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의

[현장에서]검사실의 그 많던 스시는 누가 다 먹었을까

2020년 06월 02일 18시 34분

# 스시 도시락 10개! 머릿수를 맞춰라

2011년 3월 1일. 오후 4시 5분. 서울 매봉역 근처 ‘스시O’이라는 초밥집. 20대 중반의 젊은 남성이 스시 도시락 52만 5천 원 어치를 신용카드로 구매했다. 당시 이 초밥집에서 파는 도시락은 1개에 3-5만 원이었다. 최소한 도시락 10개 이상을 샀다는 말이다. 이 남성은 1시간 쯤 뒤인 5시 10분 서울중앙지검에 들어갔다. 출입한 곳은 당시 ‘한명숙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특수부 1128호. 신용카드 사용 내역과 중앙지검 출입 내역으로 확인된 내용이다.

뉴스타파는 지난주 ‘한명숙 사건’ 당시 검찰의 위증교사 의혹을 폭로했다. 검찰로부터 위증교사를 받았다는 사람은 한명숙 사건의 핵심 증인이었던 한만호 씨와 서울구치소에서 같이 복역하고 있었던 재소자 H였다. H는 검찰이 써주는대로 진술을 베껴쓰고 증언을 연습했다고 주장했다. H는 중앙지검 특수부에서 위증 훈련을 받으면서 검사들에게 고급음식을 여러차례 배달시켜 접대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H가 검찰청으로 음식 배달을 부탁했던 사람은 조카와 회사 직원. 회사 직원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조카와 만나봤다. 9년 전 일을 디테일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양해를 구하고 당시 카드 내역을 조회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검찰청 출입 기록도 정보공개청구했다. H의 말은 사실이었다. 스시 도시락을 사서 검찰청에 배달한 사람은 바로 H의 조카였다.

H는 조만간 당시 한명숙 사건 수사라인에 있었던 검사 13명과 수사관 등을 모해위증교사와 협박 등의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다. H가 작성해 놓은 고발장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고발인(H)의 자비로 고발인의 직원 000과 000(조카)에게 시켜 0000 호텔 일식집과 서초동 00장 등에서 구입한 사시미, 스시, 수육, 족발 등 사식을 검사와 수사관에게 고발인이 제공하고, 담배도 보루로 제공하자 피고발인들(검사와 수사관)은 고발인에게 담배를 자유롭게 피게 해주고, 외부인과의 면회를 하루 1-2번씩 시켜주었고, 검찰 내부 전화와 검찰 보유 핸드폰으로 외부와 소통 후 업무 및 사업 진행을 가능하게 해주었으며”
- 죄수H의 고발장 중

실제로 조카는 뉴스타파와 만나 검사에게 전화가 온 것이 아니라 삼촌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검찰은 뉴스타파 보도에 이렇게 해명했다.

“H가 출정하여 외부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하여 아들과 조카 등에게 사오라고 한 후 당시 같이 있었던 H, 김00, 최00, 음식을 사온 아들, 조카, 다른 참고인 등이 같이 먹은 사실은 있으나 검사와 수사관이 같이 먹은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 검찰 해명자료 중

일단 사실 관계가 틀렸다. 당시 조카가 음식을 배달한 것은 맞지만, 아들은 같은 날 검찰청 출입 기록이 없다. 조카는 5시 10분에 검찰청에 들어가 23분 후인 5시 33분에 검찰청을 나간다. 조카는 음식만 놓고 바로 나왔다고 말했다. ‘다른 참고인’이 7명 정도는 돼야 검찰의 해명이 납득이 간다. 그게 아니면 다른 방에 있던 참고인들을 모두 모아 ‘파티’를 벌였다는 말이 된다. 물론 검사들, 수사관들이 같이 먹었다면 이야기는 매우 쉽게 정리가 된다.

또 하나 의문은 검찰이 같이 음식을 먹었다고 하는 김00이다. 검찰 해명자료에 등장하는 김00, 최00은 H가 함께 위증 훈련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모두 법정에서 검찰 기소 내용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한 증인들이다. 최00의 출정기록을 보면 3월 1일 특수부 1128호로 출정을 간다. H가 배달시킨 도시락을 먹었을 개연성이 크다. (증인들을 분리 조사했다는 검찰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00은 이미 2월 21일 법정 증언을 마쳤으며 그 전에 출소한 상태였다. 검찰 주장이 맞다면 김00은 왜 법정 증언도 끝난 3월 1일 특수부 검사실에서 저녁에 스시 도시락을 먹고 있었던 걸까. 스시 도시락을 먹은 사람 숫자를 맞추기 위해 ‘현장 부재했던’ 아들과 조카를 끌어들인 것처럼 김00도 허위로 끌어들인 것이 아닐까. 아니면 김00이 출소한 뒤에도 검사실에 들어와 최00과 H의 ‘훈련’을 도와주고 있었던 걸까.

H는 검사가 조사실에서 외부인과의 면회, 전화통화 등을 수시로 시켜줬다고 주장했다. 감옥에서 사업을 할 수 있게까지 해줬다는 게 H의 주장이다. 사실이라면 모두 불법이다. 검찰은 재소자 신분인 H가 조사실에서 외부로 전화해 음식을 배달시킨 것은 인정했다. 같이 먹지는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재소자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시켜먹게 한 것은 사실이 됐다. 이 부분은 명백한 불법이므로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의문은 검찰이 재소자들에게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인 이유다.

참고로 교도관들은 검사들과 달리, 재소자들에게 휴대전화 사용 등의 편의를 몰래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종종 체포되기까지 한다. 김용민 의원(변호사)은 검찰의 편의 제공 부분은 뇌물의 관점에서 들여다 봐야한다고 말했다.

# 특수부는 왜 H의 아들을 불렀나

한만호와 가까웠던 H는 처음에는 검찰의 증언 조작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속적으로 증언을 요구하는 검찰이 자신의 아들과 조카를 소환해 처벌하겠다고 협박해 협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번 뉴스타파 보도 중 가장 충격적인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H는 “어린 아들을 볼모로 잡고서 (검사가) 양아치 짓을 하는 것을 보고서 출정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해명 자료에서 “명백한 허위 주장으로, H가 한만호에게 ‘일산에서 회사를 인수할 생각인데 한 전 총리로부터 돈을 돌려받으면 그 돈으로 동업을 하자’고 제안했다고 진술하여 그 진위를 확인하고자 아들과 조카를 소환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한 일이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H의 아들은 1991년 생으로 당시 만 20세가 되지 않았다. 조카는 26살로 취업준비생이었다. H는 주식을 매매하면서 차명으로 아들과 조카 명의의 계좌를 이용했다. 검찰이 이 건으로 아들과 조카를 처벌하겠다고 협박을 했다는 게 H의 주장이다. 실제로 H는 관련 사건으로 4년 뒤인 2015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다.

아들과 조카가 함께 검찰에 소환된 것은 2011년 2월 14일이다. 2010년 12월 20일 한만호가 증언을 번복한 뒤 치열한 법정 다툼이 이어지고 있던 시점이다. 검찰 측 증인 김00은 2월 21일 법정 출석이 예정돼 있었다.

H의 아들과 조카는 오후 5시 15분에 검찰청에 들어간다. H는 이미 같은 검사실인 1128호에 출정을 나와있는 상황이었다. 아들과 조카는 1시간 30분 가량 검사실에 머문다. 검찰의 설명대로 H의 말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면 H가 없는 검사실로 아들과 조카를 불러서 물어보는 게 상식적이다. H의 아들은 검사가 몇 마디 물어보고 아버지를 만난 뒤 검사실을 나왔다고 말했다. 아들은 H가 “걱정하지 마라, 이제 여기 있는 검사님들 도와주는 일이다”라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검찰은 플리바게닝을 했나?

검찰은 증인 김00과 최00에 대해서 “한 전 총리 사건의 공소유지에 유리한 증언을 한 대가로 어떤 혜택을 주거나, 이익을 제공한 바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H의 주장은 다르다. 김00과 최00은 사기사범, 마약사범으로 이미 검찰의 프락치, 혹은 검찰 브로커 역할을 했다는 거다. H의 표현에 따르면 “검찰과 한 몸”이었다고 한다. 실제 김00과 최00의 출정기록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기록 안에서는 김00과 최00은 매주 2-3회 검찰에 출정을 다녔다. 강력부, 형사부, 특수부 등 부서도 다양했다. 검찰이 이들에게 쉽게 줄 수 있는 대가는 외부인 접견과 전화, 음식 등의 편의제공이다. 이는 이번 사건에서 검찰이 일부 인정한 부분이기도 하다. 어려운 대가는 구형량을 낮춰주거나 가석방 편의를 봐주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죄수와검사>에서 검사와 죄수 사이의 불법적인 거래 실태를 생생하게 고발했다.)

최00은 2008년 같이 감옥에 있었던 양 모 씨에게 1700만 원을 받는다. 최00은 검찰의 구형량을 깎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양 씨는 최00을 고소했다. 2012년 검찰은 최00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이 최00에게 최저 형량의 구형을 해줬다는 게 H의 주장이다. 실제 이 사건은 항소심에서 뒤집히기는 하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역시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 ‘정파적 해몽’은 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한 전직 교수가 뉴스타파의 <죄수와검사Ⅱ> 보도와 관련해 “어느 매체에서 느닷없이 10년 전 한명숙 전 총리 수뢰 사건의 기억을 끄집어냈다”고 표현했다. “여당과 친여 매체가 손잡고 벌이는 한명숙 구출작전”이라고도 말했다. ‘손잡고 벌이는’ 이라고 규정한 근거나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런 식의 지긋지긋한 정파적 구도를 들이대는 건 사실과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있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만 전하고 싶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가을부터 한명숙 사건을 취재했다. 실제 기사화 가능성은 꽤 낮았다. 다른 취재들을 병행하면서 시간 날 때 퍼즐을 하나씩 맞춰보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미 법정에 제출됐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핵심 증인 고 한만호 씨의 비망록’을 입수했다. 한명숙 전 총리 공판에 등장했던 수상쩍었던 검찰 측 증인들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증인들과 함께 검찰 조사를 받았던 ‘죄수H’와도 연락이 닿았다. 취재가 마무리 된 것은 4월 초. 열심히 제작한다면 물리적으로 총선 직전에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선거 직전에 ‘선거와 관련 없지만 정치적 휘발성이 높은 보도’를 공개하는 건 부담이었다. 선거 이후 보도한다는 일정을 잡고 제작을 진행했다. 뉴스타파의 정무적 판단은 딱 거기까지였다.

뉴스타파는 취재, 제작 과정에서 정무적 판단을 하는 비율이 가장 작은 언론사라고 자부한다. 거대 여당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명숙 사건’을 거론하고 있다는 일종의 ‘기획설’은 기존 언론사와 정치권과의 밀월 관계에서 관습적으로 유추한 엉터리 ‘정파적 해몽’에 불과하다. 그런 논리라면 ‘한명숙 사건’은 영원히 보도할 수 없다.

뉴스타파가 관심이 있었던 건, 한명숙 전 총리가 돈을 받았는지가 아니었다. 이건 좀 더 다른 층위와 각도에서 살펴볼 일이다. 우리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위법적인 것은 없었는지 취재했다. 검찰 입장에서 보면 이건 다소 손쉬운 일이다. 당시 증인들을 조사하고, 당시 검찰청에 출입했던 기록들을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물론 ‘의지’의 문제다.

제작진
취재김경래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관련뉴스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