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너를 지렁이처럼 봐”
2015년 09월 01일 23시 21분
이진동 TV 조선 사회부장이 같은 회사 여직원을 성폭행한 의혹과 관련해 최근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진동 부장이 지난 2012년에도 회사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실도 뉴스타파 취재 결과 추가로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수소문 끝에 이 부장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 A씨와 접촉할 수 있었다. A씨에 따르면, 이진동 부장은 지난 2015년 술자리가 끝난 뒤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A씨의 집안까지 들어가 A씨를 성폭행했다. 피해자 A씨는 당시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이 부장이 집요하게 집안에서 차를 한잔 달라고 요구해 거절할 수가 없었고, 집에 들어온 뒤에도 여러 번 거절 의사를 표시했으나 이 부장이 이를 무시한 채 물리적 힘을 동원해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장은 최초의 성폭행이 있은 지 며칠 뒤 피해자 A씨의 집에 다시 찾아왔고, 심야에 전화를 걸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 집에 초대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피해가 이어졌다고 A씨는 주장했다.
A씨는 사건 이후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최근 미투 운동이 시작되자 고민 끝에 이 부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요즘 미투 얘기로 시끄럽네요. 저도 몇년 전 일이 생각나서 연락합니다. 그때 일 저한테 아직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에요. 악몽같이 끔찍해요. 비오는 날 집 앞에서 안 가고 기다렸던 거, 집에서도 분명히 싫었는데 끈질기게 달라붙었죠. 그 뒤로도 자주 우리집 가고 싶다고 하고.. 지금 생각해도 토할 거 같아요.
A씨가 이진동 부장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세지
이진동 부장은 이렇게 답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다면 수십 번 수백 번이라도 사과를 하고 싶다. 사과를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네 마음에 달려 있겠지만, 진심으로 사과하고 앞으로는 너에게 빚진 마음으로 늘 스스로 경계하고 돌아보면서 살아갈 생각이다.
A씨의 카카오톡 메세지에 대한 이진동 부장의 답변 중
피해자 A씨는 이 부장에게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공개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지만, 이 부장은 이를 거부했으며 대신 회사에서 사직하는 것으로 용서를 빌겠다고 했다.
사직서 제출했다.. 평생 바치고 쌓은 것들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마음에서 다 내려놓았다. 외부활동도 없을 거야. 네 고통이나 상처가 치유될 수는 없겠지만 그걸로나마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한다. 다 내 잘못이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테니, 가족들을 봐서라도 용서해 다오.
A씨에게 보낸 이진동 부장의 카카오톡 메세지
이 부장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성관계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강압성이 있었는지 여부 등 구체적인 사실 관계는 법적으로 따져봐야할 문제”라고 답했다.
그건 뭐 합의가 두 사람 간에 만나는 일이 합의하고 이런 일이 아니잖아요. 둘 사이에 있었던 부분이기 때문에 법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중략).... 그런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언급하는 것은 이 단계에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제가 가장 미안하고 피해를 준 사람은 아내와 아이들이라고 생각을 해요.
(피해자보다요?)
피해자도, 피해자에게 상처를 줬고,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다 사과하고 했고. 그보다도 피해자도 있지만 그 피해자보다 더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내와 아이들이라고 생각을 해요. 가족들이라고. 그래서 저는 이게 가급적이면 노출이 안되게끔 하기 위해서 오히려 사표도 냈고 했는데...
한편 이진동 부장이 지난 2012년에도 같은 회사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수소문 끝에 어렵게 당시 피해자와 접촉할 수 있었다. 피해자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피해자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2차 피해에 대한 우려 때문에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진술하기는 어렵지만 성추행이 있었고 그에 대해 사과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21일 TV조선에 이 부장의 사표 여부 등을 질의했다. 이에 대해 TV 조선 측은 처음에는 “일신상의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혀왔으나, 몇 시간 뒤 “미투 운동과 관련해 사표 제출을 했으며 신속하게 사표를 수리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바꿨고, 다시 하루 뒤인 22일에는 “사표 수리를 미루고 진상규명을 포함해 사규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혀왔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TV 조선에 질의를 한 바로 다음 날인 22일 오전 조선일보 계열사인 월간 조선의 인터넷판에 이진동 부장의 성폭행 관련 기사가 게재됐다 곧 삭제되는 일이 있었다. 월간 조선은 이 기사에 피해자의 신원을 암시하는 문구를 포함시켰고, 이후 피해자에 대한 허위성 정보가 이른바 지라시를 통해 돌아다니며 2차 피해를 야기했다.
특히 이 기사는 월간조선 문갑식 편집장이 직접 작성했으며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고됐다. 일부 매체들은 월간 조선의 기사를 그대로 받아쓰며 피해자의 신원을 암시하는 똑같은 문구를 포함시켰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조선일보의 계열사가 서로 엇박자를 내며 피해자 보호를 고려하지 않은 보도를 냈다가 서둘러 내린 것이다.
피해자 A씨 측은 이 부장을 형법 303조에 따른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과 가택 침입, 퇴거 불응 등의 혐의로 형사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진동 부장은 지난 2008년 총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한 뒤 다시 언론계로 돌아와, 2016년에는 TV 조선의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이끌어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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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심인보
촬영 : 신영철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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