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7일 아침 7시 반.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분신한 경비원 이만수 씨가 그의 부인과 마지막으로 나눈 카카오톡 내용이다. 두 시간 뒤, 그는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입주자의 집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주차장, 그 위치에서 자신의 몸에 스스로 불을 질렀다.
그리고 한 장짜리 쪽지 유서를 남겼다. 종이 한 면에는 “00 팀장 원망. 직장 소중함 알아야 돼”라는 말이, 다른 한 면에는 “아들들 미안, 여보 이 세상 당신만을 사랑해”라고 쓰여 있었다. 문자부터 유서까지, 고인이 된 이 씨가 평소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가족에게 따뜻하고 사랑 받았던 ‘가장’이었던 것 만은 분명해 보였다.
지난 10일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 씨의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 가해자 입주민이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나서야, 이 씨가 사망하고 나서야 뒤늦게 사과를 했음에도 “사과를 해줘서 우리 아버지 편하게 가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아들이었다. 용서가 되느냐는 질문에 “정말 화나지만 생전에 아버지는 남과 싸우는 걸 싫어 하셨거든요”라며 애써 웃던 아들이었다.
취재하면서 그 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정말 아까운 분이 가셨구나.’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에선 경비원 한 명이 분신을 한 일종의 ‘시끄러운 사건’일지 몰라도, 이 씨의 가족에겐 세상 하나 뿐인 아버지, 남편을 잃은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그 때 처음 들었다.
그렇게 그의 발인이 치러지고 난 지난 11일 오후, 압구정동 그 아파트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조용해진 아파트를 한 바퀴 둘러봤다. 아파트 한 귀퉁이를 청소하고 있는 한 경비원 아저씨가 보였다. 고 이만수 씨의 동료였다. 동료가 분신으로 떠난 그 곳, 어떤 마음일까. 유자차 한 병을 사들고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경비아저씨는 기자의 방문을 반겼다. 이미 몇 차례 타 언론사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던 분인데, 미처 못 다한 속 이야기가 있으셨던 것 같다. 잠시 앉으라더니 1시간 가량 이야기를 쏟아 내셨다. 대화를 나누는 중간 중간 녹음은 하고 있는 거냐고 물으셨다. 녹음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한 마디 한 마디 다 내보내 달라는 뜻이었다. 그 만큼 밖으로 알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는 거다.
이 경비아저씨는 혼자서 70여 세대를 관리한다고 했다. 경비실 책상 위에는 70여 세대의 차량번호가 빼곡히 적힌 종이가 놓여있었다. 집집마다 차량 2대는 기본, 많은 곳은 한 집에 7대에 달한다. 아우디, 벤츠, 렉서스 등 대부분이 외제차다. 그 틈에 에쿠스, 그랜저 등의 국산차가 드물게 끼어있었다. 아저씨는 차량 번호와 입주자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었다. 입주자가 방문하자 반사적으로 해당 주민의 차키를 집어드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였다.
<사진설명 :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경비원이 관리하는 입주자들의 차량과 차 열쇠들>
비싼 외제차를 7대까지 모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경비원 아저씨는 “이 아파트엔 의사, 검사, 변호사, 판사 등 소위 ‘사’자 붙는 사람들이 산다”며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높으신 분들이 모여있는 곳”이라고 귀띔했다.
그런 ‘높으신’분들이 사는 곳이라, 이 곳에서 일하는 경비원은 다른 곳의 경비원보다 30~40만원 더 받는다고 한다. 그래봤자 4인 가족 ‘최저’생계비 수준인 160만원 정도다. (2014년 4인가족 최저 생계비 163만원) 최저생계비 정도 받으면서 택배 보관과 운송, 주차관리, 청소 등 경비업무 외의 일까지 24시간 2교대로 쉴 틈 없이 일을 한다.
그렇게 높으신 분들을 쉼 없이 경비하던 경비원이 세상을 떴다. 그 뒤 입주자들의 태도는 어땠을까. 판사 경력 20년의 입주자대표회의의 대표는 여전히 사과할 마음이 없다는 입장이다. 참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 사과 한 마디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동안 고생하셨는데 이렇게 가시게 해서 죄송하네요"정도의 예의만 갖춰줬어도 좋았으련만. 오히려 남은 동료들의 계약까지 해지하겠다며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
이 구역을 맡고 있는 관할 경찰서의 태도는 또 어땠을까. 강남경찰서 담당 형사가 사건 당일 경비원의 아들을 불러 꺼낸 첫마디가 “아버지는 방화범”이었다. “아버지가 분신을 시도할 당시 방화로 태운 차량의 차주와 합의하려면 ‘가정불화가 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해 최대한 동정표를 얻어야 한다”며 거짓진술을 종용한 것이다.
하지만 유족들은 경찰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가정형편이 남들보다 조금 어렵기는 했어도 큰 아들도 직장에 들어가고, 삶을 포기할 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화목함 만큼은 그 어떤 가족보다 뒤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언론보도는 엉뚱한 방향으로 나갔다. “분신 원인에 우울증과 어려운 가정형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주민의 폭언을 분신 원인으로 속단할 수 없다”고 나간 것이다.
관련 기사를 작성했던 모 언론사 기자는 경비원의 ‘분신’이라는 속보를 내보내기 급해 강남경찰서의 말을 그대로 인용, 보도했다고 말했다. 당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있던 경비원은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울증 걸린 가난한 경비원’이 됐다. 생전에도 죽어서도 그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난한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강남경찰서로부터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공문이 회사로 도착했다. 유족측에게 거짓진술을 종용한 적이 없으니 정정보도를 해달라는 거다. 그러면서 “정정보도를 통해 실추된 경찰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정정보도 청구서를 아무리 꼼꼼히 읽어봐도 정정보도 할 내용이 없다. 경찰 말대로라면 나와 인터뷰한 유족과 경찰말을 듣고 기사를 썼다는 기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묻기 위해 전화를 걸어도 도통 받지를 않는다.
경찰의 명예회복을 생각하기 전에, 돌아가신 분에 대한 명예부터 좀 회복시켜 줄 생각은 없는지 경찰측에 묻고 싶다. 가족들의 진술을 다 받기도 전에 기자들에게 ‘이씨가 평소 우울증을 앓았고, 가정형편이 상당히 어려웠다’는 말을 흘려 경비원의 분신 원인을 ‘우울증 대 폭언’의 구도로 만들어버린 경찰, 그들이 먼저 고인에 대한 명예회복에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최근 세상을 떠난 비정규직 노동자의 소식을 여러차례 보도했다. 한 두건이 아니다보니 세상은 어느덧 그들의 죽음에 무감각해진 듯 하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회가 그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만 해줬어도 죽지 않았을 너무나 아까운 사람들이다.
그렇게 소리 없이 묵묵히 일하다 세상을 떠난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들 앞에 반성은 아니어도 좋다. 경찰이든, 언론이든, 압구정동 아파트 주민이든, 그냥 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최소한의 예의’정도는 차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