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부정선거 확인하려고 국정원이 선관위 보안점검 했을까?
2024년 12월 20일 17시 25분
“일제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 민족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다.”
상식 선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문창극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의 과거 망언들이 잇달아 공개되면서 낙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럴 경우 현 정부가 지명한 4명의 총리 가운데 3명이 국회인사청문회도 거치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것이다.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전면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향후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월, 첫 총리 후보자로 김용준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명했다. 그러나 당시 김 후보자는 가장 기본적인 인사검증 항목들인 부동산 투기와 아들의 병역 비리, 그리고 고액의 변호사 수임료 등과 관련해 문제가 드러나자 불과 닷새 만에 자진 사퇴했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로 정홍원 총리가 사퇴한 지 한 달 만인 지난달 말, 이른바 ‘관피아 척결’의 적임자라며 안대희 전 대검 중수부장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지만 이번에도 전관예우에 따른 고액의 변호사 수임료 논란으로 엿새 만에 낙마했다.
청와대가 다시 2주 동안 절치부심 끝에 깜짝 카드로 내세운 총리 후보자는 중앙일보 주필 출신의 극우논객 문창극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불과 하루 만에 과거 극우 성향의 칼럼과 수준 미달의 대학 강의가 도마에 오른 데 이어 급기야 국민정서 상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과거의 망언 퍼레이드까지 언론에 공개됐다.
시민들은 어떻게 이런 인물이 총리가 될 수 있느냐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야당은 즉각적인 지명 철회를 요구하면서 파장은 확산되고 있다. 여당도 부적격 여론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분위기여서 문창극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 절차도 밟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태다.
▲ 박근혜 정부가 지명한 4명의 총리 후보자들. 왼쪽부터 김용준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정홍원 전 총리, 안대희 전 대검 중수부장, 문창극 현 총리 후보자.
비단 총리 후보자 뿐만 아니라 현 정부 들어 고위 공직 후보자의 낙마 사태는 도무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정부 출범 1년 3개월 동안 청문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하차한 고위공직자 후보는 두 명의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 10명이 넘는다.
대다수가 부동산 투기와 세금 탈루, 자녀 병역 비리 등 전통적인 인사검증 항목들에서 논란을 빚었다. 대부분의 의혹은 지명된 지 불과 며칠 안에 언론에 의해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정작 더 많은 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청와대에서는 이를 미리 걸러내지 못했던 것이다.
현 정부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 검증은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다. 비서실장이 인사위원장을 맡고, 국정기획수석과 민정수석, 정무수석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 검증 대상에 따라 경제수석이나 홍보수석, 미래전략수석 등 해당 분야 수석들이 참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나름대로 골격을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 정부들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참여정부에선 청와대에 인사수석실, 이명박 정부에선 인사비서관실이 있었지만 현 정부에서는 전담 부서가 없이 참모들의 협의체 방식으로 인사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 현 정부와 과거 정부의 인사검증시스템
청와대 내에 인사 전담 부서가 없는데 따른 가장 큰 문제는 인재를 추천하고 검증하는 방식과 절차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과거 국민의 정부부터 참여정부까지는 행정부에 중앙인사위원회를 두고 10만 명 이상의 인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은 뒤 인사 수요가 발생할 경우 후보군을 추천해 청와대에 전달하는 구조가 존재했다.
특히 참여정부 때는 청와대에 인사수석실을 만들어 인재 후보군에 대한 추천 기능을 주고 민정수석실에서 검증 기능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인사시스템을 2원화시켜 투명성을 높였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중앙인사위원회를 폐지하고 청와대 인사수석실을 인사비서관실로 축소시켜 인사검증 기구를 약화시켰다. 그 결과 이른바 ‘고소영 내각’으로 지칭되는 초기 인사 파동을 겪었고, 이후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0개 항목의 후보자 개인별 체크리스트와 청와대 내부 사전 청문회 등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와 비교할 때 지금의 청와대 인사시스템은 사실상 참모진 몇 명에만 의존하고 있는 셈이어서 인재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다는 대통령의 의중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은 구조로 돼 있다. 실제 인사철마다 청와대 내에서 “3배수로 보고가 됐는데 대통령 낙점이 늦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현 정부의 연이은 인사 참극과 관련해 또 하나 눈 여겨 볼 대목은 박 대통령의 오랜 원로 가신그룹인 이른바 ‘7인회’의 존재다. 7인회는 김기춘, 김용갑, 강창희, 현영대, 김용환, 최병렬, 안병훈 등 박정희 독재 시절부터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온 군인, 정치인, 언론인 그룹이다. 그 수장격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현 정부의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만큼 이들이 인사 문제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구시대의 철학과 가치가 인재 발탁의 기준이 되고 있는 정황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박정희 기념재단 이사장과 이사라는 관계로 얽혀 있다.
이런 식으로 정상적 인사시스템 바깥에서 인사에 개입하는 일이 잦아질 경우, 기존의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인사 실패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전관예우 문제가 안대희 후보자 경우에도 똑같이 재연된 점, 그리고 윤창중이라는 극우논객을 발탁했다가 실패하고도 또 다시 문창극을 택해 다시 파문을 키우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청와대 인사가 시스템 외부의 힘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조창현 한양대 석좌교수는 대통령의 인사권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표를 준 사람들 만이 아닌 전체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재를 뽑기 위해 인사시스템을 가동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박 대통령이 시스템이 아닌 일부 참모와 원로 그룹에만 의존하는 ‘나홀로 인사’를 고집할 경우 인사 참극은 게속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금 청와대가 해야 할 일은 시대착오적이고 공허한 ‘국가개조’가 아니라 ‘인사검증시스템’의 개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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