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활비 내부 공문 입수① '돈봉투 만찬' 못 막는 '돈봉투 만찬 대책'

2023년 08월 10일 13시 30분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원석 검찰총장이 ‘2017년 9월 이후 검찰 특수활동비(특활비)의 관리에는 문제가 없다’며 그 근거로 2017년 9월부터 시행된 검찰 특활비 관리제도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뉴스타파가 당시 검찰의 ‘특활비 집행제도 개선 방안’ 문건 전문을 입수했다.
그러나 특활비 제도를 개선했다는 한 장관과 이 총장의 말과 다르게 검찰의 내부 문건은 “예산, 회계 관련 기록물을 5년간 보존”하고, “특활비의 현금 사용을 자제”하며, ‘특활비 지출 증빙서류를 반드시 갖추라’는 등 이미 시행되고 있던 법과 지침을 지키라는 내용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7년 4월에 일어난 ‘이영렬·안태근의 돈봉투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제도 개선 방안이 허울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건데, 법무부와 검찰이 애초에 특활비의 오남용을 막을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돈봉투 만찬 사건 합동감찰반 ‘특활비, 격려금으로 돌려도 문제 없다’고 결론

2017년 4월 21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은 서울 서초동의 한 식당에서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 소속 검사와 법무부 검찰국 검사 등 8명과 저녁을 먹었다. 이 자리에서 이 지검장은 법무부 검찰국 검사 2명에게 각각 현금 100만 원씩 돈봉투를 줬고, 안 국장도 현재 검찰총장인 당시 이원석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포함한 특별수사본부 검사 6명에게 각각 현금 70~100만 원이 든 봉투를 돌렸다. 봉투 속 현금의 출처는 전액 특활비였다. 수사, 정보 수집 등 기밀 업무에 써야 하는 특활비를 검찰 간부들의 격려금으로 유용한 것이다.
▲ 2017년 4월 21일,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검찰 간부들이 연루된 ‘돈봉투 만찬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이 드러난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부 감찰관실과 대검찰청 감찰본부에 합동감찰을 지시했고, 2017년 6월 7일 합동감찰 결과가 발표된다. 
합동감찰반은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법무부 검찰국 검사 2명에게 격려금으로 특활비 200만 원을 준 행위를 기획재정부 예산집행지침 위반으로 판단했다. 기재부 지침상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에 직접소요되는 경비’인 특활비를, 수사 업무를 직접 수행하지 않는 법무부 검찰국 검사에게 지급했기 때문이다.
▲ 합동감찰반은 당시 이영렬 지검장이 법무부 검찰국 검사 2명에게 격려금으로 특활비를 지급한 행위를 기재부 지침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안태근 검찰국장이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 소속 검사 6명에게 준 특활비에 대한 합동감찰반의 판단은 달랐다. 이영렬 지검장과 마찬가지로 수사 등에 직접 써야 하는 특활비를 후배 검사에게 격려금, 즉, ‘용돈’처럼 나눠줬는데도, 합동감찰반은 수사 업무를 하는 검사에게 특활비를 지급했다는 이유를 들어 기재부 지침 위반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특수활동비를 수사비로 지급한 것은 사용 용도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횡령죄나 예산 집행지침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으며...

장인종 돈봉투 만찬 사건 합동감찰반 총괄팀장 (2017.6.7.)
▲ 합동감찰반은 당시 안태근 검찰국장이 국정농단 특별수사본수 소속 검사 6명에게 격려금으로 특활비를 지급한 행위는 기재부 지침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검찰 특활비를 수사 검사들의 격려금으로 써도 아무 문제가 없다며 ‘면죄부’를 준 상황. 감찰 결과 발표 다음 날인 2017년 6월 8일, 법무부와 검찰은 특활비 관리제도를 개선하겠다며 TF팀을 꾸리고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어떤 개선책이 마련됐을까.

이원석 총장, 한동훈 장관 ‘2017년 9월 제도 개선 이후, 검찰 특활비에는 문제 없다’고 주장 

돈봉부 만찬 사건 이후 5개월 뒤인 2017년 9월 5일, 대검찰청은 검찰 조직 전체에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을 시행한다. 이 ‘2017년 9월의 특활비 제도 개선책’을 두고 이원석 검찰총장은 최근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17년 9월에 특활비와 관련한 관리 지침이 개정돼 엄격하게 관리하고 지침에 따라 용도와 절차에 맞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원석 검찰총장 (2023.7.4.)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지난달 국회에 나와 ‘2017년 9월 특활비 제도 개선책’의 실효성을 강조했다.
한동훈 장관 : 제도 개선을 하라는 결론이 2017년 9월에 나왔고요... (중략)...
정점식 의원 : (‘2017년 9월 이후에 지침이 개정되고 난 이후에는 자료가 모두 남아 있다’ 이런 취지지요?)
한동훈 장관 : 잘 하고 있습니다. 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2023.7.26.)
한 장관과 이 총장이 강조하는 ‘2017년 9월의 특활비 제도 개선책’에는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 걸까. 두 사람 모두 ‘특활비 관리제도를 개선했다’고만 할 뿐, 무엇을 어떻게 고쳤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국회의원들이 법무부와 검찰에 자료 공개를 요구하는데도, 두 기관은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2017년 9월 특활비 제도 개선책’ 검찰 내부 문건 확인

뉴스타파는 여러 경로를 통해 ‘2017년 9월 특활비 제도 개선책’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검찰의 공문을 입수했다.
공문의 제목은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 시행 통보’. 2017년 9월 5일, 검찰총장이 전국의 검찰청에 내려보냈다.
▲ 2017년 9월 5일, 대검찰청이 검찰 조직 전체에 시행한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 시행 통보’ 공문
공문은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시작한다. 
법무부와 대검은 특수활동비 집행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효울적인 감독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017년 6월 8일, 법무부, 검찰청 제도개선TF팀을 구성하여 논의한 결과, 첨부와 같이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였으니 철저히 준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 시행 통보 (대검찰청, 2017.9.5.)

검찰 특활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① ‘법 지켜라’

공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특수활동비 지출내역기록부를 작성”해 “5년 간 보관”하라는 부분이다. 아래에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라 “예산, 회계 관련 기록물 5년 보존”이라고 적혀 있다. 다시 말해, 특활비 예산 자료를 5년 동안 보관하는 건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라 검찰도 당연히 지켜야 하는 사항이다. 
그런데도 대검찰청이 굳이 공문을 통해서까지 ‘앞으로는 법을 준수해 특활비 지출 증빙자료를 5년 동안 보관하라’고 당부한 이유는 뭘까.
▲ 2017년 9월 5일, 대검찰청이 검찰 조직 전체에 시행한 공문의 ‘주요 사항’
뉴스타파는 대검찰청을 포함한 전국의 검찰청이 2017년 1월부터 길게는 8월까지 특활비 지출 증빙자료를 불법 폐기한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다. (관련 기사: 검찰의 거짓말... 특활비 기록 불법 폐기 확인) 지난달 26일, 한동훈 장관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나와 불법 폐기를 시인한 바 있다.
그 전(2017년 9월)까지는 뭐냐 하면 2개월마다 자료를 폐기하게 되는 게 오히려 원칙이었거든요. 

한동훈 법무부 장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2023.7.26.)
▲ 검찰은 특활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이 시행된 2017년 9월 이전까지 특활비 예산 자료를 지속적으로 불법 폐기해왔다.
검찰 특활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이 시행된 2017년 9월 이전까지 검찰 내부에서는 공공기록물관리법을 어기고 예산 자료를 무단 폐기하는 범죄 행위가 수시로 벌어졌다는 사실이 공문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검찰 특활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② 기존의 특활비 지침 ‘재탕’

공문 뒤에는 문건이 첨부돼 있다. 제목은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 5쪽 분량이다.
▲ 2017년 9월 5일, 대검찰청이 시행한 공문에 첨부돼 있는 ‘특활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 문건
처음 두 쪽에는 표지와 특활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을 추진한 배경, 경과가 정리돼 있다. 3쪽과 4쪽에 제도개선 방안인 ‘집행방법 개선으로 투명성 확보’가 나온다. 마지막 5쪽은 기획재정부와 감사원의 지침을 복사해 붙여넣었다.
핵심은 3쪽과 4쪽에 있는 제도개선 방안인데, 내용을 보면 “기밀유지 필요성이 낮거나 집행 사유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카드를 사용”하라고 나와 있다. 모든 공공기관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획재정부 ‘예산집행지침’의 “특수활동비의 현금 사용 자제” 내용을 되풀이한 수준이다.
▲ 2017년 9월 5일 시행된 검찰의 특활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
▲ 기획재정부의 예산집행지침
그 다음으로 검찰의 제도개선 방안에는 특활비의 “현금 집행 시 현금수령증은 반드시 구비”, “증빙서류는 별도의 서류철에 보관”하라고 돼 있다. 이 역시 모든 공공기관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감사원의 ‘특수활동비에 대한 계산증명지침’에서 정하고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내용이다.
▲ 2017년 9월 5일 시행된 검찰의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
감사원의 특수활동비에 대한 계산증명지침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촉발된 검찰의 제도개선 방안... 정작 특활비 오남용 대책은 ‘전무’

나머지 제도개선 방안도 기관장이 지출 증빙서류와 장부를 잘 챙기라는 당부가 전부다.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하는 경우 반드시 기관장 또는 부서장이 결재”, “기관장, 부서장 책임 하에 특수활동비 집행일, 금액, 지급대상자, 지급사유 등을 기재한 지출내역기록부를 작성” 등이다.
제도개선 방안은 “특수활동비 집행에 대한 내부통제 강화”, “검찰 특수활동비는 대검찰청 감찰본부에서 사무감사 등의 계기에 점검”하라는 내용으로 끝맺는다.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촉발된 제도개선 방안인데도, 내용 어디에도 돈봉투 만찬 사건 같은 특활비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은 없다.
뉴스타파는 한동훈 장관과 이원석 총장이 그토록 강조했지만, 정작 특별한 내용은 없이 그저 법과 지침을 잘 지키라는 당부만 가득한 2017년 9월 5일의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 시행 통보’ 공문 전문을 데이터포털에 공개한다. 
다만 취재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공문의 원본을 그대로 ‘재작성’한 형태로 공개한다. 같은 이유로 공문의 수신자와 접수번호 정보는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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