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림파괴는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이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 주관으로 전 세계 39개 언론사, 140여 명의 언론인들과 함께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삼림파괴 문제를 취재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수개월간 진행한 국제협업 프로젝트 ‘삼림파괴 주식회사(Deforestation Inc.)’의 결과물을 세계 각국 언론사와 함께 차례로 보도한다. -편집자 주
우라니라에서 사용되는 이른바 바이오연료는 대부분 동남아시아에서 들어온다. 그 중 하나가 팜유와 팜 부산물이다. 주로 인도네시아산이다. 국내에서 바이오중유로 제조돼 발전소로 간다. 공급망을 역으로 따라가면 '발전공기업 재생에너지―바이오중유―인도네시아 팜유―팜 플랜테이션 삼림파괴·인권침해'로 연결된다.
한국의 바이오연료와 동남아시아 환경 훼손을 잇는 또 하나의 고리는 바로 '목재 펠릿'이다. 목재 펠릿은 나무를 분쇄·압축해 만든 목질계 연료다. 국내 일부 발전소에서는 석탄이나 석유 대신 이 목재 펠릿을 연소해 전기를 생산한다. 목재 펠릿은 일단 화석연료가 아닌데다, 목재는 나무를 심으면 계속 보급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재생에너지 중 하나로 분류한다.
목재 펠릿은 한국에서 태양광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재생에너지다. 2012년 에너지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한 RPS 제도가 시행되면서, 국내 발전공기업들도 신재생에너지 공급 비율을 높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종류의 신재생에너지 중에서도 발전 설비 및 기술 개발에 큰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목재 펠릿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목재 펠릿은 한국 바이오에너지 총 생산량의 1/3가량을 차지할 만큼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큰 역할을 한다.
목재 펠릿 전소 발전소
발전사 별로 투입한 수입산 ·국내산 목재펠릿의 양(2019~2022)
발전공기업 중에는 목재 펠릿만으로 전력을 생산하는(전소) 발전소를 가동하는 곳도 있다. 한국남동발전이다. 남동발전은 다른 발전소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목재펠릿을 사용했다. 국내 최초이자 최대 용량의 목재 펠릿 발전소인 영동에코발전본부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전공기업 5사(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중부발전)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납품받아 투입한 목재펠릿의 양은 위 그래프와 같다.
영동에코발전본부는 원래 석탄화력발전소였으나, 2017년부터 석탄 발전을 중단하고 목재 펠릿만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방식으로 전환했다.
남동발전은 이 발전소에 ‘에코’라는 이름을 붙였다. 목재 펠릿이 바이오연료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 목재 펠릿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친환경적이라는 의미에서다. 남동발전은 ‘미래 에너지산업이 가야할 방향을 선도’하고 있다고 자사를 홍보한다.
그런데 남동발전을 정말 ‘친환경적’인 발전소라고 할 수 있을까?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목재 펠릿
목재 펠릿 생산 과정에는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목재 펠릿은 가지 등 목재로서 상품 가치가 없는 각종 부산물을 사용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멀쩡한 원목도 펠릿 원료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불필요한 삼림 벌채 우려가 나온다. (관련 기사 : [삼림파괴 주식회사①]멀쩡한 나무로 목재 펠릿...친환경의 비밀) 목재펠릿 공장은 분진 공해 등도 유발한다.
수입산 목재펠릿은 현지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다. 2021년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서 사용하는 목재펠릿의 78.5%는 수입산이다.
뉴스타파, 목재펠릿 공급망 추적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동남아시아에서 들어오는 목재펠릿의 공급망을 추적했다. 목재펠릿 공급망은 팜유와 팜 부산물처럼 복잡하지는 않다. 베트남 등에서 생산한 펠릿을 한국 기업이 수입해서 이를 발전사 등에 납품하는 구조다.
환경을 파괴한 베트남 업체의 목재펠릿이 수입업체를 통해 발전공기업에 공급되는 과정
공급망 조사 대상 국가는 베트남으로 설정했다. 베트남은 세계 2위 목재펠릿 수출국이다. 한국에 들어오는 목재펠릿의 절반 이상이 베트남산이다.
취재진은 국회 산자위 소속 국회의원실을 통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발전공기업 5사(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중부발전)의 베트남산 목재펠릿 납품 내역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베트남 현지 목재펠릿 수출 기업의 무역 데이터도 환경·기후 전문 기관인 ‘기후솔루션’을 통해 확보했다. 이 두 데이터를 연동해 베트남 기업과 한국 발전 공기업 간의 공급망을 그렸다. 기간은 2019년~2022년까지 4년이다.
Step 1: 발전공기업의 공급망 확인
먼저 한국 발전공기업 5사가 수입산 목재펠릿을 어디에서 납품받는지 확인해봤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발전5사가 공급받은 수입산 목재펠릿은 모두 288만 톤가량이다.
발전5사는 해외 목재펠릿 생산업체와 직접 거래하지 않고, MK SOLAR, 셀마크한국, 삼성물산 등 수입업체를 통해 펠릿을 납품받았다.
발전5사에 수입산 목재펠릿을 납품한 상위 10개 기업(2019~2022년)
Step 2 : 수입 업체의 공급망 확인
이들 업체는 어떤 현지 기업에서 목재펠릿을 수입해왔을까? 베트남 목재펠릿 무역 데이터에서 한국에 펠릿을 수출하는 업체를 추렸다. 모두 34개 베트남 업체가 나왔다. 이 가운데 삼림파괴와 환경오염 전력이 있는 업체가 있는지 조사했다. 베트남 현지 언론 보도를 검색하고, 현지 리서처와 프리랜서 기자의 도움을 받았다.
베트남 문제기업 '안비엣팟'과 MJ베트남 아그리컬쳐에서 목재펠릿을 수입하는 국내 업체들
먼저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 위치한 안비엣팟(An Viet Phat)이 나왔다. 이 업체는 삼성물산, 지바이오텍 등에 목재 펠릿을 납품한다.
이 업체는 2021년 산업폐기물을 투기하다가 베트남 당국에 적발됐다. 국제산림관리협회(FSC) 인증을 받았다는 위조 문서를 만들어 대량으로 목재 펠릿을 판매해온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조사 결과, 안비엣팟이 목재 펠릿 제조를 위해 공급받은 목재는 FSC 인증을 받은 적이 없었다. FSC는 2022년 엔비엣팔의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 업체가 3년 5개월간 FSC 인증을 받지 못하도록 ‘차단'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FSC는 지속가능하고 환경친화적인 방식으로 목재를 수급해 제품을 생산했음을 인증하는 글로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EU를 비롯해 세계 각국은 FSC 인증을 공공 목재 조달정책의 기준 중 하나로 삼고 있다. FSC 인증이 없는 목재 펠릿은 수입하지 않는 국가도 있다.
그런데 안비엣팟은 2019년부터 2022년 9월까지 모두 17개 한국 업체에 목재 펠릿을 수출했다. 2021년에 FSC 인증이 처음 박탈된 이후로도 한국 기업들은 안비엣팟에서 펠릿을 계속 수입했다.
안비엣팟 펠릿 수입량을 기준으로 하면 신흥글로벌이 가장 많고 이어 삼성물산, GS글로벌, 지바이오텍, SGC, OCI, 준글로벌 순이다. 이 가운데 해당 기간에 발전공기업 5개사에 수입산 목재 펠릿을 공급한 업체는 삼성물산, 지바이오텍, 준글로벌 등 10곳이다. 나머지 기업은 민간발전소 등과 거래하거나 자체 발전소에서 수입 펠릿을 사용했다.
삼성물산은 같은 기간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중부발전 등 4개 발전공기업에 목재 펠릿 9.5만톤을 공급했다. 지바이오텍과 준글로벌은 발전공기업들에 각각 22.9만톤과 14.6만톤의 수입산 목재펠릿을 납품했다.
MJ 베트남아그리컬쳐(MJ Agri Vina)는 목포도시가스가 베트남에 세운 자회사다. 목포도시가스는 이 베트남 자회사가 생산한 목재 펠릿 대부분을 국내로 들여와 발전5사에 납품했다. 목포도시가스는 전남 서부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LPG 충전업, 목재 펠릿 생산·유통업, 태양광 발전사업도 한다. 그런데 베트남 자회사인 MJ 베트남아그리컬쳐는 2020년 말, 2021년 초 현지 환경당국의 실사 때 기준치의 1.3배가 넘는 분진을 배출하다 적발됐다.
환경 문제를 일으킨 베트남 업체에서 목재펠릿을 수입한 업체들이 국내 발전공기업 5사에도 수입산 목재펠릿을 납품한다.
안비엣팟과 MJ 베트남아그리컬쳐의 무역 데이터와 발전5사의 납품 데이터를 결합하면 위와 같이 베트남산 목재 펠릿 공급망이 나온다. 베트남 문제기업에서 펠릿을 수입한 업체 가운데 발전공기업에 수입산 목재 펠릿을 납품한 곳은 목포도시가스, 지바이오텍, 준글로벌, 삼성물산, 대덕기연 등 11업체다.
이 11개 수입업체가 목재 펠릿을 안비엣팟과 MJ 베트남아그리컬쳐에서만 구입하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의 다른 기업들과 말레이시아 등 다른 국가에서도 목재 펠릿을 수입한다. 수입한 펠릿을 발전5사에만 납품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 그래프에서 수입업체가 문제 기업에서 수입한 펠릿의 양과 발전5사에 납품하는 펠릿의 양에는 차이가 있다. (발전5사가 목재 펠릿을 납품받은 기업 가운데 이 11개 업체에 해당되지 않는 업체는 ‘기타'로 표시했다.)
FSC인증 박탈된 회사의 목재 펠릿이 친환경?
다시 한국남동발전으로 돌아가보자. 한국남동발전에 수입산 목재 펠릿을 공급한 업체 중에서 안비엣팟과 거래한 업체들은 목포도시가스, 지바이오텍, 준글로벌, 삼성물산 등 모두 8곳이다. 이 기업들이 2019년에서 2022년까지 남동발전에 납품한 수입산 목재 펠릿은 약 77.6만톤으로, 남동발전이 납품받은 전체 수입산 목재 펠릿의 37%를 차지한다.
그런데 남동발전 등 국내 발전사들은 수입산 펠릿 생산 과정에서의 환경오염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다. 남동발전은 "안비엣팟은 지난 22년 10월에 글로벌 인증기관인 PEFC(Program the Endorsement of Forest Certification)로부터 인증을 받았으며, 이를 근거로 관세청에서 정상적인 통관 절차를 거쳤기에 수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합법적인 절차로 목재펠릿을 납품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2021년 보고서에서 PEFC 인증에 대해 IFL(Intact Forest Landscape, 숲을 온전하게 보전하는지 여부) 등 삼림 보호의 여러 영역에서 취약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ICIJ 국제협업 프로젝트에서도 PEFC와 같은 인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제기됐다. ‘기후솔루션’의 송한새 연구원은 "PEFC 인증을 받았으니까 FSC 뺏겨도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겠지만, 사실 그 순간에 이미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려는 날아갔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남동발전은 뉴스타파의 질의 전까지 안비엣팟이 2021년 베트남 현지 당국으로부터 환경법 위반으로 벌금 처분을 받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허술한 목재 공급망 검증제도
중부발전, 서부발전 등 다른 발전사들은 “합법목재 교역촉진제도를 통해 납품받은 제품이 불법적으로 벌채된 목재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고 답했다. 이 제도 역시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삼림파괴나 환경오염 문제를 방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합법목재 교역촉진제도’는 ‘벌채’ 단계의 합법성만 확인하는 제도다. 즉 벌채만 합법적으로 했다면 목재를 가공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일으켰는지 여부는 고려하지 않고 국내로 들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안비엣팟처럼 베트남 현지에서 환경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어도 ‘불법’ 벌채는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에 목재 펠릿을 수출하는 일이 가능했다.
‘합법목재 교역촉진제도’에 따르면 국제 친환경 인증 증명서와 현지 정부에서 발급한 합법 벌채 증명서 중 하나만 제출해도 합법성이 인정된다. 이 때문에 현지의 합법 벌채 증명서만 있으면 목재 펠릿 수입이 허용된다. 문제는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국가에는 아직 공급망 관리 시스템이 거의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무를 베어 펠릿을 만드는 과정에서 환경이 훼손되거나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나무를 합법적으로 벌채했다는 현지 증명서가 발급될 가능성이 있다.
베트남 문제기업들에서 목재펠릿을 수입하여 발전공기업에 납품한 업체들도 발전5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을 밝혔다.
삼성물산은 안비엣팟이 “국제산림 인증인 PEFC 인증을 유효하게 보유하고 있으며, 당사는 국내 제반 법적 기준과 주요 수요처인 발전사의 요구 품질 조건에 부합하여 목재펠릿 수입을 진행”했다고 답했다.
준글로벌은 “우리 정부가 인정해준 PEFC 인증서를 보유하고 있었다"며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거래를 했을 뿐”이라 밝혔다. 이어 “안비엣팟의 현지 환경법위반이라든가 하는 문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대덕기연도 안비엣팟이 “PEFC 인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수요처인 발전사의 승인을 받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다"고 답했다. OCI 역시 “안비엣팟은 FSC와 마찬가지로 환경 인증인 ‘PEFC 인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해당 서류로 수입목재의 합법적인 수입을 진행했다"고 답했다.
2011년부터 MJ 베트남아그리컬쳐를 운영해왔던 목포도시가스는 “(베트남 당국의) 벌금 조치 후 습식 분진 방지장치, 창고 주변 가림막 설치 등으로 관계 기관의 설치 검사를 받고 운영했으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해당 공장 철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수입산 목재 펠릿을 납품하는 또 다른 업체인 지바이오텍과 대덕기연은 뉴스타파 질의에 답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