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신문 이종락 상무입니다”

2023년 11월 28일 10시 00분

지난 8월, 뉴스타파 취재진은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자신을 서울신문 이종락 상무라고 소개했다.
이종락 상무는 서울신문 사회부장과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지난해 9월 편집인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신문사의 편집인은 취재와 보도, 편집, 편성 등의 업무를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다. 
서울신문을 대표하는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편집인이 왜 전화한 걸까.
최근에 호반그룹 관련해서 여러 가지 취재를 하고 계신다고 그래서 호반 쪽에서 설명을 좀 드리고 싶은데, 이쪽이 보니까 언론 경험도 없고,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 모르고 그래서 저한테 상의를 왔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럼 황 기자님을 한 번 뵙도록 하겠다. 황 기자님이 궁금해 하는 거, 이런 부분을 제가 또 답변을 드리고... 

지난 8월 17일  이종락 서울신문 편집인과 뉴스타파 취재진 사이의 통화 내용 
내년에 창간 120주년을 맞는 서울신문은 지난 2021년 호반그룹에 매각됐다. 김상열 회장은 페이퍼컴퍼니였던 스카이주택의 이름을 서울미디어홀딩스로 바꾸고, 스스로 서울신문 회장에 취임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5월부터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 일가의 재산 축적과 경영권 세습 과정에서 탈세 의혹 등을 취재 중이었다. 
뉴스타파는 서울신문 편집인이 어떤 얘기를 하겠다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 그를 만났다. 
황 기자님이 어떤 걸 묻고 싶은지, 취재하고 싶은지 미리 제가 들을 수 있으면 그걸 준비하라고 제가 얘기를 할게요.  제가 잘 취재하는데 용이하게 되게끔, 원활하게 되게끔 연결하는 역할 정도만이라고 생각하세요. 

서울신문 이종락 편집인과 뉴스타파 취재진과의 대화에서 발췌
말로는 취재가 잘 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뉴스타파의 취재 내용을 미리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서울신문이 모기업의 대언론 활동을 조언하거나 대신 역할을 해주는 곳인지 되물었다. 이에 대해 이종락 편집인은 “여쭤볼 수 있는 것 아니냐. 같은 기자로서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부인했다.  그러면서 이종락 편집인은 자신과 나눈 대화 내용을 보도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서울신문의 편집인이 모기업인 호반그룹 관련 의혹을 취재 중인 타 언론사 기자에게 취재 내용을 묻는 것 자체가 ‘신문사의 경영과 편집권의 분리’라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저버린 부적절한 처신이다. 
뉴스타파는 이종락 편집인과의 대화 녹음 파일을 전국언론노동조합에 전달하고, 언론 윤리 위반 여부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이은용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같은 기자끼리라고 표현했지만, 언론인이라기 보다 로비스트 역할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이 김상열 회장 일가를 위해 앞장선 사례는 또 있다. 이번에는 국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9월 18일,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김대헌 호반그룹 기획총괄사장을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했다. 오 의원은 “청년들이 제일 좌절하고, 실망하고, 분노하는 게 부의 편법적 세습 문제”라며 “국회가 관심을 갖고 공정거래법상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검토하기 위해 김대헌 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고 말했다.  
김대헌 사장이 불과 서른 살이었던 지난 2018년 호반건설의 지분 54.7%를 차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 호반건설의 부당 내부 지원과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한 이른바 ‘벌떼 입찰’이 있었다는 공정위 조사 결과가 증인 신청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런데 증인 신청을 한 이튿날 서울신문 국회 출입기자가 오기형 의원실을 찾아가 의원 면담을 요청했다. 
서울신문 국회 출입 기자는 인사차 방문한 것일 뿐 김대헌 사장의 증인 신청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명색이 야당 반장인데 오 의원만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 차원에서 만났고, 스킨십도 강화하고 이런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기형 의원실은 서울신문 기자가 증인 채택 문제를 거론했다고 반박했다. 
서울신문에서 저희 의원실에 국정감사 직전에 찾아와서 ‘회사 일 때문에 왔다. 호반건설을 증인 신청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서울신문은 호반건설의 자회사고 그래서 찾아왔는데, 왜 호반건설을 증인으로 신청한 것이냐. 꼭 신청을 해야 되나’ 그런 말들을 하고 갔습니다. 

국회 오기형 의원실의 권태준 보좌관 
오기형 의원이 서울신문 기자와의 면담에 응하지 않자, 이종락 서울신문 편집인이 나섰다. 서울신문 기자는 ‘오 의원을 만나서 소통하고 싶다 이런 차원에서 자리를 주선해봐라. 약간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다’며 이종락 편집인에게 지시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서울신문 국회 출입기자가 만남을 주선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올해 국정감사에서 김대헌 사장에 대한 증인 채택은 무산됐다. 표면적으로는 여당의 완강한 반대때문이다.
서울신문은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호반건설에 인수된 이후 민영화로 공익 정론지로 재탄생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호반건설에 인수된 뒤 김상열 회장 일가와 호반건설을 비판한 57건의 기사가 한꺼번에 삭제됐다.
대신 호반건설에 대한 홍보성 기사가 늘어났다. 여기에 기자와 편집인까지 동원돼 사주 일가의 ‘방패막이’ 노릇을 한 구체적인 정황까지 드러났다.
족벌 토건 기업에 매각된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이다.
※ 관련 기사 보러가기
- [주간 뉴스타파] 호반과 골프장, 그리고 탈세 의혹: https://www.newstapa.org/article/GJCot
- 호반2세들, 페이퍼컴퍼니 통해 경영권 승계 정황: https://www.newstapa.org/article/2WP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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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김기철, 이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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