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공장의 영업비밀② 표절, 조작, 부실 논문도 '패스'...KCI등재지의 민낯

2021년 07월 01일 20시 27분

학술 단체와 조작.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만났다. 학자와 연구자들의 집단에서 서류를 조작하는 행위가 벌어졌다. 학회 교수들이 국가기관에 제출하는 학술지 평가 서류를 허위로 꾸며 제출했다. 다양한 심사위원이 논문 심사를 하는 것처럼, 엄격하게 심사해서 상당수 논문은 탈락시키는 것처럼 평가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을 속였다. 그렇게 해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국가가 인정하는 학술지, KCI(한국학술지인용색인)에 등재되는 학술지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학술지 논문의 내용도 부실했다. 조작된 데이터와 표절 논문이 수두룩했다. 그런 논문을 쓴 사람들은 대다수가 현직 교수였고 또 교수가 됐다. 비법은 전수됐다. 논문이 급한 후배 연구자들도 이 학회를 이용했다. 후배 연구자들은 이 학회를 두고 "논문이 급할 때 내는 곳"이라고 했다. 필요할 때 원하는 양만큼 논문을 낼 수 있는 곳. 똑같은 물건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처럼 논문을 찍어냈던 어느 학술단체의 영업비밀을 두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편집자주
①어느 학술단체의 '가짜 심사'와 '도둑 논문'
②조작, 표절, 부실 논문도 '패스'...KCI 등재지의 민낯
뉴스타파는 지난 달 23일, 경기대 관광문화대학 소속 교수들이 주축인 학술단체 두 곳이 논문 게재율을 조작하고 심사위원들의 명의를 도용하는 등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지 평가 서류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했다는 의혹을 폭로했다. <관련기사 :논문공장의 영업비밀① 어느 학술단체의 '가짜 심사'와 '도둑 논문'> 그런데 이들 학회에 게재된 논문의 내용에서도 표절과 데이터 조작 등 연구부정 행위가 의심되는 사례가 상당수 발견됐다. 특히 연구재단 학술지 평가 서류 조작의 핵심인물로 지목되는 경기대 교수 두 명은 학회 재임 기간 게재한 논문 실적으로 지난해 경기대 전임교원으로 임용, 학회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기대 교수 중심 학회 두 곳서 수십 건 연구 부정 의심 논문 발견

뉴스타파가 보도한 학술지 평가 서류 조작 의혹에 대해 관광경영학회 이사장인 이 모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연구재단 학술지 평가 과정에서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몰라도 논문 심사만큼은 엄격하게 한다”고 단언했다. 학술지 평가 서류 조작 의혹과 무관하게, 학회에서 발행한 논문의 질은 우수하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취재진은 관광경영학회와 한국관광산업학회가 연구재단에 제출한 2018년 논문투고대장에서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적혀 있는 340편 가량의 논문을 검증했다. 관광경영학회 290편, 한국관광산업학회 51편 등이다. 1차로 논문표절검사시스템을 통해 표절률(출처 표기 없이 6어절 이상 반복되는 경우)을 검사했다. 표절률 기준은 학계에서 통용되는 15%를 기준으로 했다. 이는 관광 분야의 다른 학회보다 더 관대한 기준이다. 한국관광학회는 표절률 5%, 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는 표절률 10% 이하의 논문만 받고 있다. 논문의 세부적인 연구 윤리 부분은 이인재 대학연구윤리협의회 사무총장과 익명의 관광학 분야 원로교수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았다.
분석 결과 두 학회에서 논문 심사를 통과한 340여 편의 논문 중 표절률이 15%를 넘은 논문은 총 44편이었다. 그 가운데 표절률이 50% 이상인 경우도 11편이나 됐고 40% 이상이 6편, 30%이상이 12편이었다. 이렇게 표절률이 높은 논문에선 연구부정행위로 의심되는 사례가 상당수 발견됐다. △자신의 이전 저작물을 출처 표기 없이 동일하게 사용한 ‘부당한 중복게재’ 27편 △ 연구자료를 임의로 조작, 변형한 ’데이터 변조’ 11편 △타인의 연구내용을 출처 표기 없이 그대로 활용한 ‘표절’ 3편 △연구내용에 기여한 바가 없음에도 저자로 표기한 ‘부당한 저자 표시’ 3편 등이었다. 논문 한 편에 표절과 데이터 조작 등 교육부 연구윤리지침을 위반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가 여러 건 발견됐을 경우, 대표적인 사례 1건만 집계했다.

50%이상 표절 논문, 데이터 조작 논문도 등재 학술지 심사 ‘통과’

2018년 1월 관광경영학회 학술지에 실린 성균관대 현 모 박사와 2016년 관광경영학회 사무처장이었던 서원대 김 모 교수가 쓴 4차 산업혁명과 문화예술산업에 관한 논문. 이 논문은 총 3개의 논문과, 보고서를 베낀 것으로 확인됐다. 논문의 20페이지 중 8페이지 가량은 가톨릭대 맹 모 씨의 석사학위 논문과 경기연구원 김 모 씨의 보고서에서 그대로 가져왔고, 나머지 3페이지 가량도 한국과학창의재단 최 모 씨의 기고글을 베낀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 표절률이 65%나 됐지만 관광경역학회의 논문 심사를 통과했다.
논문의 주저자 현 모 박사에게 표절의 경위를 물었다. 현 씨는 “다른 글을 참고해 논문을 쓰긴 했지만 데이터 분석은 내가 새롭게 한 것”이라며 “표절률은 학회에서 20~30%정도를 요구해 그에 맞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글을 베끼며 출처 표기는 왜 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다.
2018년 1월 관광경영학회 학술지에 실린 성균관대 현 모 박사와 서원대 김 모 교수가 쓴 논문. 이 논문은 총 3개의 논문과 보고서를 베껴 짜깁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광경영학회 학술 이사를 맡고 있는 서원대 신 모 교수가 2018년 7월 관광경영학회에 게재한 논문도 다른 사람의 학위논문을 거의 모두 베낀 것으로 확인됐다. 표절률 59%. 대전대 이 모 씨의 석사학위논문과 서론부터 이론적 배경, 자료수집, 인구통계와 결론까지 동일했다.
특이한 점은 논문에 사용된 설문지 숫자, 설문지 구성, 응답자 숫자가 모두 똑같은데 설문지역과 설문연도만 다르게 표기돼 있다는 것이다. 설문장소가 대전지역에서 충청지역으로, 설문연도가 2017년에서 2018년으로 바뀌어있었다. 즉 다른 시기에 다른 곳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도출된 데이터는 똑같았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의 논문을 베끼면서 마치 새로운 내용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임의로 데이터 날짜를 조작한 게 아닌지 의심된다. 논문 저자인 신 교수의 입장을 듣기 학교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신 교수는 답변을 거부했다.
관광경영학회 학술이사인 서원대 신 모 교수는 대전대 이 모 씨의 학위논문을 베끼면서 통계자료는 그대로 쓰고 설문연도만 최근으로 바꾼 것으로 의심된다.
현재 경기대 관광문화대학장인 이 모 교수(관광경영학회 10대 회장)가 경기대 제자인 윤 모 씨(1저자), 심 모 씨(2저자)와 함께 쓴 논문 <모바일 관광목적지 관광정보에 신뢰성이 관광목적지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에서도 데이터 조작이 의심되는 사례가 발견됐다.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출신인 윤 모 씨의 2013년 석사학위 논문을 요약해 2018년도 관광경영학회 학술지에 실은 것인데, 표절률이 53%에 달했다.
두 개 논문은 22페이지 중 14페이지 가량 내용이 똑같았고 설문장소, 설문시기, 인구학적 통계의 숫자도 동일했다. 그런데 설문연도만 2013년에서 2017년으로 바뀌어 있었다. 교육부 '연구윤리확보를 위한 지침'(2015년)에 따르면 연구 재료 등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연구 원 자료를 임의로 변형, 삭제함으로써 연구결과를 왜곡하는 행위는 ‘데이터 변조’에 해당하는 연구부정 행위다.
사회과학 분야 학술지 편집위원장을 지낸 한 교수는 “사회과학분야에선 최근 데이터가 중요하다. 너무 오래된 데이터는 학술지에서 안 실어주니까 샘플은 그대로 두고 날짜만 바꾼 것으로 보인다”며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 숫자를 조작한 것과 같은 데이터 조작”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대 관광문화대학장을 맡고 있는 이 모 교수가 대학원 제자들과 함께 쓴 논문에서도 데이터 조작이 의심되는 대목이 발견됐다.
또 통상 학위논문을 그대로 요약해서 학술지에 낼 때는 공동저자로 지도교수의 이름을 올린다. 그런데 이 논문에는 2013년 윤 씨 학위 논문의 지도교수였던 윤 모 교수의 이름이 빠지고, 이 모 교수와 심 모 씨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대학연구윤리협의회 사무총장인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학술지 논문하고 학위 논문의 내용이 실질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학위논문을 감수한 지도교수의 이름이 공동저자로 올라가는 게 정당한 저자 표시”라며 “새롭게 이름을 올린 두 사람은 공동저자가 될 만큼의 역할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연구실적을 챙기기 위해 부당하게 이름을 올린 것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린 3명에게 모두 연락해 데이터가 바뀐 이유와 저자 표기가 잘못 표기된 이유를 물었다. 논문의 주저자인 윤 모 씨, 2저자인 심 모 씨 모두 답변을 하지 않았다. 3저자로 이름을 올린 관광문화대학장 이 모 교수에도 논문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이 교수는 “내가 교신저자도 아닌데 왜 자꾸 나에게 질문하느냐, 설문연도는 오기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3년도 데이터를 그대로 사용했다면 논문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웠던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다시 알아 보고 답변을 주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후 다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자신에게 질문하지 말라”던 이 교수는 경기대 홈페이지에 있는 교수 프로필에 해당 논문을 자신의 연구실적으로 올려놨다. 2저자인 심 모 씨는 이 논문을 제출하고 ‘학술지 논문 1편 이상 게재’라는 박사학위 취득 요건을 달성했다. 데이터 조작이 의심되는 논문으로 이 교수는 연구실적을, 심 모 씨는 박사학위라는 이득을 얻은 것이다.
경기대 출신인 한서대 최 모 교수가 2019년 관광산업학회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도 경기대 유 모 씨의 학위논문과 통계내용이 동일한데 설문연도만 2012년에서 2018년으로 바뀌어 있다.
이렇게 데이터는 똑같은데 설문연도만 바뀐 논문은 관광경영학회 8편, 한국관광산업학회 3편 등 2018년도 두 학회 학술지에만 11편이었다. 과연 단순 오기이거나 실수로 볼 수 있을까.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한 교수는 관광경영학회 사무처장 출신인 경기대 최 모 교수로부터 직접 설문 데이터 조작을 요구 받았다고 말했다. 학회가 논문 편수를 늘리기 위해 엉터리 논문을 부추기고 양성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제가 3년 전 통계자료를 이용해 논문을 써서 관광경영학회에 투고했을 때, (학회 사무처장이)데이터 오래 됐다고 이야기하면서 데이터 수집 날짜를 바꾸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바로 답한 게 안 돼요, 그게 바로 데이터 조작 아니냐, 같은 논문인데 어떻게 데이터 날짜를 바꾸냐고 말하고 거절한 적이 있었어요

관광경영학회에 논문을 투고했던 관광학 분야 B 교수

경기대 교수들 논문에서도 연구 부정 행위 위심 사례 30건 가량 발견

그런데 과연 2018년 논문만 이런 걸까. 취재진은 두 학회에서 논문을 가장 많이 쓴 이른바 ‘논문왕’들의 과거 논문도 검증해 봤다. 연구재단이 운영하는 한국학술지인용색인을 통해 지난 10년간 이들 학회에 논문을 가장 많이 투고한 사람들을 검색했다. 1위부터 8위까지 1명을 제외하고 모두 경기대 교수이거나 경기대 출신이었다.
이들의 논문 260여 편을 살펴본 결과, 30편의 논문에서 연구부정 행위나 연구 윤리 위반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 이런 사례는 공교롭게도 모두 관광경영학회 회장을 지냈거나, 현재 임원으로 있는 경기대 교수들의 논문에서 발견됐다.
두 학회 통틀어 논문왕 1위는 현재 관광경영학회 편집위원장이자 관광산업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경기대 최 모 교수. 그는 2019년 연구재단 학술지 평가 당시 논문게재율 조작을 주도한 것으로 의심받는 핵심인물이다. 최 교수는 2012년부터 최근까지 9년간 두 학회 주요임원을 맡으면서 총 55편의 논문을 양쪽 학회에 실었다. 이 자체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학계의 지적이다.
“편집위원장이 재임 시절에 자기 논문을 자기가 편집위원장으로 있는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른 학술지에 게재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언론사에서 편집국장이 하는 일이 기사의 편집 방향을 정하고, 취재윤리를 감독하는 일이듯이, 학술지 편집위원장은 학술지 편집 방향을 정하고, 다른 연구자들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관리 감독할 책임이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편집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엄청난 이득을 보는 거잖아요. 그런 경우에는 이해 충돌을 넘어 '이해 밀착'에 해당하는 경우 같은데요.”

A학술지(우수 등재) 전 편집위원장

‘논문 게재율 조작 의혹’ 학회 편집위원장, 재임기간 55편 논문 게재..."이해충돌"지적

다작왕인 최 교수의 논문에선 주로 자기표절과 중복게재로 의심되는 대목이 발견됐다. 최 교수가 2018년 5월과 12월에 각각 관광경영학회와 한국관광산업학회 학술지에 투고한 비슷한 제목의 논문. 나 모 씨의 학위논문을 요약해서 나 모 씨와 함께 최 교수가 두 개의 학술지에 낸 논문인데, 논문 간의 표절률이 44%에 달했다. 20페이지 중 8페이지 가량이 동일하고, 같은 설문조사와 통계자료를 사용했는데 출처표시는 없었다.
이인재 서울교대 교수는 “학위논문을 요약한 것이라도 44%의 중복되는 내용이 이미 공식적으로 발표된 학술지에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출처를 안 밝히면 표절 또는 중복 게재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아마 정상적으로 심사 프로세스를 거치는 학회에서 심사했다면 자신의 이전 논문과 40%이상 유사한 논문이 후속 논문에서 아무런 제재를 안 받고 통과될 리는 없다”고 말했다.
경기대 관광경영학회 편집위원장 경기대 최 모 교수가 자신이 관여한 두 학회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동일한 내용을 출처 없이 쓰면서 괄호 안의 인용연도만 조금씩 바꾼 것으로 보인다.
최 교수가 연구재단으로부터 5000만원의 연구비를 받고 쓴 논문도 중복게재가 의심된다. 2019년 9월과 11월 각각 관광경영학회와 한국관광산업학회에 게재한 논문인데, 서론과 설문데이터 등 출처 표시 없이 동일한 내용이 6페이지 가량 됐다. 자신의 이전 논문에 썼던 내용을 출처 표시 없이 다시 사용해 연구 업적으로 인정받거나 연구비를 받는 것 역시 교육부 연구윤리지침상 ‘부당한 중복게재’에 해당하는 연구 부정행위다. 이렇게 부당한 중복게재가 의심되는 최 교수의 논문은 총 11편. 최 교수의 논문들을 검토한 관광학 분야 한 원로교수는 “논문 편수를 늘리기 위해 굳이 한 편에 다 담을 수 있는 내용을 쪼개서 학술지에 실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중복게재 많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광경영학회 편집위원장인 경기대 최 모 교수가 연구재단 지원금 5,000만원을 받아 쓴 논문. 최 교수가 관여하고 있는 두 개 학술지에 2개월 간격으로 게재했는데, 두 논문간 동일한 데이터에 출처 표시가 없다.

제자 논문에 교수가 주저자로...논문 가로채기 의혹도

편집위원장 최 교수와 함께 2018년 연구재단 평가서류 조작의 핵심인물로 지목되는 학회 전 사무처장, 또 다른 최 모 교수도 ‘다작왕’ 중 한 명이다. 그는 최근 3년간 이 학회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게재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사무처장을 맡았던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두 학회 학술지에만 16편의 논문을 실었다. 2018년 9월에는 한 달에 3편의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 교수의 논문 중에는 그가 직접 쓰지 않은 것으로 의심되는 논문이 있었다. 최 교수가 2020년 5월 관광경영학회에 투고한 코로나 19와 관련된 논문이 그것이다. 메르스 발생 시기를 2015년이 아닌 2005년으로 표기했고, 미국의 코로나19 현황을 설명한다면서 아메리카 대륙의 전체 통계를 표로 붙여 놨다. 어딘가 급하게 쓴 티가 나는 이 논문의 결론 부분은 더 이상했다. 아래는 해당 논문의 결론 부분이다.
COVID-19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중략) 일용할 양식은 근처 백화점에서 조달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모바일로 주문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이 문 앞에 도착한 상자를 문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면 된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 1월 자동차에 넣었던 휘발유는 아직 그대로이고, 동네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내린 것도 모르고 지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말이긴 한데 어딘가 어색한 문장. 알고 보니 중국 유학생이 주로 쓴 논문인데 최 교수가 제자의 동의도 없이 스스로를 주저자로 올린 것이었다. 실제 이 논문을 쓴 중국 유학생은 자신도 해당 논문이 학술지에 실려 의아했다고 털어놨다.
최00 교수님이 레포트를 논문으로 한 번 제출해보라고 해서 급히 써서 학회에 제출하긴 했는데요. 글이 어색한 부분도 있고 글 내용하고 표 내용이 안 맞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이 게재가 된 거예요. 그때는 저도 이 논문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의아했죠.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유학생 C씨
뉴스타파가 입수한 관광경영학회 전 관계자의 대화내용을 보면, 이런 논문들이 어떻게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을지 짐작이 된다.
(학회 전 사무처장이)논문을 심사할 때 항상 그런 것들을 학회 계정에서 관리하니까 자기 학회와 친분이 있는 이름들로 (심사자) 3명을 임의로 지정을 하는 거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본인이 남의 계정 1개 이상 (도용)해서 할 때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요.

관광경영학회 전 관계자
학회 사무처장을 지낸 교수가 친한 교수들에게 논문 심사를 부탁하거나, 심사위원의 명의를 도용하는 수법으로 자신의 논문을 봐주기 심사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확인을 위해 2018년 논문투고대장에서 학회 편집위원장과 사무처장을 지낸 두 명의 최 교수가 투고한 논문의 심사자를 분석해 봤다.
그 결과 편집위원장인 최 교수가 2018년 게재한 6편의 논문 중 2편에 명의도용이 의심되는 교수 2명이 심사자로 들어가 있었다. 학회 전 사무처장인 또 다른 최 교수의 논문 8편은 모두 편집위원장이나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선배 교수 등 친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대부분 심사를 한 것으로 나온다. 두 교수 모두 공정한 심사 없이 엉터리로 논문을 게재해 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취재진은 학회 편집위원장과 전 사무처장, 두 명의 최 교수에게 수차례 연락해 여러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질의서를 보내고 학교로도 찾아갔지만 답변은 끝내 들을 수 없었다. 
관광경영학회 역대 회장과 임원을 지낸 경기대 관광대학 소속 교수들의 논문에서도 표절, 데이터조작, 부당한 저자표시 등 교육부 연구윤리지침을 위반한 사례가 여러 건 발견됐다. 특히 “관광경영학회가 논문 심사는 엄격하게 한다”고 단언했던 관광경영학회 이사장 이 모 경기대 교수의 논문에선 표절과 데이터 조작 등 5건의 연구부정 행위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
취재진은 이 교수에게 해당 논문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이 교수는 “대부분 자신이 쓴 논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주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논문”이라며 납득하기 힘든 답변을 내놨다.
(교수님이 주저자로 돼 있는 논문이 제자 논문을 40%가까이 표절한 것으로 나오는데요)제가 그 논문을 안 썼고 내용도 잘 모릅니다. 홍 기자님 보시기에 제가 주저자로 돼 있으니까 그게 아무리 불과 5~6년밖에 안 된 논문인데 어떻게 그게 기억이 안 나냐고 하는데 저는 그 논문을 정말 몰라요.”

이00 /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교수(관광경영학회 이사장)

자신들이 관여한 학회 논문 실적으로 교수 임용에도 성공...“부당 이득” 지적

이렇게 연구윤리를 위반한 것으로 의심되는 논문을 쓴 교수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관광학 분야의 등재학술지가 16종이나 되는데, 연구 실적 대부분을 자신이 관여하고 있는 학회에 낸 논문으로 쌓았다는 것이다. 두 학회의 논문 게재율 조작과 ‘가짜’심사를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두 사람, 관광경영학회 사무처장과 편집위원장을 지낸 두 명의 최 교수는 이들 학회에 게재한 논문 실적을 앞세워 지난해 3월과 9월 각각 경기대 교수로 임용됐다.
경기대는 교수 공채 시 응모자들로부터 최근 3년간의 연구실적을 제출 받는다. 두 명의 최 교수가 제출한 3년간의 실적(2018~2020년)은 1편을 제외하고 모두 관광경영학회, 한국관광산업학회에 게재한 논문이었다. 이를 두고 관광학 분야의 복수의 교수들은 “자신의 이득을 얻는데 학회를 이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두 개 학회지에 (논문이) 집중적으로 실렸다는 것은 공정의 문제고 정의의 문제거든요. 무슨 이야기냐면, 다른 학회지에 실었다면 통과되기가 상당히 힘든 논문들을 본인이 편집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실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에요. 공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 논문을 싣는 데 학회를 이용했다는 얘기에요. 교수 임용과정에서 제출한 논문에 문제가 없는지 학교 측의 검증이 필요합니다

관광학 분야 원로교수 C씨
이렇게 아는 교수들끼리 만든 등재 학술지 하나만 있으면 연구실적도 쉽게 쌓을 수 있고, 연구비도 받을 수 있고, 교수도 될 수 있다. 대학은 논문의 내용까지 평가하진 않는다. 연구재단 등재후보 학술지부터 국제 논문 색인에 등재된 학술지까지 등급에 따라 연구실적 점수를 매길 뿐이다. 취재진은 경기대 측에 연구부정행위가 의심되는 논문을 보내고 해당 논문들이 교수 승진이나 임용, 대학원 학위 취득, 연구비 수령에 활용됐는지 물었다.
경기대 측은 “뉴스타파가 제보한 교수들의 논문 중 연구비를 받은 논문은 3편 정도였으며 정확한 액수는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해당 논문이 박사 학위 취득이나 교수 임용에 활용됐는지 여부는 일일이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교는 연구실적을 받을 때, 논문의 내용까지 따지진 않고 등재지에 게재됐는지 여부만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학교가 논문을 일일이 다 검증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연구재단이 평가를 거쳐 선정한 등재 학술지나 등재 후보 학술지 등 KCI(한국학술지인용색인)급 이상의 논문만 실적으로 인정하는 거예요. 연구재단의 학술지 평가기준을 믿는 거죠. 교육부도 학술지를 축소해서 정말 연구하는 학술지를 몇 개만 인정하던지 해야지 이렇게 수백 개를 만들어놨으니...연구성과를 평가하는 대학 입장에서도 참 답답한 거죠.

경기대 관계자
더 심각한 문제는 등재지를 악용한 교수들의 관행이 그대로 후배 연구자인 대학원생들에게 대물림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수들은 연구재단의 평가 서류를 조작하는 방법을 제자인 대학원생에게 가르쳤다.
“학회 시스템 자체가 예전부터 그대로 물려받아서 그런 걸로 알고 있거든요. 심사 날짜를 임의로 변경하는 것도 옛날부터 그렇게 해온 걸로 교육 받았고요.”

관광경영학회 전 관계자
관광경영학회에 문제가 많다는 건 경기대 대학원생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사학위 취득 요건인 ‘학술지 논문 1편’을 쉽게 만들기 위해 이 학회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D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대학원에는 관광경영학회에만 논문을 게재해야한다는 졸업조건이 있는 것처럼 다들 그 곳에 논문을 낸다”고 말했다.
학생들 사이에선 관광경영학회는 이렇게 소문이 나 있어요. '쓰면 나오는 곳, 논문이 급할 때 빨리 쓸 수 있는 곳'이요. 엉터리 논문도 많이 봤어요. 보고서와 다를 바 없는 논문, 데이터 날짜가 이상한 논문도 봤고요. 다들 알고 있는 문제인데 말을 못해요. 일단 박사학위 취득 조건이 (학술지) 소논문을 제출하는 것이다보니, 쉽게 쉽게 졸업을 하려면 그 학회가 필요한 거죠. 논문을 내면서 교수님 이름도 하나씩 적어드려야 심사 통과가 쉽다는 소문도 있어요. 교수님들이 직접 그 학회에 논문을 내라고 지시하기도 해요. 굳이 그 말을 거역해서 찍힐 필요는 없는 거죠.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대학원 졸업생 D씨
교수들의 손에 학위 취득 여부가 달린 대학원생들은 논문을 내는 과정에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항의할 수 없다.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경기대의 한 중국인 대학원생은 자신이 쓴 논문을 교수에게 빼앗겼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교수님의 제안을 받고 논문을 관광경영학회에 냈었어요. 추후에 논문이 게재된 걸 봤는데, 제가 주저자가 아닌 3저자가 되어 있었어요. 제가 쓴 내용이 가장 많았는데 저는 2저자도 아닌 3저자로 되어 있고 교수님이 주저자로 돼 있더라고요. 참 억울했는데 한편으로는 한국은 원래 이런 시스템인가 싶기도 했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건 부당한 거래요. 하지만 교수님께 따질 수 없었죠. 졸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참았어요.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중국인 대학원생 F 씨
뉴스타파가 이번에 취재한 학회들은 연구재단이 운영하는 등재학술지의 민낯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에 불과하다.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관광학계 일부 교수들은 “다른 학회들도 비슷하게 운영하는 곳이 많을 것이다. 관행처럼 해온 일들인데 관광 분야만 지적하면 불편하다”며 “똑같은 방식으로 취재해 보면 대한민국 학회 몇 군데 빼놓고는 부정과 비리에 자유로운 곳이 얼마 없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양적인 평가 지표만을 중시해 부실 학술지를 양산한 연구재단, 그런 시스템을 비판하면서도 악용해 온 학자들. 이들 모두가 국내 학술지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부실학회, 비리학회를 만든 진짜 주범은 오로지 논문 편수로 연구성과를 판단하는 대학의 연구평가시스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연구자들이 양심적으로 자기 연구의 숫자가 적더라도 좋은 질과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는 한두 편의 책, 한두 편의 논문으로 연구자로서 생계를 유지하고 명망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없다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대학에 임용되기 위해서 또는 대학에 임용된 후 재임용, 승진하기 위해서 논문의 질과 아무 상관없는 논문 편 수 채우기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학회만이 공장화되는 게 아니고 연구자들이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공장화 되고 있어요. 이런 방식을 대학이 강요하고, 그 과정에서 학회가 난립하고 교육부와 연구재단은 방치하는 것. 이게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지식공유연대 공동대표)
취재진은 <논문공장의 영업비밀> 1편 보도 이후 부실 학회, 부실 학술지 관련 제보를 여러 건 받았다. 관광 분야 두 개 학회만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한국연구재단은 보도 이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연구재단은 학술지 발행기관의 부정행위 관련 민원과 제보를 받고 있다.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학술단체가 있을 경우, 한국연구재단 실태점검 공식 민원 접수메일 (journal2020@nrf.re.kr)로 신고하면 된다.
제작진
촬영김기철, 최형석, 신영철, 오준식, 이상찬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