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 급여 154억 원 줄줄 샜다
2019년 05월 03일 08시 01분
<편집자 주>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 사회. 연간 5.4조 원 이상의 공적 재원을 투입하지만, 정작 수혜자인 노인들은 손사래치는 사회복지시설이 있다. 전국 5,000여 개, 수용 인원 20만 명에 이르는 노인요양원 얘기다. 고령사회를 맞은 노인요양원 현장의 풍경은 황량하다. 장기요양 보험제도 시행 이후 시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지만, 서비스의 질은 여전히 '격리와 통제' 수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과 감시의 사각지대에서는 노인을 돈벌이 대상으로 삼는 부정과 비리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노인요양원의 실태를 점검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노인들의 삶과 인권을 위협하는 우리 사회의 제도적·구조적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해나갈 예정이다. ① 요양원에서 사라진 노인들 ② 700개의 알약...산송장으로 돌아온 엄마 ③ 요양원 비리, 유치원보다 심하다 -장기요양 급여 154억 원 줄줄 샜다 -전국 1등 요양왕국의 비밀 -요양원은 적발되지 않는다 |
전국 최대 규모의 요양 시설에서 억대 횡령·배임 사건이 발생했다. 시설 대표가 사법처리까지 됐지만 감독 당국은 관련 사실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고 행정처분은 없었다. 또 이 시설은 한 해 동안 지급된 장기요양보험 급여 60억 원 중 3분의 1 이상을 금융부채 상환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막대한 장기요양보험 급여가 결국 개인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셈이지만 현행 규정으로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B 요양원은 법인 매출 기준 전국 최대 규모의 요양 시설이다. 자산 규모 139억 원, 연 매출 78억 원, 직원 수 200여 명, 입소정원은 300여 명이다. 원주 도심에 위치한 지상 8층, 지상 6층 규모의 건물도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 이 시설을 운영하는 법인에 지급된 장기요양보험 급여 총액은 60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9월 선고된 춘천지법 원주지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2013년부터 4년 동안 이 시설 이사장 안 모 씨는 시설 운영 법인의 돈 4억 원을 사적으로 사용했다. 법인 명의로 구입한 5,900만 원 상당의 메르세데스 벤츠 C클래스와 1,500만 원대 아반떼를 아들과 딸에 제공했다. 가족이 살 아파트를 법인 자금 2억 6천만 원을 들여 구입했다. 시설에 근무하지 않는 딸에게 급여를 지급한다는 명목으로 총 33차례에 걸쳐 6,000만 원을 빼돌렸다. 이 돈은 안 씨 본인과 딸의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다.
B 요양원은 2008년 입소정원 9명 규모의 소형 시설에서 시작해 불과 10년 만에 전국 최대 규모의 시설로 성장했다. 이 같은 빠른 성장의 이면에는 제도의 허점이 있었다. 이 시설 운영 법인이 공시한 재무회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 시설의 금융 부채는 106억 원이 넘었다. 건물 신축과 운전 자금 확보를 위한 대출이었다.
상환에 투입되는 재정은 연 20억 원이 넘는다. 지난해 15억 원가량이 원금 상환, 6억 원가량이 이자 상환에 들어갔다. 이 금액을 충당하는 것은 입소자 가족이 내는 본인 부담금과 장기요양보험 급여다. 이 시설이 한해 지급받는 장기요양보험 급여 60억 원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법인의 부채 상환에 쓰이고 있는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상환이 완료되면 법인은 부채가 없는 건물을 온전하게 소유하게 된다. 상당액의 장기요양보험급여가 결국 법인의 이윤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시설 운영 목적의 원금 상환금은 상한 없이 회계 처리할 수 있도록 열어 놓은 현행 재무·회계 규칙을 악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시설 운영을 위한 대출금에 한해 필수적인 지출 이외의 급여에서 원금 상환금을 지출할 수 있게 해놓고 있다며, 문제가 확인되면 상한 설정 등의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B요양원 법인 이사장 안 씨는 업무상 횡령, 업무상 배임 혐의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8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선고 이후에도 안 씨는 문제 없이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횡령·배임으로 법인에 막대한 손해를 입혀도 이사장 안 씨에 책임을 물을 사람은 없다. 이 법인의 이사, 주주는 안 씨의 직계가족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감독 당국의 행정처분도 없었다. 원주시청 관계자는 취재진이 B 요양원의 횡령·배임 사건에 대한 처분 결과를 문의하자 해당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답했다. 해당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전달받은 사항이 없다며, 법인 회계 상 발생한 불법 행위는 감독 과정에서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관리공단 관계자 역시 공단은 부당 청구에 대해서만 관여할 뿐 시설의 형사 범죄는 소관이 아니라고 말했다.
취재진은 B 요양원 측에 취재 내용을 밝히고 수차례 해명을 요청했으나 B 요양원 측은 답변을 거절했다.
취재 오대양, 김새봄
촬영 이상찬, 신영철, 정형민
편집 김은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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