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32년 만의 무죄 판결과 뉴스타파

2021년 09월 08일 10시 00분

북한을 찬양하고, 북침설 등 북한의 거짓 주장에 동조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던 전교조 교사가 32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다.
지난해 2월 뉴스타파 보도(30년 만의 재심, 전교조 북침설 교육의 진실은?)의 주인공인 강성호(청주 상당고) 교사 얘기다.  강 교사는 지난 1989년 충북 제천에 있는 제원고에 근무할 당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6.25는 남침이 아니라 미군이 먼저 침략했다. 북한도 잘 산다"는 등의 교육을 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강 교사가 구속됐던 1989년 5월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범을 앞두고 교사들이 줄줄이 구속됐던 시기였다. 노태우 정권은 전교조 결성에 앞장선 교사들에게 ‘빨갱이’라는 굴레를 씌워 여론을 호도하는 방법으로 전교조 결성을 막으려 했다. 서울 인덕공고 조태훈 교사는 1년 전 술자리에서 동료 교사에게 북침설을 말했다는 이유로, 경북 영주 동산여중 이수찬 교사는 한 여학생이 김일성을 만나보고 싶다고 쓴 낙서를 방치했다는 이유로 각각 재판에 넘겨졌다. 조태훈 교사와 이수찬 교사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승소했지만, 강성호 교사는 대법원에서 유죄가 최종 확정됐다. 
30년간 '수형번호 279'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았던 강 교사는 지난 2019년 다시 용기를 냈다. 법원은 강 교사의 연행 과정에 불법 체포 및 감금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같은해 11월 강 교사의 재심 신청을 받아드렸다. 
이후 강 교사는 진실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며 뉴스타파의 문을 두드렸다.  
32년 전 법정에 출두하며 양 손바닥에 '진실 승리'라고 쓴 글씨를 펴보였던 강성호 교사.   

뉴스타파 보도가 무죄 입증에 결정적 역할 

뉴스타파는 강 교사의 재판 기록 일체를 입수, 사건의 진실을 추적했다. 그 결과 북침설 교육을 들었다는 학생들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 조사에서 A 학생은 "북침설 교육을 직접 듣고, 옆자리에 앉은 B 학생에게 '이북이 남한을 침범했다고 배웠는데 (강교사는) 미군이 먼저 이북을 침범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전혀 다른 것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진술했다. 그런데 B 학생의 진술은 "수업시간에 A와 C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나와있다. C 학생은 처음에는 "북침설 교육을 직접 들었다"고 진술했다가 강 교사와의 대질신문에서 "학생 A와 B가 한 대화를 듣고 북침설 교육을 받게 된 것을 알게됐다"고 말을 바꿨다. 
A와 B와 C의 증언은 서로 엇갈려 무엇이 진실인지 알려 어렵지만 공통점은 북침설 교육 당일 함께 교실에 앉아 있었다는 것. 
하지만 뉴스타파는 B학생이 그날 학교를 결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교실에 없던 B 학생의 증언은 물론 A와 C 학생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지난해 2월 '30년 만에 재심, 전교조 북침설 교육의 진실은?' 보도에 사용된 그래픽.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A는 이미연, B는 김은희, C는 이영자 학생을 지칭함.
뉴스타파 보도 영상은 강 교사의 무죄를 입증하는 핵심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됐고, 판결문에도 그대로 인용됐다.
청주지법 형사항소 2부(오창섭 부장판사)는 지난 2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1년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던 감성호 교사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면서 판결문에 이렇게 썼다. 
이 사건 당시 B는 결석한 상태였는바, A가 이 사건 당시 피고인이 한 발언 내용을 정확하게 듣고 기억하여 수사기관 등에서 진술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 시간 당시 B는 결석한 상태였는바, C의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 
A 학생 등은 자신들이 경험한 사실에 대해 착각하여 진술하였거나 스스로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을 일부 교사 및 수사기관이 의도하는 바에 따라 과장하여 진술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강성호 교사의 재심 판결문에서 발췌
재판부는 또 "검사가 제출한 증거물만으로는 피고가 수업중에 학생들에게 북침발언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설령 피고가 북침 발언을 했어도 그러한 행위가 국가의 존립과 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기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강 교사, "재심 승리해도 마음 무거워...국가보안법 폐지해야"

강 교사는 수업도중 경찰에 연행된 뒤 1999년 복직될 때까지 10년간 교단을 떠나야 했다.  강 교사는 검찰과 경찰 수사과정에서는 물론 법정에서도 "북한이 대남 적화 전술에 의해 먼저 남침해 일어난 것"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진술했다. 강 교사는 또 북한 화보집에 실린 사진에 대한 설명 역시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을 설명했을 뿐 북한을 찬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강성호 교사가 구속된 다음날 제원고 학생들이 운동장에 나와 강 교사의 무죄를 주장하며 집단 시위를 벌였다. 359명은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강 교사가 터무니없는 북침설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평화통일 교육을 좌경용공 교육으로 매도했고, 스승과 제자를 32년간 피고와 증인으로 갈라 놓았다.
강성호 교사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그저 축하와 위로만을 받기에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면서 "시민들이 지혜와 용기를 모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실천해야 할 때"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