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그렇다면 법원은 공소기각을 준비해야 한다
2024년 10월 28일 17시 17분
국정원 간첩증거 조작 사건과 관련해 지난 3월 자살을 시도했던 국정원 대공수사국 블랙요원 권세영 과장이 지난 8일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나왔다. 대형 가림막으로 모습을 감췄지만 4시간이 넘게 계속된 재판 내내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유지하며 비교적 또렷한 목소리로 판사의 질문에 답했다. 불과 석달 전 생사의 문턱을 오가며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사람으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증거조작 사건이 불거지며 국정원 직원 등을 대상으로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당시, 권 과장은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27년 간 목숨 걸고 일했는데 검찰 조사를 받아 모욕적이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권 과장은 자살을 기도해 위중한 상태로 발견된 바 있다. 그의 자살 시도 후 검찰은 국정원 지휘부에 대해서 수사를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하고 증거 조작을 실무진 차원의 범행으로 결론지었다.
지난 4월 수사결과 발표 당시 권 과장에 대한 기소를 시한부로 중지했던 검찰은 지난 1일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권 과장이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회신 공문과 선양주재 한국영사관 소속 이인철 영사의 확인서 위조에 관여하고, 중국 공안 출신인 임 모 씨의 진술서를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임 씨의 진술서 조작은 권 과장이 주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권 과장은 지난해 12월 국정원 협력자 김원하의 소개를 통해 과거 집안시 변방검사참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임 씨에게 접촉했다. 권 과장은 미리 준비해간 메모를 보여주며 해당 내용을 중문으로 옮겨 써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임 씨는 ‘출입경기록에 없는 기록이 생길 수 없고 을종 통행증을 통해 여러번 국경을 왕복할 수 있다’는 메모의 내용이 사실과 틀리다고 지적했지만 권 과장은 메모의 내용을 능통한 중국어로 설명하며 진술서에 메모 내용을 그대로 옮겨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임씨는 지난 3월 8일 뉴스타파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권 과장과 일행 2명은 자신들을 ‘검찰 관계자’라고 소개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작성된 허위 내용의 진술서는 유우성 씨 사건 담당 검사를 거쳐 법정에 제출됐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이 문건이 조작된 것으로 알려지자 검찰은 뒤늦게 증거를 철회한 바 있다. 당초 검찰은 임 씨를 유우성 씨 사건 재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내세울 계획이었지만 진술서 조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역시 철회했다.
한편 지난 8일 법정에는 증거조작의 피해자 유우성 씨도 참석해 재판과정을 지켜봤다. 유 씨는 이미 많은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국정원 직원을 보며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달 25일 증거조작 사건 재판부에 피해자 진술을 신청했던 유 씨의 변호인단은 이날 재판에서도 ‘수사과정에서 진술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아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재판절차에서 진술 기회가 보장될 필요가 있다’는 신청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미 소환 조사를 통해 유 씨에게 진술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지만 본인이 거부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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