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업

전재국 유령회사, 아랍은행 특별관리 받아

2013년 06월 06일 10시 28분

2004년 7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블루 아도니스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전재국씨. 전씨는 보름 뒤 자신이 단독 이사인 이사회에서 특이한 결정을 합니다.

당시 결정사항이 기록된 이사회 의결서입니다. 자신이 설립한 유령회사의 회계 장부, 이사회 의결서, 세부 회의록 등 페이퍼 컴퍼니 운영 관련 서류를 모두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보관한다는 내용입니다. 주주 명부는 물론, 등기이사 명부의 원본도 아랍은행에 보관한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더구나 이 의결서엔 전씨가 페이퍼 컴퍼니의 모든 기록을 아랍은행에 맡길 뿐만 아니라 회계 관리와 기타 행정업무 등도 해당 은행에 위탁하기로 했다는 정황이 보입니다. 아랍 은행에 서류를 보관한다는 문구 앞에 C/O라는 영어 약자가 적혀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전문가들은 이 용어가 전씨의 페이퍼컴퍼니 관련 행정, 회계 관리 업무 등을 아랍은행이 전반적으로 대행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역외금융 전문가]
“아무리 페이퍼컴퍼니라도 컴퍼니 관련 서류는 디렉터나 회사 관계자의 집에 보관하는 경우가 보통이죠. 이런 경우는 드문데요. 거기에 숨겨놨다고 봐야죠. 은행에 모든 것을 맡긴다..정상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봅니다. 아마도 회계장부 같은 관련 서류를 한국에 보관하거나 혹은 우편으로 주고 받는 과정에서 노출될 수 있다고 생각해 아예 은행에 서류를 맡긴 것이 아닌가 그렇게 추정됩니다. 극도로 보안에 신경을 쓴 것이라고 봐야죠.”

전씨와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의 관계가 매우 긴밀하게 유지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페이퍼컴퍼니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아랍은행 내부에 보관하도록 했다는 것은 전씨가 계좌 정보 등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극도로 보안에 신경을 썼다는 추정을 가능케 합니다.

은행이 이런 식의 특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해당 계좌에 최소한 5백만 달러 이상 지속적으로 예치돼 있을 경우에만 가능한 서비스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역외금융 전문가]
“딱히 정해진 룰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잘 알려진 PB의 경우 미니멈 5백만 불 내외입니다. 아랍은행처럼 덜 알려진 경우라도 미니멈 2백만 불은 되어야 계좌 개설이 가능할 것입니다. 대개 PB가 기대하는 수준은 천만 불 정도라고 봐야죠.”

실제 뉴스타파 취재진이 만난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의 한국인 직원은 자신들이 대규모 자금을 주로 다룬다고 말했습니다.

[정ㅇㅇ/아랍은행 싱가포르]
“딜(거래)하면 큰거 4억불, 7억불짜리 이런거 하고 뭐 신디케이시션 하고 하는거지..한국 회사들 하고...”

현재 드러난 전재국씨와 아랍은행의 특별한 관계를 볼 때 “1989년 미국 유학생활을 중지하고 귀국할 때 가지고 있던 학비와 생활비 등을 싱가포르로 이전”했을 뿐이라는 전씨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뉴스타파는 특히 ICIJ, 즉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입수한 페이퍼컴퍼니 등록대행업체 PTN의 또 다른 자료를 통해서 전씨가 블루 아도니스를 지속적으로 유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씨는 2004년 9월 페이퍼 컴퍼니 등록 비용으로 PTN에 850달러를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다섯 달 뒤인 2005년 5월에도 다시 PTN 계좌로 돈을 입금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취재진이 찾아낸 PTN 명의의 은행계좌 입출금 내역입니다. 전씨의 유령회사 블루아도니스가 미화 1210 달러를 입금한 기록이 나옵니다. 입금 당시는 1년 단위의 법인 등록 갱신 시점이 오기 전이어서 전씨의 회사가 PTN으로부터 법인 갱신과는 별도의 서비스를 받고 수수료를 지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씨는 1989년 귀국하면서 남은 학비와 생활비를 싱가포르에 보냈다고 주장했지만, 그로부터 15년이나 지난 시점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대행업체인 PTN에 적잖은 돈을 내면서 유령회사를 유지했던 이유는 뭔지,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전재국씨는 석연치 않은 해명자료만 내놓은 채 며칠째 시공사에도 출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공사 직원]
“어제도 안오셨지만, 오늘도 안오시고, 앞으로 안오실 것 같은데. 당분간 안오실 것 같은데.”

시공사 직원들은 시공사가 해외사업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전씨가 만든 페이퍼컴퍼니가 시공사의 사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뜻입니다.

[시공사 직원]
(국내에서만 하고 해외에서는 따로 사업을 하는 건 없고요?)
“글쎄요. 제가 경영쪽은 관여를 안해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책과 관련된 해외 사업은 없어요.”

한편 뉴스타파가 전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를 보도한 직후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의 한국인직원 2명 가운데 1명이 은행을 그만 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는 전씨의 계좌와 관련된 정보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인물로 추정됩니다.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 관계자]
“죄송하지만 그 분은 더 이상 이 은행에 계시지 않습니다.”
(언제 그만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왜 그만뒀는지 알 수 있을까요?)
“퇴직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전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고 질문에 답할 수도 없습니다.”

뉴스타파의 보도 이후 국세청과 검찰, 금감원은 일제히 전재국씨의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관건은 전씨가 유령회사 명의의 계좌를 만들고, 회계 장부까지 보관한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으로부터 전씨의 계좌 정보를 제대로 받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

현재 싱가포르는 한국과 조세협약이 체결돼 있습니다. 결국 전재국씨의 페이퍼 컴퍼니를 둘러싼 진상 규명은 정부 당국의 의지에 달린 문제입니다.

뉴스타파 이유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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