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회] 시선_박근혜 역사를 바로잡고 싶습니다

2012년 09월 21일 08시 06분

지난주 뉴스타파가 공개한 1989년 박근혜 후보의 인터뷰 내용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헌법 1조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대통령은 이러한 헌법을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이 독재를 두둔하는 것은 헌법과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박근혜 후보가 무슨 생각을 가지든 그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자 자유입니다.

그러나 유려한 대통령 후보가 국가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꼭 검증해 봐야 할 문제가 됩니다. 이번 주 뉴스타파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싶다고 주장한 박근혜 후보의 1989년 인터뷰, 그 뒷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 MBC 박경재 시사토론 / 박근혜씨 아버지를 말한다 1989년 5월 19일 방송

[박근혜]

“저는 5.16이 구국의 혁명이었다고 믿고 있는데.”

“아버지가 삼선 개헌 하신 것은 단지 기회를 한 번 더 원한 것이고 판단은 국민이 한 것이다.”

“아버지는 자주국방과 자립경제를 이루기 위해 유신을 하셨다.”

“아버지가 얼마나 인명을 중시 여기시고.”

“유신에 대해서 옳다고 불가피성을 주장한 것이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러면 그분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요?”

“어떤 비난을 받더라고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게 정치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런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에요.”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싶다. 5.16과 유신을 적극 옹호하고 이미 공인된 역사적 평가를 뒤집고 싶다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89년 인터뷰 발언입니다.

지난주 뉴스타파가 공개한 박 후보의 23년 전 인터뷰는 과연 그녀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킬만한 자질이 있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인터넷은 박 후보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들끓었습니다.

뉴스타파는 박근혜 후보의 과거 발언이 일회성이 아니라 최근에도 일부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거대 언론사들은 이 문제에 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가 지난 주 방송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1989년 인터뷰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독재정권이 장기 집권을 위해 많은 인명을 살상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MBC 박경재 시사토론 / 박근혜씨 아버지를 말한다 1989년 5월 19일 방송

[박근혜] “.. 그거는 너무 아버지를 모르고 하는 얘기에요. 아버지가 얼마나 인명을 중시여기시고, 저는 그 5.16도 무혈 그 혁명이라는 것을 항상 정말 다행이면서도 또 아버지다운 그걸로 생각을 하는데.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그 인명을 가볍게 보시고 할 분은 절대 아니에요.”

또 5.16과 유신이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돼 왔다면서 그런 왜곡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게 정치라고 강조했습니다.

[박근혜] “5.16 거기에 대해서 나는 이런 이런 소신을 갖고 참여했다. 근데 그게 뭔가 잘못됐느냐. 딱 딱 그거를 정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했던 사람이라면 그거를 얘기할 수 있어야 돼요. 어떤 비난을 당장은 받는다 하더라도. 그래서 그거를 참 잘 몰랐던 사람들한테 그거를 이해시킬 수 있어야 되고. 설득시킬 수 있어야 되고. 그런 게 정치지요.”

방송이 나가자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뉴스타파 시즌2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봤습니다. 팟캐스트와 유투브, 그리고 다음 TV팟 등을 통해 방송을 본 사람들은 40여 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또 이 방송을 다룬 미디어 오늘의 기사는 인터넷 포털 다음에서 가장 댓글 많은 뉴스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기사 댓글만 7천 개가 넘었습니다. 대부분 박근혜 후보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입니다.

박 후보의 지난 89년 인터뷰를 보고 짜증이 낫다는 댓글에 찬성이 무려 7천여 개. 반대는 200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인터뷰 영상이 아니었으면 박 후보에게 정말 속을 뻔 했다는 내용에도 찬성이 5천 개에 가깝도 반대는 100개에 못 미쳤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과거 발언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인 반응에는 우려가 배어 있습니다. 23년 전 인터뷰라고는 하지만 최근에도 독재 체제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인 점이 시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습니다.

[김민성 대학생(19)] “학교에서 배운 근현대사에는 분명히 5.16이 쿠데타라고 써 있는데 5.16은 구국의 혁명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 보고 많이 놀랬죠. 그 인터뷰를 보고 나니까 도대체 이 사람하고 내가 21세기에 같이 살고 있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민들은 만약 박근혜 후보가 여전히 그때 생각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헌정을 수호할 책무를 지닌 대통령 후보로서 과연 적합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김승록 회사원 (28세)] “좀 놀라웠죠. 섬뜩하기도 했고요. 아버지 서거 이후에 10년이란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아직도 박정희 정권 때의.. 세뇌교육이라고 해야 하나..”

[황윤식 대학생(23세)] “89년도 인터뷰잖아요. 그런데 지금 2012년인데도 그 사람이 하는 박정희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는 거 같아요. 지금까지도 계속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워요.”

뉴스타파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당시 인터뷰 전문을 읽은 사람들은 더욱 무섭다, 소름끼친다, 라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89년 인터뷰에서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깊은 연민을 드러냈습니다.

@ MBC 박경재 시사토론 / 박근혜씨 아버지를 말한다 1989년 5월 19일 방송

(가장으로서의 박정희씨를 어떻게 평점을 하시겠습니까?) “아버지요?” (네.) “저는 뭐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리운 마음으로 머리끝까지 차 있고 또 어떻게 평점을 내리고 말고 하는 거보다도 아우 이렇게 억울하게 그동안 당하셨는데 이걸 어떻게 벗겨드려야 하나.. 그런 생각으로 있기 때문에 저한테 그런 걸 물으신다는 게..”

심지어 왕조 시대를 예를 들어 아버지를 옹호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옛날에는 도끼를 앞에 놓고도 임금께 상소했다. 요즘은 그렇게 쉽게 생명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만약 유신이 정말 나쁘다고 생각했다면 그때 얘기를 했어야지, 좋은 부귀영화는 다 누리고...” 게다가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것 같은 인식도 드러냈습니다."

“아버지 3주기 때인가, 80몇 년도 그때 재미 작가의 한 분이 아버지를 추모하면서 신문에 기고하신 글이 있어요. 거기에 내용 중에서 이런 글이 나오는데. 아버지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한반도가 아버지를 만들어간 방법과 아버지가 한반도를 만들어 간 방법,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해야만 바른 평가가 된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저는 그 얘기야말로 정말 아버지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정곡을 찌른 그런 아주 좋은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박근혜 후보가 최근에도 거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는 점입니다.

@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2012년 9월 10일

“이런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 3주기 때 어느 재미 작가가 아버지에 대해서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한반도가 박 대통령을 만들어간 방법과 박 대통령이 한반도를 만들어간 방법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해야만 바른 평가가 나온다, 고 이렇게 썼거든요. 그 글이.. 저는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러나 이런 박근혜 후보의 역시 인식, 국가주의적 태도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유권자들도 우리 사회엔 적지 않습니다. 뉴스타파가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할아버지들에게 박근혜 후보의 89년 당시 인터뷰를 보여줬습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할아버지들 가운데 한 사람만이 박근혜 후보가 잘못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고 응답합니다.

“유신은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절대로.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안 하고 그때 물러나야 영웅으로 남는 거예요. 그런데 강행을 해가지고 얼마나 국민이 바라지 않는 빗나간 정치를 했어요. 지금 박근혜가 그것을 정당하다고 하는 것은 역사를 다시 후퇴시키는 반 시대적인 정치 견해에요."

나머지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한국은 억압적 체제가 필요했다, 또는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반(半)독재 안 쓰고는 안 됩니다.” (뭐라고요?) “반(半)독재 안 쓰고는 안 돼.”

“아, 때려잡을 땐 때려잡아야 된다, 이거에요. 내 말과 같은 말이에요.” “잡을 땐 잡아야 한다고...”

이들 사이에는 당시 시대상황 때문에 독재가 어쩔 수 없었다, 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민주당 때 심지어 여자들까지 데모하고 나라가 망할 지경인데. 그 당시에 가만히 놔두었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북한에서 쳐들어 와서 나라가 없어질 수도 있어요.”

박근혜 후보의 89년 발언과 흡사합니다.

@ MBC 박경재 시사토론 / 박근혜씨 아버지를 말한다 1989년 5월 19일 방송

[박근혜] “또 국회의사당 앞에서 매일 각종 데모가 있고 의사당 안에서는 또 국회의원들이 이불 깔고서 극한 투쟁을 벌이고 학생들도 연일 데모하고, 심지어는 국민학교 학생들까지도 담임교사 타교로 전출하는 거 결사반대다, 해가지고 국민학교 학생들까지도 데모를 하고 그러니까 지금하고 그때 하고는 우리나라 형편이 특히 북한하고 대치해서 볼 때 말할 수 없이 달랐어요. 그땐 우리가 북한에게 지고 있을 때였거든요. 군사력에 있어서나 경제력에 있어서나. 그러면 그때 공산당이 가만 있었겠어요. 가만히 있으면 공산당이 아니지요.”

시대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독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는 주장은 일부 언론인들도 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의 김진 논설위원은 지난 9월 17일 자신의 김영 칼럼을 통해 박정희 정권의 유일한 살인은 인혁당 8명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박정희는 천상에서 그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조국을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력을 발휘했습니다. 또 박정희 독재를 개발 독재라고 정의하면서 그건 탐욕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필수적 선택이었으며 애국 독재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버지가 장기 집권을 위해 유신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는 박근혜 후보의 89년 발언과 같은 맥락입니다.

@ MBC 박경재 시사토론 / 박근혜씨 아버지를 말한다 1989년 5월 19일 방송

(72년에 7.4공동성명을 하시고 바로 그 해 유신을 했지 않습니까? 10월 17일 불과 석 달 후에. 그래서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자기의 집권연장에 이용한 나쁜 선례를 남겼다. 이런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반박하실 수 있는지요?)

“그게 바로 역사의 왜곡이에요. 우리가 일본사람한테 왜 남의 나라 역사를 왜곡하느냐고 이렇게 우리가 데모도 하고 그랬는데. 물론 일본도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면 안 되지만 우리도 우리 스스로의 역사를 왜곡하면 안 돼요. 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정말 욕을 먹고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결정을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서 안보를 이용했다, 그렇게 말을 갖다 붙여서 자라나는 세대도 전부 그렇게 알아듣도록 한다는 것, 이건 얼마나 큰 왜곡이에요?”

뉴스타파는 지난 25회 방송을 통해 세계 대부분의 언론이 박정희 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명시하며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것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독재를 얼버무리는 것은 사실상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태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만약 서구 선진국에 유력 대선후보가 독재의 역사를 옹호하거나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다면 그는 자국 언론의 혹독한 검증을 피해나가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유력 대선후보의 독재와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을 따져 물어야 할 한국의 거대 언론사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 문제에 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19일, 새누리당 대변인실과 박근혜 후보실에 89년 인터뷰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현재도 그때와 같은 의견인가. 변했다면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는 두 문항의 간단한 질의서였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아직 답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 “인터뷰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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