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신라면세점 시계 밀수 사건〉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사건 은폐 시도

2020년 12월 01일 11시 24분

HDC신라면세점 명품시계 밀수 사건을 관세청과 검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가 관련자들에게 진술 번복을 요구하는 등 사건 은폐에 나섰던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로 확인됐다. 해당 변호사는 현재 야당인 국민의힘의 추천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하 공수처장) 후보에 오른 강찬우(연수원 18기) 변호사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2600쪽에 달하는 이 사건 기록에는 강 변호사가 관세청 조사 당시 밀수에 동원된 HDC신라면세점 직원에게 "관세청 조사 무시해라, (범죄 혐의를) 부인하라"고 요구했다는 진술이 들어 있다. 또 올해 1심 재판을 앞두고는 시계 밀수를 주도한 이길한 전 HDC신라면세점 대표를 통해 밀수 사건 관련자에게 허위 진술을 유도한 의혹도 받고 있다. 강 변호사는 지난해 관세청 조사 단계부터 시계 밀수를 주도한 이길한 전 HDC신라면세점 대표의 변호를 맡고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달부터 HDC신라면세점에서 벌어진 명품 시계 밀수 사건을 연속 보도하고 있다. 관세청과 검찰은 1년여 간 수사를 벌인 뒤 올해 6월 이길한 전 대표 등 관련자 7명과 HDC신라면세점 법인을 관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외국인 명의로 시계를 구매한 뒤, 직원들을 동원해 4건, 총 1억 7천여만원 상당의 명품 시계를 밀수한 혐의다. 

"진술밖에 없다, 기억 안 난다고 해라"... 강찬우 변호사 '변호사법 위반' 의혹

이길한 전 HDC신라면세점 대표의 변호를 맡고 있는 강찬우 변호사. 밀수사건 관련자들에게 진술 번복 등을 요구하는 등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강 변호사는 현재 국민의힘이 추천한 공수처장 후보 중 한 명이다. 
지난해 6월, 뉴스타파는 밀수사건에 관련된 HDC신라면세점 관계자들의 대화내용이 담긴 음성파일을 공개한 바 있다. 이 면세점의 팀장급인 황 모 씨가 밀수에 동원된 부하 직원에게 사건 은폐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황 씨는 이길한 대표 측 변호사의 말이라며 다음과 같이 부하 직원을 회유했다. 
이길한 대표의 변호사는 ‘다 쌩까도 된다’, ‘진술서는 휴지조각이다’, ‘검찰로 가지도 않았고, 그대로 조사만 한 건데, 다 쌩까라’는 입장이야. 

황OO//HDC신라면세점 팀장(2019.6.19)
또 다른 음성파일에서는 이길한 측 변호인이 직접 나서 같은 직원을 회유하는 내용도 확인됐다. 검사장 출신인 강찬우 변호사(연수원 18기)였다. 
세관에서 보기에 의심스러울 수 있는 물증이 있기가 어려운... 현장에서 적발되지 않으면, 제보자나 혹은 관련자들의 진술 밖에 없잖아요. 기억도 잘 안나고

이길한 전 대표 변호인 강찬우 변호사
지난해 뉴스타파가 이 문제를 취재할 당시 강찬우 변호사는 "변호한 사건에 대해 아무런 말씀을 드릴 수 없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최근 입수한 2600쪽 분량의 관세청과 검찰의 수사기록 속에서 이 음성파일을 수사한 내용이 확인됐다. 부하직원에게 사건 은폐를 요구했던 황 모 팀장의 진술조서다. 조서에는 "강찬우 변호사가 관세청 조사를 방해하라고 지시했다"고 기록돼 있다. 
변호사와 통화한 내용은 요약하자면 뉴스에서 보도된 것처럼 세관에서 증거가 없는데, 너희들이 굳이 죄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 세관에 제출한 진술서는 번복이 가능하다, 세관조사는 무시해도 된다, 모두 부인을 해도 무방하다는 식의 내용이었습니다. 

황OO//HDC신라면세점 팀장(피의자 진술조서, 2019. 6.27)
강찬우 변호사는 검사 시절 삼성 비자금 특검에 참여하고 대검 반부패부장, 수원지검장 등을 지냈다. 그리고 현재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추천한 4명의 공수처장 후보 중 한 사람이다. 강 변호사는 이길한 전 대표와는 고교동창 사이로 알려져 있다.
변호사법(제24조 품위유지의무 등)은 변호사가 그 직무를 수행할 때에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증인에게 위증을 교사하거나 승소를 위해 법원을 기망했을 때는 '위증교사죄'나 '소송사기죄'로 처벌 받을 수 있다. 변호사윤리장전에도 관련 규정이 있다. '변호사는 위증을 교사하거나 허위의 증거를 제출하게 하거나 이러한 의심을 받을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11조 3항)는 내용이다.

"진술 바로 잡아야 몽땅 무죄"...재판 앞두고 문자로 진술 번복 유도 

HDC신라면세점 직원이었던 강OO씨가 뉴스타파에 공개한 문자 메시지. 지난 8월 14일 이길한 전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강찬우 변호사의 조력을 받은 뒤 강 씨에게 보낸 것으로, 진술 번복을 요구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강찬우 변호사가 사건 은폐를 시도한 정황은 또 있다. 이길한 전  HDC신라면세점 대표 지시로 시계 대리 구매에 관여했다 재판에 넘겨진 강 모 씨는 최근 뉴스타파에 이길한 전 대표에게 받았다는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문자를 받은 날짜는 1심 재판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8월 14일, 이길한 전 대표는 '제 변호사가 전해달라'며 아래와 같은 내용의 문자를 강 씨에게 보냈다. 
제 변호사가 기록을 다 읽어보고 강사장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전해달라는 문자에요. 
(중략)...진술 기재(조서의 기재)를 법정에서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이건 강의 진술이라기 보다, 검사가 강의 진술을 듣다가 그 부분만 발췌해서 억지로 적어놓은 측면이 강합니다. 세상에 이런 증거로, 강OO, OOO, OOO을 공범으로 기소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 부분을 바로 잡아야 OOO, OOO도 몽땅 무죄가 가능합니다. 법정에서 바로 잡기위해서는 저가 변호사라도 선임해야합니다. -이상

이길한 전 대표가 강OO에게 보낸 문자
이길한 전 대표의 변호를 맡고 있던 강찬우 변호사가 밀수 사건으로 검찰조사를 받은 강 씨에게 사건 은폐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추정된다. 강 씨는 이 문자에 대해 "회유가 포함된 문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갈한 대표가 연락이 계속 없다가 나를 위한답시고 문자를 보냈어요. 제가 검찰에서 사실을 이야기했는데, 이길한 대표가 보낸 문자에는 이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데, 뭘 바로 잡으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에 대한 회유가 포함이 된 것 같아요. 

강OO /전 HDC신라면세점 직원
뉴스타파는 강 씨의 주장, 그리고 강 씨가 이길한 전 HDC신라면세점 대표에게서 받은 문자메시지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이길한 전 대표에게 질문지를 보냈다. 며칠 뒤 이길한 전 대표는 변호인을 통해 “현재 재판중인 건으로 질의에 대해 협조해 드릴 수 없음을 양해 드린다”고 답했다.  

전직 관세청장이 관세청 조사 대리... 밀수 관련자의 진술 번복

관세청장 출신의 천홍욱 씨는 HDC신라면세점 법인과 이 회사 팀장 황 모 씨를 대리하며 명품시계 밀수 사건에 뛰어들었다.   
이 사건에 뛰어든 전관 출신 인사는 또 있다. 바로 HDC신라면세점 측 대리인을 맡은 천홍욱 전 관세청장이다. 천 씨는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였던 최순실 씨를 통해 관세청장에 올랐다는 의혹을 받았던 바로 그 인물. 밀수 사실 은폐를 집요하게 회유했던 HDC신라면세점 황모 팀장의 첫 관세청 조사에 천홍욱 씨가 회장으로 있는 관세법인이 관세대리인으로 나섰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명품시계 밀수사건 기록에 따르면, 천홍욱 씨가 회장으로 있는 관세법인의 조력을 받았던 황 씨는 수사 초기만 해도 일부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본건을 직원들이 확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길한 전 대표가 저는 밀수를 지시했다고 사실 아직까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대표이사님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상황으로 물건을 받아오라하셨고, 이번건으로 이렇게까지 오게 될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관세청이 증거 인멸 혐의로 체포한 뒤 황 씨는 돌연 입장을 바꿨다. "모든 사실을 털어놓겠다"고 밝힌 것이다. 황 씨는 입장이 바꾼 뒤에는 뒤 천홍욱 씨가 속한 관세법인이 아닌 다른 법률대리인을 선임해 관세청 조사에 임했다.
-피의자는 일부 혐의를 부인하였으나 인천서부경찰서에서 자필 진술서를 작성하면서 본건 혐의를 인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본건 혐의를 부인한 이유는 제가 회사에서 간부로 있고, 이 문제가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회사에 누가 될까 걱정되었고, 또한 동료 직원 들한테도 피해가 갈 것 같아 그렇게 했는데 결론적으로 제가 한 모든 행위가 일을 더욱 꼬이게 만드는 것 같아서 사실대로 진술하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사실대로 진술하게 된 겁니다.

황OO/HDC신라면세점 팀장(피의자진술조서, 2019. 7. 4)
갑자기 뒤바뀐 황 모 팀장의 진술. 혹시 범죄를 부인했던 초기 진술과정에 천홍욱 전 관세청장이 관여한 건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뉴스타파는 황 모 팀장의 진술 번복과정 등에 대해 묻기 위해 천 씨가 소속된 관세법인에 연락했지만, 아무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반쪽' 수사, 전관 변호사의 진술번복 사실 등이 확인되면서 HDC신라면세점 명품시계 밀수 사건을 다시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관세청을 소관기관으로 두고 있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관들이 수사 축소에 영향을 끼쳤는지 밝혀야 한다. 관세청에 수사 재검토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전관들의 부당한 영향력이 어느 정도로 수사축소에 영향을 끼쳤는지 앞으로 이 문제를 철저하게 밝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중이더라도 범죄 혐의가 추가로 드러난다면 추가로 기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제보자들을 중심으로 관세청과 검찰의 수사가 다시 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제작진
촬영기자이상찬
편집정지성
CG정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