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 의료기기 제조사 한스바이오메드가 위해성이 큰 의료기기 20여종을 허가사항과 다르게 제조하고, 임직원들은 이런 제조 관행을 숨겨온 기록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 회사는 인공유방 등 의료기기 불법 제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2016년 5월, 한스바이오메드 인허가, 연구개발, 품질관리 부서 임직원들은 이메일을 바쁘게 주고 받는다.
이사님, 연구팀에서 허가와 실제 생산과의 차이점 정리한 자료를 보내드리니 확인 부탁 드립니다.
-2016년 5월, 한스바이오메드 내부 이메일 기록
부서 간 이메일이 오간 이유는 한국·미국·중국 등에서 획득한 제조허가 사항과 실제 생산공정이 다른 제품을 내부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이들은 사실상의 불법 생산 제품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걸친 논의 끝에 임직원들은 하나의 문건을 만들어낸다. ‘한스 제품 중 허가증과 다른 내용’이라는 제목의 MS엑셀 파일이다. 2016년 기준으로 허가사항을 어긴 제품 24종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다. 1번부터 24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임직원들은 또 제품별로 공정·원료·비율·치수·용량 등 항목을 나누어 불법 제조 사항을 세밀하게 분류했다.
문건에 나오는 불법 생산 의료기기 24종 가운데 23종이 의료기기법상 인체에 미치는 잠재적 위해성이 가장 큰 ‘4등급’ 치료재료들이다. 문건에 따르면 한스바이오메드는 주력 제품인 ▲인공유방 ‘벨라젤’(Bellagel) ▲생체골이식재(SureFuse·ExFuse) ▲생체재료이식용뼈(BellaFuse·MaxiGen) 등 4등급 인체이식 의료기기들을 무더기로 불법 제조했다.
▲한스바이오메드는 인공유방 보형물 '벨라젤'(사진) 등을 허가사항과 다르게 제조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임직원들은 이때 문건에서 4등급 뼈지혈제(Stypos)에 대해서도 "세포독성이 관찰된다"며 "제품판매 중단 고려 중"이라는 의견을 나눴다. 그러나 이 제품은 이로부터 4년이 지난 올해 9월에야 식약처의 판매중지, 회수(리콜) 명령을 받았다.
문건을 보면 당시 임직원들이 불법 제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했지만 방안을 찾지 못했던 상황도 확인된다. 문건에 정리된 불법 생산품 대부분이 허가를 변경하거나, 신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건에서 아예 ‘정정 불가’라는 직원 의견이 적힌 제품만 세 종류가 확인된다.
당시 한스바이오메드는 불법 제조 사실을 숨기려 서류를 조작하는 일을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 해결책을 찾으려던 논의가 관행처럼 부도덕하게 흘러갔다. 문건 안에서 품질관리부서 임원은 ‘서류 조작’ 의견을 반복적으로 제시했다.
기존대로 이중 서류 작성, 이미 익숙해져 있음
미해결 시 기존대로 이중 서류 작성, 이미 익숙해져 있음
□□□□ 없는 수출용 허가증으로 해서 이중 서류 작성
태국 등의 수출용에 한하여 이중 서류 관리는 무난함
중국 수출 시, 한국내 제조판매 시 철저한 이중 서류 관리 필요
이중 서류로 관리
감독당국인 식약처의 현장 실사를 대비해 입을 맞추려는 정황도 문건에서 확인된다.
제품표준서 등으로 실사 시 “오타”로 대응
뉴스타파가 지난 3일 인공유방 벨라젤 불법 제조 사실을 처음 보도하자, 한스바이오메드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며 즉각 반박했다. 그러나 벨라젤은 불법 생산 기록이 있는 제품 24종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회사는 또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면서도 “임직원들이 이에 대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조직적으로 공모나 은폐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입수한 내부 문건 내용은 회사 주장과 다르다. 한스바이오메드 임직원들은 이미 수년 전에 언젠가 드러날 회사의 불법 행위를 입증할 증거를 작성해두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