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父 김용주, 일제군용기 헌납대회에도 참여
2015년 09월 21일 17시 48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3.1 혁명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民國 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특별 기획을 통해 지난 한 세기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세력들을 각 분야 별로 분석하고, 특권과 반칙,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통찰을 99% 시민 여러분과 함께 찾아가고자 합니다. 뉴스타파는 이 기획의 일환으로 앞으로 2회에 걸쳐 한 유력 정치인의 30년 정치인생, 특히 그의 인맥과 혼맥을 토대로 한 재산형성과정을 보도합니다. 이를 통해 ‘자본과 권력이 어울린 민국 100년의 그늘진 한국현대사’를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주인공은 김무성 현 자유한국당 의원입니다. -편집자 주 |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은 6선의 거물 정치인이자 백억 원 넘는 재산을 보유한 자산가이다. 김 의원의 화려한 정치 이력, 그리고 막대한 재산을 그의 집안 내력과 떼어 놓고 보기는 힘들다.
김무성 의원은 1993년 김영삼 정부 민정비서관과 내무부 차관을 거친 뒤 1996년 신한국당 국회의원으로 15대 국회에 입성한 것을 포함해 내리 6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새누리당에서 원내총무와 당대표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박근혜 정권 때는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다.
거물 정치인답게 그는 고비고비마다 정치사에 획을 긋는 역할을 했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1등 공신이었고, 박근혜 탄핵에도 앞장섰다. 현재의 바른미래당(구 바른정당)을 만든 산파였고,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갈 때도 맨 앞줄에 섰다. 최근에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며 보수 지지층 결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무성 의원은 본인의 정치인생 만큼이나 화려한 가족사로도 주목받아 왔다.
김 의원의 부친인 김용주는 일제시대부터 정치인이자 사업가로 승승장구한 인물이었다. 일제가 남기고 간 적산기업을 불하받아 전남방직 등을 설립했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초대 회장을 지냈다. 그런데 김용주의 이름이 국민들 사이에서 각인된 건 그가 성공한 기업인이어서가 아니라, 친일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지난 2015년 9월, 뉴스타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용주의 친일 행적을 입증해 주는 각종 자료를 공개한 바 있다. 일제 말기인 1940년대, 김용주가 징병을 독려하는 등의 발언을 여러차례 했고, 일제 전투기 헌납 기명광고를 신문에 내기도 했다는 내용이었다.
뉴스타파가 공개한 자료는 평소 김무성 의원이 주장했던 “부친인 해촌 김용주는 일제가 학살을 계획한 3000명 요시찰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거나 “일제 말기에 가족을 모두 피신시키고 본인도 이름을 바꾼 채 몇 달간 도피생활을 했다”는 등의 주장과는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지금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나의 아버지’라는 코너를 만들어 놓고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김 의원의 친누나인 김문희 씨는 현재 용문중고등학교와 용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법인 용문학원의 이사장이다. 현영원(2006년 사망) 전 현대상선 회장과 결혼해 4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 중 둘째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다.
김 의원의 친형인 김창성 씨는 부친인 김용주에게서 전남방직을 물려받아 회장을 지냈고, 역시 부친에 이어 경총 회장을 지냈다.
김무성 의원은 1993년 김영삼 정부 민정비서관으로 첫 재산신고를 했다. 모두 17억 5400여만 원이었다.
1990년대에 김 의원의 재산은 두 번에 걸쳐 크게 증가한다. 1994년 한 해에만 재산이 2배 가량 늘었고, 이듬해인 1995년에는 다시 3배 가량 늘어 100억 원에 근접했다. 이후 그의 재산은 많게는 150억 원, 적게는 90억 원대를 오르내리며 25년간 이어졌다. 올해 2월 김무성 의원이 마지막으로 신고한 재산은 130억여 원이었다. 그의 재산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뉴스타파는 김 의원의 주식이 2배 가량 늘어난 1994년, 3배 가량 증가한 1995년 재산신고 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각각 1, 2부로 나눠 보도할 예정이다.
1993년 당시 김무성 의원이 신고한 재산 17억 5400여만 원 중 16억 4900여만 원이 본인 명의 재산이었다. 세부항목을 보면, 경기도 고양시 소재 부동산 3건(전답, 3억 4000여만 원)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부동산 1건(빌라, 6억 5400여만 원), 그리고 새한상호신용금고(이하 새한금고)라는 회사의 주식 등이었다.
취재진은 먼저 경기도 고양시 소재 부동산의 과거 폐쇄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봤다. 김 의원이 만 20세였던 1971년에 본인 명의로 취득한 걸로 나와 있다. 당시 그가 경제력이 없는 대학생(한양대 경영학과)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물려받은 재산으로 추정된다.
1994년, 김무성의 재산이 두 배 가량 늘어난 배경에는 새한금고 주식 7만 9200주가 있었다. 1995년 초 내무부 차관 시절 김 의원이 신고한 재산 내역에는 “액면가 5000원인 새한금고 주식 7만 9200주를 주당 3만 1554원에 팔아 21억 원 넘는 시세차익을 올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새한금고는 1994년 신고한 재산신고 내역에도 등장한다. “새한금고가 무상증자를 실시해 김 의원의 보유 주식이 5만 2800주에서 7만 9200주로 50%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1993년 3월 1일 경향신문에는 “1급인 김무성 비서관이 새한금고의 무상증자로 재산이 1억 2800만원 늘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김무성 의원에게 무상증자와 21억 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안겨준 ‘새한금고’는 어떤 회사일까. 취재진은 1995년 이전의 언론보도와 이 회사의 과거 등기부등본 등을 단서로 이 회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김 의원의 부친 김용주가 운영하던 전남방직이 상호신용금고 3개를 인수한다는 기사(1978년 10월 19일 매일경제)와 함께, 전남방직이 가지고 있는 새한상호신용금고의 자본금이 3억 5000만원이라는 등의 기사(1979년 9월 13일 매일경제)가 확인됐다.
이 회사의 과거 등기부등본에선 김 의원의 부친인 김용주와 친형인 김창성 전 전방 회장이 1978년 이 회사의 이사로 취임했고, 1992년 8월에는 김무성 의원과 김 의원의 둘째형 김한성 씨, 친누나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 이 회사의 이사로 취임했다는 내용이 확인됐다.
언론보도와 과거 등기부등본으로 볼 때, 새한금고는 한마디로 김무성 의원 일가의 가족기업이었다.
1992년 8월 이사에 취임했던 김무성 의원 3남매는 2년 뒤인 1994년 2월 26일 동시에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이사 사임 당시 김 의원은 별정직공무원 1급에 해당하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의 공무원법(64조)은 “공무원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비록 25년 전의 일이지만, 김 의원이 공무원법을 위반하면서 가족기업의 이사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럼 1994년 2월, 김 의원 일가가 같은 날 ‘가족기업’ 새한금고의 이사직에서 물러난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1994년 2월 22일자 매일경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한교원공제회가 전방(전남방직) 계열의 새한상호신용금고를 인수했다...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소재한 새한금고는 지난 73년에 설립됐으며, 자본금 101억 5800만원에 여수신은 각각 800억 원대에 이르는 중형금고이다.
결국, 가족기업을 매각하면서 김무성 의원 일가가 자연스레 경영에서 물러났던 것이다. 교원공제회가 사들인 새한금고는 이후 여러번 이름을 바꾼 뒤, 현재 더케이저축은행이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무성 일가가 새한금고를 매각할 당시, 우리나라 금융계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신용금고 매각이 줄을 이었다. 대아금고, 한신금고 같은 곳이다. 당시 주인이 바뀐 신용금고 중 상당수는 김무성 일가가 가지고 있던 기업보다 규모가 크고 우량한 신용금고였다.
그런데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들 신용금고의 매각금액은 주당 6000원대에서 많아야 1만원대에 불과했다. 새한금고보다 여수신 규모가 2배 가까이 큰 한신금고가 주당 6800원에 매각된 것으로 확인된다.
무역업체 고려흥진은 (주)경보가 갖고 있는 대아상호신용금고 주식 26%(30만주)를 48억 원에 인수키로(주당 1만 6000원) 결정, 대아금고의 경영권을 확보하게 됐다고 11일 발표.
제일생명은 한신금고 주식매입대금으로 당초 신용관리기금이 제시한 최저가인 50억 원(주당 5000원)보다 18억 원이 높은 68억 원(주당 6800원)에 응찰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무성 일가는 가족기업인 새한금고를 3만 1554원에 팔았다. 액면가 5000원의 6배가 넘는 금액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거래된 상호신용금고 주식보다 작게는 3배, 많게는 5배 가량 높은 가격이었다. 매각금액 책정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취재진은 당시 매각금액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등을 묻기 위해 새한금고를 인수했던 교직원공제회에 연락했지만,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 교직원공제회 측은 “25년 전의 일이라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기억하는 직원도 없다”고 말했다. 대신 교직원공제회 측은 2011년 발행한 ‘한국교직원공제회 40년사(이하 40년사)’를 뉴스타파에 보내왔다. ‘40년사’에는 새한금고 매입 당시의 기록이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교직원공제회가 제2금융권 진출이라는 숙원을 이루기 위해 새한상호신용금고를 인수했다.
2001년 교원나라상호신용금고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적혀 있었고, “1994년 1월 26일, 교직원공제회 운영위원회가 상호신용금고 인수 계획안 및 운전자금 전용안을 의결했다”는 내용도 확인됐다.
이사장과 교육부장관이 지명하는 3명, 대의원 중에서 선출된 3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되는 교직원공제회 운영위원회가 “이사장과 감사에 대한 선출권, 각종 사업에 대한 의결권을 갖고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운영위원회가 사실상 교직원공제회의 최고의결기관’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새한금고를 인수할 당시의 운영위원은 누구였을까. 취재진은 ‘40년사’에 기록된, 김무성 일가가 소유했던 새한금고를 인수할 당시 교직원공제회 운영위원 명단을 확인해 봤다.
그런데 명단에서 낯익은 이름이 확인됐다. 바로 김무성 의원의 친누나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었다. 김 이사장의 재직 기간은 1992년 3월부터 1994년 7월까지로 나와 있었다.
결국 교직원공제회가 새한금고를 매입할 당시, 김무성 의원과 함께 새한금고의 등기이사였던 친누나 김문희 씨가 금고 매수인 측인 교직원공제회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동생인 김무성 의원이 새한금고 발행주식의 약 10%에 해당하는 8만주의 주식을 보유했던 것을 감안하면, 김문희 씨 역시 비슷한 규모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매각과정, 매각금액 결정 등과 관련된 의혹은 더욱 커진다.
취재진은 해명을 듣기 위해 먼저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 측에 연락하고 질의서를 보냈다. “누구의 소개나 추천으로 새한금고를 교직원공제회에 매각했는지”, “본인 소유 회사를 자신이 운영위원을 맡고 있던 교직원공제회에 팔아 넘긴 것이 이해충돌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매각금액이 부풀려진 것은 아닌지” 등을 묻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문희 이사장은 연락이 닿지 않았고, 대신 용문고등학교장이 전화로 김 이사장의 입장을 전했다.
이사장님의 연세가 올해 92세다. 건강이 안 좋아 요양중이고 치매로 인해 기억력도 좋지 못하다. 취재에 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뉴스타파는 김무성 의원에게도 질의서를 보냈다. “청와대 비서관 시절 공무원법이 금지하고 있는 영리기업 이사를 맡은 이유”, “새한금고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친누나인 김문희 씨가 매수주체인 교직원공제회의 최고의결권자인 사실을 알았는지” 등을 묻는 내용이었다.
김무성 의원 측은 질의서를 받고 며칠 뒤 서면답변을 보내왔다. 공무원법 위반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새한금고 이사로 활동하며 영리행위를 한 바 없고, 친누나와 관련된 문제는 몰랐다”는 내용이었다.
김무성 의원은 새한상호신용금고의 무보수, 비상근이사로 영리행위와 관련이 없다. 이사회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매각과정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새한상호신용금고 매각 당시 친누나인 김문희 이사장이 교직원공제회 운영위원이었던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김문희 이사장은 매각전인 1993년 7월 15일 운영위원에서 중도사임했다.
취재: 한상진
촬영: 신영철
편집: 정지성 김은
데이터: 최윤원 김강민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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