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돈의 블랙홀, ‘조세피난처',

2013년 04월 12일 12시 09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버진 아일랜드 은닉 재산 폭로로 조세피난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미 전세계 60여 곳의 조세피난처에 최소한 21조 달러, 우리 돈으로 2경 3천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흘러 들어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는 지난해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총액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인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조세 회피나 탈세 목적으로 빼돌려진 ‘검은 돈’ 이다.

재정 적자에 허덕이고 복지 재원 마련에 골머리를 앓는 각국 정부들은 ‘검은 돈’의 정체를 밝혀 세금을 매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외치는 박근혜 정부에게도 역외 탈세 방지는 중요한 국정 정책 목표 가운데 하나다.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한번도 대기업의 역외 탈세를 본격적으로 추적해 과세한 적이 없다.

뉴스타파는 이번에 조세피난처 7곳에 34개 국내 대기업이 165개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과연 빙산의 전모가 드러날 수 있을 것인가?


<앵커 멘트>

이렇게 조세피난처로 빠져나가는 돈이 전 세계적으로는 최소 21조 달러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2경 3천조 원입니다. 천문학적인 돈이죠.

이 가운데 일부만 세금으로 거둘 수 있어도 웬만한 나라들은 거의 대부분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겠죠?

최기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기훈 기자>

카리브해의 버진아일랜드, 케이만군도,  바하마, 버뮤다. 남태평양의 바누야투, 뉴 칼레도니아, 나우루. 위치도, 이름도 무척 생소한 곳들입니다. 대부분 인구 10만이 되지 않고 국토 면적도 제주도보다 훨씬 작은 그야말로 소국들입니다. 지상 낙원과도 같은 풍경을 자랑해 관광지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그런데 관광객들만 몰려드는 게 아닙니다. 세금을 덜 내려는 전세계 갑부들과 기업들의 자금도 이곳으로 몰려듭니다.

이른바 조세피난처로 전 세계에 60여 곳이나 됩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조세피난처로  빠져 나간 자금의 총 규모가 전세계적으로 21조달러가 넘는다고 보도했습니다. 2012년 세계 국내총생산의 30%가 넘는 엄청난 액수로 미국과 일본의 경제규모를 합친 것과 비슷합니다.

조세피난처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이른바 페이퍼컴퍼니는 세계적으로 2백만 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페이퍼컴퍼니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대행업체들이 익명성과 비밀 보장을 내세워 고객을 유인합니다.

영국에 있는 한 대행업체를 골라 전화로 문의해봤습니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한국에서 전화하는데 버진 아일랜드 법인 설립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요? 좋아요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법인설립 절차와 조건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우선은 신청서 작성이 필요합니다. 작성이 완료되면 회사임원들, 주주들 실소유자들에게 사인을 받으시고...원한다면 필요한 것들을 상세하게 이메일로 알려주겠습니다."

안내 이메일을 받아 열어봤습니다. 회사설립에 걸리는 시간은 단 이틀. 자본금 5만 달러 이상인 법인을 만드는데 수수료 1100달러만 내면 됩니다.

이렇게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나면 자신이 가진 돈을 옮겨 놓을 수 있습니다. 대리인 명의로 계좌를 관리할 수도 있습니다. 자금 추적 자체가 어려워지는 겁니다.

기업의 경우엔 이렇게 만든 페이퍼컴퍼니에 본사에서 발생한 수익을 옮겨 놓습니다. 세금을 적게 내거나 아예 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신 조세피난처에서 자금을 조달하면서 발생한 비용은 본사로 떠넘깁니다.  그러면 본국의 모기업은 비용처리에 따른 세제 감면 혜택을 받습니다. 꿩 먹고 알 먹고 입니다.

지난 2011년에 구글은 이런 방식으로 전세계에서 얻은 수익 10조원을 버뮤다의 자회사로 옮겨 2조원이 넘는 세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담당]

“아일랜드 같은 경우 구글, 90% 이상 거기서 다 매출이 발생하고 일도 다 거기서 하거든요. 그러면 아일랜드는 최고급간의 법인세율이 12.5%인가 그래요 그러면 그 몫을 가져가는 거죠. 그런데 버뮤다 같은 경우 법인세가 0이거든요.”

이밖에도 탈세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본국에 투자해서 배당소득을 받으면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편법을 쓸 수도 있고,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다른 해외펀드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내도 세무당국에서 알 수가 없습니다. 

당국 몰래 해외부동산을 사놓을 수도, 비자금을 만들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영국에서 태동한 시민단체인 조세정의네트워크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지난 1970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에서 조세피난처로 빠져나간 돈은 무려 7800억 달러, 우리돈으로 무려 870조 원에 이릅니다. 중국과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 3위 규모였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입 외환거래액 가운데 1/3은 조세피난처와의 거래였습니다. 이 가운데 수출입 물품대금을 뺀 액수는 무려 1880억 달러. 200조 원이 넘습니다. 상당액수가 탈세를 위해 오고간 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 세무당국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확보한 버진아일랜드 재산은닉자 명단에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국부유출을 좋아할 나라는 없습니다. 미국은 조세피난처 때문에 매년 백조 원이 넘는 세수 손실을 입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피해는 결국 각 나라 국민에게 돌아 갑니다.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시아담당] 

"사실상 정부의 도움이 컸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얻어내는 것들을 제대로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문제는 본국으로만 안 들어오는 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에도 안 주는거에요. 그러면 계속 재정은 축나고 그 몫은 누가 부담을 합니까? 개별 납세자들이 부담하는거죠. 기업이 자기 몫을 안 해버리면.”

국세청은 지난해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탈루한 세금 8천2백억 원을 추징했습니다. 하지만 조사대상에 대기업이 포함된 적은 없습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해서 부족한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박근혜 정부가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대기업의 탈세 관행을 방치할 명분은 없어 보입니다. 

정부가 그동안 손대지 못했던 엄청난 규모의 역외 탈세를 제대로 뿌리 뽑을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뉴스타파 최기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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