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L&C와 하청업체의 이상한 계약

2014년 08월 12일 21시 28분

미분양 아파트를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산업재해가 일어나면 ‘을’의 책임으로 돌린다. 계약서를 쓸 때부터 ‘을’에게 불리한 조항 투성이다. 건설현장의 오랜 관행으로 알려진 이러한 불공정행위들이 한화L&C가 한 하청업체와 싸우는 과정에서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 과연 한화L&C만의 문제일까?

공사 수주 조건으로 떠안은 ‘대물’ 아파트

대구의 작은 건설자재 업체인 효창산업. 7년 전부터 국내 굴지의 재벌 기업 중 하나인 한화 그룹의 계열사, 한화 L&C와 하청 계약을 맺어왔다. 주로 나무로 된 창문이나 문 공사를 한화 L&C가 하청으로 맡기면 효창산업이 이를 받아 공사하는 일이었다.

지난 2008년, 효창산업의 경리담당 직원이었던 김지호씨(가명)는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았다. 한화L&C의 하도급 공사를 효창산업이 수주하는 조건으로 공사 대금을 아파트로 대신하는, 이른바 대물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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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에 따르면 한화L&C는 경남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목창호 공사를 효창산업이 수주하는 조건으로 아파트 1채를 대물로 받을 것을 회사에 요구했다고 한다. 효창산업이 받은 아파트 대물을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김 씨가 엉겁결에 떠안은 것이다.

당시 아파트의 시공사는 대동건설. 한화 L&C는 대동건설로부터 목창호 공사를 하청받아 효창산업에 재하청을 줬는데, 시공사였던 대동건설이 부도가 나버렸다. 검찰이 대동그룹의 본사를 압수수색하던 과정에서 김씨 명의의 이 이파트가 도급조건부계약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 씨는 부도에 따른 대한주택보증의 보증마저 받지 못하게 되었다. 계약금과 중도금 등을 고스란히 날렸고 이로 인해 신용불량 상태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렇게 김 씨가 소속된 효창산업이 7년간 한화 L&C로부터 아파트 대물을 떠안은 경우는 모두 6건. 2건은 직원과 직원 가족의 명의, 4건은 효창산업의 법인 명의였다.

한화L&C 측은 대물 강요는 전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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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화L&C와 거래했던 다른 하도급 업체 역시 한화L&C로부터 아파트 대물 강요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몇년 전까지 한화L&C의 하도급을 받으며 업체를 운영해온 김상윤씨(가명)는 “대물 강요가 없었다는 건 말도 안된다. 대물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며  “한화L&C가 주로 하는 얘기가 ‘나중에 한화건설과 거래하면 거기는 가격이 좋으니까 거기서 빼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계약서가 말한다, 산업 재해는 ‘을’의 책임?

효창산업은 한화L&C에서 하청을 받아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사고를 공상으로 처리하면 나중에 한화 L&C가 그 비용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에 대한 지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화 L&C 측은 애초에 효창산업과 쓴 계약서 상에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는 ‘을’, 즉 효창산업의 책임으로 되어있다며 자신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뉴스타파가 확인한 한화L&C와 효창산업의 계약서 상에도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을 ‘을’에게 돌리는 조항이 버젓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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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변호사들은 이러한 계약  자체가 하도급법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강신하 민변 민생경제위원장은 “계약서 상에 아무리 그렇게 되어있더라도 원청업체가 져야 할 산재 책임을 하청업체에 지우면 이는 하도급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매매계약으로 둔갑한 하도급 공사 계약, 무면허 공사 불러

이렇게 하도급법을 위반할 경우가 발생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는지 한화 L&C는 효창산업 등 하청업체들과 아파트 등 건설현장의 공사 계약을 하면서도 자재 납품용 매매계약서를 썼다. 이렇게 하면 원청업체인 한화L&C는 하도급법에 따르는 각종 책임에서 교묘히 벗어날 수 있다.

뉴스타파의 취재 결과 한화L&C가 이렇게 공사계약서 대신 매매계약서를 쓰면서, 공사 면허도 없는 업체들에게 하청을 주고 공사를 책임지도록 한 경우는 수십 건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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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대물로 공사대금을 떠넘기고, 산업재해가 나면 모두 을의 책임으로 되어 있는 계약서,그 계약서마저 정상적인 공사 계약서가 아닌 매매계약서를 작성해 공사와 관련된 대부분의 책임을 하도급업체인 ‘을’에게 떠넘긴 한 재벌의 계열사.

그러나 ‘갑’이 대물을 강요하거나 산재의 책임을 떠넘겨도 하청업체를 실질적으로 보호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어려웠다. 건설현장의 오래된 갑을 관계가 하청업체들의 목을 여전히 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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