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

“손목 묶인 환자 있었다”... 병원.소방당국, ‘환자 결박’ 은폐 공모?

2014년 05월 30일 19시 30분

21명의 희생자를 낸 전남 장성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 화재 당시 일부 환자들의 손목이 침대에 묶여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에 따라 화재 초기 ‘결박 환자는 없었다’는 공식발표가 ‘환자 결박’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병원과 소방당국이 공모한 가운데 나온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 화재 당시 화재경보기가 울리고도 4분 정도가 지나서야 119 신고가 이뤄졌다는 증언도 나와 병원 측의 초기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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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손목과 침대 묶은 천을 가위로 잘라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사고 이틀째인 지난 29일 오전, 장성요양병원 환자 60살 이 모 씨를 만났다. 이 씨는 중풍으로 이 병원에서 3년 반째 요양치료 중인 환자지만 2년여 전부터 상태가 호전돼 사실상 별관 건물 관리인 역할을 하며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을 도우며 생활해 왔다.

이 씨는 사고 당일 0시 25분쯤 별관 지하층 기숙방에 있다가 1층에 있던 간호사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고 진화에 나섰다. 이 씨가 2층으로 올라갔을 때 이미 복도에는 시커먼 연기가 가득 차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바닥에 엎드려 손전등을 비추며 “이 불빛을 보고 뛰어 나오라”고 소리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 소리를 듣고 3명의 환자가 자력으로 밖으로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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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소방대원들이 도착해 불길이 시작된 3006호에 대한 초기 진화를 마친 뒤 2층 환자들에 대한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이 씨는 계속 2층 계단 입구 쪽에 서서 구조작업을 지켜보며 도울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다.

그때 소방대원들이 환자가 누워있는 침대를 통째로 밀고 나오는 것을 봤다. 이 환자의 손목은 천으로 침대에 묶인 상태였다. 소방대원들이 침대를 계단 아래쪽으로 옮기지 못하자 이 씨는 재빨리 간호사실로 가 가위를 들고 나와 천을 잘라냈다. 소방대원들은 환자를 들어서 밖으로 옮길 수 있었다.

이 씨는 이 환자가 별관 2층에 있는 1인실 두 곳 가운데 한 곳에 있었던 환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1인실은 치매 등 병세가 심하고 자해 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을 머물게 하는 곳으로 사방의 벽들도 스티로폼 쿠션 처리가 되어 있으며 평소에도 손발을 묶어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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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가 증언한 ‘환자 결박’은 이번 사고 시작부터 지금까지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사고 당일인 지난 28일 오전 6시 42분 <연합뉴스>는 소방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일부 환자가 병상에 손이 묶여 있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송고했다.

그러나 잠시 뒤인 오전 7시 장성요양병원측은 기자회견에서 “손발을 묶은 환자는 없었다”고 일단 부인하면서도 “확인하고 알려주겠다”며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이후 2시간 여 뒤 담양소방서와 전남소방본부는 “손이 묶인 환자가 있었다는 보고가 전혀 없었다”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추정 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이날 오후 3시 기자회견을 열어 일부 시신에서 손발이 묶여 있던 흔적을 발견했다며 병원 측에 참사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족들은 29일 오전 병원 관계자들이 합동분향소를 방문하자 손목과 발목에 묶인 흔적이 있는 시신 사진 3장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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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머니투데이

이러자 경찰은 ‘환자 결박’ 의혹을 풀기 위해 병원 관계자와 일부 소방대원들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수사와 함께 모든 시신에 대해 부검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이 씨의 증언은 적지 않은 후폭풍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진술이 사실일 경우 병원과 소방당국 모두가 결박된 환자가 적어도 1명 이상 존재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거짓말을 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사고 초기부터 나온 병원과 소방당국의 입장 표명 추이를 볼 때 양측이 관련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모종의 공모를 진행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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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양병원에서 중증치매 환자 등에게 손발을 묶어두는 것이 무조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요양병원 입원환자의 안전과 인권 보호를 위한 지침’에 따르면, 환자의 손발을 묶어두는 ‘억제대’의 사용은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는 등의 문제행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정해서 최소한의 시간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반드시 1일 1회 의사의 처방에 따라 환자 본인 또는 보호자에게 사용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뒤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와 함께 최소 2시간마다 환자의 혈관 수축 등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고 욕창이 발생하지 않도록 체위를 바꿔주며 이를 기록으로 남기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침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적정 이상의 인력 투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다수의 요양병원들은 보호자 동의 없이 이른바 ‘문제 환자’들의 손발을 임의로 묶어두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사고 당시에도 이런 환자들이 있었다면 병원의 과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해 병원 측이 알고도 부인으로 일관한 것이라는 해석의 여지가 충분하다. 나아가 농촌 및 소도시일수록 지역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관공서와 병원, 대학 등 관내 주요 기관들끼리 상호간 과오를 덮어주는 관행이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경우에도 병원과 소방당국의 ‘은폐 공모’가 진행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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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경보부터 신고까지 4분... 자체 수습하려다 우왕좌왕”

이 씨는 또 장성요양병원 관계자들이 화재 사실을 인지하고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자체적으로 수습하려다 119 신고가 늦어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화재 초기 대응 상황은 별관 1층에 있던 간호조무사가 당일 0시 27분에 화재경보음을 듣고 119로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고 당일 지하층에 있던 이 씨가 1층 간호조무사로부터 휴대전화 연락을 받은 시각은 0시 25분이었다. 간호조무사는 “불이 난 것 같다. 화재경보기가 계속 울리고 있다. 빨리 올라와서 일단 이것부터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 적어도 0시 25분 이전부터 화재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씨는 처음엔 화재가 1층에서 난 것으로 생각하고 즉각 1층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소화전에서 소방호스부터 꺼냈다. 그러나 1층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간호조무사 쪽을 향해 “어디야?”라고 소리쳐 물었더니 “2층”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2층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리던 이 씨에게 그때서야 119 신고전화를 걸고 있는 간호조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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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의 증언은 유력한 방화 용의자로 체포된 82살 김 모 씨의 행적이 찍힌 CCTV 화면, 그리고 소방당국의 상황보고서와도 대략 일치한다. CCTV 화면 속 김 씨가 3006호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내부에 불꽃이 포착된 시각은 0시 21분쯤. 이후 0시 23분 57초에 연기가 발생하고 0시 24분 22초에는 2층에 있던 간호조무사 52살 김귀남 씨가 뛰어오는 모습이 잡혔다. 연기를 본 김 씨는 다시 건물 반대쪽 연결통로를 통해 본관 건물로 넘어가 불이 났다며 소리를 지른 뒤 소화기를 들고 되돌아와 진화를 시도하다 질식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0시 25분에 “경보기가 계속 울리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이 씨의 증언과 비교해보면, 3006호 문틈으로 연기가 빠져나오기 직전인 0시 23분 무렵부터 화재경보음이 울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1층 간호조무사가 119에 신고한 시각은 0시 27분이었고 삼계119안전센터 소방대원들은 0시 31분에 도착해 0시 33분에 초기진화를 완료했다. 결국 실제로는 화재 발생부터 초진까지 11분 정도가 걸렸지만 만약 화재경보음을 듣고 곧바로 119 신고를 했다면 이를 7분으로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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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인력 태부족 현실이 참사 원인”

이처럼 이 씨의 증언을 통해 사고 당시 일부 환자가 침대에 결박돼 있었고 병원 직원들의 화재 초기 대응이 미숙했다는 정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은 결국 야간근무 인력의 절대 부족이 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현행 의료법상 요양병원의 야간당직 의료인은 입원환자 200명 당 의사 1명과 간호사 2명이며, 200명을 초과할 때마다 의사 1명, 간호사 2명을 추가해야 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장성요양병원의 경우 397병상에 사고 당일 입원환자가 324명이었으므로 의사 2명과 간호사 4명이 근무해야 한다. 그러나 사고 당시 병원에는 한의사 1명과 간호사 2명, 간호조무사 9명이 근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간호조무사 3명을 간호사 2명과 동일하게 간주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직의사 수가 1명 부족한 상태였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정숙 활동가는 “이처럼 근무인력 자체가 절대부족인 상태에서는 비단 화재만이 아니라 어떤 돌발적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우며, 보호자의 동의 없이 환자들의 손발을 묶어놓는 일이 횡행하고 있는 것 역시 관리 인력의 부족이 낳은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요양병원은 1200개, 병상 수도 20만 개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01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 결과 요양병원 의사들은 1인당 평균 최소 31명에서 65명의 환자를, 간호인력의 경우 1인당 최소 11.4명에서 최대 47.1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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