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감시

BBK는 누구 것인가? 이명박과 검찰의 원죄

2018년 03월 22일 19시 58분

검찰 수사에 따르면 다스의 주인은 이명박이었다. 다스의 설립자금이었던 도곡동 땅의 주인도 이명박으로 드러났다.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이 남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20년 가까운 세월 이명박과 관련됐던 논란이 종지부를 찍게 됐다. 도곡동 땅과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으로 드러나고 있는 지금, 뉴스타파는 이명박에게 여러 차례 면죄부를 줬던 과거 검찰, 그리고 10년 전 수사결과를 180도 뒤집은 지금의 검찰에게 새로운 질문 하나를 던진다. 그렇다면, BBK는 또 누구 것인가?

이명박은 이미 여러 번 도곡동 땅과  다스 관련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명박이 실소유주라는 의혹들이 넘쳤지만, 검찰은 번번이 이명박과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수사결과가 나올 때마다 이명박은 더 높은 곳으로 날아 올랐다. 2002년 첫 수사 이후엔 서울시장, 2007년 수사 직후엔 대통령이 됐다. 정치인 이명박에게 검찰은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과 같았다.

일명 BBK사건, 정확히 말하면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과 횡령사건은 2002년 벌어졌다. 김경준이 설립한 투자자문사 BBK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BBK가 상장사인 옵셔널벤처스를 인수, 5번의 불법 유상증자와 주가조작으로 400억 원 가까운 자금을 만들어 횡령했던 사건이다. 비슷한 시기 김경준과 이명박이 BBK의 지주회사 격인 LKe뱅크를 공동 창업한  사실, 이명박 소유로 추정됐던 도곡동 땅 매각대금이 다스를 거쳐 BBK로 흘러 들어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형 정치스캔들로 진화했다.

도곡동 땅과 다스, 그리고 BBK는 사실상 하나로 얽혀 있다. 도곡동 땅 매각대금 8억 원이 다스 설립비용으로 들어갔고, 다스는 BBK에 190억 원을 투자했다. 다스는 BBK의 최대 투자자였다. 돈의 흐름만 보면, 도곡동 땅의 주인이 다스를 거쳐 BBK의 사실상 주인이 되는 구조다. 같은 논리로 BBK에서 벌어진 주가조작과 횡령 범죄의 책임이 다스를 거쳐 도곡동 땅 주인에게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옵셔널 벤처스 주가조작에 쓰여진 돈은 도곡동 땅을 팔아 만든 돈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도곡동 땅 주인과 다스의 실제주인과 주가조작을 한 사람은 결국 같은 사람이라고 봐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주가조작과 횡령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범죄에 쓰여진 돈이 누구 것인가 하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BBK사건, 정확히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은 김경준이 기획했고, 이명박이 자금을 대 준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공범이 되는 것이죠.

안원구 /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은 도곡동 땅과 다스, 그리고 BBK 관련 의혹에 시달렸다. 같은 당의 경선 경쟁자였던 박근혜까지 나서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명박은 물러서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이후라도 BBK 관련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대통령직을 던지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검찰은 BBK사건을 2002년과 2007년 두 번 수사했다. 2002년에는 BBK사건의 피해자들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정치권에서 수사를 의뢰해 시작됐다. 핵심 쟁점은 이명박의 관련 또는 책임 여부였다. 두 번의 수사에서 검찰이 내린 결론은 대략 비슷했다. “이명박과의 관련성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명박은 오히려 검찰 수사를 통해 의혹을 벗었고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됐다. 특히 2007년 대선을 2주 앞둔 12월 5일, 검찰은 이명박에게 날개를 달아준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이명박 후보가 김경준과 주가조작을 공모했다고 볼 증거가 없어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했다.다스의 9년치 회계장부를 검토하고 자금 흐름을 면밀히 추적하는 등 노력했으나 다스가 이명박 후보의 것이란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김홍일 /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 2007년 12월 5일

10년 만에 뒤바뀐 검찰의 수사결과

검찰이 이명박에게 면죄부를 준 논리는 간단했다. 김경준이 설립한 BBK와 이명박이 김경준과 공동창업한 뒤 회장을 맡던 LKe뱅크를 서로 관련이 없는 회사로 분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하면 주가조작과 횡령의 책임이 옵셔널을 인수한 BBK와 김경준에만 돌아가게 된다.  서류상으로는 BBK가 옵셔널벤처스를 인수, 운영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논리였다.

검찰은 BBK와 LKe뱅크가 사무실, 전화, 심지어 인터넷뱅킹 비밀번호까지 공유하는 사실상 하나의 회사였고, 이명박과 그의 측근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일하는 공간에서 주가조작이 이뤄졌다는 증언과 정황이 쏟아졌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묵살했다. 2001년 이명박 측이 LKe뱅크 투자자였던 하나은행과 주고 받은 이메일에서 이명박 측 스스로 “LKe뱅크는 BBK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라고 밝힌 사실도 있었지만 “단순한 거짓말이었다”라며 무시했다. “BBK와 LKe뱅크 직원들은 회사 구분없이 같이 일했다”, “모두 이명박을 회장님이라 불렀고 이명박 회장 별장으로 야유회도 같이 갔다”는 직원들의 증언에도 눈을 감았다. 심지어 검찰은 이명박 본인이 공개 강연에서 내뱉은 말도  ‘말실수’라고 치부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공개돼 유명해진 광운대 특강 동영상이었다.

저는 요즘 제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금년(2000년) 1월 달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 사이버금융회사를 설립하고 있습니다. 6개월 전에 정부에 (인터넷증권회사를 위한) 설립허가신청서를 제출했고, 며칠 전에 예비허가가 났습니다.

이명박 특강 / 광운대 2000년 10월17일

검찰은 앞서 2002년에 있었던 수사 당시 이명박 측에서 협박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8년 3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김경준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BBK 전직 직원 오모 씨는 김경준 측과 이런 문답을 주고 받았다.

  • 김경준 변호인 : 증인은 "이명박 씨가 무서워 김경준 씨를 도울 수 없다"고 말하며 너무 무서워서 떨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 증인 오모 씨 : 그렇게 말한 적은 없고, 이명박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는데 그 쪽이 만나주지 않아서 피고인 측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사실 두려웠다.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 김경준 변호인 :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받은 사실이 있나?
  • 증인 오모 씨 : 경중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계속 "만나자, 만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다"는 식으로 김백준 측에서 이야기했다.

전 BBK 직원 오모 씨 법정 증인신문 / 2008년 3월

주목할 점은, 검찰이 당시 내세운 논리가 이명박이 혐의를 부인하며 내놓았던 주장과 이상하리만치 닮아있다는 것이다. 2007년 수사보다 4년이나 앞선 시점부터 이명박이 내놓았던 주장이었다. 이명박 측이 내세운 논리는 2003년 4월 이명박이 미국에서 김경준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당시 미국 법원에 낸 진술서를 통해 알 수 있다.

본인은 BBK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김경준과 합작으로 만든 LKe뱅크는 BBK와 별개의 회사다.

이명박 진술서 / 2003년 4월

그렇다면 BBK와 LKe뱅크는 별개의 회사고, 이명박은 BBK와 관련이 없다는 검찰과 이명박의 주장은 사실일까? 뉴스타파는 2002년과 2007년 진행된 수사와 재판 관련 서류들을 입수해 꼼꼼히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검찰, 이명박의 주장과 다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명박이 자기 회사라고 시인한 LKe뱅크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에 관여한 사실이 검찰기록에서 확인된 것이다.

“이명박 회사 LKe뱅크도 주가조작에 동원됐다”

검찰은 김경준에 대한 공소장 등에서 BBK가 2000년 말 옵셔널벤처스를 인수, 5번의 불법 유상증자와 주가조작으로 400억 원 가까운 돈을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주가조작이 이뤄진 시기는 2000년 12월부터 2001년 11월까지다. 공소장에 첨부된 김경준의 범죄일람표에는 당시 범죄에 이용된 은행과 증권 계좌 목록이 들어 있다. 그런데 계좌 목록에서 BBK, 그리고 BBK가 설립한 역외펀드 MAF와 함께 LKe뱅크의 이름이 확인된 것이다. 확인 결과 LKe뱅크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된 사례는 2000년 2월에 3건, 같은 해 4월에는 수십 건이었다.

이명박은 “2001년 4월 18일 LKe뱅크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따라서 회장직 사임 이후 벌어진 범죄는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을 폈고 검찰은 이를 받아줬다.

이명박 후보는 2000년 2월부터 김경준과 Lke뱅크, BBK를 동업하다 2001년 4월 헤어졌고 옵셔널벤처스 인수나 주가조작에는 관여한 바가 없다고 공범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이 후보가 옵셔널벤처스 인수 및 주식매매에 쓰인 돈을 제공했거나 그로 인한 이익을 받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달리 이 후보가 김경준과 공모했다는 증거를 인정할 수 없다.

김홍일 /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 2007년 12월 5일

그런데 이명박이 회장에서 사임하기 두 달 전에 이미 최소 3건의 주가조작에 이명박의 회사인 LKe뱅크 계좌가 동원된 사실이 김경준의 공소장에 버젓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명박이 회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측근인 김백준이 이명박의 역할을 대신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식적으로도 LKe뱅크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과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경준의 공소장에는 LKe뱅크가 “김경준이 관리하던 회사”라고만 적혀 있을 뿐, 주가조작과 횡령 과정에서 이명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검찰 스스로 자신들이 만든 공소장 내용을 부정했던 것이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 이명박 회사였던 LKe뱅크는 수사대상에서 배제됐다. LKe뱅크를 수사에서 배제한다는 것은 곧 이명박을 수사에서 뺀다는 얘기와 같았다. BBK사건 수사에 대해 ‘면죄부수사’, ‘정치수사’ 또는 ‘매춘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정치검찰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곧 대통령이 될 이명박의 눈치를 보며 수사를 했다고 본다. 그 저변에는 검찰의 이익과 개인의 영달을 생각한 거래가 깔려 있었다고 생각한다.

최강욱 / 변호사

모든 수사는 의심과 의혹을 뒷받침할 모든 자료와 증거를 모아가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증거와 증언을 모으는데 주력해야 한다. 그런데 MB에 관한 수사는 반대였다. 나온 증거를 빼는데 주력했다. 덧셈수사를 해야 하는데 뺄셈수사를 한 것이다.

박찬종 / 2008년 당시 김경준 변호인

검찰이 매춘행위를 한 사건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힐 의무도 있고 권한도 있는 검찰이 자신의 권한과 의무를 송두리째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 유력한 이명박에게 팔아버린 것이다.

이재화 / 변호사

2007년에 나는 법무연수원에 있었다. 당연히 수사팀에서 나를 부를 줄 알았고 기다렸다. 그런데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주임검사였던 김기동은 나와는 연수원 동기라 가까운 사이였다. 나를 부르지 않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속으로는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 그런가? 내가 수사에 관여하면 이명박에 불이익이 갈 것 같아 그런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김인원  / 2002년 당시 수사 검사

‘곰탕수사’로 유명한 특검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 된 이명박을 상대로 한 수사는 처음부터 기대할 것이 없었다. 결과도 예상대로 나왔다. 이명박은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2008년 김경준의 변호인이었던 박찬종은 특검 수사를 이렇게 비판했다.

(특검이) 2월 19일인가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발표 전날인가 삼청각에서 꼬리곰탕을 먹으면서 MB에 대한 신문을 진행했다. 사전에 MB 측에 질문사항을 보내고 답변을 받은 뒤 그대로 쳐서 끝내는 식이었다. 2시간 반 만에 끝났다. 당시 특검의 MB에 대한 신문은 형사소송법에서 말하는 피의자 신문방식과 태도가 아니었다. 특검 수사발표를 보면서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특검이 섰던 그 자리에 가서 ‘특검을 특검할 날이 온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내 말을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박찬종 / 2008년 당시 김경준 변호인

BBK 수사 검사들의 승승장구

검찰과 특검의 봐주기 수사로 도곡동 땅, 다스, 그리고 BBK를 둘러싼 의혹은 사라졌고 실체적 진실은 묻혔다. 그러나 2007년과 2008년 검찰과 특검에 참여했던 검사들은 이후 곳곳에서 승승장구했다. 뉴스타파는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의 명단을 확인해 이후 이들의 이력을 추적해 봤다. 확인된 사람은 28명, 2007년 검찰 수사에 참여한 사람이 12명, 2008년 특검에 참여한 사람이 16명이었다.

2007년 대검 차장으로 수사보고를 받는 자리에 있던 정동기는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자 인수위원회에 참여했고, 이명박 정부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최근까지 이명박의 변호인을 맡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났다. 수사 결과를 발표했던 김홍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대검 중수부장 등으로 영전했다. 수사팀을 이끌었던 최재경 특수1부장도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대검 중수부장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을 지냈다. 주임검사였던 김기동은 이명박 정부 내내 승진을 거듭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과 대검 부패특수단장을 지냈다. 검사장인 그는 현재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평검사로 수사팀에 참여했던 장영섭은 이명박 정부 민정비서관실의 행정관으로 변신했다.

특검에 참여한 사람들도 비슷했다. 파견검사였던 박정식은 대검 중수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거쳐 대검 반부패부장이 됐고, 역시 파견검사였던 조재빈, 유상범, 윤석열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대검 범죄정보담당관, 대검 중수과장 등을 지냈다. 윤석열은 현재 이명박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책임자다. 이들이 거친 자리는 대부분 검찰 내에서 요직으로 평가된다.

▲2007년 검찰의 BBK사건 수사라인에 있었던 검사들. 왼쪽 위부터 정동기 대검 차장,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김기동 서울중앙지검 검사

뉴스타파는 취재 과정에서 2007년 BBK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을 찾아가 해명을 요구했다. 자신들의 수사결과가 180도 뒤집힌 지금, 그들이 어떤 해명을 내놓을 지 궁금했다. 그들이 아직도 당시의 수사결과를 고수하고 있는지도 묻고 싶었다. 정동기 당시 대검차장, 김홍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 최재경 당시 수사팀장, 김기동 당시 주임검사였다. 그러나 최재경 전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요청하고 질문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최재경 변호사는 “2007년 수사가 결국 부실수사로 확인된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2007년 수사 당시 최선을 다 했다. 당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수사는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수사를 회피하거나 감춘 것은 없다. 현재 검찰수사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수사와 앞으로의 재판을 좀 더 지켜봤으면 좋겠다.

최재경 / 2007년 당시 BBK사건 수사팀장

취재가 마무리되어 가던 지난 19일, 대검찰청은 뉴스타파에 소포 하나를 보냈다. 소포를 보내면서 대검찰청은 “BBK사건을 수사했던 당시 검사들의 입장”이라는 뜻을 전했다. 소포 안에는 김경준에 대한 법원판결문과 검찰의 입장이 반영된 BBK사건 관련 책 한 권, 그리고 당시 수사팀 명의로 작성된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BBK 사건은 검찰과 특검의 결론과 사법부의 판단이 이미 내려진 사건이며, 현재 진행중인 다스와 도곡동 땅의 소유관계와 관련된 질의에 대해서는 중앙지검의 수사 내용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진행 중인 수사에 관하여 수사팀 밖에서 언급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2007년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및 횡령사건 수사팀

이명박의 범죄혐의를 덮었던 검찰과 반대로 혐의를 찾아낸 검찰, 시간이 흘렀을 뿐 이들은 모두 하나의 검찰일 뿐이다. 10년 만에 자신들이 내놓았던 결론을 스스로 뒤집은 검찰. 그들은 과연 공익의 대변자라며 여전히 자랑하고 웃을 수 있을까? BBK는 누구 것인가? 이명박에 대한 사법처리를 보면서 뉴스타파는 검찰에 다시 한번 묻는다.

취재 : 최문호 한상진 송원근 강민수 임보영 김지윤
촬영 : 최형석 김기철 오준식
편집 : 윤석민 이선영
CG : 정동우

관련뉴스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