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문건]③ 블랙요원 법정 증언 "쌍방울 주가조작, 다른 요원이 먼저 포착"

2024년 05월 22일 10시 56분

뉴스타파는 김성태 쌍방울그룹 회장의 '800만 달러 대북 송금' 사건 실체를 담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비밀 문건을 입수해 연속 보도하고 있다. 오늘(22일)은 국정원 비밀 문건을 작성한 국정원 요원 중 한 명인 김모 씨의 법정 증언을 처음 공개한다. 김 씨는 뉴스타파가 지난 20일 공개한 2급 비밀보고서 '○○96○○ 종결 계획'을 직접 작성했다.(관련 기사 : [국정원 문건]① 비밀보고서에 "쌍방울, 대북사업 내세워 주가조작" 정황)
신원과 임무가 베일에 가려진 블랙요원인 김 씨의 법정 증언은 국정원 보고서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은 지난해 5~6월 두 차례에 걸쳐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국정원에서 총 45건, 140쪽 분량의 비밀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지난해 6월 20일 김 씨는 대북 송금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검찰 요청으로 신문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날 김 씨는 자신이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을 국정원 협조자로 발탁한 이유와 안 씨에게 자신이 하달한 공작 임무와 보고서 작성 경위 및 배경 등을 자세하게 증언했다. 특히 쌍방울이 대북 사업을 이용한 주가 조작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어떻게 파악했고 검증했는지도 검사에게 설명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쌍방울의 주가 조작 움직임은 국정원의 다른 파트에서도 이미 포착한 상태였다.
국정원 블랙요원 김모씨가 작성한 2급 비밀문건 3쪽(2019.2.1. 생산)

고위 대북 라인 확보한 민간인 안부수 '협조자' 발탁 후 대북 공작

요원 김 씨에게 안부수 아태협 회장을 소개한 사람은 국정원의 퇴직 선배였다. 안 회장에게 구체적인 대북 라인이 있다고 들은 김 씨는 서울 강남의 국정원 안가에서 안부수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두 사람이 만난 뒤 북축의 어떤 인물들을 공작 대상으로 삼았는지는 2급 비밀 보고서 '○○96○○ 종결 계획' 3쪽에 시간 순으로 적혀 있다.
안부수는 중국 단둥의 조선족 사업가인 박대용을 통해서 북한 정찰총국 출신 이호남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이후 이호남이 안 씨에게 김성혜 통일전선부(이하 통전부) 책략실장을 소개해줬다. 북한의 통일전선부는 우리의 국정원과 통일부를 합친 개념이다. 남북 간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던 2018년에도 이호남과 김성혜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대북 사업가는 극히 드물었다. 이에 요원 김 씨는 안부수를 협조자로 발탁하고 통전부 실세인 김성혜 실장을 공작 타깃으로 삼았다. 안부수는 초기에는 국정원 특수활동비까지 받으면서 열심히 정보를 수집하고 보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원 김 씨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안부수는 '54', 이화영은 '48'이란 숫자로 표기됐다. 
국정원 블랙요원 김모 씨가 작성한 보고서 1쪽(2018.12.3. 생산)

국정원 요원 "협조자(안부수)가 쌍방울과 북측 만난 사실 숨겼다"

그런데 안부수가 쌍방울을 만나면서 모든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안부수는 2018년 11월 29일~12월 2일에 중국 심양(선양)에서 김성혜 통전부 실장과 박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원장 등을 만났다. 이 출장에 쌍방울 김성태 회장을 데리고 갔다. 그러나 안부수는 쌍방울과 김성태의 존재를 요원 김 씨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하는 대북 공작에 치명적인 허점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요원 김 씨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걸 밝히는 것은 사실 자괴감이 많이 듭니다. 첫 번째, 우리 업무에서 기밀성이 최고의 덕목인데, 안부수 회장하고 같이 일을 하면서 그게 지켜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자괴감이 들고, 두 번째는 바로 이 질문입니다. 저는 11. 29~12. 2로 기억을 하고 있는데 이때 안부수 회장이 저한테 쌍방울 김성태 회장과 (중국에) 같이 갔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나중에 알게 됩니다. 안부수 회장이 12월 중순에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그때 쌍방울도 갔었다는 얘기를 해가지고 그때부터 '좀 이상하게 벗어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시점입니다....(중략).... 제 고유의 사업 (김성혜를 타깃으로 한 대북공작)을 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제 3자가 들어오게 되면 힘들어지니까 쌍방울 쪽이랑 접촉을 안했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공판 국정원 요원 김 모 씨 증인신문 중 (2023.6.20)
안부수가 임의로 쌍방울 김성태 회장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국정원 요원 김 씨의 대북 공작에 차질이 생겼고, 이에 쌍방울 김성태 회장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주가 조작' 움직임 '교차'로 확인하고, 협조자 종결 처리 

김 씨는 2019년 2월 1일에 2급 비밀 문건 '○○96○○ 종결 계획'을 작성했다.  ○○96○○은 협조자 안부수를 뜻하고, 종결이란 표현은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의미다. 안부수가 국정원에 보고하지 않고 쌍방울 김성태를 중국 출장에 데려간 지 약 두 달 만이다. 보고서 4쪽에 종결 사유로  '○○96○○ 주변 인물(쌍방울 오너 김성태)의 주가 조작 및 국정원 연루 의혹 제기 가능성에 따른 사전 예방적 차원에서 종결(1.30.)'이라고 적었다. 
검사는 김 씨에게 이 문건을 제시하고 "김성태의 주가 조작 실행 가능성이란 것은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나요?"라고 물었다.
국정원 블랙요원 김모씨가 작성한 2급 비밀문건 4쪽(2019.2.1. 생산)
이에 김 씨는 의미심장한 답변을 한다. 대북 사업을 활용한 쌍방울의 주가 조작 계획을 국정원의 다른 동료에게 들었다는 것이다.
대북 사업 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어느 누군가가 얘기를 한 것을 제 동료 직원이 들어서 저한테 얘기를 해줍니다. '쌍방울하고 가까운 누군가를 만났더니 대북 사업도 하고 누구도 영입을 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러면 주가가 아마 올라갈 것이다'라는 얘기를 듣고 제가 주지하던 차에 1월 24일에 통일부 전 차관이었던 김형기 씨가 영입된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쌍방울인지 나노스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거기에서 대북 사업의 계획을 발표했을 겁니다. 그래서 주가가 실제로 뛰었고요...대북 사업가인 안부수 회장이 앞에서 끌고 있는 것을 내세워서 주가를 부양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판단도 했고요. 그렇다는 얘기를 제가 들은 바도 있어서 이 표현을 그대로 쓴 겁니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공판 국정원 요원 김 모 씨 증인신문 중 (2023.6.20)
요원 김 씨는 "대북 사업가와 대북 브로커는 종이 한 장 차이인데, 대북 사업가라고 칭해지는 자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으며 그 공간 자체가 그리 넓지 않아서 한 다리 건너면 다 알 수 있다"고도 말했다.
정리하면, 대북 사업을 매개로 한 쌍방울의 주가 부양 시도는 그 바닥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보였는데 요원 김 씨는 실제로 안부수와 김성태의 유착 행보, 국정원 동료의 전언, 쌍방울의 대북 관련 인재 영입과 갑자기 폭등한 주가 등을 교차로 확인해서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를 근거로 안부수의 협조자 지위도 종결했다는 얘기다. 

"대북사업가와 대북브로커는 종이 한 장 차이"...쌍방울 만나고 브로커 전락한 협조자

요원 김 씨에 따르면 국정원 보고서 내용은 협조자가 보고한 단순 '전언', 전언이 사실에 가까운지 확인한 '첩보', 교차로 검증을 거친 '정보'로 나뉜다. 김 씨는 법정에서 자신이 쓴 내용 중 무엇이 '전언'이고 무엇이 '첩보'인지 구분해서 검사에게 설명했다. 
국정원 협조자의 발탁과 해고는 김 씨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김 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국정원에는 이 같은 사안을 결정하는 일종의 '위원회'가 존재하는 걸로 보인다. 블랙요원 김 씨뿐만 아니라 국정원의 다른 파트에서도 이미 김성태와 안부수의 '주가 조작' 정황을 파악했기 때문에 이 내용은 첩보에서 정보로 격상됐고, 안부수에 대한 협조자 종결이 가능했던 것이다.
요원 김 씨는 2급 비밀 보고서 5쪽에 "當院(국정원)과의 과거 협조 관계 보안 유지는 물론 김성태의 물의 야기 가능성 사전 차단 필요성을 주지시키는 한편 향후 대북사업 추진 시 적법 절차 준수, ○○○ 등을 이해시킨 후 보안각서 징구하겠음"이라고 적었다.
국정원 블랙요원 김모씨가 작성한 2급 비밀문건 5쪽(2019.2.1. 생산)
하지만 이후 김성태와 안부수는 북측과 맺은 사업 협약서와 관계자 접촉 사실, 북한 그림 반입, 금지된 사치품 선물 등을 통일부에 신고하지 않았다. 위반 횟수가 너무 많아서 이에 대한 보고서가 나올 정도였다. 요원 김 씨는 안부수와 헤어진 후 손을 뗐지만, 국정원의 다른 요원들이 이들을 계속 모니터했다. 김 씨가 우려한 쌍방울 주가 조작 가능성이 실제로 실현된 정황을 담은 후속 보고서가 나온 것도 그러한 사실을 말해준다.(관련 기사 : [국정원 문건]② 쌍방울, 北 정찰총국 이호남과 '주가 조작' 공모 정황)
2019년 11월 28일자 국정원 보고서 문건. '쌍방울그룹 무단 대북접촉 및 제재저촉 행위로 물의 소지'란 제목이다. 블랙요원 김 씨가 아닌 국정원의 다른 요원이 작성했다. 검찰은 김 씨 외에 다른 요원들은 법정에 증인으로 부르지 않았다.
쌍방울 그룹이 이렇게 대북 제재까지 반복적으로 위반해가면서 필사적으로 대북 사업의 불씨를 살리려고 했던 이유는 뭘까. 국정원 보고서에 나오는 것처럼 대북 사업을 활용해 자사의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검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였을까. 분명한 것은 검찰은 2년 가까이 전자의 가능성을 전혀 노출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작진
취재봉지욱 최윤원 한상진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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