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블랙리스트' 제보자에 보복하려 '별건 고소' 의혹

2024년 07월 09일 13시 57분

최근 경찰이 이른바 '쿠팡 블랙리스트' 제보자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뉴스타파는 제보자에 대한 경찰 압수수색의 배경에 쿠팡의 '보복성 별건 고소'가 있었던 정황을 확인했다. 쿠팡은 제보자가 언론에 제보한 블랙리스트는 쏙 빼고, 다른 빌미를 찾아내 고소했다. 
쿠팡 블랙리스트는 쿠팡의 물류센터 운영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가 만든 취업 방해 명단이다. 재취업을 금지한 물류센터 노동자 1만 6천여 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들어 있다. 지난해 쿠팡 물류센터에서 잠입 취재했던 뉴스타파 기자 2명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외에 물류센터에서 직접 일한 적 없는 언론인들의 개인정보도 대거 포함돼 있다.(관련 기사 : '쿠팡 블랙리스트'가 합법이라고?... 불법 의혹 짙은 이유)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지난해 말 쿠팡풀필먼트서비스(이하 쿠팡풀필먼트) 전 직원 A씨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A 씨는 또 다른 전 직원이자 노동조합 간부였던 김준호 씨를 통해 블랙리스트를 언론 제보했고, 지난 2월 MBC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처음 보도됐다.
이후 쿠팡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은 쿠팡을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쿠팡풀필먼트도 A 씨와 김준호 씨를 고소했다. 현재 쿠팡에 대한 수사는 고용노동청과 송파경찰서에서 진행 중이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 '쿠팡 블랙리스트' 제보자 압수수색... 영업비밀 무단 유출 혐의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지난달 12일 A 씨의 자택과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다. 쿠팡의 고소장 제출 후 약 3개월만이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압수수색 영장에 따르면, 혐의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이었다. A 씨가 쿠팡풀필먼트의 영업비밀 등 자료를 무단 유출·누설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얘기였다. 
영장에서 A 씨가 유출했다고 적시된 파일은 총 25개였다. 이중 10개는 영업비밀, 15개는 영업비밀로까지는 볼 수 없는 쿠팡의 내부자료에 해당했다. 경찰은 영업비밀 파일 10개에 대해선 "(A 씨가) 고소법인(쿠팡풀필먼트)의 물류센터 물품 분류 자동화 설비 배치 도면, 인적자원 정보, 산업재해 발생 및 대응조치와 관련된 기술상, 경영상 자료를 무단 유출했다"고 압수수색 영장에 적었다. 그러면서 "A 씨가 쿠팡풀필먼트에 손해를 끼칠 목적으로 무단 유출한 영업비밀을 김준호에게 누설했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15개 자료는 대부분 A 씨가 일했던 한 쿠팡 물류센터의 인사·채용 업무 관련 파일로 추정된다. 파일명은 '입·퇴사 현황', '직원 리스트', '퇴직자 정리', '10월 급여 특이사항' 등이다. A 씨는 2022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쿠팡 물류센터의 인사부서 직원으로 근무했다. 경찰은 A 씨가 쿠팡의 '영업상 주요 자산'인 총 25개 파일을 유출해 업무상 배임을 저질렀다고 봤다. 
경찰은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A 씨의 개인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해간 것으로 확인됐다.
‘쿠팡 블랙리스트’ 제보자 A 씨에 대한 경찰 압수수색 영장. A 씨가 쿠팡의 물류센터 운영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의 영업비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다. 

'블랙리스트 폭로자'고소하며 블랙리스트 뺀 쿠팡... '보복성 별건 고소' 의심

뉴스타파는 A 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A 씨가 무단 유출했다고 영장에 적시된 파일 25개(중복 제외) 가운데 쿠팡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사실이다. 
취재 결과, 쿠팡은 애초에 A 씨를 고소하며 블랙리스트 유출 건은 뺐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 관계자는 "쿠팡이 제출한 고소장에 처음부터 블랙리스트 관련 내용은 없었다. 우리가 수사 중인 혐의 내용은 블랙리스트 유출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앞서 설명했듯 쿠팡풀필먼트가 '무단 유출됐다'며 고소장에 올린 파일 중에는 인사업무 관련 자료가 상당히 많다. 블랙리스트도 쿠팡의 인사업무 관련 파일이다. 지난 2월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처음 보도되자 쿠팡은 "정당한 인사평가 자료"라고 설명했다. 특히 블랙리스트는 최종 관리자가 본사 인사담당 상무였을 만큼, 윗선까지 개입된 문건이었다. 그런데 쿠팡은 정작 이런 중요 문건을 언론에 제보한 A 씨의 행위는 문제삼지 않고, 다른 파일만 고소장에 넣은 것이다. 
현재 A 씨는 쿠팡 블랙리스트 폭로와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의 공익신고자 보호 절차를 밟는 중이다. 공익제보 성격이 짙은 블랙리스트 폭로를 대놓고 고소하기는 어려우니 다른 빌미를 찾아내 '별건 고소'를 한 건 아닌지 의심된다.
김준호 씨는 "무단 유출로 고소할 거면 유출된 자료를 다 걸고 넘어져야 하지 않나. 하지만 쿠팡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자료는 고소장에서 뺐다. 특히 블랙리스트는 불법 소지가 있는 문건이니 그걸 유출했다고 고소하는 건 좀 그러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A 씨는 "보복 행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너 때문에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알려져서 회사가 수사받고 있으니 너도 당해보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명 PNG리스트라고 불리는 ‘쿠팡 블랙리스트’의 모습. 쿠팡풀필먼트가 재취업을 금지한 약 1만 6천 명의 개인정보가 모두 담겨 있다. 쿠팡은 블랙리스트 폭로자인 A 씨를 고소하며 블랙리스트 내용은 쏙 빼고 ‘별건 고소’했다. 

'파일 다운로드'했다고 무단 유출?... 블랙리스트 왜 빼나

보복성 ‘별건 고소’로 의심되는 이유는 또 있다.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A 씨의 '파일 유출 방법과 기간' 때문이다. 영장에는 A 씨의 파일 유출 방식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쿠팡풀필먼트에서 부여받은 이메일 계정으로 업무용 컴퓨터 내 자료보관 서버(서버명 : SharePoint)에 접근해 서버에 보관하고 있던 파일을 다운로드한 것을 시작으로 '범죄사실 관련 일람표'에 기재된 것과 같이 총 25개 영업상 주요 자산에 해당하는 자료를 다운로드 한 것을 비롯해... (후략)

'쿠팡 블랙리스트' 제보자 A 씨 경찰 압수수색 영장 
영장에는 A 씨가 어떤 방식으로 쿠팡의 내부 파일을 다운로드했는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A 씨가 어떻게 파일을 빼냈다는 것일까. 회사 보안서버에 몰래 접속하거나 해킹 등 방법을 썼을까. 전혀 아니다. 
영장에서 '쿠팡풀필먼트의 자료보관 서버'로 지목된 '셰어포인트'(SharePoint)는 특정 권한이 부여된 전자기기나 IP주소로만 접속할 수 있는 폐쇄적인 보안서버 같은 게 아니다. 셰어포인트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만든 클라우드 플랫폼이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언제 어디서든 어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도 접속해 파일 작성과 상호 공유·다운로드 등이 가능하다.
쿠팡풀필먼트에서는 이 셰어포인트로 일상 업무가 이뤄졌고, A 씨도 쿠팡 직원용 계정을 사용해 재직 기간 동안 수시로 셰어포인트에 접속했다. 당연히 파일 다운로드도 별다른 제약 없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A 씨는 "쿠팡풀필먼트에서 일하는 내내 대부분 업무를 셰어포인트로 했다. 업무용 컴퓨터뿐 아니라 개인 휴대전화로 셰어포인트에 접속해 일한 적도 많다. 그때마다 업무 목적으로 여러 파일을 열어 봤고, 다운로드하기도 했다. 이걸 다 무단 유출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 셰어포인트에서 파일 다운로드한 걸 갖고 무단 유출로 고소할 거면, 왜 저 25개 파일만 뽑아서 고소했는지 모르겠다. 블랙리스트도 다운로드한 건 마찬가지인데, 정작 그건 또 고소 안 한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주장했다.  
또 A 씨는 "내가 무단 유출했다고 영장에 적혀 있는 파일 25개 중에는 아예 모르는 것도 있다. 셰어포인트로 일하며 파일을 착각해 다운로드한 적도 있는데, 이것도 다 무단 유출인가. 쿠팡이 말하는 무단 유출의 기준이 궁금하다”고 주장했다. 통상 영업비밀 유출 사건에서는 유출된 자료를 평소 회사가 얼마나 엄격히 기밀로 분류해 관리했는지가 중요한 관건이 된다.

퇴사 통보받자 영업비밀 유출 시작?... '악의적 프레임'

영장에는 A 씨가 유출 파일 25개 중 23개를 퇴사 통보를 받은 다음 날인 지난해 9월 27일부터 10월 21일(퇴사 10일 전) 사이에 빼돌렸다고 나온다. 특히 영업비밀로 지목된 파일 10개는 모두 퇴사 통보 직후 무단 유출을 시작했다고 적시됐다. 
이에 대해 A 씨는 "나는 퇴사 통보를 받기 전에도 계속 셰어포인트에 접속해서 일했다. 당연히 계속 여러 파일을 열어보고 다운로드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건 빼고, 퇴사 통보 이후 기간만 걸고 넘어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정경쟁방지법상 죄가 설립하려면, 영업비밀 유출 혹은 누설을 통해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영업비밀 보유자에게 손해를 끼칠 목적이 인정돼야 한다. 앞서 설명했듯 A 씨는 블랙리스트 폭로와 관련해 현재 공익신고자 보호 절차를 밟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퇴사 통보 직후 기간만 특정해 영업비밀 유출 혐의를 씌운 것은 A 씨가 공익제보 목적이 아니라 퇴사 조치에 대한 앙심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려 일을 저질렀다고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된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 A 씨는 고소법인(쿠팡풀필먼트)에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무단으로 유출한 영업비밀 자료를 불상 일시, 불상의 방법으로 피의자 김준호에게 누설했다"고 나온다. 이에 대해 A 씨는 "쿠팡 자료를 팔아서 돈을 벌거나 한 적 없다. 또 블랙리스트를 김준호 씨를 통해 언론 제보한 것도 공익성이 있다고 판단해서다"라고 반박했다.
뉴스타파는 경기남부경찰청에 연락해 쿠팡이 퇴사 통보 이후만 영업비밀 유출 기간으로 특정해 A 씨를 고소한 것인지 물었다.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 측은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현행법상 영업비밀 유출 및 누설죄가 성립하려면 ‘영업비밀 보유자에게 손해를 끼칠 목적’이 있어야 한다. 쿠팡은 A 씨를 고소하며 ‘쿠팡 블랙리스트’ 제보자인 A 씨가 퇴사 통보를 받자 회사에 손해를 끼칠 목적으로 영업비밀 유출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쿠팡에 연락해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는 왜 A 씨를 무단 유출 혐의로 고소하지 않았는지,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파일들을 A 씨가 유출했다고 판단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보복성 고소라는 비판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지 등을 물었다.
쿠팡 홍보팀 측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 질의에 답변할 수 없다"며 "쿠팡풀필먼트는 지난 2월 전 직원 씨가 민노총 노조 간부 B 씨(김준호 씨)와 공모해 물류센터 운영 설비 관련 자료를 포함한 수십 종의 회사 기술∙영업기밀 자료를 유출한 정황을 확인하고, 이들을 고소했다"는 입장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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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홍여진 홍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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