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정보공개청구 ‘달인’과 ‘정부 2인자’의 대결

2022년 11월 15일 10시 00분

우리나라에서 정보공개청구 제도는 24년 전 1998년에 시작됐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의 시행부터다. 이 법 1조에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함”이라고 돼 있다. 공개가 곧 감시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공직 감시에 이상적인 제도인 ‘정보공개청구’의 현실은 삐거덕

정보공개청구 제도는 민주 사회를 받치는 근간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민주적’이지는 않다. ‘숨바꼭질’ 놀이와 비슷해 보이지만, 게임의 규칙은 불공정하다. 승률은 감추는 쪽에 유리하게 펼쳐진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들은 통지 기일을 연장해 근무일 기준으로 꼬박 20일을 채워서 자료를 주거나, 원본 대신 임의로 가공한 자료를 공개하기도 한다. 이 경우 제공받은 자료의 오염 가능성이 있어 100% 신뢰하기 어렵다. 
이렇게라도 자료를 받아내면 다행이다. 많은 공공기관들은 갖은 구실을 대고 정보를 숨긴다.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벌여도 재판은 늘어지기 일쑤다. 시민들이 공직과 행정을 감시하기에 정보공개청구는 으뜸가는 도구이나 그 운용은 삐거덕거리고, 시간과의 하릴없는 싸움이 되고만다.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하승수 변호사는 정보공개청구의 ‘달인’으로 통한다. 지금까지 그가 신청한 정보공개청구 건수는 1천 건이 넘는다. 양만 많은 게 아니라 정보를 받아내는 능력도 탁월하다. 그간 경험이 쌓여 그만의 비결이 생긴 덕이다. 그런 하 변호사에게 최근 ‘호적수’가 나타났다.  
지난 9월 21일, 하승수 변호사는 법무부에 올해 1월부터 법무부 장·차관이 쓴 업무추진비와 지출 증빙 자료를 공개해달라는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법 규정상 법무부는 10일 안에 공개·비공개를 결정해 통지하게 돼 있다. 다만 통지 기간을 10일 더 연장할 수 있다. 

법무부 정보공개법상 규정한 법정 통지 기간 넘겨   

하지만 법무부는 법정 통지 시한을 넘긴 10월 20일까지 아무런 통지를 하지 않다가 10월 25일에서야 청구 결과를 하승수 변호사에게 통지했다. 법 규정대로라면 법무부는 10월 5일까지 공개·비공개 여부를 결정해 통지해야 했다. 그런데 10월 20일까지 근무일 기준으로 열흘 더 연장하더니 결국 법정 기한을 넘겨서 통지했다. 법무부는 “많은 정보공개가 청구되거나 청구 내용이 복잡하여 정해진 기간에 결정하기 어려움”이라고 해명했다
뒤늦은 통지도 그렇지만, 하승수 변호사는 공개 받은 내용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법무부에 추가 정보공개청구를 해 놓은 상황이다. 이번에는 법무부 전체 부서가 사용한 업무추진비에 대해 신용카드사가 법무부에 보낸 카드 사용내역을 청구했다. 가공하지 않은 원본 자료를 봐야 정확한 사실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동훈 장관, 미국 출장 경비 4,840만 원 사용 내역 공개 거부

한동훈 장관과 법무부가 국민 세금으로 쓴 예산 사용 내역을 쉽게 공개하지 않으려는 행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 장관은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7일까지 7박 9일간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자는 한 장관과 법무부 직원 3명이었고 출장비 4,840만 원을 썼다. 법무부는 상세한 지출 내역은 공개하지 않고 운임 2,459만 원, 체재비 2,339만 원 등 총액 규모만 발표했다.
그가 미국에 가서 무슨 일을 했는지 관심이 쏠렸다. 당시 한 장관의 미국 출장을 놓고 논란이 있던 상황이었다. 출장계획서에서는 미국 법무부 장관과 회담하겠다고 했지만, 회담은 무산됐고 대신 법무부 차관보 두 명을 만나는 일정으로 바뀌었다. 애초 계획과 목적에 맞는 출장이었는지 검증이 필요했다. 
지난 8월 7일, 하승수 변호사는 법무부에 출장비 4,840만 원의 구체적 용처를 공개해달라는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일자별 지출 내역, 지출 명목, 지출 장소는 물론 지출 증빙자료(카드 영수증)를 달라고 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썼는지 출장비 지출 내역을 헤아려 미국 출장의 적절성을 따져보기 위함이었다.  

출장 내역 공개할 경우, ‘국방 등 국익 침해’ 우려 주장

하지만 법무부는 공개를 거부했다. ‘국방 등 국익 침해’를 사유로 댔다. 한동훈 장관이 쓴 출장비 내역은 ‘국가안전보장,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때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게 법무부의 주장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한동훈 장관이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났는지, 또 어디서 자고 뭘 먹었는지 교통비, 숙박비, 식사비의 공개가 무슨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친다는 건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법무부는 하승수 변호사가 정보공개청구한 '국방 등 국익침해'를 이유로 한동훈 장관의 해외출장비 내역의 공개를 거부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국회의원뿐 아니라 국회의장, 부의장 등 국회의장단의 해외 출장 집행 내역도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한동훈 장관과 법무부만 이런 사법부의 판단을 모르고 있다는 말일까.

한동훈 장관, 미국 출장 후 두 달이 지나서야 외교부에 서면 통보

게다가 한동훈 장관은 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는 장관 등 고위공직자의 국외 출장은 출국 예정 10일 전에 출장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혀 외교부 장관에게 허가를 요청하고,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가 허가하게 돼 있다. 다만 시간적 여유가 없는 긴급한 경우, 외교부 장관에게 구두 통보한 후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의 허가를 직접 받을 수 있다.
이 규정에 따라 한동훈 장관의 미국 출장을 보면, 외교부 장관의 허락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국무총리에게 허가받았다. 긴급한 출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진행 과정을 살펴보니, 출장을 떠나기 일주일 전인 6월 22일 국무총리에게 출장을 신청해 6월 28일 결재받아 그다음 날 29일 미국으로 떠났다.
▲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가 공무로 국외 출장을 가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외교부 장관에게 허가를 요청하고,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동훈 장관의 경우 출장 하루 전인 6월 28일 국무총리의 결재를 받았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을 다시 살펴보니, 한 장관처럼 외교부 장관의 사전 허락 없이 긴급하게 출장을 갈 때는 출장 전 외교부 장관에게 구두 통보하고, 총리에게 허락받은 뒤 다시 외교부 장관에게 서면으로 출장을 통보해야 한다.
▲ 하승수 변호사가 외교부에 한동훈 장관의 해외 출장 서면 통보를 받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한 장관이 7월 9일 출장을 다녀오고 두 달이 넘는 9월 20일까지 서면 통보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하승수 변호사가 확인해 보니, 한동훈 장관은 7월 9일 미국에서 돌아오고 두 달이 지나도록 외교부에 서면 통보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언론에서 출장 논란을 지적하자 9월 21일 외교부에 서면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출장 두 달 뒤에 서면 통보한 사정이라도 있었는지 법무부의 해명은 따로 없다. 

하승수 변호사, 한동훈 미국 출장비 증빙자료 공개소송 제기 

하승수 변호사는 오늘(11월 15일) 한동훈 장관의 미국 출장비 사용 내역과 영수증을 모두 공개해달라는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냈다. 하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법을 잘 지켜서 모범을 보여야 할 법무부가 정보공개법도 어기고,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상의 절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행태를 보인다면, 어떻게 국민들이 법무부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검찰처럼 법무부도 비밀주의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검찰과 법무부도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설명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인받으려 합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 뉴스타파 전문위원
정보공개청구의 ‘달인’과 윤석열 정부의 ‘2인자’간의 벌이는 행정소송의 결과는 어떨까. 하승수 변호사는 “한동훈 장관이 직(職)을 거는 걸 좋아하는데, 미국 출장 정보를 공개하라는 소송에 대해서는 뭘 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제작진
디자인정동우, 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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