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림파괴는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이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 주관으로 전 세계 39개 언론사, 140여 명의 언론인들과 함께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삼림파괴 문제를 취재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수개월간 진행한 국제협업 프로젝트 ‘삼림파괴 주식회사’(Deforestation Inc.)의 결과물을 세계 각국 언론사와 함께 차례로 보도한다. -편집자 주
포스코인터내셔널, 대상홀딩스, LX인터내셔널, JC 케미칼. 이들은 모두 팜유 플랜테이션 사업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다. 이들이 운영하는 팜유 플랜테이션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 정부가 지원한 수백억 원대 정책금융의 수혜자다. 그리고 이들은 플랜테이션 사업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현지 환경을 파괴한 의혹으로 국내외 인권 및 환경단체의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에 저리의 융자를 해주는 정부 기관은 산림청과 농림축산식품부다. 이 두 정부 기관이 지난 10년 동안 해외에서 팜유 사업을 하는 대기업에 지원한 융자 금액은 총 860억 원에 달한다.
한국 기업의 해외 팜유 나무 조림 사업을 먼저 지원하기 시작한 기관은 산림청이다. 산림청은 2010년부터 해외 팜유 사업을 지원했다. ‘해외산림자원개발 융자지원’을 통해서다. 산림청의 ‘해외산림자원개발 융자지원 사업자 모집 공고’에는 융자 지원 조건이 상세히 나온다.
팜유 나무 조림 사업에 해당하는 ‘바이오에너지 조림 사업’의 경우 연리 1.5퍼센트에, 사업비용의 60퍼센트까지 지원했다.
뉴스타파가 국회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LX인터내셔널, 대상홀딩스, JC케미칼,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총 4개 기업이 산림청에서 팜유 나무 조림 사업 지원 융자를 받았다.
융자 이후 LX인터내셔널 등 수혜 팜유 농장을 대상으로 삼림파괴 및 환경오염 여부와 관련한 현지실사나 모니터링을 실시했냐는 뉴스타파의 질문에 산림청은 “대출 실행 이후 용도, 대출조건, 이행상황 등 실적을 모니터링”한다고 답했다.
▲ 산림청이 인도네시아에서 팜유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는 한국 기업에 지원한 해외농업자원개발지원융자
농림축산식품부는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해외농업자원 개발융자’를 집행한다. 해외 팜유 농업이 이 융자 지원에 포함된 것은 2014년부터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해외농업자원개발 융자 지원’의 경우 대기업에는 사업비용의 50%, 중소기업에는 사업비용의 70%까지를 지원한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농어촌공사는 지난 10년 동안 포스코인터내셔널에 380억 원, JC케미칼에 115억 원 가량을 대출해줬다.
대출 이후 수혜 팜유 기업인 포스코인터내셔널과 JC케미칼에 대해 현지 실사나 모니터링을 실시했는지 여부를 묻자, 농어촌공사는 현지 실사는 “‘토지 이용 현황’ 등 융자가 목적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를 위주로 실시된다”고 답했다.
▲ 한국농어촌공사가 포스코인터내셔널과 JC케미칼의 인도네시아에서 팜유 플랜테이션 사업에 지원한 융자
산림청과 농어촌공사의 정책금융 지원을 받은 포스코인터내셔널, 대상 등 한국 대기업은 인도네시아에서 대규모 팜유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며 환경파괴와 인권침해를 일으켜 국제 환경 및 인권 단체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먼저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인도네시아 파푸아주에서 ‘비오인티아그린도’(PT. Bio Inti Agrindo 또는 PT. BIA)라는 팜유 플랜테이션을 운영한다. 총 430억 원에 달하는 정부 융자를 지원 받은 이 회사는 팜유 농장 부지 확보 단계부터 현지 주민과 불공정 계약으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또 삼림 파괴와 수질 오염 등으로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두 번째로 많은 정부 융자 지원을 받은 업체는 바이오연료를 생산하는 JC케미칼이다. JC케미칼은 인도네시아 동부 칼리만탄에 ‘니아가마스 게밀랑’(PT. Niagamas Gemilang)을 운영한다. 산림청과 농어촌공사로부터 총 200억 원의 융자를 받았다. '니아가마스 게밀랑'도 지역 주민과 토지 분쟁으로 갈등을 빚었고, 강을 오염시킨 의혹을 받는다.
산림청의 융자 지원을 받은 LX인터내셔널(구 LG상사)은 인도네시아 서부 칼리만탄에서 ‘파르나 아그로마스’(PT. Parna Agromas), ‘그랜드우타마 만디리’(PT. Grand Utama Mandiri), ‘틴틴보욕사윗막무르’(PT. Tintin Boyok Sawit Makmur) 등을 운영한다. 환경단체 ‘체인리액션리서치’에 따르면 LX인터내셔널의 플랜테이션도 강 오염과 농장 개간을 위한 방화를 저지른 의혹을 받았다.
산림청 융자를 받은 대상홀딩스도 서부 칼리만탄에서 '신탕 라야'(PT. Sintang Raya)를 운영한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도 팜유 농장을 확장하며 지역 주민들과 심한 마찰을 빚었다. 농장 확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시위를 벌이자 정부가 개입해 마을 주민들을 체포하고 감금한 바 있다.
국제 환경 및 인권단체들의 꾸준한 문제 제기에도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한국 대기업이 정부 융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산림청과 농어촌공사가 융자 심사 과정에서 환경 파괴 등의 문제는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산림청과 농어촌공사에 팜유 나무 조림사업 융자 지급 시 현지 환경파괴 문제를 고려하는지를 물었다. 산림청은 “여러 이슈와 논란 등으로 (팜유에 대한) 융자 지원이 축소되었고 실제 2019년 이후 융자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실제 산림청은 지난해부터 ‘산림청 종합자금 집행지침’을 개정해 해외 팜유 나무 조림 사업을 정책 융자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면 농식품부 관계자는 “팜유는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팜유에 대한 융자 지원을 중단할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융자 지원 시 환경이나 인권 등의 요소를 고려하냐는 뉴스타파의 질문에 농어촌공사는 “향후 필요 시 환경 등 윤리 경영에 대한 부분을 평가 기준에 추가하는 것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인도네시아에서 팜유 농장 개간으로 사라지는 열대림 (출처: Mighty Earth)
▲ 열대림이 베어진 자리에 심겨지는 기름야자(팜유) 나무 묘목
뉴스타파는 산림청과 농어촌공사에서 융자를 받은 기업에도 질의서를 보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강물 오염에 대해 “사업장에서 사용한 용수는 강으로 배출할 수 없게 설계되었다”며 “인근 하천이나 지하수원이 오염되지 않도록 관리한다”고 말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또 팜유 생산 시 새로운 삼림 및 이탄지를 파괴하지 않고 주민을 착취하지 않겠다는 ‘NDPE’(No Deforestation No Peat No Exploitation) 정책을 지난 2020년 선언했다고 밝혔다. 지속가능한 팜유 생산 협의체 ‘RSPO’(Round Table on Sustainable Palm Oil) 인증도 획득했다고 말했다.
JC케미칼은 “강물 오염은 빗물이 범람해 발생한 것이지만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했다”라고 해명했다.
LX인터내셔널은 “강물 오염은 당시 역학조사 결과 환경 오염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일로 밝혀졌다”고 해명했다. LX인터내셔널은 또 ‘파르나 아그로마스’는 RSPO 최종 심사만 남겨두고 있어 올해 상반기 취득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틴틴보욕사윗 및 그랜드우타마만디리도 지난해 ISPO(인도네시아 정부 발급 친환경 인증 팜유)를 획득했다”고 말했다.
대상홀딩스는 신탕라야가 2017년 인도네시아 정부가 주는 지속가능 팜유 인증인 ‘ISPO’(Indonesia Sustainable Palm Oil)를 받았다며 “RSPO 인증과 NDPE 채택을 위해 해당 기준에 맞춰 투자와 관리를 진행 중”이고, “현재 진행 중인 기존 계획 외 추가 개발 계획이나 확장 계획은 없다”라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대기업의 해외 팜유 사업에 저리의 정책금융을 지원하는 이유를 “국내외 시장 및 공급망 상황과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감안할 때 팜유는 개발 및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농어촌공사 융자를 받은 기업 가운데 국내로 팜유를 반입한 경우는 아직 없다.
또 융자를 받은 산림 자원과 곡물은 비상시 반입 명령을 받는 조건이 붙는다. 그러나 실제 팜유 비상 반입 명령이 내려진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지난해 3월 팜유 가격이 급등하며 톤(t)당 1,400달러를 넘었을 때도 비상 반입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뉴스타파와 통화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담당 부서에서 비상 상황이라고까지는 판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