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법관 기피 신청은 불법 기소 자백이다
2024년 11월 22일 11시 02분
꼬리 자르기식 수사는 아니었다. 수사는 성공했다고 볼 수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 검찰의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가 일단락 되던 2010년 10월.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말입니다.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 (2010년 10월 18일 국감)]
“제 입장에서는... 검찰총장 입장에서는 수사의지가 없이 않았느냐. 알았는데 안 한 것 아니냐, 하면 약간 저는 억울하고요. 할 만큼 하는데 증거의 한계와 진술의 한계에 부딪쳐서 그러면 수사가 성공한 수사냐, 그것은 제가..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귀남 당시 법무부장관 역시 최선을 다한 수사였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귀남 당시 법무부장관 (2010년 11월1일 대정부질의)]
“조금 뒤늦게 한 것이 한 4일 늦었는데요. 좀 뒤늦게 한 것이랄지 하는 점에 관해서는 조금 소홀했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어쨌든 검찰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수사를 했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는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의 말과 달리 검찰은 불법사찰의 배후와 그 실체를 밝히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강욱 변호사 민간인 불법 사찰 피해자 변호인]
“너무나 소극적인 자세로 나왔고 뭔가를 파헤치기 위한 수사를 하는 게 아니라 대충 덮고 뭉개기 위한 수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었고.”
먼저 당시 검찰의 압수수색.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2010년 7월 9일에 이루어졌습니다. 사건이 불거진 지 20일. 총리실이 수사를 의뢰한지 나흘이 지나서야 실시된 것입니다. 전격적이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압수수색의 분위기와 방식도 이해할 수 없었다는 증언이 나옵니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당시 압수수색을 지켜봤는데 검찰이 종이자료를 거의 압수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제대로 하던가요?)
“한 열 명 가까이 왔었죠. 사실 저는 조금 살살 하시기에 이야기가 된 건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어요. 살살했죠.”
(살살 했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 거죠?)
“그러니까 압수수색을 하면 방과 캐비닛을 다 털어서 뒤질 줄 알았는데 그렇게는 안 뒤지시더라고요.”
특히 검찰이 압수한 양이 적어 작은 가방 하나면 충분한데도 몇 개의 박스에 나눠 담았고 박스 속에 신문지 등을 구겨 넣어 채웠다고 주장합니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마지막에 (감찰 수사관들이) 철수를 하실 때 조금밖에 안 됐어요, 종이가. 그런데 박스가 모양이 안 나오니까 거기다 신문지를 구겨 넣었죠.”
청와대 최종석 전 행정관으로부터 받았다는 이른바 대포폰에 대한 수사처리 방식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당시 장 주무관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자료삭제 과정에서 청와대 최행정관으로부터 문제의 대포폰을 전달받았고 이후 청와대에 반납했다는 사실을 검찰 수사과정에서 진술했습니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청와대) 가니까 전화기를 한 대 주시더라고요.”
(이른바 대포폰이요?)
“그게 대포폰인데. 그때 분명히 말씀하셨거든요. 이게 이영호 비서관이 오전가지 쓰던 거고, 몇 통화 한 데도 있긴 할텐데 어쨌든 이 전화기를 들고 가라, 그랬어요. 그리고 이 전화기 안에 전화번호가 한 개 저장돼 있는데 이걸로 수시보고를 하면서 일해라.”
따라서 대포폰의 존재는 민간인 사찰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을 것이라는 중요한 단서였던 셈입니다.
[이석현 의원 (2010년 11월 1일 대정부질의)]
“(디스크 자료 삭제 업체에) 가기 전에 대포폰을 이용해서 업체와 통화했다는 사실을 검찰이 확인했습니다. 장관, 이 q분도 검찰이 지금 내사를 하고 있습니까?”
[이귀남 당시 법무부장관 (2010년 11월 1일 대정부질의)]
"그것은 다 수사를 마쳤고요.“
실제 검찰은 2010년 9월 장 주무관을 상대로 대포폰과 관련한 별도의 신문조서를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에는 조서를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대포폰을 지급했던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해서는 소환조사가 아니라 검찰이 외부에 출장을 나가 조사를 벌였다는 증언도 제기됐습니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최종석 행정관을) 소환을 안 하고 검사들이 시내 모처로 나간 걸로 돼 있죠. 실제로 그랬다고 들었어요. 양재동 어디로 나갔다고.”
결국 최 전 행정관은 장 주무관에게 대포폰을 제공하고 민간인 사찰에 대한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고 기소 대상에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최 전 행정관은 이후 미국으로 출국해 현재 주미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불법사찰을 시키고 보고받은 배후 인물로 지목된 이영호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역시 검찰에서 단 한 차례의 참고인 조사만 받았을 뿐입니다. 또 재판 과정에서 당시 이강도 공직기관 비서관에게 보고했다는 진술이 나오는 등 청와대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여기에 삭제한 컴퓨터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민정수석 보고용 폴더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원충연 공직윤리비서관실 조사관이 작성한 업무 수첩이 발견됐고 여기에는 청와대를 뜻하는 BH 지시 등의 메모까지 나왔지만 더 이상의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최강욱 변호사 민간인 불법 사찰 피해자 변호인]
“배후나 이런 부분에 관한 흔적들이 대포폰 얘기를 통해서 나왔고 그 다음에 원충연씨이 수첩 같은 걸 통해서도 문제가 제기됐고 ‘BH'라는 글자, ’민정수석실 보고용‘ 이런 폴더들이 있는 문서들을 본인들이 확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았죠.”
결국 검찰은 총리실 인사들만 사법처리 했을뿐 청와대는 철저히 비켜갔습니다.
Q. 이용호 비서관이 수사를 받지 않은 걸 보면서는 어떠셨나요?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참 안타까운 게... 공무원 조직 저기 정부종합청사에 계시는 거의 모든 분들이 저희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고용노사비서관실에서 운영한다는 사실을 거의 다 알고 있거든요. 모르는 분이 없어요. 그냥 다 아는 사실이에요. 그걸 굳이 저보고 증명을 하라. 그러니까 참 어려워지더라고요. 그냥 아는 사실이고. 그런데 그걸 증명을 어떻게 하느냐.”
검찰은 조만간 총리실에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재수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번에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 지휘권을 갖고 있는 권재진 법무부장관이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 제기되던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의 조직적인 개입 여부를 밝히는 게 재수사의 핵심이지만 현재 검찰이 권 장관의 민정수석시절 행정까지 수사 대상에 올리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최강욱 변호사 민간인 불법 사찰 피해자 변호인]
“사찰 부분도 그렇고 증거인멸 부분도 그렇고 그리고 이 사건의 파장이나 이런 걸 고려할 때 당연히 책임져야 할 위치에 계셨던 분이고 그런데 이 분이 지금 공교롭게도 법무부장관이 되셔 가지고 검찰을 관할하고 지휘하는 위치에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검찰은 이걸 제대로 된 수사를 하고자 한다면 당시에 민정수석실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수사를 해야 되고요. 자기네 내부에서는 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수사를 해야 하는데 검찰 부분이건, 민정수석 부분이건, 결국은 지금 법무부장관으로 계신 분에게 다 가서 캐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분을 상대로 과연 검찰이 얼마나 성의 있는 얼마나 밀도 있는 수사를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드는 거죠.”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올린 것으로 시작된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여기에 청와대 인사가 개입돼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폭로가 제기되고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지금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권력과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진실만을 보도하기 위해, 광고나 협찬 없이 오직 후원회원들의 회비로만 제작됩니다. 월 1만원 후원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