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불법사찰 청산’ 못 하나? 안 하나?

2013년 12월 13일 18시 46분

지난 12월 10일 국회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했다. 특위는 지난해 6월 민주당이 19대 국회 개원 조건으로 요구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특위는 위원장을 선출하는 첫 번째 회의가 사실상 마지막 회의였고, 1년여 만에 아무런 조사 활동 없이 막을 내린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조사 대상을 이명박 정부에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 더 나아가 김대중 정부까지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맞서왔다.

아무 성과 없이 특위 활동이 종료됨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사건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은 요원해졌다.

박근혜 정부 역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미온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례적으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해 직권조사를 벌인 후 지난 2월 대통령에게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 사찰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2013121606그러나 박근혜 청와대 대통령실은 지난 5월 “민간인 불법 사찰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음. 다시 이러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모두 노력해야 할 것임”이라는 짧은 두 줄 짜리 답변만 보냈을 뿐, 구체적인 이행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인권위 권고 회신

이 때문에 국가인권위는 지난 7월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다시 보내 달라고 요청했으나 청와대는 지금까지 묵묵부답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인권위 권고에 따라 사찰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를 위해 협조하겠다고 밝혔던 국무조정실은 정작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에서 일부 승소하자 법원에 손해배상 집행을 정지해 달라고 신청하는 등 겉과 속이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일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만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이 종료됐습니다. 1년 동안 제대로 된 회의를 한 번도 열지 않았습니다. 심재철 위원장은 그동안 활동비 9천만원을 받은 것이 알려진 뒤 반납했는데요. 특위가 이렇게 종료된 데는 여당 뿐 아니라 야당도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평가입니다.

정부도 마찬가집니다. 청와대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월 민간인사찰이 재발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아직가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국무조정실은 오히려 사찰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집행을 막고 나섰습니다.

조현미기자가 보도합니다.

두차례 검찰 수사도 몸통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던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사찰 사건. 국민들은 수많은 의혹을 국회가 규명해주길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 같은 국민들의 기대를 외면했습니다. 여야는 지난해 6월 민간인 불법 사찰 국정조사 특위를 구성한 후 제대로 된 회의 한 번 열지 않고 최근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박병석 국회부의장] “재석 218인 중 찬성 132인, 반대 58인, 기권 28인으로써 국무총리실 산하 민간인 불법 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 종료의 건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국회의 민간인 불법 사찰 국정조사 특위 마지막 회의.

여야 의원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책임을 서로 떠 넘겼습니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하고 민정수석을 역임해서 이 특위 활동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바람에 민주당에서는 (그렇게는 못하겠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 “참여정부에서 민간인 사찰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 문제가 불거진 것은 명백하게 이명박 정부에서 비선라인과 민정수석실이라는 공식 라인을 통해 불법 사찰이 있었고…”

심재철 특위 위원장은 특위 활동 종료가 여야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심재철 불법 사찰 국정조사 특위 위원장] “여야 지도부가 우리 위원회 활동을 종료한다는 합의를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회의는 이러한 여야 합의에 따라...”

민주당은 지난해 6월 19대 국회 개원 조건으로 특위 구성을 요구했습니다.

민주당이 특위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이유를 듣기 위해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를 찾았지만, 그는 취재진을 피했습니다.

국회가 진상규명 기회를 포기하면서, 국가인권위가 지난 2월 국회의장에게 국가기관의 정보수집행위로 인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입법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한 사안도 물 건너 가 버렸습니다.

인권위는 당시 권고안과 함께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불법 사찰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국무총리실 지원관실에 직접 내사를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국정원으로부터 국내 정치인, 민간인들에 대한 내사결과를 보고 받고 이를 지원관실에 이첩하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정점으로, 국정원,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밀접하게 연계돼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당초 검찰이 1차 수사에서 지원관실의 범죄 혐의를 인정한 사건은 두 건, 2차 수사에서 형사처분이 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사건은 3건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국가 인권위의 조사 결과 불법 사찰은 100 건이 넘었습니다. 인권위는 특히 지원관실의 ‘뒷조사식’ 사찰 행위가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인격권 등을 침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대체적으로 볼 때 (인권위가) 과거보다는 정부에 대해 조금 당당하지 못하고 너무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평판이 있는데 이 사건 만은 그런 우려를 불식시킬 정도로 성의 있게 잘 챙겼죠. 특히 직권조사를 통해서 했다는 것은 높게 평가합니다. 직권조사는 인권위 스스로 의지의 표현이거든요. ”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불법 사찰 피해자들에게 사과 한 마디 남기지 않고 임기를 마쳤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정부를 간절히 바랐지만 제 주변의 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국가기관이 공권력 남용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모습은 박근혜 정부도 다르지 않습니다.

인권위는 국회뿐 아니라 대통령에게도 불법 사찰을 근절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청와대는 “근절돼야 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노력하겠다”라는 형식적인 두 줄짜리 답변만 인권위에 보냈습니다.

그러자 인권위는 지난 7월 좀 더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보내 달라고 다시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5개월이 지나도록 묵묵부답입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민간인 불법 사찰 관련해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대통령실에 권고한 사안이 있는데요.) “제가 아직 그 부분은 검토를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인권위 관계자] “(청와대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고 아시겠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어서 지금 저희 입장을 밝히는 것이 내부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을 한 상황이어서...”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속내는 국무조정실의 태도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국무조정실은 사찰 피해자들이 권리구제를 원할 경우 필요한 조치를 하라는 인권위의 권고에 대해, 겉으론 민사소송에서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정 반대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뉴스타파가 단독으로 입수한 민간인 사찰 피해자 김종익 씨의 민사소송 관련 정부 답변서. 박근혜 정부는 김씨가 사찰로 인해 피해를 본 게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종익씨가 지난 8월 소송에서 일부 승소하자 심지어 법원에 손해배상 집행을 정지해달라고 신청하기까지 했습니다.

[최강욱 변호사 / 민간인 사찰 피해자 변호인] “항소심에 가면 인지대가 많이 늘어납니다. 그 인지대를 낼 돈이 없어서 1심에서 일부 승소한 금액으로 집행하려고 했는데 그것을 국가가 집행정지 신청을 해서 막아놨습니다. 그래서 그 돈도 찾지 못하고… ”

YTN 노조 사건에서는 아예 ‘사찰’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노조를 사찰하고 임원 인사에 개입한 증거가 나왔는데도 오히려 총리실의 정당한 업무라는 궤변으로 사실상 불법 사찰을 옹호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사찰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를 하겠다고 해놓고, 실제론 피해자들의 권리회복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길홍근 국무조정실 공보기획비서관] (국가인권위에는 피해자 권리 구제를 위해서 적극 협조하겠다 이렇게 밝히셨는데 실제 소송에서는 국가가 배상할 부분은 없다 이게 공식 입장이셨거든요. 이게 약간 어떻게 보면 앞 뒤 가 맞지 않는 행동이잖아요.) ”피해가 있고 없고의 여부는 또 다른 변론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명박 정부의 불법 사찰에 대한 단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이제는 검찰총장 사찰과 이에 따른 공작정치 의혹까지 일고 있습니다.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명박 정부에서 발견된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도 민간인 사찰 행위가 사회적으로 크게 드러난 계기였는데 이 계기를 근절의 계기로 삼지 못하고 있다 보니 문제가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 아닌가... 엄정한 처벌이나 정부 기관 내에서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게 없다 보니 필요에 따라 정부에서 이것을 악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

공직자는 물론이고 정치,노동,종교,언론계 등 민간 영역에까지 광범위하게 저질러졌던 이명박 정부의 불법 사찰.

본인도 사찰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이 문제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지금도 (민간인 사찰이) 진행되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거든요. 왜냐하면 지금 이 정부 들어와서 국정원의 역할이 더 강화되고 대북심리전을 담당하는 그런 쪽의 사람들이 국내 문제에도 많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고...장기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 시대에, 일상적인 자유가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어떻게 보면 과거 회귀적인 정보정치에 의존한다고 하면 이 정부는 굉장히 견디기 힘들 겁니다. 오래 못 가서 국민의 신뢰를 잃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

뉴스타파 조현미입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