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세월호가 쓰러진 이유…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2018년 05월 11일 18시 02분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발생하더라도 실제로는 전타(우현 35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실험으로 검증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선조위 (내인설) 보고서의 시나리오는 기각된 것입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는 지난 11월 26일 전남 목포신항만 세월호 거치 현장에서 열린 ‘세월호 전타 선회현상 등에 대한 모형시험 결과 중간발표’에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지난 2018년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는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내인설’과 ‘열린안’으로 나눠 종합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내인설은 “세월호가 무리한 증개축에 따른 복원성 악화, 화물 과적, 부실 고박, 평형수 부족 등으로 상시적으로 불안한 운항을 하다가, 사고 당일 조타장치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발생해 타가 통제 불능 상태로 우현으로 계속 돌아가며 선체가 왼쪽으로 쓰러지게 됐다”는 조사 결과입니다. 반면 열린안은, 사고 당시 세월호의 복원성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아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에 따른 급선회는 합리적이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세월호 침몰의 원인에 대해 외력 작용을 고려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사참위는 이번 모형 시험을 통해 바로 이 ‘내인설’ 시나리오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사참위는 모형 시험의 과학적 근거를 강조하기 위해 “세월호 조타장치 도면에 근거해 시험모형을 제작하였으며, 세월호 조타장치와 동일한 형식과 성능을 구현하기 위해 수 차례 세월호 조타장치 제조사의 자문을 받아 제작에 반영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참위는 조타장치 모형을 여러 시나리오에 따라 가동시킨 뒤 각각의 경우 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했습니다. 처음엔 모두 100개 넘는 시나리오를 설정했다가 현실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들을 추려냈습니다. 일단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발생했다는 것을 전제로 ▲좌우 타기장치를 모두 사용했는지 하나만 사용했는지 ▲조타수가 어느 방향으로 몇 도를 조타했는지 ▲고착 현상 발생 이후 조타기 시스템을 껐는지 유지했는지 등을 조합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기자회견에서는 14개 시나리오에 대한 시험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사참위의 판단은 “어떤 경우도 세월호의 급선회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내인설’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 사참위가 발표 현장에서 시연한 ‘선조위 내인설 시나리오 검증 시험’
사참위는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발표 현장에서 선조위 내인설 시나리오에 대한 모형 시험을 시연했습니다. 시험은 ▲좌우 타기장치 모두 가동 ▲우현 10도 조타명령 ▲이때 한쪽 타기장치의 솔레노이드 밸브 인위적 고착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그랬더니 타가 우현 12.5도까지 갔다가 반대로 움직여 우현 9도까지 돌아왔고, 이후로 우현 16도와 8도 사이에서 왔다갔다를 반복했습니다. 이를 두고 사참위는 “내인설 보고서대로라면 타가 계속 오른쪽으로 가서 전타(35도)에 이르러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내인설 시나리오는 기각됐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사참위의 이런 판단은 과학적 합리성을 갖춘 것일까요? 그렇다고 하기엔 모형시험의 한계와 맹점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1) 사참위 모형은 ‘그날의 세월호 조타장치’를 재연할 수 있었을까?
일반적으로 ‘모형시험’의 목표는 둘 중 하나입니다. ‘과거의 특정 상황을 온전히 재연하는 것’ 또는 ‘어떤 현상에 대한 경향성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재연’은 시험의 모든 변수들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많은 변수들 가운데 일부라도 통제할 수 없다면 ‘재연’은 불가능하고 ‘경향성 파악’이 최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참위의 시험모형은 사고 당시 세월호 조타장치의 작동을 그대로 ‘재연’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니다’입니다. 사참위의 모형은 실제 세월호 조타장치를 사실상 ‘반쪽만’ 반영해 제작됐습니다. 또 20년 간 사용해 이미 낡아버린 세월호 조타장치의 실제 작동 양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도 못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세월호의 조타장치는 ‘조타기’와 ‘타기장치’ 등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조타기는 조타실에서 조타 명령을 주는 장치입니다. 세월호의 조타기는 일본 도쿄계기가 제작한 PR-8257 모델입니다. 기본적으로 수동조타와 자동조타를 선택할 수 있고, 타 회전 속도와 한계 타각, 이상 타각 경보 등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조타장치의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타기장치’는 선미 하부 타기실에 위치해 있습니다. 세월호의 타기장치는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이 제작한 RV21-086 모델입니다. 유압펌프와 유압 솔레노이드 밸브, 유압 파이프, 실린더, 피스톤, 램(피스톤의 직선운동을 회전운동으로 전환시켜 타를 돌려주는 장치) 등의 조합으로 이뤄집니다. 조타장치의 ‘하드웨어’ 격입니다.
▲ 세월호 조타장치의 작동 메커니즘
이해를 돕기 위해 세월호의 조타기와 타기장치의 작동 방식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조타기에서 타각 명령을 주면 타기장치의 솔레노이드 밸브로 전기 신호가 전달됩니다. 솔레노이드 코일에 전류가 흐르면 코일에 감싸져 있는 철심이 자화되어 옆으로 이동하면서 파일럿 밸브를 밀어줍니다. 이에 따라 닫혀 있던 유로가 열리면서 메인밸브로 유압이 작용합니다. 다시 메인밸브가 밀려 열리면서 또 다른 유로가 형성되고, 이 유압은 실린더로 전달됩니다. 실린더 내부 유압이 커지면서 피스톤을 밀고, 피스톤의 직선운동이 램을 통해 회전운동으로 바뀌면서 타가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사참위의 모형 시험은 세월호 조타장치중 타기장치만 ‘동급의 기능’을 갖도록 실물로 제작한 것일 뿐 조타기는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콘트롤러’로 조타기의 역할을 대체했습니다. ‘콘트롤러’는 여러 시험 시나리오들의 데이터를 입력해 제어하는 기능만을 수행합니다. 모형 시험에서 세월호와 동일한 조타기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걸까요?
세월호의 조타기인 PR-8257은 도쿄계기가 생산한 PR-8000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이 시리즈는 1980년대 중반부터 생산되다가 1990년대 후반 단종됐습니다. 현재는 PR-6000, PR-9000 시리즈 등 업데이트된 조타기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 PR 시리즈 조타기에는 앞서 설명한 여러 기능 외에 ‘자동제어 기능’이 탑재돼 있습니다. 타에 어떤 외부적 요인이 작용해 명령 타각을 넘어서거나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솔레노이브 밸브를 조절해 일정한 크기와 방향의 유압을 형성시켜 명령 타각에 접근하도록 해주는 기능입니다. 이번 사참위 모형시험에서 한쪽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됐을 때 타가 반대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바로 이 자동제어 기능이 작동되도록 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동제어 기능이 조타기의 모델과 사양에 따라 작동 범위나 속도 등이 제각각이라는 점입니다. 즉, 명령 타각에서 얼마를 벗어날 때부터 솔레노이드 밸브가 작동하기 시작하는지, 유압은 어느 정도 크기로 형성시키는지 등이 각각의 조타기 모델마다 다르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사참위도 모형 시험을 기획하면서 실제 세월호 조타기 모델인 PR-8000 시스템을 반영시키려 했습니다. 이는 나라장터에 게재돼 있는 사참위의 모형시험 용역 과업지시서에서 분명히 확인됩니다.
그러나 사참위는 결국 이 조타기를 모형 시험에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단종된 지가 너무 오래여서 제작사인 도쿄계기 측도 PR-8000 조타기의 실물이나 소프트웨어를 보유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참위는 도쿄계기 측에 ‘자문’을 구했고 “타가 명령 각도와 ±0.3도 편차를 보이면 매뉴얼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은 제어시스템이 가동되도록 설계됐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참위는 이같은 답변을 바탕으로 자동제어 기능이 작동하도록 시험모형을 제작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참위 시험 모형이 세월호 조타장치의 작동을 재연하기에 충분한 사양으로 제작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지난 선조위에서 실시했던 ‘새누리호 타기 실증실험’입니다.
지난 2018년 선조위는 이번 사참위 모형 시험과 똑같은 방식으로 세월호의 조타장치를 제작해 검증실험을 추진하려 했습니다. 당시 이 업무를 담당했던 박고용 전 조사관에 따르면 “타기장치 제조사인 가와사키중공업으로부터는 실물 모형 제작이 가능하다는 답변과 함께 약 8천만 원의 견적까지 받았지만, 조타기 제작사인 도쿄계기 측이 PR-8000의 실물과 소프트웨어를 모두 구할 수 없다고 회신해 왔기 때문에 모형 제작을 중단했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선조위는 목포해양대학교의 실습선인 새누리호를 이용해 실증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새누리호는 1994년에 건조된 4,700톤급 선박으로 세월호와 유사한 조타기 모델인 PR-6487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선조위 조사팀은 양측 타기펌프를 모두 사용하며 우현 5도 타각 명령을 준 뒤 한쪽 솔레노이드 밸브를 고착시켜 봤습니다. 그 결과 52초 만에 타가 우현 35도까지 돌아갔습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통제 불가능한 타의 우선회’ 현상이 확인됐던 겁니다.
그런데 이 새누리호의 PR-6000 시리즈 조타기에도 자동제어 기능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제조사 설계대로라면 우현 5도보다 0.3도를 더 돌아간 순간부터 반대편 솔레노이드 밸브가 자동으로 움직여 타각을 조절해줘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달랐습니다.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타가 명령 타각인 5도를 넘어 10도에 이르러서야 ‘이상 타각 경보’가 울리면서 반대측 솔레노이드 밸브가 작동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우현 10도 타각 명령을 줬을 때 역시 15도가 되어서야 반대측 솔레노이드 밸브가 작동했습니다. ‘설계’와 ‘실제’는 차이가 크다는 점을 보여준 겁니다.
그렇다면 세월호에 장착됐던 PR-8000 시리즈 조타기의 자동제어 기능 역시 사고 당시에 설계대로 작동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조타기의 ‘설계 원리’만 반영해 제작한 사참위 모형이 실제 상황을 그대로 재연한다고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사참위 모형이 사고 당시를 재연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습니다. 신형 장비(사참위 모델)와 낡은 장비(세월호)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좌우 타기장치의 성능 불균형 문제입니다.
이 문제 역시 새누리호 시험 결과로부터 유추가 가능합니다. 당시 선조위 조사팀은 새누리호의 좌우 타기펌프를 모두 가동시키면서 한번은 우현 5도 조타명령 중 오른쪽 솔레노이드 밸브를 고착시키고, 또 한번은 좌현 5도 조타명령 중 왼쪽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을 시험했습니다. 오른쪽 고착 상황에선 앞서 설명한대로 타가 우현 35도까지 돌아간 반면, 왼쪽 고착 상황에서는 타가 좌현 8도까지만 돌아간 뒤 멈췄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났을까요?
선박에 두 개의 타기장치가 장착된 경우, 사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양측 성능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현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타기펌프는 물론 유압 파이프와 각종 밸브 등의 노후화가 좌우 타기장치에서 불균형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새누리호는 2004년에 건조돼 선조위 실험 당시인 2018년에는 이미 14년이나 운항한 상태였습니다. 새누리호의 경우 왼쪽 타기장치의 성능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왼쪽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돼 좌현 실린더에 계속 유압이 작용해도 반대편 타기의 자동제어 유압이 상대적으로 높아 타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월호는 어땠을까요? 잘 알려진 것처럼 세월호는 2014년 침몰 당시 일본과 한국에서 20년 이상 운행된 배였습니다. 박고용 전 선조위 조사관은 “조사 당시 일본 가와사키중공업과 한국 대리점인 동명가와사키 측에 모두 확인해본 결과 세월호 타기장치의 부품 교체와 수리 내역은 없었다. 20년 넘도록 수리 없이 사용한 타기장치이기 때문에 좌우 성능 차이도 상당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비교할 때 사참위의 시험모형은 완전한 ‘신제품’에 해당합니다. 좌우 타기장치의 성능 편차는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이 모형으로 좌우 성능 편차가 존재했을 수밖에 없는 세월호 타기장치의 사고 당시 작동 양상을 완벽히 재연할 수는 없습니다.
사참위가 시험모형에 PR-8000 조타기의 자동제어 기능을 ‘설계 원리’로만 반영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해당 조타기 시리즈의 실물이나 소프트웨어를 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월호 조타장치의 완벽한 재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한계점’으로 분명히 명시하지 않은 채 중간 시험 결과를 내놓은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또 세월호의 낡은 타기장치의 좌우 성능 불균형 문제 역시 모형시험의 한계점으로 명확히 제시됐어야 합니다.
(2) 타를 제어하는 ‘해수 압력’은 객관적으로 계산됐을까?
두 번째 문제점은 모형시험에 입력된 데이터의 신뢰성에 관한 것입니다. 제작된 모형이 실제 세월호의 조타장치를 완벽히 재연할 수는 없다 해도 ‘경향성 파악’을 목적으로 실증시험을 시도해 볼 수는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시험에 사용된 데이터들의 산출 근거가 투명하게 제시돼야 결과의 신뢰성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취재 결과 사참위가 모형시험에 적용한 ‘해수 저항압력’ 값이 과도하게 적용된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사참위는 중간발표 현장에서 모두 14개 시나리오에 대한 시험 결과를 언론에 배포했습니다. 그 가운데 선조위 내인설 검증 시험(시나리오 1-3)에 대한 내용을 보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좌우 타기펌프를 모두 작동시키다가 우현 10도 타각 명령을 주고 한쪽 솔레노이드 밸브를 고착시켰더니, 타가 우현 12.5도까지 돌아갔다가 우현 9도로 되돌아온 뒤 우현 8도와 16 사이에서 좌우 움직임을 반복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기재됐습니다.
그런데 하단에 실려 있는 그래프의 의미 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왼쪽 그래프는 시간에 따른 타각의 변화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오른쪽 그래프는 시간에 따른 압력 변화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시험모형 어느 지점의 압력인지도 Pa와 Pb라는 압력값이 빨간색 선인지 파란색 선인지도 설명돼 있지 않았습니다.
모형 제작과 실험 용역을 수행한 ‘제이앤에프솔루션’ 측에 확인한 결과, Pa(빨간색)와 Pb(파란색)는 각각 우현 실린더와 좌현 실린더의 내부 압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Pa가 Pb보다 크면 타는 우현으로 돌고, 반대라면 좌현으로 돌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래프 상 Pa는 Pb보다 언제나 큽니다. 그렇다면 타는 계속 우현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사참위가 현장에서 시연했을 때 타는 분명히 10도 안팎에서 좌우 움직임을 반복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모형시험 용역을 총괄한 사참위 김신우 조사관에게 질의한 결과, “이 그래프는 좌우 실린더 내부 압력만을 표시한 것이고, 실제로는 세월호가 18노트 이상의 속력으로 전진하고 있던 점을 반영해 타에 미치는 해수의 저항압력(드래그포스, drag force)을 추가로 적용했으며, 그로 인해 타가 우현 12.5도까지 갔다가 좌현으로 되돌아오는 결과가 나왔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선박이 진행할 때 타가 한쪽으로 돌아가면 해수의 저항압력을 받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타의 움직임을 살펴보는 것은 타당한 접근입니다. 실제로 선조위 열린안 측 위원들도 새누리호 타기 실증실험이 운항 상태가 아닌 정박 상태에서 진행돼 해수 저항압력이 고려되지 못했다며 추가 검증 필요성을 제기했던 바 있습니다.
그래서 사참위는 내인설 시나리오 검증 모형시험에서도 타가 우현 10도로 돌아갈 때 해수 저항압력을 고려했습니다. 다만 위에 제시됐던 그래프를 보면 이 해수 저항압력, 즉 드래그포스가 좌현 실린더에 대략 12bar 이상의 반대 압력으로 작용해야 오른쪽으로 돌던 타가 왼쪽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김신우 조사관에게 이 시험에 적용된 드래그포스의 값을 물었습니다. 김 조사관은 “타가 35도 전타로 돌아간 상태에서 선체가 18~19노트로 전진할 때의 드래그포스를 실린더 내부 압력으로 환산해 대략 90~100bar라는 기준값을 얻은 뒤, 각 시나리오별 타각에 따라 적용시켰다”고 답변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타에 미치는 해수 압력은 타각의 sin 값에 비례합니다. 따라서 35도 전타 상태일 때와 비교하면 이 시험과 같은 10도 타각에서는 약 3.3분의 1 정도가 적용됩니다. 즉, 타에 작용한 해수의 저항 압력 때문에 좌현 실린더에 약 30bar의 압력이 추가되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그래프상 우현 실린더 압력(Pa)이 좌현 실린더 압력(Pb)보다 12bar 정도 크기 때문에, 좌현 실린더에 30bar 가량이 더해지면 타는 당연히 왼쪽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사참위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런데 사참위가 모형시험에서 임의로 정한 드래그포스의 기준값, 즉 18~19노트 속력에서 35도 전타일 경우 타에 미치는 압력이 90~100bar의 실린더 압력으로 환산된다는 것은 과연 합리적으로 계산되었을까요?
뉴스타파는 현직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2명과 선박기관학 박사 1명, 현직 외국계 선급 연구원 1명 등 모두 4명의 전문가에게 의뢰해 이 수치를 직접 계산해 봤습니다.
4명의 전문가들은, 19노트 속력에서 타각 35도일 경우 세월호의 타가 받는 해수 압력으로 타의 회전축에 미치는 모멘트(토크)를 계산한 뒤, 세월호의 타기장치 도면을 근거로 실린더에 미치는 압력을 추산했습니다. 결과는 35~65bar 사이로 나타났습니다. 4명이 계산값이 각각 다르긴 했지만 사참위가 밝힌 90~100bar보다는 상당히 작게 계산된 겁니다.
전문가들의 계산값을 우현 10도 안팎의 타각에 적용하면 드래그포스로 인한 좌현 실린더 압력은 약 9~18bar가 됩니다. 그러니까 그래프상 Pa와 Pb의 차이인 12bar보다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습니다. 즉, 어떻게 계산을 했느냐에 따라 사참위 발표와는 달리 타가 계속 우현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4명의 전문가들은 “선체를 직진 상태로 보는지 선회 중으로 보는지, 선미 형상에 따른 유속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피스톤과 램의 효율을 어느 정도로 보는지 등에 따라 계산 값이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다”면서 “이같은 차이가 모형 시험 결과를 뒤바꿀 수 있는 수준으로 나타났다면 시험을 수행한 기관이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해 전문가 그룹의 검증을 받아야 논란의 여지를 없앨 수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에 따라 뉴스타파는 지난 9일 사참위에 공식 질의서를 보내 모형시험에 적용된 드래그포스의 기준값을 어떻게 산출했는지 정확한 공식을 공개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사참위는 “해당 내용은 위원회 차원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 할 사안이어 당장 공식 답변은 어렵다”는 입장만을 전해온 상태입니다.
(3) 솔레노이드 밸브가 침몰 이후에 고착될 수 있었을까?
사참위는 사고 당시 세월호 조타장치의 움직임을 재연할 수 없는 모형으로 시험을 실시했고, 시험에 적용된 핵심 데이터의 산출 근거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참위는 모형시험 결과 선조위 내인설 보고서의 세월호 급선회 시나리오가 기각되었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리고는 추가 조사가 필요한 과제를 내놨습니다. 솔레노이드 밸브가 언제 고착된 것인지를 조사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솔레노이드 밸브는 고착된 상태로 발견 → 그러나 모형시험 결과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과 세월호 급선회는 무관 → 그렇다면 솔레노이드 밸브는 운항 중이 아니라 침몰된 이후에 고착 → 정확히 언제 고착된 것인지 조사할 필요’라는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는 과연 합리적인 것일까요?
▲ 2018년 1월~2월 진행된 선조위의 세월호 타기실 개방 점검 장면 (출처: 416가족협의회)
우선 선조위 당시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에 대한 조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2018년 1월 말 선조위가 목포신항만의 세월호 선체 타기실에서 조타장치를 떼어냈습니다. 곧바로 제조사 가와사키중공업의 국내 대리점인 경남 창원의 플루테크로 가져가서 분해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선조위 조사관들은 물론 가와사키중공업 관계자, 영국 브룩스벨 관계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수가 시종일관 동행해 참관했습니다.
분해 조사 결과 한쪽 타기장치의 솔레노이드 밸브 철심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밀려 있는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가와사키중공업 관계자는 “유압회로를 볼 때 철심이 이 상태라면 조타불능 상태로 타가 우현 전타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고착 상태로 발견된 솔레노이드 밸브 철심은 통상 ‘인천행’일 때 사용하는 타기장치의 부품이었습니다. 당시 세월호는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선조위는 ‘인천행’ 타기장치의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현상이 세월호 사고 당시의 급선회와 밀접히 연관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솔레노이드 밸브 철심은 강력한 용수철로 위치가 고정되어 있습니다. 코일에 전류가 흘러 자화될 경우에만 움직이고, 전류가 끊기면 스프링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따라서 솔레노이드 밸브 철심이 발견 당시 고착 상태였다는 것은 일단 전류가 흘러서 이동을 한 뒤 전류가 끊겼음에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전기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상황, 즉 세월호가 항해하던 도중에 발생한 일일 수밖에 없고, 구체적으로는 우현 급선회 직전에 발생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사고 지점 이전에 고착이 발생했다면 그 지점까지 정상적인 조타를 하면서 배를 몰고 올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침몰 이후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됐을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수중에서 작용하는 수압은 모든 방향에서 고루 작용하기 때문에 솔레노이드 밸브가 한쪽으로 밀릴 수 없습니다. 세월호를 육상에 거치한 후 공기 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양을 하면서 선체를 들어올리고 내리는 과정에서의 충격으로 철심이 한쪽으로 밀렸을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좌우 타기장치에 각각 2개씩 모두 4개의 철심에 동일한 충격이 전달돼 모두 한 방향으로 밀렸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단 1개만 밀려 있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참위는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세월호 운항 도중이 아닌 침몰 이후 발생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어떤 가능성이 더 남아 있을까요? 굳이 상상하자면 ‘인위적인 고착’ 뿐입니다. 침몰 기간 중 바다 속, 혹은 인양 후 목포신항만에서 누군가 타기실에 들어가 4개의 철심 중 1개만 물리적으로 밀어놓지 않았다면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가능성을 언급하기에도 민망한 음모론적 시나리오입니다.
정리하면, 과거 선조위는 고착 상태로 발견된 솔레노이드 밸브가 작동 원리상 세월호 급선회 직전에 생긴 문제였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뒤, 이를 단초로 세월호 급선회의 메커니즘을 조사해 설명했습니다. 반면 사참위는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과 급선회가 무관하다는 판단을 내놓은 뒤, 그렇다면 고착 상태로 발견된 철심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자 침몰 이후 고착 가능성을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과연 어느 쪽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조사일까요?
이처럼 모형시험으로 선조위 내인설 보고서의 세월호 급선회 시나리오가 기각됐다는 선조위의 발표는 여러 측면에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작된 모형은 사고 당시를 온전히 재연할 수 없는 한계를 지녔고, 시험에 적용된 데이터는 산출 근거가 공개되지 않아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고착 상태로 발견된 솔레노이드 밸브의 의미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월 9일, 사참위 조사활동 종료를 하루 앞두고 사참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에 따라 사참위는 앞으로 최대 1년 6개월 동안 조사 활동을 더 이어가게 됐습니다. 적지 않은 기간이 확보된 만큼 이번 모형시험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시정해 최종 보고서에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과학적 조사 결과를 담아내야할 것입니다.
취재 | 김성수 |
촬영 | 김기철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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