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택배 기사 김봉석과 이수헌

2022년 02월 28일 17시 20분

# 2020년 10월

김봉석 택배 기사를 알게 된 것은 재작년 가을이었다. 강릉에서 CJ대한통운 소속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던 그는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다. 당시만 해도 강원도 18개 시군에 택배 노조는 동해·삼척과 춘천, 원주 3곳밖에 없었다.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잇따르면서, 민주노총 택배 노조를 중심으로 분류인력 투입과 같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던 때였다. 자신들을 대변할 노조가 없는 지역의 택배 기사들은, 힘들게 찾아온 변화의 장에서조차 소외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강릉의 지역 기자였던 나는 2020년 10월의 어느 날, 김봉석 기사의 배송 차량에 올라탔다. 밤늦게까지 쉬지 못하는 그의 하루를 지켜보고 리포트를 제작했다. 그 뒤 김봉석 택배 기사는 김봉석 ‘지회장’이 됐다. 나와 취재팀은 CJ대한통운의 노조 가입 방해 의혹과 택배 대리점과 기사 사이 불공정 계약 등을 다룬 뉴스를 수차례 보도했다. 2021년 5월, 이직을 하게 돼 강릉을 떠난다는 소식을 전하자 김 지회장은 급하게 ‘치맥’을 제안했다. 어둑어둑한 밤, 마찬가지로 CJ대한통운 택배 기사인 그의 아내와 동료 이수헌 기사도 함께 모여 송별회를 해줬다. 맥주를 입에 대지 않던 김 지회장 아내는 술 취한 나를 자신의 배송 차량에 태워 자취방 앞에 내려줬다.  
2020년 10월의 어느 날, 밤늦게까지 물품 배송을 위해 달려가던 김봉석 택배 기사. (출처 : KBS)

# 2021년 6월

서울에 자리를 잡자마자 뉴스타파 기자 명함을 들고 강릉을 찾았다. 김봉석 지회장은 없었다. 별을 보며 출근해 별을 보며 퇴근하는 택배 일, 거기에다 노조 업무까지 더해지면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던 그였다. 대신 택배 노조 강원지부의 사무국장이 된 이수헌 택배 기사를 만났다. 김 지회장이 택배 기사를 관두고 경기도로 생활 터전을 옮길 예정이라고 했다. 택배노동자가 과로하지 않고 즐겁게 일했으면 하는 바람에 취재를 이어왔던 기자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결론이었다. 하지만 더는 그가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에 안도가 됐다. 
이수헌 사무국장의 제보를 토대로 전국의 여러 택배 대리점 소장들이 제2 노조, 일명 ‘어용 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총 택배 노조와의 단체교섭을 방해한 정황을 취재해 보도했다. 택배 기사와 대리점이 배송 계약을 맺고, 이 대리점이 대형 택배 회사와 다시 계약을 체결하는 ‘이중 구조’ 아래 벌어진 일이었다. 박석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대리점 소장과 택배 기사, 즉 마름과 소작농의 전쟁에서 한 걸음 떨어져 수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챙기는 지주는 바로 CJ대한통운을 비롯한 대형 택배 회사라고 말이다. “결정권이 있는 지주, 재벌 택배사들이 문제 해결을 해라. 직접 대화 창구에 나와라”고 덧붙였다.
2021년 6월, 택배 대리점 소장들이 일명 ‘어용 노조’ 결성에 개입한 사실에 대해 인터뷰하는 이수헌 택배 기사.
이 보도 전날인 지난해 6월 16일에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2차 사회적 합의가 체결됐다. 2022년부터 택배 기사를 분류작업에서 아예 제외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애초에 1차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나온 두 번째 합의였다. 사회적 합의 내용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단체협약에 명시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도 온전히 실현될지 알 수 없다는 문장도 기사에 담았다. 

# 2022년 1월

2022년이 시작된 지난 1월 3일, 오랜만에 만난 이수헌 사무국장의 낯빛은 좋지 않았다. 요즘 들어 몸이 붓고 살이 찐다고 했다. 주변 노조원들이 “노조 일 하다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걱정했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2차 사회적 합의의 내용은 노사 교섭이 난항을 겪으며 단체협약에 담기지 못했다. 합의를 이행해야 하는 날짜가 됐지만 여전히 택배 기사들은 분류작업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1월 24일 국토교통부는 1차 현장점검 결과 “점검지 25개소 중 분류인력이 전부 투입돼 택배 기사가 완전히 분류작업에서 배제된 곳은 7개소(28%)”였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쓰인 표준계약서와 별개로, CJ대한통운은 노조에 부속합의서를 내밀었다. 주 6일 근무와 당일 배송 원칙이 명시돼 있었다. CJ대한통운 노조는 이 부속합의서와 “택배 기사 처우 개선에 최우선적으로 활용”(2차 사회적 합의문)돼야 할 택배요금 인상분 배분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 사무국장을 만난 때는 이미 파업 일주일차. “1월 20일 전에 파업을 끝내는 게 목표”라고 했었다. 이후 그는 보름가량 노조의 단식 농성에 합류했다. 2월 28일 기준 노조의 파업은 60일을 넘겼고, 진경호 민주노총 택배 노조 위원장은 물과 소금도 먹지 않는 아사 단식을 이어오다 병원에 실려갔다. 

# 그리고, 바로 지금

CJ대한통운 본사 점거 농성과 같은 노조의 투쟁 방식, 주장에 대해서는 일부 진보 언론에서도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처럼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노조가 대화를 요구하는데도 입을 다물고 있는 CJ대한통운이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6월 2일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하청 노조인 대리점 소속 택배 기사 노조에 대해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판정했다. 택배 기사에 대한 CJ대한통운의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CJ대한통운이 택배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본 것이다. 
2021년 6월 중앙노동위원회가 배포한 보도참고자료 일부.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하청 노조인 택배 기사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CJ대한통운은 이 판정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동시에 CJ대한통운택배 대리점연합은 노조에 대해 “옆집 가서 밥상 내놓으라고 난동 부리는 모습”이라며 “진짜 대화를 원한다면 ‘진짜 사용자’인 대리점과 만나야 한다”고 보도자료에 밝혔다. 앞선 비유를 빌리자면 지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마름이 소작농과 대화하자고 나선 꼴이다. 고민 끝에 노조가 대리점연합의 대화 요구를 받아들이자 지주인 CJ대한통운 측은 “법이 인정하는 사용자인 대리점 측과 대화하겠다는 택배 노조 결정에 대해 환영한다”고 지난 23일 짧게 입장을 표명했다. 2020년 10월 “연이은 택배 기사님들의 사망에 책임을 통감하며 재발 방지 대책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대표이사가 대국민 사과까지 발표했던 CJ대한통운이다.
결국 노조와 대리점연합간 대화는 사흘 만에 중단됐다. 사회적 합의의 또 다른 주체인 정부와 여당은 이런 상황에도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2월 28일에야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는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했던 주체들에게 추가 사회적 대화를 요청했다. 택배 노조는 파업은 계속하되, CJ대한통운 본사 점거 농성은 해제한다고 밝혔다.

# 잊어서는 안 될 시간들

14년 동안 택배 기사였던 김봉석 씨는 화물 기사가 됐다. 화물 차량을 몰고 수도권 지역을 다닌다. 하지만 꿈속에서 그는 지금도 택배 노조 강릉지회의 투쟁 현장에 있다. 악몽은 계속되고 있다. 동료들을 두고 혼자 탈출했다는 죄책감에 가슴도 종종 아파온다고 했다. 노조 지회장을 할 당시 신장 투석까지 받을 정도로 쇠약해진 몸은 예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2020년의 그가 강릉에 택배 노조를 만든 이유는 자신을 포함한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막기 위함이었지만, 김 씨와 택배노동자들의 고통은 2022년에도 진행 중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지난 2월 23일 “택배 노조의 횡포는 불법 범죄 행위”라며 “강성 노조의 ‘떼법’ 횡포를 물리치겠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출처 : 안철수 후보 페이스북)
2년 전의 대다수 시민들은 집 현관문 앞에 택배 기사를 위한 간식을 준비해뒀었다. 코로나19로 집 밖을 나서지 못하게 된 이들은, 택배노동자를 내 이웃으로 여기고 택배노동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려고 했다. 7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이렇게 꾸려졌다. 택배업계와 정부 등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했던 배경이다.
이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최근 보수 언론은 물론, 심지어 일부 대선 후보를 통해 택배 노조의 폭력성과 파업으로 인한 불편만 연일 부각되고 있다. 변하지 않는 단 하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 과로로 인해 뇌출혈로 쓰러지거나 사망한 택배노동자들의 존재다. 이들의 삶은 아직, 다, 바뀌지 않았다.
제작진
취재박상희
디자인이도현
출판신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