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에 위증까지’...전 보안사 학원반 반장 고병천 씨 법정구속

2018년 04월 04일 16시 35분

[Update 2018-05-28] 1심 법원, 고병천 씨에 위증죄로 징역 1년 선고

전 보안사 학원반장 고병천 씨가 결국 실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이성은 판사는 5월 28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고 씨에게 징역 1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고 씨가 2012년 윤정헌 씨의 재심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증했던 것을 두고 “다른 수사관들처럼 처음부터 소환 통지에 불응하거나 증언 거부권 행사 등으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음에도 굳이 출석해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함으로써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심리를 방해하고 국가 사법기능을 침해했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피해자들을 간첩으로 조작했던 당시 수사에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는 보안사 수사관들의 입장을 적극 관철시키는 한편 당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를 은폐, 축소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 같은 경우 고문할 때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고 씨는 앞서 최후진술을 통해 “고문행위로 사적 이익을 추구한 바 없고 국가와 조직, 동료의 명예와 위신을 실추시키지 않으려고 위증하게 된 것"이라며 재판부에 선처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고 씨가 속한 보안사 수사2계는 공적을 인정받을 목적으로 경쟁적으로 간첩 검거에 나섰고, 대장 다음으로 계급이 높았던 고 씨는 이 같은 작업의 공적을 인정받아 포상을 받는 등 개인적인 영달을 누렸다”면서 고 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면서 고 씨에게 “고문 피해자들에게 평생 씻어낼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안긴 만행을 저질렀다”고 질책했습니다.

[2018-04-04] ‘고문에 위증까지’...전 보안사 학원반 반장 고병천 씨 법정구속

전 국군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 수사관 고병천 씨가 지난 4월 2일 법정구속됐습니다. 고 씨는 지난 2010년 12월 재일동포 간첩조작 피해자인 윤정헌 씨의 재판에 출석해 “고문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가 모해위증 혐의로 고소당했고, 결국 지난해 12월 위증 혐의로 기소됐었습니다. 지난 1984년 한국에 유학 온 대학생 윤 씨에게 간첩임을 자백하라며 고문한 지 34년 만에 재판을 받던 중 전격적으로 구속된 것입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1월 방영한 <1984, 처벌받지 않은 자들> 속에서 과거 보안사가 자행했던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다시 조명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당시 보안사 학원반장이던 고병천 씨로부터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비중있게 다뤘습니다. 방송이 나간 시점은 “고문을 하지 않았다”고 위증한 혐의로 기소된 고병천 씨의 재판이 막 시작되려던 때였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서 고병천 씨가 재판 도중 구속됐습니다. 그동안 뉴스타파가 취재해온 간첩조작 사건들이 적지 않은데, 직접적인 고문 가해자가 이렇게 처벌을 받게 된 건 취재진도 처음 목격한 일입니다. ‘처벌 받지 않은 자들’ 여럿 가운데 드디어 한 명이 처벌을 받게 된 겁니다.

1984 : 처벌 받지 않은 자들

사실 이 마저도 고비가 없던 건 아니었습니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인 윤정헌 씨는 2012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고병천 씨를 모해위증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1980년 당시 고 씨의 고문 행위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할 수가 없었지만, 법정에서 ‘고문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성과 사과조차 거부한 고 씨의 ‘양심’에 대해서만이라도 처벌할 수 있는 길이 간신히 열렸던 것이죠.

그러나 검찰은 윤정헌 씨의 고소 후 거의 5년 동안 수사에 나서지 않다가 지난해 12월 13일에야 위증 혐의로 축소해 기소했습니다. 고 씨가 모해위증, 즉 윤정헌 씨를 재심에서 불리하도록 만들 의도가 있었다고까지는 판단하지 않은 채, 단순히 거짓말을 한 것만을 인정해 기소를 했던 겁니다.

이런 맥락을 파악하고 있어서 그랬을까요? 지난 1월, 과거의 고문행위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병천 씨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간첩조작 당했던 재일동포 윤정헌 씨나 이런 재일동포들에 미안하다는 생각하고 계신가요?)
그건 재판이 며칠 안 남았으니 그 때 가면 알아요.
(당시 수사 방법 모두 떳떳하신가요?)
그건 내가 얘기할 처지도 안 되고, 그날 가면 얘기 다 나와요.

이렇게 자신의 과거 악행을 사실상 전면 부인했던 고병천 씨에 대한 재판부의 대응은 단호했습니다. 담당 판사는, 다음 재판에서는 피해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고 씨를 전격적으로 법정구속시켰습니다.

죄명은 위증이지만 본질은 위증에 한정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고문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죄가 이뤄지려면 피고인에게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매우 힘든 과정이기 때문에 피고인은 재판 끝까지 자신을 지켜야 됩니다. 그래서 도주의 염려,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아 구속영장을 집행하고자 합니다. 피고인보다 피해자들이 몇만 배 힘든 시간을 보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억해서 피해자들이 어떻게든 아픈 과거를 떠나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열쇠를 피고인이 쥐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2018년 4월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이성은 판사

고병천 씨의 고문 행위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당시 고 씨의 보안사 학원반 부하였던 이덕용 씨가 “고병천 수사관이 수사를 주도적으로 했다”고 진술하는 등 다수 증언들에 의해 그의 악행이 입증됐던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 씨가 저질렀던 고문 범죄는 간첩조작 피해자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뚜렷이 각인돼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구타와 물고문은 기본이고 2층에서 의자에 앉힌 뒤 물이 차있는 지하로 낙하시키는 방식으로 극강의 공포를 주는 일명 ‘엘리베이터 고문’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전기고문을 할 때에는 성기에까지 코일을 감았다고 하니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끔찍함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피해자들은 고 씨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부분 일본에 살고 있는 피해자들이 고 씨의 공판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건너와 법정을 찾아가는 이유입니다. 고 씨의 결심공판은 오는 4월 말로 예정돼 있습니다. 과연 그때 고 씨는 어떤 최후진술을 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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