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녀’가 던진 화두... “복지 사각지대”

2014년 03월 11일 22시 24분

도저히 어쩔 수 없었던 가난을 ‘죄송하다’며 지난 2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세 모녀, 그리고 간암 투병 등으로 인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부.

빈곤층의 연이은 자살에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섰다.

“정말 안타깝고 마음 아픕니다. 우리나라의 복지 여건이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있는 복지제도도 이렇게 국민이 몰라서 이용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없는 제도나 마찬가지입니다. 있는 제도부터 제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그것도 그 제도에 대한 접근도 용이하게 해서 복지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월 4일, 박근혜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

보건복지부도 부랴부랴 복지사각지대 일제조사에 착수했다. 기초단체 공무원과 사회복지사, 통반장 등을 동원해 현행 복지제도의 수혜 대상이지만 사각 지대에 있는 빈곤층을 찾아내 지원하고, 제도 홍보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 지난 2월, 두 자녀와 함께 생을 마감한 어머니가 남긴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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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두 자녀와 함께 생을 마감한 어머니가 남긴 유서

그런데 이 내용은 지난 2011년 복지부가 실시했던 일제조사와 판박이다. 당시에도 공중화장실과 지하철에서 생활하던 세 남매의 사연이 언론에 알려지며 복지시스템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자 떠밀리듯 시행된 것이었다.

빈곤층 “세 모녀는 내 모습.. 정부 대책은 남의 나라 일”

복지사각지대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부상하고, 정부가 긴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 지금의 분위기를 정작 빈곤층 당사자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뉴스타파 취재진은 서울시내 쪽방촌과 임대아파트를 찾았다. 취재진이 만난 빈곤층들은 하나 같이 세 모녀의 사연을 자신의 일처럼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한 달 간의 일제조사로 자신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내와 함께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70대 할아버지는 왕래도 없는 자식의 가난까지 증명해야 국가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앞에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포기했다.

“재산 한 푼 물려준 것도 없고 돈벌이도 시원치 않은 자식에게 재산・소득 증명까지 떼어 달라고 하면 애들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우리도 나이는 먹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걸 아이들한테 얘기를 못하는 거죠. 그래서 포기해버리는 거예요. ”
(안봉구 / 임대아파트 주민)

▲ 안봉구씨가 살펴본 기초수급 신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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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봉구씨가 살펴본 기초수급 신청서

30대 딸이 몇 년 간 취업 준비를 하며 끌어다 쓴 2천만 원을 갚느라 3천만 원 짜리 전세방에서 나와 월세민이 된 50대 어머니도 여전히 무직인 딸의 근로 능력을 이유로 기초수급 신청에서 탈락했다.

“전세 빼서 빚 갚고 나니까 월세 나가야지, 먹고 살아야지. 힘들더라고. 그래서 오죽했으면 동사무소에 찾아가서 사정 얘기를 했더니,딸이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수급자가 안 된다고 그래. 되게 서운하고 창피하고...”
(서울 대림동 월세민)

지난해 대장암과 치매 판정을 받은 아내가 요양원에 들어가 매달 80만 원을 보내줘야 하는 60대 남성은, 지방에 소유한 5천만 원 짜리 주택 한 채 때문에 기초수급대상이 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금 벌이는 하나도 없고 아내 요양비로 한 달에 80만 원 씩 드는데.. 그 집 팔아서 당장은 몇 푼이라도 나올테니까 아직은 굳이 나라의 도움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나보다 더 사정이 나쁜 사람들도 있을 테니 그런 사람들 먼저 주고. 이러다 곧 돈이 다 떨어지면,나라에서 장례 비용이나 보태주려나…”
(서울 흑석동 월세민)

쪽방촌에서 만난 80대 할머니는 의사로부터 늑막염이 심각해진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어떤 사연도 밝히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 제도가 있는 줄은 알지만 신청을 해보려고 시도해본 적은 없다는 말을 남기며 돌아서는 뒷모습은 홀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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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처럼 현재 어떤 복지제도가 있는지 잘 몰라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빈곤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층 구제 시스템은 소득과 근로능력, 병력, 가족 관계까지 다 알려주고 스스로 신청을 한 뒤 엄격한 심사를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인격적 모욕만 받고 막상 혜택은 받지 못하는 일이 빈발한다. 이런 사례들이 누적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생활이 어려워도 구제 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이게 바로 사각지대다.”
(문진영, 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마지막 버팀목’도 저버리는 정부.. ‘사각지대’ 해소 의지 있나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빈곤층들의 마지막 버팀목마저 치워버리고 있다.

주소득원의 갑작스런 사망이나 부상, 화재나 천재지변 등으로 당장 생활이 어려워진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긴급복지지원 예산마저 올해 크게 줄었다. 지난해 971억 원(추경 포함)에서 올해 499억 원으로 51%나 삭감된 것이다. 불용예산을 없애라는 정부 방침 때문이다.

▲ 2014년 들어 대폭 삭감된 긴급복지지원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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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들어 대폭 삭감된 긴급복지지원 예산

한 달 벌이가 90만 원에도 못 미치는 빈곤층 숫자는 800여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17%에 달한다. 그러나 정부의 기초생활수급 대상은 최근 5년 간 계속 줄어들어 현재 135만 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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