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민국100년 특별기획] 다시 보는 ‘자유광주’ 비디오

2019년 05월 17일 20시 05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3.1 혁명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民國 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특별 기획을 통해 지난 한 세기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세력들을 각 분야 별로 분석하고, 특권과 반칙,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통찰을 99% 시민 여러분과 함께 찾아가고자 합니다. 2019년 5월에는 광주항쟁 39주년을 맞아 12∙12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 일당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추적하는 시리즈를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5·18민주화운동이 올해로 39주년을 맞았다. 5월 18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것도 22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80년 5월 광주’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누가 광주 학살을 지시했는지, 누가 헬기사격을 결정했는지 같은 기본적인 의문조차 풀리지 않고 있다.

반면, 12·12에서 5·18로 이어진 전두환 쿠데타, 이후 들어선 군사독재의 부역자들과 그 후예들은 부끄럼없이 역사왜곡에 앞장서고 있다. 39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80년 광주를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다.      

1980년 5월, 광주는 철저히 고립됐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광주를 포위한 채 시민들을 학살했다. 전두환은 직접 언론보도까지 통제했다. 주류언론은 광주 시민을 폭도라 불렀다. 하지만 진실이 모두 감춰진 것은 아니었다. 일부 영상자료와 글, 또는 그림들은 철통같은 전두환 신군부의 감시망을 뚫고 세상으로 나왔다.  

▲ 1981년 일본에서 제작된 ‘자유광주’. 전두환 신군부와 주류 언론이 은폐한 5월 광주의 진실을 알린 대표적 영상 중 하나다.

5·18민주화운동 1년 뒤인 1981년, 일본에서 ‘자유광주’라는 이름의 26분짜리 영상물이 제작됐다. 비디오테이프로 제작된 영상물은 전두환 일당과 주류언론이 은폐한 광주의 진실을 알린 초기 영상 중 하나다.

‘자유광주’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관심있는 일본 시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러 차례 상영됐다. 얼마 뒤엔 한국으로 은밀하게 반입돼 대학가 등을 중심으로 유통됐다.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이 비디오를 통해 광주학살의 진상을 접했고 정치, 사회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

<자유광주>는 한국의 광주에서 이런 일이 있었고 처절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고.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일본 사람들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미숙 / 릿쿄대 조교수
▲ 다큐멘터리 ‘자유광주’의 한 장면. 1981년 일본에서 제작된 ‘자유광주’는 한국으로 반입돼 대학가 등을 중심으로 유통됐다.

자유광주’에는 광주 학살 현장을 담은 내용과 함께 판화작품이 여러 편 등장한다. 광주 상황을 담은 영상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미술작품을 통해 광주의 진실을 담고자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상에 삽입된 작품은 일본 화가 도미야마 다에코가 제작한 것이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올해로 39주년을 맞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취재를 진행하면서 현재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다에코 씨를 찾아가 만났다.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 한 그는 “1980년 5월 당시 광주 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한 뒤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광주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자유광주’를 제작한 일본 화가 도미야마 다에코. ‘5월 광주'를 표현한 첫 화가였던 그는 일본의 전쟁 책임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내 국가라는 소속과는 상관없이, 저는 (전두환 신군부를 지지하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아주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70년대부터 이어져 온 민주화운동의 에너지가 쌓여서 폭발한 것이 광주 민주화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역사로서, 한국의 광주 민주화운동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역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도미야마 다에코 / 작가, <자유광주> 제작

다에코 씨는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에 글을 썼던 지명관 씨 등 지인들로부터 광주 소식을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지명관 씨는 당시 T.K생이라는 필명으로 세카이에 글을 썼는데, 80년 8월호에 쓴 ‘어둠의 기록’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T.K.생’의 정체가 알려진 건 광주항쟁이 있고 20년 이상이 지난 뒤였다.

▲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에는 5·18민주화운동 직후부터 여러 차례 광주항쟁 관련 기사가 실렸다.

‘세카이’를 발간하고 있는 이와나미 출판사의 오카모토 아츠시 대표는 대학시절 ‘T.K생’의 글을 보고 감명을 받아 이와나미 출판사에 입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편집부원이었던 그조차 광주항쟁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T.K생’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편집부 안에서도 ‘T.K생’의 정체는 일절 야스에 료스케(당시 <세카이>편집장) 이외에는 모르게 했습니다.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아주 경계해서 야스에 편집장과 지명관 선생님이 만날 때는 꼭 입구가 두 개 있는 레스토랑을 골라서 비밀스럽게 만났고 지 선생님의 필적을 감추기 위해 손으로 쓴 원고는 모두 편집부가 다시 옮겨썼습니다.

오카모토 아츠시 / 이와나미 출판사 사장

지난 4월 말, 취재진은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에 살고 있는 ‘T.K생’ 지명관 씨를 찾아가 만났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동경여자대학 교수였던 그는 이후 한국으로 건너와 한림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지명관 씨는 전두환 신군부의 감시를 뚫고 광주의 실상을 전하는 글을 쓰기 위해 어렵사리 자료를 모으던 과정, 당시 일본과 한국의 언론보도 내용 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글을 쓰면서 “전두환 신군부의 만행을 묵인하거나 방조한 미국과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도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 지명관 씨는 전두환 신군부의 감시망을 피해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에 ‘T.K생'이라는 필명으로 광주의 실상을 전하는 글을 썼다.

처음에는 선교사들이 본국에 보고하면서 쓴 것을 내가 인용해 글을 썼죠. 그 후 주로 외국사람, 일본 사람도 간혹 참여하고. 여성들이 자료를 몸에 숨기기 쉬우니까 여성들이 많이 도왔죠.

5.18에 대해 일본 언론이 처음에는 한국에서 또 정치 소란이 일어났구나, 이런 식의 보도를 했어요.일본 사람들의 보도나 자세라는게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일은 없는 사회거든요. 그러니까 무시했다고 해야할까, 그걸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런 걸 <세카이>가 굉장히 노력을 한거죠.

지명관 / T.K생, 전 한림대 석좌교수

취재: 한상진 홍여진 박경현 강민수 강현석 강혜인
촬영: 최형석 정형민 신영철 오준식
데이터: 최윤원 김강민
편집: 박서영 김은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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