의 명예가 훼손됐으니 뉴스타파로 하여금 정정 보도를 내게 해 달라는 청구였다.
언론중재위는 유 아무개에게 이사장이 특혜를 준 것으로 봤다. 굵직한 시빗거리를 접으라는 얘기. 중재위에 나온 재단 쪽 사람들도 특혜였음을 받아들였다. 중재위는 다만 “유 씨의 입사 지원서가 제출 마감일인 (2015년) 6월 12일에 접수됐고, (3일 뒤인) 6월 15일 ‘재단 내부 검토’ 후 서류전형 심사 대상자로 재분류된 것”으로 뉴스타파가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유 아무개 지원서의 ‘접수일’이 2015년 6월 15일로 기록된 입사 전형 자료가 있었기 때문. 특히 ‘재단 내부 검토’라는 주장은 지원할 자격조차 없던 유 씨에게 이사장의 특혜를 덧씌운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잘 알았기에 물러설 수 없었다. 이석우 이사장 쪽 사람들은 이런 속사정을 덮어 둔 채 “우리가 이겼다”고 재단 안팎에 알렸다. 이사장이 재단 이사회와 방통위에 “이겼다”고 알린 건 물론이다.
혹시나 정말 “이겼다”고 생각했을까. 2016년 10월 같은 시빗거리를 들고 이석우 이사장과 재단이 민형사 소송을 일으켰다. 민사는 두 건. 명예훼손이었으니 뉴스타파와 기자에게 각각 5,000만 원과 소장을 받은 이튿날로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할 5푼씩 더 내놓으라고 주장했다. 또 하나는 언론중재위 정정보도 청구가 법원으로 이어진 것. 두 건 모두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형사 소송은 같은 내용을 두고 뉴스타파와 기자의 죄(?)를 물어 달라는 것. 이건 얼마간 마무리됐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혐의 없다”고 보고 기소하지 않았다. 수사한 결과, 이석우 이사장 쪽에서 내민 ‘다툼이 되는 사실’ 모두에 대해 “객관적인 자료가 있음”이 인정됐다. 언론중재위에서 풀리지 않았던 유 아무개의 ‘입사 신청 서류가 마감일 이후에 접수됐다는 것’도 마찬가지. 자연스레 기자가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삼아 ‘공익을 위해’ 기사를 쓴 것으로 밝혀져 ‘혐의 없음’에 이르렀다. 차관급 공공기관장인 이석우 이사장의 여러 비위 의혹을 객관적인 근거와 사실에 따라 내보였으니 공익에 이바지한 것으로 보는 게 옳다는 얘기. 두말할 나위가 없어 보였다. 이 이사장 쪽 생각이 다를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겠고.
▲ 검찰 수사 결과 가운데 ‘다툼이 되는 사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각주 1’… 1년 넘게 이어진 ‘호루라기’에 박수

이석우 이사장의 유 아무개 채용 특혜와 관련해 눈길을 붙드는 게 있다. 방통위가 재단 종합 감사를 벌여 올 1월 3일 내놓은 처분요구서의 제1 각주. “이사장이 대학 동문인 유☆☆의 부친으로부터 인사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부 언론에서 제기됐으나 이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는 것.
▲ 방통위의 시청자미디어재단 처분 요구서 가운데 제1 각주
방통위 관계자는 “그걸 확인할 수 있었다면 재단 이사회에 맡기지 않고 방통위가 직접 이사장을 해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씨 아버지와 이사장 사이에 채용 청탁에 따른 돈 같은 게 오갔는지를 알아보거나 두 사람의 휴대폰이나 피시를 들여다볼 수 없어 “한계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진실을 코앞에 두고 물러선 아쉬움으로 읽혔다.
사건 맨 처음에 호루라기가 있었다. 유 아무개 채용이 “특혜였다”는 목소리 하나. 이석우 이사장과 주변 몇몇의 농단이 재단을 비위 잡화점으로 만들었다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제보. 그 뒤론 1년 넘게 봇물 터지듯 호루라기가 이어졌다. 지역 시청자미디어센터 파견자 채용 과정이 수상하고 재단 인사에 원칙이 없는 것 같다는 이메일과 문자메시지와 메신저와 전화들.
나머지는 기자 몫이었다. 발품 조금, 자료 찾기와 전화 많이. 유 아무개 씨가 브라질 이곳저곳을 여행할 때 그의 아버지가 상파울루에서 일한 것 같아 두 사람이 부자 관계인 성싶다고 짚은 것, 유 씨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재단에 입사했다고 들은 것, 이석우 이사장에게 유 씨 아버지를 아느냐고 물은 것 따위였다. 이사장이 법인카드로 산 담뱃값 4만5000원짜리 영수증을 확인하러 편의점 찾아다닌 것, 이사장 직책수행경비가 허투루 쓰인 듯한 곳에 가 본 것,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파견자가 어떤 뒷배경 덕에 채용됐는지 알아보러 국회의원 지역구 사무실과 J고에 간 것, 서울시청자미디어센터 파견자를 만나고 그의 아버지와 지역 국회의원이 서로 아는 사이인지 묻고 다닌 것 정도였다. 이를 토대로 2015년 말부터 1년 넘게 지금까지 모두 10차례에 걸쳐 이석우 이사장의 전횡과 비리의혹을 보도했다. 그 결과는 지난 6일 시청자미디어재단 특별이사회의 이석우 해임안 의결(관련기사)로 나타났다.
세상을 바꿀 가장 큰 힘은 공익에 도움 주는 ‘호루라기’라고 기자는 믿는다. 쌓이고 쌓여 썩기 시작한 걸 세상에 알리는 ‘당신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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