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납부' 꼼수에 여론역풍

2013년 09월 13일 07시 30분

아랍은행 등 재산 해외은닉 의혹 해소 안 돼

뉴스타파가 지난 6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의 유령회사와 해외 비밀계좌를 폭로한지 3개월 만에 전 씨 일가가 미납 추징금을 완납하겠다고 밝혔으나 해외은닉 재산 관련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또 꼼수 납부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전재국 씨는 지난 9월 10일 서울중앙지검에 나와 1672억 원의 미납 추징금을 납부하기 위한 재산 목록을 제출하고, 일가를 대표해 국민에게 머리 숙였다.

그러나 이 재산목록에는 전재국 씨의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 계좌 등과 관련된 내역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국 씨는 이날 ‘국가에 반환할 재산에 해외 재산이 포함돼 있느냐’는 뉴스타파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해외재산은 없다”고 답했다.

검찰은 전재국 씨가 추징금 완납 입장을 밝힌 지 사흘만인 9월 13일 그를 소환해 구체적인 추징금 납부 방안과 더불어 자산 해외 은닉 등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조사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추징금 선고 16년 만에 완납 의사를 밝혔으나 여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내놓겠다는 재산들을 보면 대부분 검찰에 의해 이미 압류됐거나 수사 대상이 된 것들이다. 이 때문에 이른바 ‘자진 납부’란 형식은 꼼수일 뿐이며, 오히려 전 씨 일가가 부정 축재한 돈으로 증식한 재산 일체를 몰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은 “추징금 납부는 당연히 내야 될 의무가 있는 것을 내는 것에 불과하다”며 “정부는 전 씨 일가가 범죄수익을 통해서 얻은 이익까지 국고로 환수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해야 된다”고 말했다.

전 씨 일가를 둘러싸고 아직 풀리지 않은 의혹은 무엇인지, 이른바 ‘자진 납부’에 담긴 꼼수는 무엇인지 뉴스타파가 살펴봤다.

<앵커 멘트>
16년 만에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미납 추징금을 내겠다고 하는 것은 큰 진전입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이번에 전씨 일가가 내놓겠다고 한 재산을 살펴보니 1억5천만 원짜리 선산 말고는 모두 전두환씨가 과거에 내놓겠다고 했다가 약속을 어긴 것이거나 검찰이 이미 불법 혐의를 잡고 압류하거나 수사 중이었던 재산들이었습니다. 황일송 기자가 보도합니다.

<황일송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지난 10일 서울중앙지검에 나와 자진납부 형식으로 전 전 대통령이 미납한 추징금을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에 반환하겠다는 부동산 목록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 부동산들을 팔 때 생기는 세금의 납부 주체와 범죄수익으로 그동안 늘려온 부정재산의 반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지난 16년 동안 전두환 일가가 이 범죄수익을 이용해 얻은 이익은 국고로 귀속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에 따르면 범죄수익뿐만 아니라 그 수익을 얻은 이익까지 국가가 환수하도록 돼 있습니다. 따라서 전두환씨와 그 일가는 범죄수익을 통해서 얻은 이익까지 국고로 반납해야 할 것이고, 정부도 그 이익을 환수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검찰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마치 전씨 일가의 재산반납 의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화답했습니다.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
“이미 드러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수사하되 증거관계와 책임정도, 자진납부 한 점 등 여러 정상을 감안하여 처리할 예정입니다.”

추징금을 완납하면 정상참작을 통해 관용을 베풀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됩니다.

전씨 일가가 내놓겠다는 재산. 과연 검찰이 정상참작을 해 줄 만큼 진정성이 있는지 따져봤습니다. 전씨 일가가 발표한 재산목록입니다. 연천군 소재 허브빌리지 부동산 일체, 소장 미술품, 경기 오산시 소재 토지 일체, 이미 검찰이 압류한 자산입니다.

전재국씨가 운영하는 서울 서초동 시공사 건물과 땅도 내놓기로 했습니다. 대지 면적은 677㎡. 1㎡ 당 1500만 원에 거래되는 금싸라기 땅입니다. 땅값만 100억 원대로 추징금 반환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아버지 전 전 대통령이 이미 오래 전 국가에 반납하기로 약속했던 땅입니다.

[전두환]
“제 가족의 재산은 여러 분들이 계시는 연희동 집 안채와 두 아들이 결혼해서 살고 있는 바깥채, 서초동에 땅 200평,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축재했다고 단죄를 받는 이 사람이 더 이상 재산에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이 재산은 정부가 국민의 뜻에 따라 처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재만씨 소유의 서울 한남동 신원프라자 빌딩. 이미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간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인 곳입니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이 무기명 채권 160억 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 채권이 현금화 돼 재만씨에게 건네진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전씨 일가가 검찰에 제출한 재산 반환 목록 가운데 검찰이 이미 압류를 했거나 수사 대상에 올려놓지 않은 것은 경남 하천군에 있는 700,000㎡ 규모의 선산뿐입니다.

이 땅이 공시지가는 ㎡당 215원. 1억 5천만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즉 전씨 일가는 이미 검찰이 불법혐의를 잡고 압류했거나 수사 중인 재산에 대해서만 이른바 자진 납부란 이름으로 선심 쓰듯 포기한 것입니다.

[검찰 고위 관계자]
(검찰이 포착하지 못한 재산이 포함돼 있나요?)
“그거는 물어보지 마세요. 저 어제 브리핑 하면서도 그 부분은 얘기 안 했어요. 그거는 괜히 논란거리가 되고 이미 다 포착된 것은 자진납부하기로 했는데 그건 놔두시는 게 맞죠. 이미 내기로 한 부분을 이렇다 저렇다 해서 논란거리 만드는 것은 부적절해요.”
(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정상 참작을 해주시는 건가요?)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저쪽에서 뻗대고 소송하면 만만치 않은 거예요. 전부 다. 아니다, 그러고 다 일일이 다투면 어떡할 건데요.”

일각에선 검찰이 전 전 대통령 일가가 추징금을 납부하는 조건으로 면죄부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전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수사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수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
“당연히 내야 될 의무가 있는 것을 내는 것에 불과한데 그렇지 않습니까? 자진납부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하는 것 자체가 맘에 안 든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자녀들한테 겨누었던 수사의지를 만약 이 자진납부 속에 묻혀가지고 수사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전두환의 재산 더군다나 불법적인, 국민의 재산으로 돌아와야 할 재산을 가지고 범죄와 맞바꾼 것이다. 범죄를 탕감한 것 아닙니까. 그야말로 유전무죄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국민의 법 감정이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며 국민을 우롱해 온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완납만으로 군사반란과 천문학적 규모의 부정축재에 대한 죄값이 온전히 치러진다고 볼 국민은 거의 없을 겁니다.

검찰은 섣불리 전씨 일가에 면죄부를 줄 게 아니라 그들의 불법 행위를 낱낱이 밝혀 법의 엄중함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뉴스타파 황일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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