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배 선언’과 뉴스타파
2019년 01월 17일 18시 05분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첫 재판이 오늘(24일) 오전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열린다. 양 회장은 폭행, 강요, 마약, 동물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성범죄 동영상 등 음란물 유통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다.
양 회장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폭행과 강요를 당한 피해자들은 물론 성폭행을 당한 전직 여직원도 있었다. 불법 도감청으로 사생활을 침해당한 사람, 심지어 수사기관에 양 회장의 범죄를 알렸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한 사람까지 나왔다.
<뉴스타파-설록-프레시안> 공동취재팀은 ‘양 회장의 피해자들’을 다시 만났다. 양진호 사건이 보도된 이후 지난 4개월간 이들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추가 취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피해자들이 더 확인됐다. ‘직장내 성희롱’ 정도의 용어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엽기적인 행각이 담긴 사진 수백장이었다. <공동취재팀>은 피해자 중 한 사람의 동의를 얻어 사진의 일부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직장 내 갑질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리고, 어떤 직장에서도 위력에 의한 갑질이 더 이상 자행되서는 안 된다는 점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양진호 회장에게 다양한 형태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양 회장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양 씨는 직원들을 폭행하거나 대마초를 강요하는 것 외에 여직원들을 상대로 강압적인 사진 촬영을 하는 식의 갑질을 일삼았다. <공동취재팀>은 최근 양 씨 소유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입수했는데, 이 안에서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갑질 사진 수백 장이 발견됐다. 대부분 10년 전인 2008년경 양 회장이 자기 회사 여직원들을 상대로 찍은 것들이었다.
양 회장은 사진 촬영이 취미라는 이유로 몇몇 여직원을 카메라 앞에 세운 후 각종 사진을 찍게 했다. 취재팀이 확보한 사진 중에는 양 회장이 흉기를 이용해 여직원을 협박하는 듯의 모습이 담긴 사진만 수십 장에 달했다. 양 회장이 한 여직원의 신체에 화장품으로 자신의 이름을 쓰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있었다. 양 씨가 스튜디오나 회사 근처 커피숍을 빌려 이 같은 사진을 찍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공동취재팀>과 인터뷰를 갖고 사진 공개에 동의한 한 피해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양 회장은 사진을 찍을 때 허락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본인 마음대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찍으러 나오라고 하면 나가서 찍혀야 했습니다. 주말에도 불려 나갔습니다. 이런 식의 사진 촬영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한 동료 여직원은 이런 문제로 힘들어 하다 결국은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이 피해자는 양 회장의 사진찍기 강요를 거부하는 것은 바로 퇴사나 마찬가지였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사진 찍기를 거부한다는 건, 곧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같이 느껴지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회사 내에서 양진호 회장은 한마디로 폭군 같은 존재였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양 회장이 죄값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양 회장의 폭행 동영상 공개에 동의했던 첫 피해자 A 씨. 폭행영상 보도 4개월만인 1월 초, <공동취재팀>은 서울 인근의 모처에서 A 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양 회장 회사를 그만둔 뒤 위디스크 고객 게시판에 장난 섞인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양 회장에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 폭행 사건 이후 A 씨는 외딴 섬으로 거처를 옮겼다.
A 씨는 여전히 폭행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맞는 영상을 아직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A 씨는 “양 회장이 자기가 지은 죄에 걸맞는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여러번 밝혔다.
인터뷰 이후 피해를 당했던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셔서 조금은 후련합니다. 하지만 양 회장에 대한 처벌이 끝난 게 아니라서 아직 해결된 건 아직 없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판사님들이 이 인터뷰를 본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양 회장이 돈이나 빽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공정하게 판결을 내려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요. 저같은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랍니다.
지난 2013년 위디스크 회장실 안에서 아내와의 불륜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양 회장에게 집단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했던 대학교수 B 씨. 그는 “마음 한 곳에 대못 같은 게 박힌 기분이었는데, 이제 조금은 억울함이 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B 씨는 여전히 지난 시간을 떠올리기를 주저했다. 인터뷰 도중 “아직까지 망망대해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듯 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양 회장이 구속되고 본인의 피해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삶이 제자리로 돌아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폭행을 당한 지 5년이나 흘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제 인생에서 지난 5년은 사실상 지워진 시간입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공황장애가 심해 길을 걸을 수도, 계단을 오르내릴 수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를 해야 하는 연구자로서도 잃어버린 시간이었습니다.
B 교수는 앞으로 진행될 양 회장 재판에 대해서는 이런 바람을 남겼다.
사법부에서는 일단 기소된 사안에 대해서는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엄벌에 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양 회장과 같은 행동을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메시지를 사법부가 분명히 전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양 회장은 평소 직원이 상추를 잘 씻지 못한다는 이유로 해고하거나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등 상식 밖의 갑질을 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1월에는 <공동취재팀>의 보도로 양 회장이 직원들을 상대로 불법 도감청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보도 직후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위디스크의 전직 직원들은 불법 도감청 사실을 보도를 본 뒤에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보도가 나간 뒤, 도감청 피해를 입은 전직 직원들은 양 회장에 대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공동취재팀>은 피해자 대표를 맡고 있는 위디스크 전 직원 C 씨를 만났다. 그는 “보도 이후 퇴사자들 중심으로 정보공유 메신저 대화방이 생겼다. 사생활이 ‘탈탈 털린 사건’이어서 전현직 직원들이 상당히 분노했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들이 양 회장에 대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 입장에서 보면 양진호 사건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이제서야 범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고, 이제 남은 숙제는 싸워야 이기는 겁니다.
양진호 회장이 소유, 운영했던 웹하드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주 수입원은 음란물 및 디지털성범죄 영상 불법유통이었다. <공동취재팀>은 최근 양 회장이 2010년경 위장회사 ‘누리진’을 세워 성범죄 영상물을 위디스크에 올리는 방식으로 월 1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양 회장은 웹하드 카르텔 및 음란물 유통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2월, <공동취재팀>과 집단 인터뷰를 가졌던 양 회장 회사의 핵심임원들. 양 회장으로부터 받은 협박과 허위진술·증거인멸 요구 등을 털어놓았던 그들이 최근 다시 뉴스타파 사무실을 찾았다. 그들은 대부분 <공동취재팀>과의 인터뷰가 공개된 직후 양진호 회사에서 해고됐다. “경찰 수사에서 양 회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게 해고 이유였다. 이들의 해고는 구속 수감된 양 회장이 여전히 ‘옥중경영’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도 해석된다.
위디스크의 핵심 임원에서 졸지에 해고자로 전락한 D 씨는 양 회장 소유 회사에서 벌어진 ‘디지털 성범죄 영상 유통’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 스스로 ‘내가 정말 몰랐던 일인가’ 하고 수차례 자문했습니다. 나는 몰랐지만 피해자가 분명히 있었던 사건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문을 하면서 상당히 괴로웠습니다. 내가 모른다고 피해자들이 없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방관자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피해자 분들께 정말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파일노리의 전직 임원이었던 E 씨 역시 “회사에 다니면서 비겁하게 살았다. 그 당시에는 우물 안에 있었는데, (회사를) 나와서 보니 대부분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피해자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지은 죄는 달게 받을 것이고 수사 기관에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취재 : 강혜인, 한상진
촬영 : 최형석
편집 : 윤석민
디자인 :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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