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의

양승태 대법원의 홍보 도구로 전락한 대학과 언론

2018년 08월 20일 22시 59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410개의 재판거래 의혹 문건들. 여기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우리 사법부의 흑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시에 KTX 여승무원, 쌍용차 노동자, 위안부 피해자 등이 사법부에 의해 어떻게 삶을 유린당했는지를 보여주는 처절한 기록이다.

뉴스타파는 상고법원에 목을 맨 양승태 대법원이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대학을 상대로 벌인 로비와 회유, 전두환을 따라한 사법부 장악 시도 행태를 취재해 3회에 걸쳐 싣는다.

1. 양승태 대법원의 홍보 도구로 전락한 대학과 언론
2. 국회의원들의 증언..."양승태 입법로비는 거의 사찰 수준"
3. 판사모임 해체공작...양승태 대법원의 '전두환' 따라하기
- 편집자 주

2015년 3월,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법원행정처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상고법원 설치의 경제적 효과 분석 연구’라는 이름의 용역.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연구를 맡은 이 연구는 ‘상고법원 설치의 사회적 편익 최대 69조 원’, ‘대법관 증원보다 상고법원 설치가 전체적으로 편익이 더 크다’는 내용을 결론으로 내놨다.

허 교수는 연구에서 상고법원 도입과 대법관 증원을 비교했는데, 비교 대상은 두 가지였다.  재판 당사자가 갖는 편익과 사회적 편익이었다. 당사자의 편익은 상고법원과 대법관 증원이 모두 비슷하지만, 사회적 편익 측면에서는 상고법원 도입의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 허 교수의 결론이었다. 허 교수의 계산법에 따르면 상고법원 설치 시의 사회적 편익은 최대 69조, 대법관 증원의 편익은 ‘0’이었다.  이 연구결과가 나온 뒤, 수많은 언론은 상고법원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양승태 대법원은 허 교수의 연구결과를 적극 활용했다.

2015년 6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6월 상고법원 홍보전략’이란 제목의 문건. “매일경제에 상고법원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기사를 실으라”는 내용과 함께 허 교수의 연구용역을 적극 활용하라고 적혀 있다. 매일경제는 얼마 뒤 약속이나 한 듯 ‘상고법원 도입, 경제효과 최대 70조'라는 제목의  기사를 출고했다.

그렇다면 허 교수의 연구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취재진은  허 교수가 이 연구를 주제발표했던 정책 토론회에 함께 참석했던 박현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자문을 요청했다. 박 교수는 허 교수 연구의 기본 논리 자체에 의문을 표시했다.

법치주의(Rule of Law)라는게 정말 수치화 하기 어렵거든요. 그걸 측정하는 이유는 그저 거칠게 참고하기 위한 것이지 그 숫자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법치주의(Rule of Law) 수치를 가지고 경제 성장을 따지는 그런 일은 경제학자들은 아무도 안해요.

박현 /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취재진은 허 교수에게 연락해 학계의 평가를 들려주고 입장을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허 교수는 해당 연구에 무리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 부분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매우 제한적인 분석이라고 단서를 달고 이야기를 시작을 했던 거고요. 상고법원을 만들면 당연히 그만큼 경제적 효과가 생긴다거나 그렇게 바로 연결이 되는 게 아니라…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상고법원 설치의 경제적 효과 분석 연구> 책임연구원

다만 허 교수는 “처음부터 사회적 편익이나 전체 편익에 대한 계산은 정확할 수 없다는 점을 연구 당시부터 밝혀왔지만, 의도와는 다른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고 말했다. 또 대법원이 처음부터 홍보를 염두에 두고 연구용역을 맡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취재진은 기사가 나온 과정도 취재했다. 법원행정처 문건에도 언급된 매일경제 기사를 작성한 해당 기자에게 먼저 보도경위를 물었다. 법원행정처와 일정한 교감하에 만들어진 기사가 아닌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허 교수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두 사람의 말이 달랐다. 해당 기자는 “용역보고서를 입수하고 허 교수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취재했다”고 했지만, 허 교수는 “기자의 연락을 받은 적도, 보고서를 보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기사가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었다.  

2015년 3월, 법원행정처는 또다른 정책연구용역을 한국공법학회에 의뢰했다. 상고법원과 관련한 헌법상 쟁점들을 따져보는 연구였다. 그런데 법원행정처의 용역제안 요청서를 확인해 보니 법원행정처는 처음부터 ‘상고법원 설치로 인해 발생할 변화들이 헌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결론으로 지정해 놓고 있었다. 쟁점을 따져봐야 할 연구를 시작도 하기 전에 가이드라인부터 정해준 것이다.

2015년 8월 마무리된 연구결과는 당연히 대법원이 제안요청서에서 지정한 내용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법원행정처는 2015년 6월 만든 홍보전략 문건에서 이 연구를 상고법원 홍보 기사에 사용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뉴스타파는 이 연구의 책임자였던 헌법학자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연락해 입장을 물었다. ‘법원행정처 요구에 따른 맞춤형 용역’인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김 교수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회에서 의뢰를 받아서 한 연구 용역이라 행정적인 공고 등의 부분은 기억이 잘 남아있지 않다. 학문적 입장에 따라서 연구 결론을 낸 것이지 발주처에서 요구했기 때문에 따라간 것은 아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언론을 꼼꼼하게 관리하고 동원했다. 가장 공을 들인 언론사는 조선일보였다. 공개된 410건의 법원행정처 문건 중 총 9건의 파일명에 ‘조선일보’가 등장할 정도다.

2015년 3월 31일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조선일보 기고문’이라는 제목의 문건. ‘대법원 정상화를 위한 출발점이 상고법원’이라는 내용이다. 그로부터 2주 뒤,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글이 오연천 울산대 총장의 이름으로 조선일보에 게재됐다.

뉴스타파는 이 글이 게재된 경위를 듣기 위해 오연천 총장에게 여러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오 총장 측은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초안을 (오연천 총장이) 수정해서 다시 법원행정처로 전달했다. 그 기고문이 어느 언론사에 실리는지 오 총장님은 모르고 있었다”는 입장을 전해 왔다.  

법원행정처와 조선일보의 거래 의혹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2015년 9월 20일 작성된 ‘조선일보 보도 요청사항’이라는 제목의 법원행정처의 문건.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상고사건 적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부각하는 기획 보도를 조선일보에 제안했다. ‘소송 소가 총액 5조 원, 당사자 12만 명을 토대로 계산한 경제 손실, 지연손해금으로 인한 당사자들의 문제와 대구 공군 비행장 사례’ 등을 활용한 기사를 쓰도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문건에 제시된 수치와 사례들은 한 달 후 조선일보의 기획기사에 그대로 사용됐다. 이런 제목이 달린 기사였다. 

- 대법관 '월화수목금금금' 일해도 벅찬데… 上告법원 표류?
- 은행이자 1%대인데 법정 연체이자는 15%

이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조선일보는 “법원행정처 문건은 행정처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조선일보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승태 대법원이 기획한 홍보성 기사를 그대로 보도한 언론사는 조선일보만이 아니었다. 법원행정처가 2014년 7월 작성한 문건을 보면 전 대법관 인터뷰, 선진국의 상고제도 소개 등이 동아일보의 특집기사 아이템으로 지정돼 있다. 심지어 “일주일에 2~3회 지속해서 동아일보와 협의를 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법원행정처와 실무협의를 진행하는 동아일보 관계자들의 이름까지 기재돼 있었다. 이 기획은 법원행정처가 지정한 날짜에 맞춰 동아일보에 특집기사 형태로 실렸다.

뉴스타파는 동아일보에 이 기사의 게재 경위를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 동아일보는 “법원행정처와 청탁 또는 광고비를 매개로 기사 협의를 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법률신문은 법원행정처가 2015년 6월 작성된 문건(6월 상고법원 홍보전략)에서 제안한 2회분의 ‘상고법원의 대안 시리즈’를 그대로 기사로 내보냈고, 같은 해 7월에 작성된 문건(홍보 RESTART팀 최종 보고)에 제시된 ‘사실심 충실화 특집보도' 역시 지정된 시기에 맞춰 그대로 실었다. 법률신문이 2015년 6월 22일 낸 사설 ‘상고법원 설치안 수정·보완 필요하다’도 법원행정처의 홍보전략에 딱 맞아 떨어지는 내용이었다.

취재진은 법률신문에도 질의서를 보내고 입장을 물었다. ‘상고법원 관련 기사를 두고 법률신문과 법원행정처 간에 어떠한 협의가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법률신문은 취재 및 보도 과정에서 법원행정처와 광고비를 매개로 협의한 적이 없었으며, 언론사의 윤리규정을 위반하거나 어떠한 불법행위를 한 사실이 없음을 명백하게 밝힌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언론사들은 모두 법원행정처와의 관련성을 모두 부정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 문건으로 시작된 ‘기사거래’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법원행정처 문건의 내용이 마치 지침처럼 작용하면서 그 내용대로 보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건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금전적인 대가 혹은 해당 언론사들이 재판 당사자라든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건 재판의 유불리에 영향을 미쳐주겠다는 조건으로 보도 요청이 이뤄졌고, 또 보도가 실제 이뤄진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강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위원장

취재 : 박경현
촬영 : 김기철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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