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이태원 참사 2주기 : 기억은 가깝고, 법은 멀다
2024년 10월 31일 20시 00분
<기자>
지난 2010년 2월. 경주 발레오만도. 직장 폐쇄에 항의하는 조합원들을 향해 용역들이 소화기를 뿌립니다. 겨울인데도 용역들을 소방 호스를 끌어와 물대포를 쏩니다.
회사에서 쫓겨난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조합원들은 회사 옆 공원에서 3년째 천막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2010년 이후 해고된 금속노조 조합원은 28명에 이릅니다.
[정연재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지회장]
“마지막까지 금속노조를 지키겠다고 남아있던 동지들은 대부분 원직 복직된 동지들이 한 명도 없죠. 심지어 연구소에 있던 동지가 지금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고 풀 뽑기를 하고 있고. 내가 금형가공 기술자인데 지금 나와서 페인트 작업을 하고 있고, 잡초제거하고 앉아 있고, 쓰레기 줍고 있고, 이런 상황이라고 보셔야 되죠.”
발레오만도는 현대, 기아차 등 자동차 회사에 핸들장치 등을 납품하는 중견기업입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흑자 부도가 난 뒤 프랑스 자본인 발레오가 인수했습니다. 직장폐쇄 이후 일터로 돌아간 사람들. 이들의 현실을 가혹했습니다.
이른바 지피지기 개선 TFT팀을 새로 만들어 특별 관리가 시작됐습니다. 이 팀에는 주로 회사에 늦게 복귀했거나 금속노조를 탈퇴하지 않았던 조합원들이 대부분 포함됐습니다.
[최준창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조합원]
(예전에는 무슨 일 하셨어요?)
“예전에는 연구소 근무했습니다.”
(연구소?)
“네. 네.”
(오늘은 무슨 일 하셨어요?)
“오늘은 옷 보십시오. 페인트 작업했습니다.”
발레오만도에서 20년 넘게 일한 최씨는 이전까지 회사 연구소에서 부품 개발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페이트 작업에서 화장실 청소.
[최준창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조합원]
(화장실 청소 하리라고 생각하셨어요?)
“추호도 안 했죠. 없었죠.”
지난 봄에는 두 달 넘게 사무실 통로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송재석 발레오만도 조합원]
“화장실 갈 때는 이야기하고 가라고 얘기를 해요.”
(네?)
“화장실에 갈 때는 이야기를 하고 가라고 한다고.”
(누구한테요?)
"지도사원한테.“
(지도사원한테?)
“그건 완전히 인간모독인 거죠.”
[최준창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조합원]
“사표 쓰라는 이런 것이죠. 개인한테 모멸감을 줘가지고. 네 스스로 견디지 못해서 사표를 쓰라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앉아 계실 때 심정이 어떠셨어요?)
“말로 표현 못하죠. 그건. 아이고.. 참..”
(마치 국민학교 때... 복도 앞에서)
“말 안 들어가지고 벌 받는 모습..”
(그 모습이잖아요?)
“네. 그렇죠.”
18년 동안 자동차 부품조립라인에 있었던 박진수씨. 그는 하루 종일 삽질을 해야만 했습니다. 삼복더위에 선풍기도 에어컨 시설도 없습니다.
[박진수 발레오만도 조합원]
(그 일할 때 어떠세요. 심정이?)
“상당히.. 많이.. 고정일이 아니고.. 매일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어떤 막노동판에 와서 매일 팔려 가는 그런 심정 있잖아요. 요즘 날씨가 굉장히 더웠었습니다. 그런데 그 더운 날에 방진복 입고 땀 뻘뻘 흘리고... 남들은 더워서 에어컨 바람 쐬며 일하는데 저희들은 방진복 입고 진짜 선풍기 하나 달라고 해도 선풍기 하나 없이 그렇게 일 했었습니다.”
때론 뙤약볕에서 풀을 뽑는 일도 해야 합니다.
[송재석 발레오만도 조합원]
“옛날 테니스장을 개조한 잔디밭이 있어요. 잔디밭에서 피를 뽑아.. 잡풀. 조금씩 해서.. 하루 종일 그걸 뽑아야 되고 솔직히 막말로 저희들에 대한 업무를 시킨 사람들이 한 번씩 감시를 나와서 왜 쉬고 있느냐.. 일 안 하느냐... ”
이렇게 발레오만도 10여 명의 사람들은 모멸감이 느낄 수 있는 작업을 1년 넘게 해왔습니다. 심지어 지피지기팀에 속한 이들 직원들은 매일 업무일지를 작성해 회사에 제출해야 했습니다. 아침 출근부터 퇴근까지 모든 행동은 이른바 지도사원들에 의해 통제를 받아야 했고 모든 행동은 사측에 의해 일지 형태로 기록됐습니다.
[박진수 발레오만도 노조원]
“목 수술을 했었는데.. 하루 종일 삽질을 하고 하면 상당히 통증이 오고. 집에 가면 며칠씩 끙끙 앓는데 그래서 힘이 들어서 이런 삽질을 하니까 목이나 어깨가 많이 아프다. 그런 업무 소감을 적었었거든요. 그런 소감을 적으니까 팀장이 볼 것 아닙니까. 체크를 하면서 이런 것 적지 말아라. 이런 식으로 항상 자기들이 필요한 내용은 넘어 가더라도 그런 거는 적지 말아라.”
심지어 민주 발레오만도 노조를 만들려는 직원들에게는 용역들이 감시하듯 따라붙습니다.
발레오만도는 2010년 직장폐쇄 이후 모든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화랑대 교육입니다. 문제는 교육 중에 오리걸음, PT체조, 이른바 한강 철교 등이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송재석 발레오만도 노조원]
“부사장이 팀원 한 명 한명 마다 질문을 던져요. 질문을 던져서 만약에 회사의 5대 정책이라고 하면 저기 4명, 5명이죠. 짧게 짧게 짧게 저분들이 50이 넘은 분들이에요.”
(쉰이 넘으신 분들?)
“네. 그분들한테 읽기 외우기 시켜서 5대 정책을 뭐 뭐 뭐 뭐 다섯 명 팀원이 쭉쭉쭉쭉 다 맞아야 통과 벌칙이 없는 거예요.”
[정연재 발레오만도 노조원]
“대부분의 교육 차수에 보면 부서장들과 노무팀 인원을 적절하게 배치한다 해서 그 교육에 대한 부분들을 감시하는 체계. 교육 속에 불평, 불만을 제기를 하게 되면 그 친구는 나중에 닷 다른 팀으로 발령을 받는 이런 부분들이 있다 보니까 대부분 불합리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회사의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거죠.”
직원들에게 이런 일을 시켜도 되는 것일까. 발레오만도 사장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강기봉 발레오만도 사장]
“네. 지피지기 팀은 있습니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양한 일이 기존의 업무 계약과 관련 있는 일을 하신다는 거죠?)
“업무 계약이 뭔지는 아세요?”
(아니요. 그래서 제가 여쭤보는 거죠.)
“업무 계약이 없죠. 어떤 일이든 회사에 와서 자기 팀장이든 자기 부서든 자기 조직이 가고자 하는 방향의 일을 하는 게 전부 다 월급쟁이의 역할이잖아요?”
[신인수 변호사]
“분명히 사용자는 근로자를 고용하면 근로자에게 적절하고 안전한 작업환경을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전하고 적절한 근로환경을 제공하기는커녕 근로자에게 인간적 모멸감을 주는 행위들만 강요한다는 점에서 이건 근로계약 위반인 동시에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따라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발레오만도의 금속노조 조합원들. 그들에게 노동의 기본권은 보장되고 있는 것인가.
[박진수 발레오만도 노조원]
“저도 가족이 있고 먹고 살아야 하는데 저 한 사람 때문에 여섯 명의 생계가 저한테 걸려 있거든요. 버는 사람은 저 혼자고, 어쩔 수 없이 힘들어도 참고 일은 하고 있는데 가진 게 있다면 모르겠지만 조그마한 서민 아파트 살면서 뭐로 먹고 살겠습니까. 먹고 살려고 다닙니다.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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