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와 광물공사 5화: '볼레오'의 진실

2018년 10월 01일 07시 37분

사. 자. 방.
MB정부가 벌인 대형국책사업은 온통 의혹투성이다. 그 중 해외자원개발을 명분으로 이명박 정부가 벌인 이른바 자원외교 비리는 4대강, 방산비리와 함께 이명박 정권의 부도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31조 원이 투입됐고 그 중 13조 원 이상이 날아갔지만 책임자가 누구였는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MB정부 자원외교에는 공기업들이 대거 동원됐다. 한국광물자원공사(KORES)는 그 중 하나다. 이명박 정부에서만 2조 원 넘는 혈세가 투입됐고 20개 넘는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 중 대부분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광물공사는 50년 역사를 뒤로한 채 간판을 내려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뉴스타파는 광물자원공사가 벌인 이명박 자원외교의 실체를 다시 추적, 앞으로 10회에 걸쳐 보도한다. 그 많은 혈세가 사라졌는데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이 같은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없고 국격(國格)을 세울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뉴스타파는 검찰수사와 감사원 감사 때도 확인되지 않았던 광물자원공사 내부문서와 MB자원외교의 산증인인 광물자원공사 전현직 간부들의 육성증언을 차례로 공개한다. <편집자 주>

“볼레오 동광산 사업권 인수, 이사회 보고없이 진행된 계약이었다”
(2012년 광물공사 핵심 임원 증언)

멕시코 볼레오 동광산 사업은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광물자원공사(이하 광물공사)가 벌인 최대 해외자원 개발사업이자 첫 운영사업이었다. 광물공사가 이 사업에 쏟아 부은 돈은 모두 1조 5000억 원이 넘었다. 하지만 수년째 정상운영이 안 되면서, 광물공사의 해외자원 개발사업 중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꼽히고 있다. 동시에 이명박 자원외교의 실패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광물공사가 이 사업에 처음 뛰어든 건 이명박 정부 출범 첫 해인 2008년. 민간기업 4곳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볼레오 광산 지분 30%를 인수하면서 첫 발을 담갔다. 그때만해도 광물공사의 지분은 10%, 투자금액은 279억 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2012년 4월, 이 사업의 대주주였던 캐나다 회사 바하마이닝이 투자비 증액을 결정하고 대주단이 대출금 인출 중단을 선언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같은 해 8월 광물공사는 사업포기를 선언한 대주주의 지분 대부분을 인수하기로 결정하고 아예 사업권까지 넘겨받았다.

▲ 멕시코 볼레오 동광산

멕시코 볼레오사업은 오랫동안 논란거리가 돼 왔다. ‘왜 광물공사가 부도에 빠진 대주주의 지분을 사들였는지’, ‘누가 그 결정을 내렸는지’, ‘그 과정에 흑막이 있는 건 아닌지’ 같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감사원과 검찰이 나서 감사와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뭐 하나 속시원히 밝혀진 건 없이 의문만 쌓여갔다. 1년 넘게 감사를 벌인 감사원이 ‘광물공사 경영진이 사업성을 부풀렸다’거나 ‘광물공사가 독단적으로 지분인수를 결정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래서 누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결국 국민세금 1조 5000억 원이 송두리채 날라갈 판인데도, 이 문제로 처벌받은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5월 산업자원부가 볼레오 사업을 다시 검찰에 수사의뢰한 것은 이런 답답한 현실의 연장선에 있다.  

MB시절 광물공사 핵심 임원들의 최초 증언
“사고가 터졌는데 대책반도 없었다”

뉴스타파는 수개월 전부터 볼레오 사업의 진행과정을 다시 확인하는 취재를 시작했다.  2012년 지분 추가인수가 결정될 당시의 이사회 의사록을 입수해 검토하고 광물공사 핵심임원들의 증언을 청취했다. 2012년 8월 광물공사 사장에 취임한 고정식, 이사회 멤버였던 박성하 전 광물공사 전략경영본부장, 볼레오 사업 책임자를 지낸 오도섭 전 광물공사 재무처장 등이었다. 볼레오사업의 진행상황을 목격한 광물공사 임원들이 언론을 통해  당시 상황을 증언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뉴스타파는 이러한 취재내용을 바탕으로 ‘볼레오의 진실’을 찾는 퍼즐맞추기를 시작했다.  

광물공사가 볼레오 사업의 대주주인 캐나다 회사의 지분을 통째로 인수하기로 결정한 건 2012년 8월 2일 이사회에서였다. 그리고 6일 후인 8월 8일 고정식 전 특허청장이 신임 광물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그런데 고 전 사장이 취임했을 당시 광물공사에는 볼레오사업을 책임지는 대책반도 없었다. 다음은 고 전 사장의 증언.  

볼레오 사업에 대한 첫 보고를 받았던 때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대주주가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공장이 멈췄는데, 현장유지 비용이 일주일에 600만불씩 소진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게다가 취임하기 며칠 전에 이미 대주주 지분을 우리가 다 떠 안는 계약을 한 상태였습니다. 사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광물공사에는 대응팀 하나 없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내린 첫 지시는 대응팀을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고정식 전 광물공사 사장
▲ 고정식 전 광물공사 사장

취재진은 광물공사가 대주주 지분을 떠 안던 상황이 적나라하게 기록된 당시 이사회 의사록을 확인하던 중,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2012년 4월 사업이  중단된 뒤, 광물공사 경영진이 공사의 최종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공사 중단, 대주주의 부도사태 등 사업현황을 3개월 이상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볼레오사업에 문제가 생긴 건 2012년 4월 18일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2012년 7월 27일에야 이사회에 보고됩니다. 당연히 이사님들이 늑장보고를 문제삼았습니다. 이사회 분위기가 아주 험악했습니다. 당시 실무라인이나 담당 본부장은 검토를 하느라고 시간이 걸렸다고 얘기했지만, 이사님들은 다 변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성하 전 광물공사 전략경영본부장

또 이사회에 사전보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광물공사 경영진이 대주주측과 5억 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추가 지분인수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광물공사 경영진이 대주주 측과 계약을 체결한 건 이사회에 대주주 부도사태, 공사중단 등이 처음 보고되기 이틀 전(2012년 7월 25일)의 일이었다. 중요한 경영상 문제를 사전보고하도록 하고 있는 광물공사의 내부 규정을 경영진이 위반한 것이다.

경영진이 맺고 온 계약은 이사회 의결을 전제로 한 계약이었다. 하지만 당시 광물공사 이사들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경영진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런 사실은 취재진이 확보한 당시 이사회 회의록에 적나라하게 들어 있다.  

“이사회 늑장보고, 허위보고의 최종 책임자는 사장과 담당 본부장”

이사회 보고도 없이 진행된 이 계약은 광물공사가 볼레오 사업을 모두 떠안게 되는 시작점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런 사실은 2014년 감사원 감사결과는 물론 2015년에 진행된 검찰 수사결과에서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이사회에서 “경영진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던 남효응 전 광물공사 이사는 뉴스타파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영진이 이사회에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경영진이 뭘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이사회가 경영진 비리를 조사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육두문자까지 쓰면서 소리만 지르고 말았죠.

남효응 전 광물자원공사 이사
▲ 오도섭 전 광물공사 재무처장

대주주 지분인수 결정이 난 뒤인 2012년 10월, 볼레오 사업 책임자로 임명된 오도섭 전 광물공사 재무처장도 광물공사 경영진이 이사회에 늑장보고, 허위보고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당시 사장과 담당 본부장 등 경영진에게 있다고 말했다.  

경영진이 이사회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대주주였던 바하마이닝이 사실상 사업포기를 통보해 온 건 2012년 4월 8일인데, 이후 3달 간 초기 현황이나 중간 진행상황이 이사회에 보고된 사실이 없었습니다. 사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사전보고하도록 한 공사 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겁니다. 늑장보고, 허위보고에 대한 책임은 경영진, 다시말해 사장과 담당 본부장들에게 있습니다.

오도섭 전 광물공사 재무처장

50년 역사의 광물공사는 조만간 간판을 내리고 광해관리공단과 통합된다. 500명 가까운 광물공사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구조조정의 칼날 위에 서게 됐다. 혈세 1조 5000억 원이 허비된, 하지만 실패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지금까지 알 수 없는 멕시코 볼레오 사업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사업이 시작된 지 10년, 문제의 대주주 지분인수가 결정된 지 이미 6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반드시 책임자를 찾아 그에 맞는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취재 한상진
연출 박경현 신동윤
촬영 최형석 정형민 신영철
편집 윤석민
CG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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