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활비 내부 공문 입수② 오남용 방조한 검찰, 자정 능력 의문

2023년 08월 10일 13시 30분

2017년 5월 '이영렬 돈봉투 만찬' 사건의 후속 대책에 따라 법무부가 아닌 대검찰청 감찰본부에 전체 검찰 특수활동비 집행의 관리·감독을 맡겨온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후속 대책의 목적은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고위 검사들의 특활비 오남용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특수활동비 사용에 대한 '외부 통제'가 강화되기는커녕 검찰의 '셀프 감사' 권한만 명문화시켜 준 셈이 됐다.   
'셀프 감사'의 한계를 입증하듯 결과적으로 검찰 내부의 특활비 자정 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3개 시민단체와 뉴스타파가 최초로 검찰로부터 특수활동비 집행 기록을 받아내 검증한 결과, 무증빙 영수증을 비롯한 숱한 오남용 의혹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뉴스타파가 최근 확보해 재구성한 2017년 9월 검찰 공문에 첨부된 법무부의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 문서. 
최근 뉴스타파는 법무부가 2017년 8월에 작성하고, 다음 달인 9월 문무일 검찰총장이 대검 각 부서와 일선 검찰청에 통보한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 개선 방안' 공문을 확보했다. 공문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특수활동비를 봉투에 담아 법무부 검사들에게 나눠준 사실이 그해 5월 드러난 후 마련된 후속 대책을 담고 있다. 이 대책은 합동감찰 직후 법무부와 대검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협의 끝에 내놓은 특활비 오남용 개선 결과물이다.
당시 법무부·검찰 합동감찰반은 "법무·검찰 고위 간부의 사려 깊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깊은 실망을 드리게 된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법무·검찰의 특수활동비 사용체계에 대해서도 투명성을 확보하고 엄격한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뉴스타파가 공문을 통해 확인한 결과, 법무부와 검찰이 내놓은 대책에서 핵심 부분은 문서 말미에 등장하는 '특수활동비 집행에 대한 내부통제 강화' 대목이다.
여기서 내부통제 강화 방안으로 "법무부 및 그 소속기관 집행 특수활동비는 법무부 감찰관실에서 점검하고, 검찰청 집행 특수활동비는 대검찰청 감찰본부에서 사무감사 등의 계기에 점검"이라고 돼 있다. 아울러 "점검을 통해 특수활동비 집행의 적정성(증빙 구비 여부 등)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특수활동비 편성 및 배정에 반영"하라고 덧붙였다.
공문에는 기획재정부와 감사원의 예산 지침을 언급한 것 외에 제2, 제3의 특활비 돈봉투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대책은 '내부통제 강화' 말고는 따로 없었다. 
뉴스타파가 최근 확보해 재구성한 2017년 9월 검찰 공문에는 검찰의 '셀프 감사'를 가능케 하는 '특수활동비 집행에 대한 내부 통제 강화 방안'이 포함돼 있다.  

검찰 고위직 특활비 오남용 방지책으로 '외부 통제 강화'가 아닌 '셀프 감사' 제시

이처럼 고위직 검찰 간부가 특활비를 오남용한 '이영렬 돈봉투' 사건의 후속 대책임에도 법무부가 아닌 검찰이 특활비 집행을 스스로 점검하고 관리하도록 명문화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예산과 인사 등 검찰 사무 전반을 감독할 책임이 있는 법무부가 특활비만큼은 검찰이 알아서 관리할 수 있도록 정했다. 특수활동비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풀어준 것이다.
더구나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폐쇄적 업무 시스템이 공고한 검찰에서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총장이 전권을 쥐고 있는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을 제대로 관리·감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근거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심각한 오남용 논란에도 '검찰 셀프 감사'의 길을 터준 법무부의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그동안 함구해 왔다. 국회에도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법무부와 대검에 2017년 제도개선 방안 마련 이후 시행된 특활비 감사 내역 제출을 요구했으나 자료를 받지 못했다.
대검은 "특수활동비 점검 등 자체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직무 수행이 곤란해질 수 있다"며 감사 결과의 공개를 거부했다. 법무부 또한 "특활비 관리 개선 방안에 따라 특활비 집행 내역 및 증빙자료를 작성·관리하고 있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검찰의 특활비 오남용 의혹을 살펴봤을 때, 특활비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법무부와 검찰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든 상황이다. 근거 사례는 많다. 

영수증도 없이 쓴 검찰총장 특활비 최소 1억 9천만 원 확인

뉴스타파는 검찰의 특활비 제도 개선 방안이 시행된 직후인 2017년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문무일 검찰총장실에서 쓴 특수활동비 17억 2,356만 5,000원 가운데 최소 1억 9,857만 1,000원의 영수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이 공개한 기록을 분석한 결과 2017년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동안 문무일 총장이 집행한 특수활동비 가운데 1억9,000여 만원에 대한 증빙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사과 발언이 나온 지 채 석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또한 문무일 총장 재직 시절 작성된 특수활동비 기록 23개월치 가운데 장부와 영수증 금액이 일치하는 것은 단 3개월에 불과했다.
매월 국민 혈세로 마련된 수억 원대의 특수활동비가 심각하게 오남용됐거나 회계 부정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뉴스타파는 특수활동비 증빙 기록에서 드러난 관리 실태에 대해 문무일 총장에게 해명을 거듭 요구했으나 문 총장은 답변을 거부했다.
결국, 검찰과 법무부가 내부 통제 방안으로 내세웠던 대검찰청 감찰본부의 '셀프 감사'는 전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검찰총장실 특활비 장부와 영수증만 대조해도 드러날 예산 비위가 대검 감사에서 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사를 통해 문제를 확인하고도 은폐했거나, 애초부터 감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연말 몰아쓰기와 '금고'에 쟁여두고 해 넘겨 쓰기 

대검찰청은 매월 초마다 전국 65개 일선 검찰청에 정해진 비율에 따라 특수활동비를 계좌로 이체했다. 그런데 특활비 제도 개선 방안이 시행된 지 3개월여가 지난 2017년 12월에는 이례적인 자금 흐름이 확인됐다. 12월 1일에 3억 9,900만 원을 입금한 데 이어 성탄절 직후인 26일에도 4억 1,0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기밀유지가 필요한 수사 활동에 직접 쓰이는 경비'인 특수활동비의 목적에 비춰보면, 연말에 전국 검찰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급박한 기밀 수사가 진행됐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가정할 수밖에 없다. 예산을 연말에 남김없이 쓰기 위해 임의로 특활비 배정해 나눠 지급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검찰총장이 특수활동비를 예산 집행 기한에 맞춰 쓰지 않고 현금으로 따로 보관해 임의로 사용한 의혹도 제기된다. 뉴스타파가 확인한 결과, 대검찰청의 특수활동비 계좌를 관리하는 운영지원과는 2018년 12월 27일 338만 7,680원 인출을 마지막으로 그 해 배정된 특활비 예산을 모두 사용했다. 10원 단위까지 남김없이 출금해 특활비가 입금되는 국고 계좌의 잔액은 0원이 됐다. 다음 해 국고 계좌에 특수활동비가 입금된 시점은 2019년 1월 14일이었다. 2018년 12월 28일부터 2019년 1월 13일까지 대검찰청은 사용할 수 있는 특활비는 없었다.
그런데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계좌 상 0원이었던 이 기간에 검찰총장실이 따로 관리하는 장부에서 1월 10일 5,500만 원, 1월 11일 1,800만 원 등 총 9,000만 원이 넘는 특활비를 사용한 기록이 확인된 것이다.
2019년 1월 1일부터 13일까지 대검찰청의 특수활동비 계좌 잔액은 '0원' 상태였지만 문무일 검찰총장은 9,700만원이 넘는 특수활동비를 지급했다. 
계좌 상으로는 특활비를 모두 쓴 것처럼 꾸며 놓았지만, 실제로는 쓰지 않은 현금을 '금고' 등 특정 장소에 보관했다가 해를 넘겨 예산이 배정되기도 전인 2019년 초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각 회계연도의 경비는 당해 연도의 세입으로 충당하여야 한다'는 국가재정법상의 회계연도 독립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 특수활동비 집행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확인된 만큼 후임인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집행한 특수활동비 사용도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검찰은 "기록물 복사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최근까지 윤석열 총장 임기 약 23개월 중 2019년 하반기 6개월 치만 공개했을 뿐 나머지 기록물에 대해서는 공개 시점조차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31일, 2017년 10~12월 석 달치 대검 특활비 자료를 받은 게 마지막 수령이다. 

특활비로 일부 검사들의 '명절 떡값', 수사 포상금 지급 의혹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수사 활동에 직접 써야 하는 경비'로 정의돼 있지만, 일부 검사들의 명절 떡값이나 특정 수사에 대한 포상금으로 지급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여럿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기간(2017.5.22~2019.7.24) 동안 각각 두 번의 설날과 추석 명절을 앞둔 시점에 2억 4,900만 원 상당의 특수활동비를 사용한다. 2018년 설을 앞둔 2월 12일에는 48명에게 총 7,100만 원을, 2019년 설을 앞둔 1월 28일에는 18명에게 총 7,800만 원을 지급했다. 2018년 2월 12일과 2019년 1월 28일은 그 해 중 가장 많은 특활비가 지급된 날이다. 윤 대통령은 추석 연휴를 앞둔 2017년 9월 25일에도 4,000만 원(15명), 2018년 9월 20일에는 6,000만 원(36명)을 지급해 여느 날보다 많은 특활비를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임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인 2019년 9월 추석에는 보이지 않는 특활비 집행 패턴이었다. 
뉴스타파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 검사(현 금융감독원장)에게 지급한 것으로 보이는 특활비 영수증도 확인했다. 오른쪽 상단에 '이복현'이라고 쓰인 서울중앙지검 특활비 영수증에는 2018년 3월 23일 200만 원을 지급했다고 돼 있다. 2018년 3월 23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비자금 조성과 뇌물수수 혐의로 서울 동부구치소에 수감된 날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소속된 특수2부는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 수사팀의 핵심 전력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수사에 대한 일종의 '포상금'으로 특활비 200만 원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복현 금감원장은 뉴스타파에 "그럴 수도 있다"면서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2018년 3월 23일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특수활동비 200만 원을 지급한 후 작성된 영수증. 문서 오른쪽 상단에 '이복현'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말 뿐인 '카드 사용 원칙', 문무일·윤석열 등 검찰 수뇌부 안 지켜  

검찰 특활비 제도 개선 방안에는 '기밀 유지 필요성이 낮거나, 증빙 자료만으로는 집행 사유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카드를 사용'하라고 명시돼 있다. 기획재정부 예산집행 지침이 강조하는 '가급적 현금 사용을 자제하라'는 기본 원칙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1차로 공개한 2017년 5월부터 2019년 9월까지 2년 4개월 동안 특수활동비 292억 원을 쓰고 남긴 기록 6,805장 가운데 카드 영수증은 단 한 장도 없었다. 문무일 총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등 당시 검찰 수뇌부가 특활비 제도 개선 방안을 솔선수범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뉴스타파가 지적한 오남용 사례는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가 개선 강화됐다는 2017년 9월 이후의 예산 자료만을 분석해 얻어낸 결과이다. 고위 검사들의 특수활동비 오남용 사건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사죄드린다'던 법무부와 검찰이 내놓은 개선 방안은 '셀프 감사'였고, 그마저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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