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월 8일 시작된 이래 30년 넘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수요시위. 최근 수요시위는 30년 가까이 시위가 열렸던 옛 일본대사관 앞이 아닌, 인근의 다른 장소에서 열리고 있다. ‘수요시위를 반대하는 집회’(이하 반대집회) 측이 낸 집회신고에 밀려 애초의 시위 장소를 잃어버린 것이다. ‘위안부는 가짜’, ‘정의연 해체’를 주장하는 반대집회자들은 지난 2020년 5월 이후부터 수요시위가 열리는 장소를 선점하고 있다. 이들이 수요시위를 방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요시위 밀어내기 작전 : 365일 24시간 대기하며 집회를 신고하라
수요시위 집회 장소가 옛 일본대사관 앞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밀려난 이유는 집회신고를 먼저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요시위를 주최하는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두세명 씩 짝을 이룬 사람들이 종로경찰서 내 집회신고 대기실에서 365일 24시간을 교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집회신고를 내는 곳은 옛 일본대사관 앞. 매주 수요시위가 벌어지던 장소다. 이들이 자리도 비우지 않고 24시간을 대기하며 집회신고를 하기 때문에, 수요시위는 자리를 잃고 떠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종로경찰서 집회신고 대기실에서 집회신고를 기다리고 있는 사랑제일교회 신도들의 모습
뉴스타파는 사실 확인을 위해 지난 7월 17일 밤 종로경찰서 집회신고 대기실을 찾았다. 취재진이 도착한 대기실에는 두 명의 중년 여성이 에어컨도 없는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을 사랑제일교회 신도로 소개한 여성은 “좌파에게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365일 풀가동으로 자리를 지킨다”고 했다. 좁은 데서 오랜 시간 대기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애국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힘들지 않다”고도 말했다.
문제는 이들은 수요시위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위임받은 신고서를 대신 제출하다보니 자신들이 어느 장소에 집회신고를 내는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위임받은 신고서 여러 장을 들고, 두 명씩 짝을 지어 하루 8시간씩 교대로 집회신고 대기실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집회신고 대기실을 지키고 있는 게 2년이 넘었다고 했다.
밤 11시가 되자 교대시간이 된 듯, 다른 대기자가 대기실에 들어섰다. 수요시위 반대집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가면을 쓴 채, 피해자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모욕한 여성이었다. 매주 반대집회에 참석하는 이 여성은, "어디에 집회 신고를 내러 온 거냐"며 취재진을 경계하고는 이후 집회신고가 이뤄질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수요시위 반대집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가면을 쓴 채, 피해자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모욕하는 집회 참가자.
밀리고 또 밀려… 결국 100걸음 밖으로
종로경찰서가 뉴스타파의 정보공개청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5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수요시위 장소 인근에 신고된 집회 건수는 모두 3400여 건이다. 수요시위가 열릴 때마다 평균 31건의 집회가 열린 셈이다. 그러나 실제 신고된 시간에 벌어지는 시위는 채 10건이 되지 않는다. 신고된 집회 건 수와 실제 개최된 집회 건 수가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로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똑같은 신고서를 반복해서 냈기 때문”이라며 “집회 장소 확보를 위해 소녀상 주변 지점은 물론이고, 인근의 다른 지점들에도 동일한 내용의 집회 신고서가 접수됐다”고 말했다. 즉, 집회를 신고하는 단체들이 1순위 뿐만 아니라 2, 3순위까지 확실히 차지하기 위해 똑같은 내용의 집회 신고서를 중복 접수한 것이다.
결국 수요시위는 다른 단체들에 집회 장소를 내주게 됐고, 30년 가까이 집회가 열렸던 옛 일본대사관 앞을 떠나야만 했다. 2020년 6월 24일, 수요시위는 처음으로 원래의 집회 장소가 아닌 ‘평화의 소녀상’ 뒤편으로 장소를 옮겼다. 2021년 11월 3일에는 다시 또 자리를 뺏겨 인근 연합뉴스 앞에서 집회를 열어야 했다. 이후 수요시위는 서머셋호텔 앞(2022.1.12), 더케이트윈타워 앞 인도(2022.3.2), 더케이트윈타워 앞 차도(2022.4.20)로 장소를 계속 옮겨야만 했다.
성희롱, 욕설, 전쟁 포격음과 비명소리… 평화의 거리를 뒤덮은 혐오
반대집회에는 ‘자유연대’를 포함해 ‘반일동상진실규명 공동대책위원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엄마부대’, ‘국민계몽운동본부’, ‘한미동맹강화국민운동본부’, ‘미디어워치독자모임’ 등의 단체들과 유튜버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희화하거나, 수요시위 참가자들에게 성희롱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등의 행동으로 수요시위를 방해하고 참가자들을 위협한다.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수요시위 현장에서 전쟁에서나 들릴법한 포격소리나 비명소리를 틀기도 하고, 수요시위 참가자들이 율동을 하거나 발언할 때는 자신들의 스피커 소리를 더 키워 수요시위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뒤덮는다. 경찰이 음량 조절을 요구하면 잠깐 줄였다가 다시 음량을 키우는 일도 반복된다. 수요시위에 참여한 수녀들을 향해 성적 비하 행위도 서슴치 않는다. 심지어 수요시위에 참석한 학생들을 향해서는 “세뇌당하고 있다"며 조롱하고 위협한다.
▲'위안부 사기 이제 그만'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수요시위 반대집회 참가자들
반대집회 중심에 있는 학자들
<반일 종족주의(2019)>의 공동 저자인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이우연 박사는 매주 반대집회에 참석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성노예가 아닌 성노동자라고 주장한다. 뉴스타파는 반대집회의 중심에 있는 이우연 박사에게 반대집회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이우연 박사는 “일제에 조선인 강제동원은 없었고, 일본인과 임금차별 역시 없었다"고 주장하며, “2017년 3월 용산역 광장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이 세워진 이후 더 이상의 역사왜곡을 두고볼 수 없어 ‘반일동상진실규명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게 되었고, 2019년 12월 4일 처음으로 소녀상 옆에서 반대집회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학자적 양심을 걸고 오래 전부터 반일 민족주의와 싸워야겠다는 분노가 발현된 것”이라며 이러한 행위들이 자신의 신념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 2019년 12월 4일 반일동상진실규명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의 첫집회가 열렸다
30년을 이어온 수요시위, 어디로 갈까?
지난 8월 10일, 올해로 10번째를 맞는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앞두고 수요시위가 열렸다.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3백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해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고, 피해자들의 용기를 기억했다. 같은 시각 이우연 박사를 비롯한 반대집회 참가자들도 수요시위 인근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날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피해자들을 자발적 성노동자라고 주장했다.
“수요시위는 피해자의 기억을 뺏으려는 시도에 맞서 기억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더 많은 사람들이 수요시위에 의미를 부여해줘야 지금처럼 혐오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이제 더이상 쫓겨다니는 수요시위가 아니다.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특정 장소에 고착되어 있지 않다. 이미 수요시위는 그걸 넘어섰다.”
-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혐오와 모욕에 둘러싸여 있는 수요시위.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이제 11명. 대부분 아흔이 넘은 나이와 병환으로 인해 거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피해자가 직접 참여해 일본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수요시위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요시위는 오늘을 넘어 또다른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또다른 길위에 선 수요시위는 지금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