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원 징계 추적② 고무줄 징계 기준, 기초의회 원님 재판

2022년 05월 09일 10시 00분

우리 동네 구의원과 시의원,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뉴스를 보면 어느 동네 기초의원은 성추행이나 국고 횡령 등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러서 징계를 받기도 한다는데… 그건 정말 남의 동네만의 얘기일까요? 우리 동네 의원들이 잘못을 저질러 징계를 받아도, 혹은 솜방망이 징계를 받아도 평범한 유권자들은 특별히 발품을 팔지 않는 이상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뉴스타파가 대신 알아봤습니다. 지난 8년 동안 동네 ‘의원님’들의 징계 내역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를 두 편의 기사와 특별 페이지로 공개합니다. - 편집자 주
기초의원 징계추적 ② 고무줄 징계 기준, 기초의회 '원님 재판'
뉴스타파가 지난 8년간 제6회, 제7회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전국 226개 기초의회 의원의 징계 처분 의결 내역 161건을 확인한 결과, 자체 징계만으로 의회의 자정 기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관성 없는 징계 기준으로 이른바 '원님 재판'식으로 징계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성추행, 국고 횡령, 공무원 폭행해도 하나마나 ‘출석정지'

지방자치법 제44조는 공익의 우선, 청렴과 품위의 유지, 지위남용에 의한 재산상의 이익 취득이나 알선 금지 등을 지방의회의원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의무를 위반했을 경우 의회는 윤리특별원회의 심사를 거쳐 해당 구성원을 의결로써 징계할 수 있다. 징계의 종류는 4가지다. ‘공개회의에서의 경고', ‘공개회의에서의 사과', ‘30일 이내의 출석정지', ‘제명' 총 4가지가 있다. 문제는 지방의회의원에 대한 징계는 언제나 의회가 자율적으로 정한다는 점이다.
전국 226개 기초의회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한 결과, 2014년 6월부터 2021년 4월까지 기초의회 의원의 징계 처분은 총 161건이었다. 그런데 경고-사과-출석정지-제명 총 4단계 징계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제명'은 단 13건에 불과했다. 
제명 처분은 선거로 선출된 의원의 지위를 바로 상실시킬 수 있어 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 의결이 가능하도록 제한 장치를 두고 있다. 때문에 제명 처분을 받을 만한 비위라도 의회 구성상 3분의 2이상 동의를 얻기 어려운 의회 구조인 경우는 ‘제명' 처분이 의결되기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의원이 성추행, 국가보조금 횡령, 가족회사 수의계약, 수행 공무원 폭행, 반복적 음주 운전 등의 범죄를 저질러도 지방의회가 '제명'이라는 최고수위의 징계를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고 수위인 '제명' 대신 지방의회가 가장 많이 선택한 것은 그 다음 단계인 '출석정지' 처분이었다. 총 85건으로 전체의 45% 이상을 차지했다. 기초의회는 위에서 언급한 범죄 행위 외에도 폭언, 동료 의원간의 몸싸움 등 다양한 비위 행위에 대해 모두 ‘출석정지’ 징계 처분을 의결했다. '출석정지' 처분을 받은 의원은 본회의나 위원회에 일정기간 출석하지 못하지만 의원직은 유지할 수 있다.
▲ 기초의회 의원 징계 처분 현황 (기간: 2014년 6월 ~ 2022년 4월)
문제는 '출석정지' 징계마저도 실효성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85건의 출석정지 징계 처분 중 회기가 없는 기간 동안 출석정지 기간이 끝나 징계 처분이 무의미했던 경우가 다수 확인됐다. 지난해 6월 강원도 춘천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양욱 의원에 대해 ‘20일 출석정지’ 처분을 확정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김 의원의 부모 소유 업체가 2019년부터 3차례에 걸쳐 춘천시와 수의계약을 맺은 사실을 적발한 지 한 달만이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33조제2항을 위반해 ‘출석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징계 의결일로부터 20일 동안 회기가 없어 김 의원이 출석하지 못한 일정은 없었다.
충청남도 부여군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병희 의원도 배우자가 지분 64%를 가진 건설업체와 부여군이 수의계약을 맺다가 행정안전부로부터 기관경고 처분을 받아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됐다. 부여군의회는 2020년 9월 25일 ‘30일 출석정지' 처분을 의결했다. 이날은 임시회 회기 마지막 날로, 출석정지 처분이 끝나는 10월 25일까지 민병희 의원이 참석할 본회의 또는 상임위원회 일정이 없었다. 민병희 의원은 이번 제8회 지방선거에서 충청남도 부여군 가선거구에 출마했다.
경기도 과천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상진 의원은 가족이 체류 중인 캐나다 몬트리올로 14일간 연수를 떠나 가족 집에서 숙식하면서 계획된 연수 일정 대신 아들의 학교를 방문하고 연수 결과를 허위보고 했다. 논란이 일자 박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의회는 ‘30일 출석정지와 공개사과’ 징계 처분을 의결했다. 박 의원의 징계 처분이 본회의에서 의결된 2019년 2월 21일 역시 임시회 회기 마지막 날이었다. 이후 박 의원의 징계 기간인 30일 동안 과천시의회는 단 한 건의 의사일정만을 진행했다. 지방자치법은 30일 출석정지 기간에도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 등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법정에서 벌금형을 받았는데도 의회 자체 징계는 ‘출석정지'에 불과한 경우도 확인됐다. 강원도 동해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창수 의원은 시의원으로 당선되기 전 사회적 기업 임원으로 일하면서 근로자의 인건비를 횡령하는데 참여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1천 5백만 원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동해시의회는 의원 품위를 손상했다며 ‘30일 출입정지'를 의결했다. 이창수 의원은 이번 제8회 지방선거에서 강원도 동해시 나선거구에 출마했다.
대구광역시 중구의회 국민의힘 소속 우종필 의원은 오토바이 사고 후 조치를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나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벌금 8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우 의원은 법원 선고 전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중구의회는 우 의원에게 ‘30일 출석정지 및 공개회의에서의 사과' 징계 처분을 내렸다. 우종필 의원은 이번 제8회 지방선거에서 대구광역시 중구 나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음주운전에도 관대한 기초의회

2014년 6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음주운전으로 의회 차원에서 징계를 처분받은 12명의 기초의회 의원 중 ‘제명' 처분을 받은 경우는 단 한명도 없다.
술을 마신 후 운전을 하다가 도로에서 신호대기 중에 잠이 들어 경찰에 적발된 군산시의회 한경봉 전 의원에 대한 의회의 징계 처분은 ‘공개회의에서의 사과'였다. 한경봉 전 의원은 이번 제8회 지방선거 구시군의회 전라북도 군산시 사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면허취소 수준으로 차를 몰다 접촉사고를 일으켜 검찰에 송치된 전주시의회 한승진 의원은 ‘공개회의에서의 경고'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면허 취소 수준의 음주운전에도, 두 번째 음주운전 적발에도 기초의회의 징계는 ‘공개회의에서의 경고'에 불과했다. 전라북도 전주시의회 송상준 의원은 2021년 4월,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64%로 음주단속에 두 번째 적발됐다. 송 의원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벌금 1천5백만 원 형을 선고받았으나, 송 의원에 대한 전주시의회 자체 징계는 ‘공개회의에서의 경고'에 그쳤다. 송상준 의원은 이번 제8회 지방선거구 구시군의회의원선거  전라북도 전주시 타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천안시의회 주일원 전 의원 역시 술에 취해 자신의 승용차를 몰다 2016년 3월, 2017년 2월 연달아 단속 중인 경찰에 적발됐다. 두 번째 적발 당시 주 의원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65%로 면허 정지 100일 수준에 해당하는 수치였으나 주 의원에 대한 천안시의회 자체 징계 또한 ‘공개회의에서의 경고'에 그쳤다.
한편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 음주운전 징계기준은 단속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2%를 넘을 경우 1회 적발 시에도 공직에서 퇴출될 수 있도록 지난해 12월 강화됐다. 개정된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에 따르면 음주운전으로 1회 적발된 경우에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0.2% 이상이거나, 음주 측정에 불응한 경우 최대 해임까지 가능하다. 공무원 음주운전 처벌 기준이 강화된 개정안이 시행된 2021년 12월에도 경상남도 함안군의회는 음주운전으로 면허취소 처분을 받은 윤광수 부의장에 대해 ‘15일 출석정지' 처분을 내리는데 그쳤다.
▲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 음주운전 징계기준

동료 의원 예산낭비 비판했다고 징계 의결

의회의 자정을 위해 자율적으로 징계 수준을 정하는 제도가 미운 놈을 찍어내는 '원님 재판'이 돼 불필요한 징계, 구성원간 감정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동료 의원들의 지나친 해외연수비와 혈세 낭비를 카카오톡에서 비판해 ‘공개회의에서의 경고' 처분을 받은 경우도 있다. 광주광역시 동구의회 김성숙 전 의원은 2014년 8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동료의원과 지역주민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카카오톡 대화방을 통해 동료 의원들을 비판했다. '열악한 구 재정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국내외 연수비를 지출하고 불필요한 위원회⋅심의회 참석 수당을 지급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 광주광역시 동구의회가 준비서면을 통해 ‘김성숙 의원이 의회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위상을 실추시키는 등의 행위를 계속하였다는'는 이유로 제출한 증거
광주광역시 동구의회의 동료 의원들은 “김 의원이 품위유지 등 의무를 위반했다"며 지방자치법 제36조, 제87조에 따라 징계를 요구했다. 이후 윤리특별위원회는 김 의원에 대해 ‘출석 정지 20일' 징계를 의결했고, 본회의에서 ‘공개회의에서의 경고'로 징계 처분을 감경해 의결했다. 김 의원은 의회를 상대로 징계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사적인 감정에서 개인적으로 보낸 문자 메시지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화내용 또한 비판적 차원에서 표현된 발언으로 동료의원이나 동구의회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거나 위상을 실추시켰다고 할 수 없다"며 김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구의원 간 감정싸움으로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을 의결했다가 법원 판결로 징계 처분이 취소된 사례도 있다. 인천광역시 동구 의회는 한숙희 전 의원이 '의정 활동에 불성실하게 임했고 SNS를 통해 동료 의원을 비방했다'며 본회의에서 의원 6명이 표결에 참여해 찬성 5명, 반대 1명으로 한 의원의 제명안을 통과시켰다. 4개월 후 인천지법 행정1부는 한 의원이 동구의회를 상대로 낸 제명의결처분 무효확인소송에서 '징계사유들이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내용이 많아 객관적이고 명확한 판단 기준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제명처분 의결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징계 종류만 정해두고 적용 기준에 대해서는 개별 의회의 판단에 맡기는 방식 때문에 고무줄 같은 징계 기준이 문제가 돼 법정 다툼까지 가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2014년 이후 기초의회에서 의원직을 박탈하는 ‘제명' 징계 처분을 받은 의원 13명 중 8명이 의회를 상대로 징계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으며 소송에서 승소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징계처분 취소소송에서 부담하게 되는 변호사 비용은 모두 세금에서 지출된다.

의회별 징계 수위 천차만별

▲ 기초의회별 누적 징계 횟수 (기간: 2014년 6월 ~ 2022년 4월)
지난 8년간 226개 기초의회의 징계현황을 집계한 결과, 대전광역시 중구 18건, 대구광역시 달서구 8건, 전라남도 강진군⋅광주광역시 북구 7건, 경상북도 구미시 6건 순으로 나타났다. 11명~12명 규모인 대전광역시 중구 의회는 만취 교통사고, 의회 내 영업행위, 여성 비하 발언, 원 구성 장기파행, 성추행, 정치자금법 위반, 회의장 무단 이탈, 공무여행 중 부적절한 언행, 공직선거법 위반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한편 226개 가운데 162개 의회는 8년간 징계 처분이 단 한 건도 없었다.
비슷한 비위라 하더라도 기초의원들의 징계 수위는 각 기초의회의 상황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겸직 금지 의무 위반' 사례만 보더라도 사과, 경고, 5일 출석정지, 7일 출석정지, 10일 출석정지까지 그 수준이 상이했다. 새마을금고 이사장을 겸직해 논란이 일었던 경상북도 상주시의회 당시 자유한국당 소속 최경철 의원은 2018년 가장 낮은 단계의 징계인 '공개회의에서의 경고'를 받았다. 다음해 같은 상주시의회 무소속 김태희 의원은 상주제일병원 병원장 겸직이 드러나 징계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10일 출석정지' 처분을 받았다. 똑같은 의회에서 똑같은 행위로 징계를 내렸는데 결과는 크게 달랐던 것이다.
▲ 겸직 금지 의무 위반에 대한 기초의회별 징계 의결 현황
뉴스타파는 모든 유권자가 지역구 기초의원의 징계 이력을 살펴볼 수 있도록 기초의원 징계 추적의 결과를 특별 페이지로 만들어 공개한다. 
제작진
데이터 시각화김지연
웹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