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3년 구형... 박정훈 최후 진술"책임있는 자 처벌하는 게 왜 잘못인가"
2024년 11월 21일 17시 40분
한 공기업이 특정 퇴직 관료와 한 달에 무려 천만 원짜리 자문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퇴직 관료는 자문에 응하기로 한 분야에 전문성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특혜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계약에 따라 쓰기로 한 자문보고서는 공기업 직원이 대신 써줬는데 자문료는 그대로 지급됐습니다. 특혜를 넘어 배임 범죄까지 될 수 있는 상황. 이 사건은 그대로 묻혀있다가 3년만에 내부감사에서 적발됐습니다. 하지만 내부감사에서도 검찰 수사에서도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다시 묻혀버렸습니다. 뉴스타파는 우리나라 굴지의 공기업 한국가스공사에서 일어난 이 믿기 힘든 사건의 이면을 추적해 3회에 걸쳐 보도합니다. - 편집자 주 |
지난 2015년, 한국가스공사(이하 가스공사)는 전직 고위 관료와 자문 계약을 체결했다. 자문 주제는 ‘북미 LNG 액화 사업 추진을 위한 사업환경 분석’. 자문역에 위촉된 사람은 외교부 1차관을 지내고 주영국 대사를 마지막으로 외교부에서 퇴직한 박석환 씨다. LNG 에너지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인물이었지만 가스공사는 어떤 이유에선지 북미 LNG 액화사업 추진과 관련해 그와 자문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2015년 9월부터 2016년 2월까지 6개월, 자문료는 월 천만 원이었다. 박 전 차관의 업무는 ‘북미 LNG 액화 사업 추진을 위한 사업환경 분석’ 자문에 응해 한국가스공사에 한 달에 한 번 ‘심층 분석 보고서’를 작성, 제출하는 것이었다.
가스공사와 박 전 차관이 맺은 영문 자문계약서에 따르면, 박석환이 가스공사에 제출하기로 한 보고서 세부 주제는 △북미 LNG 프로젝트 진행 현황, △국제유가 변경 등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에너지 산업 전망, △캐나다 정치환경 변화 고려한 에너지 정책 검토, △중남미 산유국의 에너지 정책 방향 연구 등이었다.
LNG 에너지 분야 근무 경력이나 전문성이 없는 전직 관료에게 한 달에 보고서 한 편을 작성하는 대가로 월 천만 원의 자문료를 지급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계약이다. 하지만 이 계약은 별 문제 없이 지나갔다. 박석환 전 차관과 계약을 가스공사 본사가 아닌 캐나다 캘거리에 있는 가스공사 자회사를 통해(자회사의 의사에 반해) 체결했고 당시엔 이 문제가 노출되지 않았다.(이 부분은 뒤에 다시 다룬다.)
하지만 계약 이행 과정에서 상상하기 힘든 더 큰 문제가 있었다는 게 드러났다. 박석환 전 차관은 계약 내용과는 달리 자문보고서를 단 한 건도 직접 쓰지 않았다. 박 전 차관이 쓰기로 한 자문 보고서는 전부 가스공사 내부에서 생산됐다. 한 달에 한 건씩 모두 6건을 전부 가스공사와 자회사 직원들이 대신 썼다. 가스공사 직원들이 대신 작성한 자문 보고서의 주제는, 계약서에 박 전 차관이 쓰기로 세부 주제와 일치한다.
박석환이 계약서 내용을 이행하지 않았는데도 자문료는 지급됐다. 가스공사는 박 전 차관에게 한 달에 1000만 원씩, 마지막 달에는 500만 원을 지급해 모두 5500만 원을 지급했다. 박 전 차관은 한 건의 보고서를 쓰지 않고 이 돈을 받았다.
뉴스타파가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실 등을 통해 확보한 가스공사 내부 감사 자료를 보면, 이 자문계약과 관련한 당시 가스공사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가스공사는 자문계약 체결 3년 뒤인 2018년, 해외법인을 상대로 한 내부 감사 과정에서 박 전 차관 자문계약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뉴스타파는 당시 가스공사 감사실이 이 사건 감사를 진행하며 관계 임직원에게 받은 사건 관련 문답서, 확인서 등의 자료를 다량 확보했다.
가스공사는 이 자문 계약을 본사가 아닌 해외 법인을 앞세워 체결했다. 가스공사는 캐나다, 호주, 이라크 두바이 등에 해외 법인을 두고 있다. 가스공사가 100% 지분을 소유한 자회사 격 법인이다.
박 전 차관과 문제의 자문 계약을 맺은 해외 법인은 캐나다 캘거리에 위치한 ‘KCLNG(Kogas Canada LNG)’라는 곳이다. 가스공사 본사는 박 전 차관과 자문계약을 체결하라고 KCLNG측에 요청했다.
KCLNG는 처음에는 거절했다. 이는 KCLNG에서 이 자문계약 실무를 담당했던 안 모 차장이 가스공사 감사실에 제출한 문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 차장은 가스공사가 이메일로 보낸 해당 자문 계약 요청을 받고 처음에는 “자문 계약을 체결할 정당성이 없다"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안 차장은 이 이메일에서 “나중에 외부 감독에 대응할 수 없고, (자문계약이) 당연히 해야 하는 업무면 본사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굳이 현지(해외) 법인에서 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며 KCLNG는 계약을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가스공사는 집요했다. 가스공사 본사에서 박 전 차관의 계약 업무 전반을 관리한 실무 부서는 본사 해외사업본부 산하 ‘캐나다LNG사업팀’이었다. KCLNG 안 차장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도 캐나다LNG사업팀의 송 모 차장이었다. 송 차장은 안 차장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계약료 1천만 원, 계약 기간 6개월로 박 전 차관과 자문 계약 체결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결국 거듭된 설득 끝에 KCLNG는 박 전 차관과 자문계약을 시행했다. 이후 안 차장은 가스공사 감사실과의 문답 과정에서 자문 계약을 결국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송 차장이 자문 계약 관련 제반 실무 행위를 캐나다LNG사업팀이 할 예정이고 KCLNG에서는 대금을 지급하는 역무만 수행하면 된다고 해 자문계약을 시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송 차장의 말처럼, 박 전 차관이 써야 할 자문 보고서를 대신 쓴 건 캐나다LNG사업팀 직원들이었다. 6건 중 4건의 보고서를 캐나다LNG사업팀 직원들이 작성했다. 나머지 2건은 KCLNG 직원이 썼다. 캐나다LNG사업팀에서 보고서 ‘대필' 지시를 받은 일부 직원들은 이후 감사 과정에서 “2015년 9월쯤 캐나다LNG사업팀 팀장이 팀 전체 회의를 소집해 팀 직원들에게 박 전 차관 대신 보고서를 대필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보고서 대필 지시가 내려졌던 캐나다LNG사업팀의 회의 분위기는 살벌했다고 한다. 한 직원은 해당 지시를 받고 “왜 박 전 차관이 써야 할 자문보고서를 우리가 대신 써야 하느냐"며 “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팀장은 “미안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며 팀원들을 설득했다. 감사 과정에 나온 직원들의 진술에 따르면 회의 당시 한 직원은 대필 지시에 항의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송 차장 역시 부당한 지시를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감사실과의 문답에서 송 차장은, 캐나다LNG사업팀 김 모 팀장에게서 해당 지시를 받을 당시 “정상적이지 않은 용역 추진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진 감사 과정에서 “계약 금액과 계약 기간 등이 미리 정해져서 추진된 계약을 그동안 본 적이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송 차장이 이런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박 전 차관과 자문계약을 실시한 배경에는, 결국 가스공사 본사 경영진이 있었다. 송 차장은 김 팀장이 자신에게 ‘경영진에서 내려온 지시'라고 언급하며 이 자문계약을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고 감사 과정에서 밝혔다. 김 팀장 역시 감사 과정에서 “해외사업본부장(임 모 씨)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면서 “임 본부장이 자문 기간과 자문료 등을 정해서 지시했다. 임 본부장은 동 자문계약의 수행자와 계약 조건은 이승훈 사장(당시 가스공사 사장)이 결정한 사항이며, 이를 기획본부장(김 모 씨)로부터 전달받았다고 했다"고 밝혔다.
지시 선상에서 캐나다LNG사업팀 위에 있었던, LNG사업처장(윤 모 씨) 역시 가스공사 감사실과의 문답 과정에서 “해외사업본부장이 1급 이상 주례 회의시 전 외교관 출신 박석환과 자문계약 추진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임 본부장이 자문계약을 독촉했고, 그에 따라 캐나다LNG사업팀 김 팀장에게 빨리 (자문계약을) 할 수 있으면 추진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본사 경영진은 책임을 회피했다. 이승훈 전 사장의 지시를 공사 직원들에게 전달한 당시 기획본부장 김 씨와 해외사업본부장 임 씨는 자신들은 사장의 지시를 받았을 뿐이라고 감사 과정에서 항변했다. 김 본부장은 자신은 어느날 이 전 사장이 자신을 찾아 해당 자문계약 건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해외사업본부장 임 씨는 “김 본부장으로부터 사장 지시를 전달받았다”며 “기획본부장은 사장이 박 전 차관과 자문계약을 했으면 좋겠다는 언급을 했다"고 말했다.
이 전 사장은 감사 과정에서 박 전 차관과 자문계약을 한 건 “경영상의 판단’이었다고 주장했다. 감사실이 “박 전 차관과 수행하는 자문 계약을 통해 공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냐”고 묻자 이 전 사장은 “고급 현지 시장 정보’를 기대했다고 했다. 그는 공사 직원들이 박 전 차관 대신 자문보고서를 대신 쓰게 된 데 대해서는 “지시 이후 세세하게 보고를 받지 않아 직원들이 대필한 것은 몰랐다"고 주장했고, “애초 판단과 달리 일이 전개돼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지난 2018년, 한국가스공사는 자체 감사를 마친 뒤 이승훈 전 사장을 업무상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가스공사는 고발장에 “이 전 사장이 ‘외부의 청탁을 받고' 자문계약 건을 하위 직원들에게 지시했다"고 적시했다. 이 전 사장은 자문계약의 배경을 묻는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박 전 차관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자문계약을 실시하고 나서야 박 전 차관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가스공사 최고 책임자였던 이승훈 전 사장은 박석환 전 차관에게 황당한 특혜를 주는 자문 계약을 체결했을까. 이 배경에는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가스공사 관리감독 정부 부처인 산업부의 ‘입김’이 있었다.(2편에서 계속)
취재 | 강혜인 |
촬영 | 최형석 이상찬 오준식 |
편집 | 박서영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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