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법관 기피 신청은 불법 기소 자백이다
2024년 11월 22일 11시 02분
중국 선양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허룽시 공안국으로부터 받았다는 팩스 문서의 발신 번호가 중국에서 전화 사기 범죄 등에 사용된 번호인 것으로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에 따라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사실확인서 위조 과정에 중국 현지 조직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허룽시 공안국의 사실확인서란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의 출입경 기록을 허룽시 공안국에서 발급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문서다. 그동안 검찰과 국정원은 이 사실확인서를 공식 외교 경로를 통해 확보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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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검찰은 지난해 12월 5일과 13일 동일한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각각 법원에 제출했다. 내용과 도장까지 똑같은 허룽시 공안국이 발행했다는 공문이다.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검찰은 2개의 사실확인서 모두 지난해 11월 27일 허룽시 공안국이 팩스로 보내 온 것이라고 밝혔다. 동일한 문서이지만 발신 팩스 번호만 서로 다르다. 1시간 20분의 시차를 두고 먼저 온 팩스는 지역번호 없이 9680-2000번, 뒤에 온 팩스는 지역번호 043이 찍힌 허룽시 공안국 번호로 팩스가 왔다.
다른 2개의 팩스 번호로 동일한 중국 공문이 온 데 대해 검찰 관계자는 첫 팩스 발신 번호가 허룽시 공안국의 공식 팩스 번호가 아니어서 공식 팩스로 다시 받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9680-2000번 역시 허룽시 공안국 번호이긴 하지만 공식 팩스 번호는 아니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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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검사도 지역번호 043이 찍힌 팩스 문서를 실제 허룽시 공안국에서 받은 증거라며 선양 총영사관의 팩스 수신 대장과 함께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9680-2000번 팩스로 온 사실확인서엔 185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데 이는 선양 영사관의 팩스 문서 수신 대장의 수신 문서 일련번호였다. 그러나 허룽시 공안국의 대표 팩스 번호로 받았다는 사실확인서는 수신 대장에 기재돼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유우성 씨 변호인 측은 선양 영사관에 파견된 국정원 직원이 처음엔 9680-2000번 팩스가 발신한 위조 문서를 받았다가, 뒤늦게 팩스 번호가 문제될 것을 우려해 허룽시 공안국 팩스 번호를 인위적으로 입력해 같은 문서를 다시 받아 둔 것으로 보고 있다.
뉴스타파는 9680-2000번 팩스 번호의 정체를 추적해 봤다. 선양 한국영사관이 있는 지역에서 현지 전화로 걸어보니 없는 번호로 나왔다. 허룽시 지역 번호 043을 붙여 걸어봤으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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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9680-2000번이 전화 사기 등의 범죄에 이용된 인터넷 전화라는 게시글이 여러 건 확인됐다. 이른바 ‘피싱’ 전화라 부르는 전화 사기에 이용된 번호로 돈이나 개인 정보를 빼가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검찰의 주장과는 달리 9680-2000번은 허룽시 공안국과는 관련 없는 번호란 건 분명해 보인다.
유우성 씨 변호인들은 이 번호가 위조 공문서 팩스 전송에 사용됐기 때문에 문서 위조범을 추적할 수 있는 핵심 단서인데도 검찰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28일 중국 정부가 위조라고 판정한 3건의 중국 공문서 전달 과정에 모두 관여한 국정원 대공수사국 출신의 이인철 영사를 소환해 조사했다. 위조 사태가 터진 뒤 2주나 지나서, 그것도 참고인 신분이다. 진상을 얼마나 밝혀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이 영사는 지난 25일 민주당 진상조사단이 중국 선양 총영사관을 현장 조사할 당시 선글라스와 마스크, 모자를 쓰고 나와 자신은 억울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했다.
민주당 진상조사단은 이 영사를 통해 제출된 3건의 중국 문서 모두 공식적인 외교 경로와 공증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야당은 3건의 문서 입수 과정에 관여한 이인철 영사 외에 지난해 선양 영사관에 파견됐던 국정원 직원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영사의 전임자인 심 모 씨는 유우성 씨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주변 인물들을 수사해 증거로 제출하는 등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수사에 깊이 관여했으며, 이번 위조 사태가 터지면서 급히 귀국한 이 모 부총영사는 같은 기간 선양 영사관에서 근무한 책임자급으로 역시 이번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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