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MBC, KBS, YTN 사장이야기

2012년 02월 04일 06시 32분

“아 김형사님, 매일 김형사님만 근무하시는 것 같아요. 김재철입니다, MBC”

2010년 4월 18일 기자회견

“제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 사원들이 한강에 저를 매달아서 버리세요.”

@ 2010년 3월 4일 천막 업무

<기자>

지난 2010년 봄, 취임 직후부터 줄곧 공영방송 MBC 사장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언행을 일삼아왔던 김재철 씨.

“일본 분들하고 중국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잘 들으시지도 못하시면서 화면만 계속 뚫어지게 보시더라고요.”
“왜 그러세요”
“한류가 계속 세계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0년 12월 30일 MBC 연기대상 시상식

<기자>

이런 김씨를 사장으로 직접 임명한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은 운명 직후 신동아의 인터뷰에서 충격적인 인터뷰를 털어놨습니다.

MBC 사장의 가장 중요한 임명 기준은 말귀 잘 알아듣고 말 잘 듣는 사람이냐는 거였고. 김씨가 취임 직후 실시한 인사는 큰집 청와대 불려가 쪼인트 까이고 매를 맞아가며 한 것이었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또 김우룡씨는 김채철씨에게 MBC 내 좌파 청소부 역할을 주문하며 밑그림을 그려줬고 이에 대해 김재철씨가 걱정하지 마시라는 답변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김재철씨가 청와대의 낙하산 사장이라는 사실과 함께 현 정권에 MBC 장악 음모까지 적나라하게 폭로한 것입니다. 그러나 김재철씨는 사실무근이라고 발끈하며 소송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맞섰습니다.

“김우룡 이사장을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하고..”

“남자의, 남자의 약속은 문서보다 더 강한 게 말입니다.”

“제가 지키겠습니다.”
(어떻게 지킵니까) “제가 (MBC의 독립을) 지키겠습니다. 두고 보시면 알 거 아닙니까.”

2010년 3월 19일 기자회견

<기자>

하지만 차일피일 소송을 미루더니 결국 180도로 말을 바꿨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칼을 들이대야 하나... 결혼하기로 했다가 파기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김우룡 전이사장을) 이제 고소할 생각이 없습니다.’

2010.8.12. 노사협의회 발언

그리고선 전방위적으로 MBC 망가뜨리기에 나섭니다. 엉터리 인사와 아이템 검열로 피디수첩을 무력화시켰고. 김미화씨 등 라디오 진행자를 일방적으로 교체하는가 하면, 소셜테이너 금지규정까지 만들어 비판적 인사들의 방송출현을 금지시켰습니다.

성역 없는 비판을 해왔던 후는 폐지됐고. 뉴스데스크에서도 정권에 민감한 뉴스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며 편파적인 뉴스로 채워졌습니다.

불공정 보도에 대한 내부의 항의가 잇따르자 김재철씨는 자신도 답답하다며 다시 불공정 보도가 행해진다면 나갈 뜻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말 뿐, 퇴진은커녕 자신에게 비판적인 직원은 철저히 인사로 보복했고 주요 보직은 가신들로만 채우면서 MBC를 더욱 망가뜨렸습니다.

MBC 노조가 최근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93.5%가 김재철씨의 사장직 유지에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언론 관련 학과 교수 100명이 한미FTA와 내곡동 사저, 서울 시장 보궐선거 등 주요사안에 대한 뉴스보도를 평가한 결과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70%를 넘었습니다.

공영방송 MBC의 추락을 막고 제자리고 돌려놓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결국 김재철씨의 퇴진일 수밖에 없습니다.

<앵커 멘트>

5공 때 KBS는 이른바 땡전 뉴스의 전형이었습니다. 동진호 납치사건과 민정당 창당 기념일이 겹쳤던 1987년 1월 15일, KBS 9시 뉴스는 민정당을 위해 20분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때 민정당 홍보 보도에 최전선에 있었던 KBS 정치부 기자가 지금은 사장이 돼 있습니다. 그의 리포트는 지금도 5공 리포트의 백미로 꼽힙니다. MB 특보 출신 KBS 김인규 사장입니다.

지난 6년 전 극심한 사회혼란과 정치적 위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출범한 민주 정의당은 무엇보다 구정치 질서의 청산과 개혁을 위해 새 시대 새 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새 역사 창조에 나섰습니다.

민정당은 창당 때부터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당원들의 당비에 의해 당을 운영해 나가는 자립정당상을 우리나라 정당 사상 처음으로 확립하고 구시대적 정치 병폐의 재현을 막기 위한 청렴정치에 앞장 서 왔습니다. 특히 국민 속의 정당을 목표로 ...

김인규 리포트 / 1987년 1월 15일

<기자>

민정당이 구정치 질서를 청산하고 새 역사 창조에 나섰다. 창당 때부터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당비에 의해 당을 운영해 청렴정치에 앞장섰다. 87년 1월 15일 KBS 9시 뉴스에서 기자 김인규씨가 민정당을 평가한 내용입니다.

김씨의 이 보도에 민정당에 대한 부정적 내용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민정당의 당면 과제로 김씨가 꼽은 것은 고작 총선 압승과 정권 재창출, 집권 여당의 바람이 공영방송 뉴스에 그대로 투영된 것입니다.

여당의 총선 압승과 정권 재창출이 시대적 사명이라고 주장한 김인규씨의 비뚤어진 언론관은 약 2주 뒤 일어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보도에서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김씨는 야당인 신민당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민정당은 특히 신민당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자제하지 않고 무책임한 장외 선동 집회를 강행해서 좌경용공 세력에 난동의 기회를 제공할 경우 지난해 5월 3일 인천 폭력 소*사건을 능가하는 파격적인 불상사가 일어나 국민 생활 전체의 희생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김인규 리포트 / 1987년

<기자>

반면 김씨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신속하고 성의 있게 처리하고 있다는 민정당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썼습니다.

정부 여당의 성의 있고 신속한 사후 조치와 인권 신장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민당 측의 이번 사건을 민중 봉기의 기회로 착각해 제야 집단과 함께 불순 장외 선동 집회를 획책하고 있는 저의를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려 혼란과 파국을 막는데 주력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김인규 리포트 /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민정당 창당 기념식에서 개헌 문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현안들에 관해 여야가 서로 이견을 조정하고 협력해 나간다면 국민 여망인 민주주의 정착은 온전하게 이룩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KBS 뉴스

<기자>

1973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KBS 공채 1기로 입사한 김인규씨는 84년 정치부 차장, 90년 정치부장을 거쳐 뉴욕과 워싱턴 특파원, 보도국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김씨는 지난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언론 특보로 발탁됐다가 2009년 KBS 사장에 임명됐으면 임기는 올 11월까지입니다. 김씨가 KBS 사장으로 재임한 지난 2년 여 동안 KBS는 간도 특설대 출신의 악질 친일파를 미화하고 4대강과 G20에 대한 캠페인성 보도를 했습니다. 반면 내곡동 사저 등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부패에 대해서는 축소와 물타기 보도로 일관해 공영방송이 정권 홍보 방송으로 전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최근 YTN 배석규 사장이 자신은 낙하산이 아니라고 강변했습니다. 배 사장은 전임 사장 구본흥씨나 KBS 김인규 사장처럼 MB 특보 출신이 아닌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돌발 영상 무력화, 해직사태 장기화 등의 책임 때문에 형식적인 낙하산은 아닐지 몰라도 실질적인 낙하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노조 설문조사에서 연임 반대 의견이 80% 이상으로 나온 YTN 배석규 사장입니다.

<기자>

2009년 8월 배석규씨는 YTN 사장 대행이 되자 마자 돌발영상 피디에게 대기 발령을 통보합니다. 쌍용자동차 경찰 폭력 진압을 다룬 직후였습니다. 이미 2명의 피디가 해직된 상태에서 YTN의 대표 프로그램은 잊혀져 갔습니다.

노사 합의로 10년 가까이 유지돼 온 YTN의 보도국장 선거 제도 역시 배석규씨는 폐해가 많다는 말 한 마디로 없애버렸습니다.

지난해 초 촬영까지 마친 박원순 인터뷰에 방송 불가 판정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배석규 체제의 YTN에서는 부당한 인사조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눈에 가시인 기자들을 지방으로 쫓아냈고 비리 의혹을 제보한 기자는 자회사로 내쳤습니다.

해직 사태에 3년 4개월. 이 중 2년 6개월이 배석규 사장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용역을 앞세우고 정권과 가까운 대형 로펌을 동원해 해직 사태를 장기화시켰습니다.

배석규 사장은 노사합의를 멋대로 해석해 법원의 복직 판결도 화해 권고도 거부했습니다. 그에게 해직자 복직이란 웃기는 일일뿐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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