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계열사 사장 신탁회사 만들어 해외 아파트 거래

2013년 05월 27일 10시 30분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해변의 한 고급 아파트 야외 수영장과 골프 연습장 등의 부대시설을 자랑합니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탁 트인 입지조건에다 고급 가구를 갖춰 한눈에도 호화롭게 보입니다. 30평형대는 7억 원, 60평대는 20억 원이 넘습니다.

특이한 것은 전체 92가구 중 절반인 46가구가 개인이 아닌 회사 소유라는 점입니다. 그것도 일반적인 회사로 보기 어려운 투자펀드나 가족 신탁 등의 명의로 돼 있습니다.

여기엔 한국의 한 재벌회사 이름도 보입니다. 29C호와 18C호 등 두 채가 한화그룹의 일본 현지법인인 한화 재팬 소유입니다.

[한화그룹 홍보실]
"두 채래요, 두 채. 직원들 복리후생, 우리 말고...우린 상관 없는 거고."

일본에서 하와이까지 거리는 6500km. 직원들의 복리후생 등을 위해 하와이의 고급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은 그리 설득력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한화재팬은 과연 이 아파트를 어떻게 사들이게 된 것일까?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입수한 조세피난처 법인설립대행업체 PTN의 내부 기록에서 이 의문을 풀 수 있는 단서를 찾았습니다.

PTN과 고객관리업체가 주고받은 전자메일입니다. 대표적 조세피난처인 쿡아일랜드에 설립된 파이브 스타 아쿠 트러스트라는 신탁회사의 자산처분 수익금 배분 문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5월 하와이 호놀룰루시 우라쿠 타워 아파트 29C와 18C호를 매각해 제반 거래 비용을 제하고도 235만 494달러의 수익을 남겼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매각 자산은 바로 한화그룹의 일본현지법인인 한화재팬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입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이 아파트 거래 기록을 추적한 결과 한화재팬은 파이브 스타 아쿠 트러스트가 이 자산을 처분한 때와 동일한 시점에 이 아파트를 매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매도자는 파이브 스타 아쿠 리미티드, 바로 파이브 스타 아쿠 트러스타와 연결된 회사입니다. 이 두 파이브 스타 아쿠는 지난 2006년 쿡아일랜드 정부가 돈세탁방지협약에 가입하는 시점에 폐쇄됩니다.

금융전문가들은 FIVE STAR AKU 트러스트가 전형적으로 탈세와 자산해외은익을 목적으로 만든 페이퍼 컴퍼니와 유사한 형태라고 말합니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Five Star Aku Trust는 절세 혹은 탈세, 이혼소송에 따른 위자료 부담 회피, 기업 파산의 채무 부담 회피를 위해 자기 자산을 숨겨놓는, 보호하는 상품입니다. 거기에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좋지 않은 동기가 숨겨져 있다고 추정이 가능한 거죠."
(그 좋지 않은 동기라는 게 뭐죠?)
"탈세 ,정당한 채무부담 회피 이와 같은 동기들 가운데 하나겠죠."

파이브 스타 아쿠 트러스트는 지난 96년 2월 쿡아일랜드 자산호보신탁 형태로 설립됐습니다. 신탁자, 보호자, 수익자는 모두 황용득이라는 한국이름입니다. 주소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으로 기재돼 있습니다. 

황씨의 정체를 추적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현재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역사 사장이었습니다. 그는 80년대와 90년대 그룹 회장 비서실과 도쿄지사, 해외사업담당 이사 등을 지냈습니다.

어렵사리 서울역에 있는 한화역사에서 그를 만나 쿡아일랜드에 신탁을 만든 이유와 하와이 고급 아파트 매매 경위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황 사장은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황용득 한화역사 대표이사]
(쿡아일랜드에 있는 아쿠 트러스트에 대해서 취재를 하려고요.)
"뭐요? 무슨 소리 하세요. 난 전혀 관계 없는데..."
(아 그래요. 사장님 명의로 쿡아일랜드에 아쿠 트러스트를 개설한 기록이 있던데...)
"아니, 이거 뭐에요. 이렇게 갑자기 오셔서 이렇게 하는 게 어디 있어요. 난 무슨 얘긴지 전혀 모르는데 왜 이러세요."
(사장님 이름으로 되어 있던데요.)
"무슨 소리에요."

하지만 그의 이름은 PTN의 파이브 스타 아쿠 트러스트 관련 자료에 수없이 나타납니다. 또 하와이 아파트 거래 기록에도 황사장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뉴스타파의 조사 결과 현재 한화재팬이 소유하고 있는 우라쿠 타워 아파트 18C호에 대해 지난 1993년 78만 달러의 근저당권이 황 사장 명의로 설정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당시 이 아파트의 서류상 소유자는 현지의 한 부동산업체, 하지만 근저당 설정으로 실제 소유권을 확보해 둔 것입니다. 당시 황사장은 한화 도쿄지사 직원이었고, 나이도 39살에 불과했습니다. 정황상 황사장의 개인 재산이라기보다는 진짜 소유주를 가려주기 위해 명의를 빌려줬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3년 뒤인 1996년 황씨가 파이브 스타 아쿠 트러스트를 만든 직후 연결 회사인 파이브 스타 아쿠 리미티드가 이 아파트를 사들입니다. 이듬해인 1997년에는 29C호까지 매수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002년, 파이브 스타 아쿠 트러스트의 신탁자산인이 아파트 2채를 한화그룹 돈으로 사준 것입니다.

235만 달러가 넘는 신탁자산 처분수익금은 정관상 신탁 수익자로 등재된 황 사장 앞으로 갔어야 합니다. 과연 실제 그랬을까? 뉴스타파 취재진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황사장 사무실을 찾았으나 분위기는 하루 전과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사무실로 통하는 길목마다 경비원들이 지키고 서 취재진의 접근을 원천 봉쇄합니다. 거친 몸싸움도 벌어집니다. 취재진은 이 일이 그룹차원에서 이뤄졌을 수도 있다고 보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찾았습니다.

위장계열사에 자금을 부당지원한 혐의로 법정 구속됐다 지난 1월 건강 악화를 이유로 구속집행 정지된 김승연 회장의 자택. 뉴스타파임을 밝히자 열렸던 대문이 황급히 닫힙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김 회장과의 인터뷰를 시도하자마자 그 동안 한사코 접촉을 거부하던 한화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황 사장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사실을 시인합니다.

[한화그룹 홍보실 관계자]
(황용득 사장님이 조세피난처 쿡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은 맞나요?)
"네, 황사장님 이름으로 페이퍼컴퍼니가 있습니다."
(하와이에 콘도를 구입할 당시 황용득 사장과 박재홍 사장-한화무역부문-이 동경지사에서 같이 근무했단 말이에요. 그러면 박재홍 사장도 페이퍼컴퍼니 설립 사실을 잘 알고 있었겠네요. 당사자들은 뭐라고 얘기합니까?)
"황 사장은 그 회사를 알고 있고요. 박 사장은 그 회사로부터 부동산을 매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화 홍보실의 공식 입장은 황사장이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설립과 하와이 부동산 매매 사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던 입장과 전면 배치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황사장이 개인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한화그룹 측의 설명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듭니다.

30대 후반의 도쿄지사 직원이 하와이 부동산에 78만 달러 근저당 설정을 하고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호화 아파트 두 채를 굴렸다는 게 현실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직원 개인의 조세피난처 신탁 자산을 그룹 예산으로 매입해줬다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후 한화측은 다시 말을 바꿉니다. 한화재팬이 페이퍼컴퍼니의 실질적인 소유주라고 말합니다.

[한화그룹 홍보실 관계자]
"당시 한화재팬이 회사에 투자, 외부고객 접대, 임직원 복리후생 등으로 부동산이 필요했는데 어떤 현실적인 제약들이 있어서 회사가 구입할 수가 없어서 황사장님이 대신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합법적인 방법은 아니겠네요?)
"뭐...불법은 아니겠지만 상식적인 보통의 방법이 아닌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실제 소유주가 김승연 회장님 아닙니까?)
"아닙니다. 한화재팬입니다."

국세청의 전면 조사 이전에 한화그룹 측이 진상을 솔직하게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뉴스타파 황일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