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등 세금으로 책 수백권 구입 '선물'로 돌려

2022년 10월 06일 20시 00분

▲ 왼쪽부터 권성동, 김기현, 이수진(비례) 의원 
정책을 개발하라고 지원하는 국회의원들의 도서구입비를 검증한 결과, 같은 책을 수백 권씩 사들여 동료 의원 등에게 선물한 국회의원들이 여럿 확인됐다. 세금으로 ‘정책개발’이 아닌 ‘책 선물’을 한 의원은 국민의힘 권성동, 김기현, 더불어민주당 이수진(비례) 의원 등이다.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지낸 김기현 의원은 유아용 그림책 300권(세금 405만 원어치), 김 의원의 뒤를 이어 원내대표에 오른 권성동 의원은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책 100권(세금 171만 원어치)을 구매해 동료 의원들에게 선물로 돌렸다. 또 더불어민주당 이수진(비례) 의원도 <전태일 평전> 200권(세금 270만 원어치)을 사서 동료 의원들에게  나눠줬다. 
입법·정책 활동을 지원하라고 책정된 도서구입비 예산이 수백만 원짜리 ‘책 선물 잔치’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해당 의원들은 세금을 빼돌린 게 아닌 만큼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이 같은 ‘책 선물’이 세금 오·남용에 해당하는지 국회사무처에 유권해석을 요청했으나, 보름이 지나도록 답을 받지 못했다. 의원들에게도 본인의 입법 활동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 밝혀달라고 했지만, 누구도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국회는 2005년부터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돕기 위해 ‘입법 및 정책개발비’ 예산을 운영 중이다. 300명 의원이 한 해 쓸 수 있는 정책개발비 예산은 120억 원 남짓이며 그 중엔 ‘도서구입비’ 항목이 있다.

국힘 김기현, 그림책 300권 구매해 405만 원 세금 지출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원내대표이던 김기현 의원(울산 남구을)은 <이파라파 냐무냐무>라는 그림책 300권을 한꺼번에 구매했다. 책값 405만 원은 국회 예산으로 썼다.
지난해 11월,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이던 김기현 의원(울산 남구을)은 <이파라파 냐무냐무>라는 그림책 300권을 한꺼번에 구매했다. 책값 405만 원은 국회 예산으로 썼다. 그림책은 서로 다른 무리가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갈등하고 싸우게 된다는 우화적인 내용이 그려져 있다. 3세에서 7세까지 아동에게 권장하는 책이다.  
김기현 의원이 구매 대금 405만 원을 국회사무처에 청구하고 제출한 도서 구입 활용 계획서에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책을 샀다고 밝혔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모인 만큼 상대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중략) 단순히 토론회 차원의 문제의식 공유보다는 직접 의원들이 책을 읽어보고... 

도서 정책 개발 활용 내용(김기현 의원, 2021. 11. 30)
김 의원은 동료 국회의원들에게 읽어보게 하려고 책을 샀다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국회의원이 아닌 입법보조원과 인턴들에게 책을 나눠준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정당 상관없이 입법 보조원과 인턴들에게 새로운 입법이나 새로운 정책을 많이 시도를 해야 된다. 그러려면 그 저변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다양하게 이해를 해야 된다라는 취지로 책을 돌렸습니다.

- 김기현 의원실 보좌진
김기현 의원실은 한 가지 책을 대량 구매해 인턴들에게 선물로 돌렸지만, 예산 집행에는 문제없다고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의 입법 활동에 무슨 도움이 됐는지 질문에 대해선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않았다. 

국힘 권성동, 최중경 전 장관 책 100권 구입 후 의원들에게 선물 

▲권성동 의원은 지난해 2월,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쓴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라는 책 100권을 사들였다. 책값으로 세금 171만 원을 썼다. 
윤석열 정부의 실세로 불리는 4선의 권성동 의원(강원 강릉시)도 세금을 들여 책을 대량 샀다. 이번엔 전직 장관이 쓴 책이다. 권 의원은 지난해 2월,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쓴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라는 책 100권을 사들였다. 책값으로 세금 171만 원이 들어갔다. 
권성동 의원이 국회사무처에 낸 예산 지급 신청서에는 책 구입 목적으로 “발전적인 역사 교육 정책 논의를 위해 이 책을 활용하겠다”고 적었다. 그런데, 당시 권 의원은 역사 교육 관련 상임위를 맡지 않았다. 그때 그의 상임위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였다. 권 의원은 100권의 책으로 뭘 했을까? 
우선 저자인 최중경 전 장관에게 물었다. 최 전 장관은 권성동 의원과는 “장관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라며 “권 의원에게 책을 한 권 보냈더니, 내용이 좋다며 동료 의원들에게 선물한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제가 (지식경제부) 장관 할 때는 권성동 의원이 우리 산자위원회에 있었으니까 가까울 수 있었죠. 권성동 (원내) 대표한테 (책) 하나 보냈더니 그 양반이 보고 책의 내용이 좋다고, 내 기억에 지금 국민의힘 의원님들한테 다 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결국, 권성동 의원은 잘 알고 지내는 전직 장관의 책 100권을 세금을 들여 구입한 뒤, 같은 당 의원들에게 '책선물'을 돌린 것이다. 입법과 정책개발에 쓰여야 할 예산의 쓰임새에서 벗어나 권 의원의 사적인 ‘선물 돌리기’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산다. 
권성동 의원은 2020년 12월에도 미국의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가 쓴 <폭정>이라는 책을 70권을 샀다. 책값은 75만 6000원, 역시 세금에서 나갔다. 권 의원이 국회사무처에 낸 예산 지급신청서에 책 구입 목적을 이렇게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제도와 정책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배치되는 독재주의적 요소가 있어 이러한 해외 석학의 저서를 토대로 동료 의원들과 함께 문제점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앞으로의 정책 개발에 활용하고자함.

도서 정책 개발 활용 내용(권성동 의원, 2020. 12. 18)
권성동 의원은 세금으로 산 책을 동료 의원들과 나눠 읽고 뭘 분석했을까? 뉴스타파는 이런 식의 세금 집행이 권 의원의 입법 과정에 무슨 도움이 됐는지, 또 어느 의원들에게 책을 나눠줬는지, 확인하려고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권성동 의원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민주 이수진(비례), 전태일 평전 대량 구매해 편지 써서 돌려

▲ 이수진 의원(비례)이 국회사무처에 낸 도서구입비 지급청구서 
더불어민주당 이수진(비례대표) 의원은 지난해 11월, 270만 원어치의 세금을 쓰고 <전태일 평전> 200권을 샀다. 이 의원은 “전태일 열사의 기일을 맞아 현실적인 노동 정책을 반영한다”고 책 구입 목적을 밝혔다. 이후 이수진 의원실은 노동자 정책이 필요하다는 이 의원의 편지와 함께 책 200권을 같은 당 의원들에게 나눠줬다고 설명했다. 
저희 당 국회의원분들하고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하고 그다음에 저희 보좌진들에게 책을 돌렸고요. 저희가 친전을 써가지고 봉투에 다 넣어서 책을 돌렸어요. 

이수진 의원실 보좌진
전태일 평전 200권을 같은 당 의원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본인의 입법과 정책 개발에 관련이 없는 세금 낭비가 아니냐고 지적했으나, 이수진 의원실은 동의하지 않았다. 
“일단 저희는 선물이라고 보지는 않고요. 국회사무처에서도 이 예산 집행이 문제가 있다고 특별하게 지적이 들어온 것도 없습니다. 전태일 3법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전태일에 대해서 의원님들이 알고 계셔야 된다는 판단에서 제공을 한 것입니다.” 

이수진 의원실 보좌진
뉴스타파와 <국회 세금도둑 추적>을 함께하는 시민단체들은 세 의원의 책 구매 행위는 개인적인 목적으로 이뤄진 부적절한 예산 집행으로, 책 선물에 쓴 예산을 모두 국고에 반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산을 사용할 때는 개인적인 목적으로 선물을 한다거나 아니면 예산 사업의 기본적인 취지에 맞지 않은 돈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해야 한다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동일한 책을 300권을 사서 의원 한 명씩 나눠준다, 그 책이 해당 의원의 입법이나 정책 개발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는 게 확인되는 순간 그건 선물이죠.”

채연하 사무처장 / 함께하는 시민행동
어린이들이 볼 책을 사 가지고 선물로 나눠준다는 건 입법 및 정책 개발의 취지에 근본적으로 안 맞는 거죠. 당연히 반납해야 하죠. 국회사무처가 걸러내야 되는 거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너무 허술하다는 게 여기에서도 드러나는 것이죠.

하승수 변호사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뉴스타파 전문위원)
실제 국회사무처가 발간한 ‘의정활동 지원 안내서’를 보면, 어떤 도서 구입이 예산 취지에 맞는지 세부 지침은 없다. 단지 ‘정기구독 간행물’, ‘입법 및 정책개발 활동에 활용되지 않는 도서’ 이렇게 두 가지만 예산 사용이 불가하다고 명시했을 뿐이다. 정작 입법 및 정책개발에 활용되지 않는 도서가 무엇을 뜻하는지 예시나 해설은 써놓지 않았다. 

국회사무처 "오래 검토해야 할 내용" 보름이 지나도록 답 안해

뉴스타파는 지난 9월 22일, 수백 권의 도서 구매해 선물하는 의원들의 행위가 세금 오·남용에 해당하는지 국회사무처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이후 보름이 지났지만, 국회사무처의 답변은 오지 않았다. 취재진은 10월 5일, "답변이 늦어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으나,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검토를 오래 해야할 내용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뉴스타파는 예산과 공직 감시 활동을 하는 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등 시민단체 3곳과 함께 21대 국회의원 300명이 쓴 정책개발비 예산 2년 치(2020년 6월~2022년 5월) 자료를 확보해 검증하고 있다. <국회 세금도둑 추적>은 2017년부터 6년째 진행 중이다.
제작진
취재강민수
촬영기자정형민
데이터최윤원
편집김은
리서처강유진 홍채민
웹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공동기획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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