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홍보원(원장 박창식) 산하 국방TV는 지난 2018년 ‘Plug in DMZ’라는 미니 다큐멘터리로 한국케이블방송대상 기획 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전쟁과 분단의 상징인 DMZ 비무장지대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영상과 소리로 담아내 국방TV에서 여러 편의 시리즈로 방송됐다.
이 미니 다큐멘터리를 만든 사람은 국방홍보원에서 2010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음향감독으로 근무한 염현철 씨다. 염현철 감독은 국방홍보원에 프리랜서 음향감독으로 입사했지만 영상 제작 능력도 인정받아 2014년 처음 ‘Plug in DMZ’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하지만 제작비 여건 등이 따라주지 않아 제작이 중단됐다가 2017년 11월 다시 제작을 재개했고, 1~3편이 한국케이블방송대상 기획 부분 대상을 받는 영예를 얻었다.
▲염현철 감독이 국방TV에 재직할 당시 만든 미니 다큐 ‘PLUG IN DMZ’. 2018한국케이블방송대상 기획부문대상을 수상했지만 정작 감독은 수상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그런데 정작 제작 당사자인 염 감독은 수상 당일까지도 이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수상 소식을 전하는 국방TV 뉴스를 부조정실에서 송출하면서 수상 소식을 접했다. 국방TV 측이 제작자인 염 감독에게 출품 사실도 수상 소식도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염 감독이 프리랜서라는 것이었다.
신분은 ‘프리랜서’, 하는 일은 정규직과 다를 바 없어
염현철 감독은 2010년 9월부터 국방홍보원에서 음향감독으로 일했다. 처음에는 파견업체 소속이었는데 2012년 1월부터는 국방홍보원과 직접 ‘프리랜서 약정서’를 쓰고 일했다. 약정서에 명시된 그의 공식 업무는 △국방TV 음향기술 제반업무 △TV스튜디오 조명 설치 ⋅운용 관련 보조 업무 △TV녹음실 운용 보조 업무 등이었다. 하지만 홍보원의 필요에 따라 영상 제작 업무까지 시켰다. 국방TV 홍보 영상은 물론 상급자의 퇴임식 영상과 개인 취미 생활 영상까지 만들어줬다. 프리랜서인 그에게 인턴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2017년에는 성실하게 일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방홍보원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홍보원.
염 감독은 2017년 4월까지 보통 오전 9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다. 저녁 7시에 생방송 뉴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생방송 뉴스가 낮 12시 뉴스로 바뀐 2017년 4월 이후부터는 저녁 6시 또는 7시에 퇴근했다. 신분은 프리랜서였지만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한 것은 정규직과 다름 없었다. 약정서에 따라 업무수행을 위해 평일과 휴일에 관계 없이 프로그램 제작 업무를 해야 했다. 추석같은 명절이나 국가 비상상황에는 국방홍보원 정규직 직원들과 동일하게 비상대기 근무도 했다.
▲ 염현철 전 국방TV 음향감독.
하지만 처우는 달랐다. 다른 직원들이 다 가는 여름 휴가도 없었고 연장⋅휴일근로수당이나 명절휴가비도 없었다. 염 감독은 결국 2018년 12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정규직과 업무내용, 수행방식, 업무시간 등은 동일한데 프리랜서 약정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각종 수당 등을 지급받지 못하는 게 부당하다는 취지였다. 조사 끝에 고용노동부는 국방홍보원이 지급하지 않은 체불임금이 있다고 인정했지만 국방홍보원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현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언론 보도로 홍보원 명예손상” 하루 아침에 해고
지난해 3월 18일, 국방홍보원 출입기자가 염현철 감독의 노동부 진정 사실을 확인한 후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그리고 며칠 후 염현철 감독의 출입카드는 정지됐고 근무장소인 스튜디오 문도 잠겼다. 사전 통보도 없었다. 이후 염 감독은 일주일 동안 국방홍보원으로 출근해 마당에서 돗자리를 펴고 버텼지만 결국 보도 열흘만인 3월 27일 계약해지 통보서를 받고 쫓겨났다. 염 감독은 소지품도 챙기지 못한 채 동료들에 의해 끌려나왔다고 한다. 국방홍보원은 해지통보서에서 “약정서를 언론 매체에 일방적으로 제공해 국방홍보원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켰다”고 밝혔다. 염 감독이 만든 다큐로 큰 명예를 얻었을 땐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던 국방홍보원은 염 감독이 언론 취재에 응하자 기관의 명예를 손상시켰다며 매몰차게 내쫓았다.
염 감독은 지난해 5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지노위는 염 감독이 “국방TV가 편성한 업무일정표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등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계약서 상으로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일했지만 실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일한 점이 인정된 것이다.
또 국방TV가 명예 손상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한 것은 ‘징계해고’에 해당하는데 인사위원회를 거치지 않아 징계 절차에 중대한 흠결이 있기 때문에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국방홍보원은 지노위 결정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중노위도 염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국방홍보원은 이 결정에도 불복해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걸었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 1월 국방홍보원장으로 취임한 박창식 원장은 뉴스타파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해당 행정소송에 대해 “전임자가 판단한 것에 대해 사유를 얘기하기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며 “법률 업무는 국방부 법무관실의 조력을 받고 있어 1심 후에 법무관실의 전문적인 판단이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재판 결과가 나온 뒤에야, 상급 기관인 국방부의 지침을 받아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염현철 감독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를 위해서 나의 재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컸고 사명감이 있었다”며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분들이 최소한 국가로부터 해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방홍보원 직원 3분의 1이 프리랜서, 국방TV는 절반 넘어
국방홍보원이 국회 국방위원회 김병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방홍보원 전체 직원은 281명으로 이 중 94명이 프리랜서다. 전체 직원의 3분의 1이 프리랜서인 것이다.
국방홍보원은 국방일보, 국방TV라디오 등의 부서로 나뉘어 있는데 국방TV는 정규직인 공무원(62명)보다 프리랜서(83명)가 더 많았다. 그나마도 올해 들어 40여명의 프리랜서가 계약 해지되거나 만료돼 줄어든 것이다.
최근 3년간 국방홍보원에서 계약 해지되거나 만료된 프리랜서는 모두 141명으로 평균 재직 기간은 1년 6개월에 불과했다. 담당 업무별로는 작가가 53명으로 가장 많았고 조연출이 28명, PD가 20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