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그렇다면 법원은 공소기각을 준비해야 한다
2024년 10월 28일 17시 17분
지난 며칠 간, 정부가 카카오톡 등 인터넷 메신저를 감시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SNS를 타고 퍼져나갔다. 이 때문에 정부의 검열을 피할 수 있다며 이름도 생소한 ‘텔레그램'이라는 외국 프로그램을 앞다퉈 설치하는 바람에 다운로드 순위가 급등하는 일도 벌어졌다. 실제 ‘텔레그램’은 지난 25일 기준으로 애플 앱스토어의 무료 다운로드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정부가 카톡을 감시한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대학생 김동현 씨는 ‘국민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까지 본다는 것은 자유를 억압하는 수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메신저를 감시하고 검열한다는 소문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며 ‘법무부와 검찰이 (사이버상 유언비어 행위를) 철저히 밝혀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대통령의 발언 이틀 만에 검찰은 유관기관을 불러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대응'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카카오와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주요 포털사도 참여했다.
검찰은 회의 직후 전담 수사팀을 설치하고 적극적으로 구속 수사를 하는 한편, 인터넷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고 주요 포털사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업체 측은 검찰이 민간 기업들과 어떤 새로운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A 포털 사이트의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새로운 것은 없고 통상적인 협조를 하겠다는 것이다. 특별히 새삼스럽게 협력을 더 하기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업체 관계자들은 또 검찰이 카톡 등의 인터넷 메신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검찰의 발표 때문에 이용자들이 겁을 먹고 외국 메신저 서비스로 옮기는 현상이 지속되면 국내 인터넷 업계가 고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B 포털사이트의 관계자는 검찰의 이번 발표에 대해 “굉장히 안타깝다. 그거(실시간 모니터링)야 말로 빨리 바로잡아야 할 허위 사실” 이라고 말하며 “국내 사업자 다 죽고 텔레그램으로 가면 좋은가”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한국 인터넷기업협회 측에서도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발표하고 수사전담팀을 설치하겠다는 것만으로도 이용자들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며 텔레그램 같은 외국 메신저를 써야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실제로 거기에 가입하는 이용자들도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서비스 기업들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운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여론이 불리해지자 검찰도 한 발 빼는 모습이다. 카톡 등의 인터넷 메신저를 정부가 감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언론을 통해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취재진이 명확한 답변을 요청하자 해당 부처들은 서로 담당이 아니라며 답변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이처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강력 수사를 천명하고 나선 것에 대해 ‘엄청난 위축효과가 있다. 사람들이 밥은 꼭 먹어야 하지만 말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무죄판결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기소나 수사를 당하게 되면 우선 말할 자유부터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불안은 지난 19일, 검찰이 ‘뉴스프로’라는 한 외신 번역 전문 매체 기자의 집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커졌다. 압수수색은 검찰의 대책 회의가 있은지 딱 하루만에 이루어졌다.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미스테리 관련 기사를 보도한 일본 산케이신문의 서울지국장을 조사한 데 이어 이 기사를 번역해서 국내에 소개한 번역 매체에까지 검찰의 수사가 확대된 것이다.뉴스프로는 그동안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외신기사를 꾸준히 번역 게재해 왔다. 이번에 압수수색을 당한 전 모 기자는 “(뉴스프로에) 괘씸죄가 적용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외신을 번역을 할 텐데, 이런 식이면 번역하는 사람이 쫄게 된다. 번역도 못 하느냐”고 반문했다.
검찰의 이러한 수사가 실제 처벌까지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검찰의 이런 움직임이 언론의 권력 비판 기능, 나아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당사자를 꼭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흔히 말하는 칠링 이펙트, 위축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이 다시는 그런 보도를 못하게 하거나 다른 언론들이 ‘어 저기가 힘들어지네. 우리가 저런 보도를 하면 우리도 힘들어지겠지' 하고 스스로 자제하게 만드는 그런 효과가 더 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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