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의 27년 담은 영화 <김복동>... 배우 한지민 내레이션 참여
2019년 05월 02일 20시 00분
1992년 3월, 스무 살 윤미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27년이 흘렀다. 그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싸우는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의 대표다. 윤 대표는 영화 <김복동> 도입부에 나오는 김복동 할머니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 때 너무 떨렸다고 말했다.
할머니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킬 것인가. 할머니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 때문에...
김복동 할머니와의 첫 만남. 피해자를 만나 끔찍한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일은 또 다른 고통이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그날의 만남이 27년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그 27년의 기록이 뉴스타파와 함께 기획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에 고스란히 담겼다.
지난 5월 8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김복동>이 상영됐다. 이날 일반 관객들과 함께 정의기억연대 활동가 열여섯 명도 영화를 봤다. 이들은 영화 속 김복동 할머니가 남긴 약봉지와 할머니가 생전에 쓴 안경만 보고도 눈물을 흘렸다.
영화 장면 장면들이 그 이면의 모습을 불러일으켜서 저를 힘들게 했어요.
정의연은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1992년부터 기록했다. 사진, 동영상, 문서, 녹음 파일 등 방대한 자료가 쌓였다. 김복동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될 무렵 1인 미디어 미디어몽구(독립언론, 더 큰 하나가 될 진지를 '짓다')도 기록을 남기는 일에 동참했다. 뉴스타파는 정의연과 미디어몽구의 기록을 토대로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연출은 송원근 피디가 맡았다.
정의연 사무실에서 윤 대표, 미디어몽구, 저 이렇게 셋이 처음 만났죠. ‘이런 부분들을 잘 살려보고 싶은데, 그러려면 제가 할머니가 기록돼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제안을 드렸어요. 그렇게 이 다큐가 시작이 된 거죠.
윤미향 대표는 영화 <김복동>은 “한국과 일본의 대립 스토리도 아니고, 가해자 중심으로 분노만 일으키거나 민족주의적으로 문제를 다뤘던 기존의 ‘위안부’ 영화와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영화는 김복동의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용기, 정의, 민족애,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뉴스타파 송원근 감독은 촬영 초기 김복동 할머니 방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일조차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런 김복동 할머니가 뉴스타파에 문지방을 내어주었다. “할머니의 삶이 영화같은 기록물로 남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에게 큰 손실이지 않겠냐”는 윤 대표의 설득에 할머니는 “해 봐, 그럼 해 봐”라고 답했다.
지난 4개월간 뉴스타파 제작진은 김복동 할머니가 살아온 궤적을 따라갔다. 송 감독은 “자연스럽게 정의연, 미디어몽구, 그리고 뉴스타파는 할머니의 치열했던 삶을 미래 세대에게 남겨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영화 <김복동>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세계 여성인권운동사와 평화운동사에도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김복동 할머니가 영화를 보시면 ‘김복동 열심히 살았다’라고 말씀하실 것 같아요.
7.44테라바이트, 1만 7천 783개의 파일. 뉴스타파가 영화 <김복동>를 만들기 위해 모으고 검색한 김복동 할머니 관련 자료 분량이다. 1992년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알렸을 때부터 그를 기록한 정의연, 2013년 수요집회 때부터 가장 가까이서 할머니의 숨소리까지 촬영한 미디어몽구, 그 외 여러 독립 피디와 독립다큐 감독,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다. 뉴스타파는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105분 러닝타임의 영화를 지었다. 김복동 할머니는 생전에 “희망을 잡고 살자.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라는 말을 자주 했다. 뉴스타파가 짓는 독립언론 협업센터도 한국 독립언론의 희망, 저널리즘의 희망을 잡아 나가는 공간을 지향한다.
촬영 : 김기철
인터뷰 : 신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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