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는 왜 녹조 독소를 세계 최고로 강하게 규제하는가

2023년 01월 19일 20시 00분

4대강 사업 이후 녹조가 창궐하면서 독소에 대한 우려가 커져왔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논란만 많을 뿐 해결방법을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날씨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녹조 독소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뉴스타파는 녹조 독소 문제에 대해 깊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미국에 가서 여러 전문가들과 인터뷰했다. 
빈센트 콜리아노 박사/ 캘리포니아 OEHHA(건강위험평가국)

빈센트 콜리아노 캘리포니아 건강위험평가국 박사 “독소에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캘리포니아주는 2021년 먹는 물에 대한 녹조 독소 마이크로시스틴(MCs) 기준을 0.03ppb(3개월 이상 음용금지)로 정했다. 이 기준은 지금까지 나온 먹는 물에 대한 마이크로시스틴 기준 중에 세계적으로 가장 예민한 것이다. 한국은 마이크로시스틴 중에서 가장 독하다고 알려진 MC-LR만을 1.0μg/L(ppb) 기준으로 감시하고 있다. 한국의 기준은 270여 종이나 되는 마이크로시스틴 중 1종만 감시하는 것으로, 이미 모든 종류의 마이크로시스틴(MCs)를 감시하는 세계 선진국들과 WHO기준에 비해 너무 안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주는 모든 종류의 마이크로시스틴에 대해 0.03ppb라는, 놀라울 만큼 낮은 기준을 설정한 것이다. 왜 이렇게 한 것일까?
빈센트 콜리아노(Vincent Cogliano) 박사는 캘리포니아 환경보호청(EPA) 소속 환경건강위험평가국(OEHHA)의 각종 독소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가 낮은 기준을 만든 데는 최근 나온 생식독성에 대한 연구 결과가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시스틴이 아주 낮은 농도에서도 정자 숫자를 감소시키거나 활동성을 저하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해 중앙일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중국의 불임 클리닉을 찾은 남성 1,715명의 정자를 검사했더니 평균 0.16ppb의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고, '농도가 높을수록 정자 숫자가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저널에 실렸다.
콜리아노 박사는 또 기준을 설정할 때는 불확실성에 대한 여유있는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에서 기저질환이 있고 나이 많은 사람과 건강하고 젊은 사람의 사망률을 비교해보면, 독성에 취약한 사람들을 훨씬 더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레이스 자이 마이애미 의대 교수

그레이스 자이 마이애미 의대 교수 "한국의 녹조 에어로졸, 놀랄만큼 높다"

그레이스 자이(Grace Zhai) 교수는 마이애미 의대(University of Miami Miller School of Medicine)에서 녹조 에어로졸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해왔다. 취재진이 낙동강 대동선착장에서 지난해 8월 포집한 녹조 에어로졸의 수치(6.8ng/m3)를 알려줬더니 그는 매우 놀랐다. 그는 처음엔 단위가 잘못된 것인가 했다면서, 자신이 연구에 활용하고 있는 에어로졸의 농도와 비교할 때 너무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녹조 에어로졸에 있는 독소가 검출 한계 이하로 낮은 수치라 해도 실험 대상인 초파리에 쐬면 영향이 나타난다고 했다.
자이 교수는 마이크로시스틴이나 BMAA 같은 녹조 독소들이 신경변성 질환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독소가 있는 에어로졸을 2시간 정도 쐬면 초파리들의 뇌 사이즈가 줄어들고 뇌 연결망인 시냅스 숫자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 에어로졸을 흡입했을 때 즉각적인 반응이 없더라도, 사람의 뇌 속에 남세균이 들어가 뇌 시스템에 통합된 채로 몇십 년을 지내다 보면, 치매와 파킨슨병 같은 질환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녹조 에어로졸을 조용한 살인자(silent killer)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자이 교수는 특히 어린이들을 녹조 에어로졸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험 결과 노인보다 어린이가 녹조 독소에 더 취약했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오랜 시간을 살면서 독소에 대한 저항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반면 어린이들은 저항성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지영 오하이오주립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이지영 오하이오주립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한국 녹조와 파킨슨병, 치매 발생 연관성 있다"

이지영 오하이오주립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지난 해 한국의 녹조 발생이 증가하면서 파킨슨병, 치매 등 신경퇴행질환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녹조 발생 강도가 증가할수록 신경퇴행성 질환 발생률이 늘어나는 것을 관찰했다. 특히 녹조는 파킨슨병에 가장 장기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관찰됐다. 녹조 발생 지역으로부터 5킬로미터 지점이 3종의 신경퇴행질환과 유의미한 연관성이 나타나는 경계였다고 한다. 낙동강 등 녹조 다량 발생 지역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건강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키는 연구 결과다. 
이지영 교수는 "한국 정부가 MC-LR 한 가지를 감시 항목으로 지정하는 것만으로는 독소에 취약한 계층에 대한 보호를 충분히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공중 보건을 위해 녹조 독소에 대한 관리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 “녹조 독소 우려할 필요 없어" vs 환경 단체 "제도화된 사기극"

미국 전문가들의 말과는 다르게 한국 정부는 녹조 독소에 대해 시종일관 우려할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내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1월 19일 ‘쌀, 무, 배추 130건을 검사한 결과 녹조 독소가 모두 불검출됐다'고 발표한 것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식약처의 발표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녹조 독소 조사는 녹조가 많았던 지역에서 해야 실효가 있는데, 어느 지역 농산물을 분석했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자체 조사에서 지난 해 9-11월 낙동강 등에서 수거한 쌀에서 마이크로시스틴 축적을 확인했다면서 곧 기자회견을 통해 구체적인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정부와 환경단체의 녹조 독소에 대한 주장은 평행선을 달려왔다. 이명박 정부 당시 환경부는 4대강 사업으로 보가 설치 되더라도 수질이 나빠지지는 않는다고 했고, 사업 후 녹조가 창궐하자 ‘보 때문이 아니라 폭염 때문'이라고 했다. 환경부는 낙동강에 녹조를 모니터하는 조류경보제를 만들면서 수치가 적게 나오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했다. 그 결과 국립환경과학원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조류경보제에 따라 측정한 최고 농도는 3ppb에 불과했다. 반면 2021년 환경단체가 낙동강에서 측정한 마이크로시스틴 최고 농도가 4,914ppb나 됐다. 
3ppb와 4,914ppb는 환경부와 환경단체의 녹조 독소에 대한 접근방법과 견해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강특위 부위원장은 환경부의 녹조 독소 접근방법에 대해 ‘제도화된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녹조 문제를 미국 전문가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는 비극

4대강 사업이 속도전으로 진행되는 와중에 녹조는 정쟁의 소재가 됐다. 그 결과 독소 관리라는 정부의 기본 역할마저 정치의 관점에서 접근하게 됐고, 한국의 녹조 독소 관리는 후진국 수준이 됐다.
이런 상황이 초래된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한국 전문가들의 태도다. 전문적인 의견 제시를 통해 정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했어야 할 전문가들이 오히려 정부가 원하는 방향대로만 의견을 내며 과학적 진실을 가린 것이다. 뉴스타파가 한국의 녹조 문제를 굳이 미국의 전문가들에게 물어봐야 했던 것도 국내에서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전문적 견해를 확보하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탓이었다.
기후변화와 함께 녹조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고 독소 문제는 점점 국민 건강을 위협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뉴스타파가 만난 해외 전문가들의 의견대로 녹조 독소를 국민 건강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제대로 된 정책적 대응을 해야 할 때다.
제작진
글,구성이근수
촬영오준식
편집윤석민
출판허현재
디자인이도현
C.G정동우
연출최승호